세계 여러 나라의 대학을 돌며 교육의 질을 개선하는 '아르고 호 프로젝트'의 매니저 김장붕.


정신을 차려보니 판타지 아카데미의 교육 컨설턴트가 되어있었다.


이 세계가 뭐하는 곳인지, 마나라는 힘은 또 뭔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거 하나만은 안다.


"아이들을 미궁에 밀어넣고, 서로 경쟁시키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혹사시키도록 만들고.... 이런 게, 세계 최고의 교육기관이라고?"


모든 아이들은 최고의 환경에서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미래 따위 보이지 않는 이딴 세계.


내가 뜯어고쳐주마.


*


진짜, 오리엔테이션부터 총체적 난국이다.


ㅡ "본 교관이 말한다. 죽고싶은 녀석이 있다면 지금 말해라. 내가 죽여줄 테니."


이게 전직 영웅의 대사라고? 어디 테러리스트 양성소의 교관이 아니라?


"저기, 미친놈이세요? 아이들에게 이게 할 말이에요? 아니, 당신 교육자잖아요? 최소한의 의식조차 없는 겁니까?"

"...기선제압이 필요하다고 여겼을 뿐입니다. 현실을 알게 해줄 필요가...."

"현실이요?"


"...네.현실. 저는, 각오 없는 용기가 얼마나 나약한지 봐왔습니다. 훈련에서 가장 용맹했던 사람조차 죽음의 공포 앞에서는 도망치기 바쁘다는 걸 압니다. 그러니...."

"그래서, 아이들에게 말했다고요? 너 따위들은 죽어도 상관없다. 그러니, 목숨 따위 아까워하지 마라."


"그런 의미는 아니었...."

"아니라고요? 적어도 제 귀에는 그렇게 들리던데요. 당신, 위대한 영웅이니, 역전의 용사니 하는데, 교육자로서는 최악이야. 알아?"


"...말 함부로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당신, 무능력자 아닙니까."

"인정하기 싫으니 이제는 협박... 당신, 당신의 제자들도 당신같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거라면, 그래, 그렇게 하세요. 힘으로 사람 협박하고, 남 겁박해서 행동하게 만들고. 그런데, 적어도 그게 아이들이 되고자하는 '영웅'의 모습은 아닐 거잖아."


"우리는 목숨을 걸고 사람을 살려야합니다. 영웅이라는 하찮은 이름 따위, 생명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저 아이들 중에 그 뻔한 사실 모르는 애가 있을 것 같아? 아이들도 다, 자기가 목숨 내놓고 있다는 거 알아. 당신은 풋내기라며 무시하는 저 아이들도, 전부, 목숨 걸고 이 아카데미 입학한 거라고. 영웅이라는 하찮은 이름? 그 하찮은 이름이 저 아이들이 평생 동안, 걸음마하면서부터 간절히 바라온 꿈이야. 천재라고 불리는 유망주도, 재능이 없다는 소리를 들으며 아득바득 올라온 아이들도, 당신이 보잘 것 없이 여기는 그 영웅이라는 이름 하나만 보고 지금까지 걸어온 거라고. 근데, 당신이, 아이들이 동경하는 당신이, 그렇게 말해버리면. 저 아이들의 꿈은 뭐가 된다는 거야?!"


"...."

"당신이 지켜낸 아이들이고, 당신이 지켜낸 미래고, 당신이 만들어준 꿈이야. 그렇다면, 책임을 져야지. 안 그래?"


"...제가,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이제야 제대로 된 질문이 나오네."


"...."

"좋습니다. 영웅께서는, 아이들의 꿈이 되어주셔야 합니다."


.

.

.


"나참, 일반인 주제에 뭔 조언을 하겠다고 우리를 부르는 건지."

"교육 컨설턴트라고 하던데, 마나도 다룰 줄 모르는 부적응자라면서요? 이사장님도 뭘 믿고 그런 사람에게 컨설팅을 부탁하신 건지 모르겠네."


"...일단 한번 들어보고 이야기하는 게 어떤가."

"헙?! 강철 교관님! 옙! 죄송합니다!"


"모두 모이셨나요? 강의 계획서는 전부 제출하셨겠죠? 자, 시작하겠습니다."

"...."


"여러분이 꿈꾸는 이상적인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상상해보십쇼. 이 학생들은 배움에 대한 열의도 높고, 행동거지는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사실, 저희 아카데미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잖아요? 아, 동의하지 않으시는 분도 몇 계시는 것 같은데, 일단 그렇다고 상상이라도 해봅시다. 제가 종이를 나눠드릴 테니, 제가 말씀드릴 문장을 완성해주시면 됩니다. 최대한 다양하게 써주세요."

"...."


"우리 학생들은 지금으로부터 3~5년 후에도 ■■를 알고있을 것이다. 아니면, ■■의 중요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0분 정도 시간을 드릴 테니 고민해서 채워주세요. 그 내용이 앞으로 여러분이 하실 교육의 기초가 될 테니까요."

"...."


"전부 채우셨나요? 자, 혹시 한분씩 이야기해보시겠어요?"


"마수학과 교수입니다. 저는 학생들이 마수를 연구하고 관찰하는 과정을 알고 익히길 바랍니다. 마수의 새로운 행동이나 흥미로운 특징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탐구할 수 있는 과학적 연구 과정을 설계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좋네요. 다른 분은요?"


"...집단 전술 교관입니다. 집단 전술이라는 게, 아무리 이론을 외워도 결국 전우들 간의 유대와 신뢰가 중요한 과목입니다. 나는 학생들이 동료 학생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동료에게 등을 맡기는 법을 익혔으면 좋겠습니다. 그 아이들은, 다들 자기가 직접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마법학과 교수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마법을 지루하고 전투를 위한 학문이라고만 생각하지 않고, 마법의 재미를 알고 흥미를 붙여줬으면 좋겠어요. 마법과 관련된 이야기나 기사를 보면, 그걸 절로 클릭하게 될 정도로, 마법 그 자체에 재미를 붙일 수 있다면 좋겠네요."


"다들 좋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이 처음 제출한 강의계획서를 돌려드리겠습니다."


빽빽한 일정과 시험 계획으로 가득 차있는 강의계획서.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진도를 나가고, 학생들이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적혀있다.


하지만, 칠판에 적혀있는 교관들의 목표에 그런 '내용'은 적혀있지 않았다. 마수학과 교수는 어떤 마수의 어떤 특성을 알아야한다 말하지 않았다. 마법학과 교수는 어떤 공식을 외우고 어떤 연습을 해야하는지 말하지 않았다.


교관들은 자신들의 빽빽한 강의계획서를 돌려받고서야, 자신들이 지금까지 과목이 아니라 학생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를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손에 들고 계신 강의계획서는, 여기 칠판에 적혀있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얼마나 도움이 될 것 같나요?"


교관들도, 교수들도, 모두 침묵했다.


그리고, 영웅의 목소리가 그 침묵을 깨트렸다. 옅은 자조와 함께.


"전혀. 전혀 도움이 안 되는군."


지금 이 순간, 모두가 영웅의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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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느낌의 아카데미 교육 컨설팅물 써줘.


교수들이든 교관들이든 다 배울 줄만 알고, 실전에서 써먹을 줄만 아는 사람들이라 정작 어떻게 가르쳐야할지는 모르고.


결국 주입식으로 때려넣기만 바쁜 아카데미에서.


진정한 교육을 설파하는 그런 주인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