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먹으면 장수한다는 신비로운 종족, 인어를 헐값에 사들였다. 상처투성이에 병들어 상품가치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흑.. 흑.."


한때는 고왔을 분홍빛 머릿결은 윤기 하나 없이 푸석푸석했고, 잡히는 과정에서 온몸에 난 상처들은 조금씩 썩어가는 중이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사람과 비슷한 종족을 먹는다니, 맛도 비슷할까? 


"인어는 무슨 맛이 나려나..."


무심코 내뱉은 말에 몸을 바들바들 떨며 움츠리는 그녀였다. 인간인 이상 장수라는 말에 이끌리는 건 당연지사였다.


"왜 울고 그래. 빨리 이쪽으로 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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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잡아먹지 않으시는 건가요?"

"너처럼 다친 걸 어떻게 먹어, 다 나은 뒤에 먹어야지."


인어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붕대가 감긴 상처를 만지작거렸다.


"오늘 잡아먹히는 건가요?"

"아니. 나으려면 한참 멀었잖아. 세 달만 기다려."


"오늘은요? 이 정도면 충분히 나은 것 같은데요."

"결정하는 건 나야. 아직도 멀었어."


상처가 조금씩 나을 때마다 인어는 그렇게 질문하길 거듭했고, 내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저기.. 인간 씨."

"버질이라고 불러."

"버질 씨. 괜찮으시다면 노래라도 불러드릴까요?"


나는 어차피 식탁에 올라갈 녀석이 무슨 노래냐고 물었다


"당신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있으니까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운걸요."


나는 마지못하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지상의 어떤 가수도 흉내낼 수 없는 아름다운 선율이 한참 동안이나 귓가에 맴돌았다.


"오늘따라 별이 참 아름답네요."

"원래 너희 인어들은 별 보는 걸 좋아해?"

"그건 아니고, 후회되지 않도록 최대한 많은 것들을 눈에 담아놓아야죠."


그녀가 살며시 입꼬리를 들어 보였다. 잡아먹힌다는 사실이 두렵지도 않은 것일까?


"당연히 무섭죠. 하지만... 당신이라면 어쩐지 괜찮을 것 같아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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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데려온 날로부터 정확히 100일이 지나고, 드디어 인어를 잡아먹기로 한 날이 되었다. 그녀는 어느 때보다 초연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그 동안 정성껏 돌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는 후회 없이 떠날 수 있겠어요."


마지막으로 허리를 꾸벅 숙이며 그녀가 말했다.


"부디 소원대로 장수하시길 바랄게요."

"야... 지금 나 일부러 놀리는 거지? 와서 밥이나 먹어."


"그게 무슨 말..."


그녀와 얘기할 때면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이따금 불러주는 노래도 듣기 좋았고, 천연덕스러운 미소도 오래토록 보고 싶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녀를 먹을 생각은 없었지만, 한낱 식재료로 생을 마감하기엔 너무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였다,


"내일이면 바다로 보내줄게. 네 말대로 충분히 나았-"


그녀가 양 팔을 목에 둘러오는 통에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품 안이 해수가 아닌 무언가로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한참 동안 인어를 꼭 안아주었다.


인어를 먹겠다는 약속은 다른 의미로 지켜졌다. 그녀를 데려오고 반 년쯤 되던 어느 날, 하늘을 수놓은 은하수를 구경하던 우리는 분위기에 흽쓸려 서로를 좀 더 알아가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좁디좁은 인어의 안을 내 것으로 채운 뒤였다.


아, 그 뒤로는 어떻게 됐냐고? 이십 년이 넘은 지금도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과 함께 건강히 살고 있다. 인어를 먹으면 장수한다는  속설이 그 뜻이었을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