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지의 대륙에 숨겨져있던 과거의 유적.

그곳에 마도제국 벤트하임의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찾아왔다.

규모는 대략 1개 중대 규모..

그러나 그들을 이끄는 지휘관의 계급은 중장이다.

지휘관 뿐만 아니라 부대원들의 계급도 매우 높았다.

최소 중령이었으니까.

언뜻 보면 계급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지만 이건 그리 이상하지 않다.

실제로 이 1개 중대 규모의 인원은 1개 군단에 필적하는 전력을 지녔으니까. 

실제 편제도 군단이고.


"여기로군."


그들의 대장, 에리히 폰 잘름 마법군 중장이 유적의 문 앞에 서자, 유적의 문에 달린 디스플레이에 전원이 들어왔다.


[암호를 입력하세요.]


잘름 장군은 거리낌 없이 교단의 잠언인 그 문구를 입력했다.


-우리의 기도가 하늘에 닿기를.-


[승인되었습니다.]


패스워드는 정확했고, 유적 내부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고 있던 문이 열렸다.


-치익.. 위이이잉


문이 열리자 잘름 중장은 뒤로 돌아섰다.

유적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군단원들에게 당부해야 할 말이 있기 때문이었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이 곳은 과거에 존재했던 이름없는 교단의 신전이다. 마력으로 동작하는 기관이 아니니 마력탐지를 과신하지 말도록."


이름없는 교단..

마력이 없는 열등인들이 냉엄한 현실에 복종하는 대신 마력이 아닌 다른 힘을 손에 넣겠다는 일념 하에 창설한 교단.

원래 이 교단에는 이름이 있었다.

단지 그 이름이 현대 역사에서 의도적으로 지워졌을 뿐.

그랬어야 할만큼 위험한 힘을 지녔던 교단이기도 했으며, 위험한 교리를 가진 교단이기도 했다.

열등인들에게 이들의 존재가, 이들의 교리가 알려지면 안된다.

열등인들에게 헛된 희망을 품게 하고 우등인에게 복종하지 않게 만드는 이 교단의 교리와 지식은 악이다.

이들의 존재와 교리를 접한 열등인들은 살처분 할 수밖에 없다.

열등인들에게는 아는 것만으로도, 접한 것만으로도 죄가 되는 것이 바로 이름없는 교단이다. 

과거 이 정신역병 때문에 우리 우등인들은 전 세계적인 생산력 감소를 감수하고 열등인을 10억명이나 살처분했어야 했었다.

또다시 세계가 그런 손해를 감수하게 되면 안될 것이다.

우등인의 정예부대인 특수마법군이 이곳에 파견된 이유 또한 그것이다.

열등인들이 이 교단의 흔적에 접하게 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기본적으로 우등인들은 교단의 교리라는 정신역병에 저항성이 있으니까.

그것도 세상의 기득권에 가까이 있는 충성심이 입증된 우등인들이라면 더더욱.


"진입한다. 우리의 목표는 신전 내부에 존재하는 교단의 사도. 이것이 교단의 마지막 신전이다. 이 곳에 있는 사도만 제거하면 우리의 임무는 끝난다."


...


[당신을 클로즈베타 게임의 베타테스터로 초대합니다. 베타테스트를 하고 싶으시다면 자기 전에 이 종이를 찢어주세요.]


"이건.. 뭐지?"


우편함에 들어있던 명함 비슷한 쪽지에 써진 문구였다.


"누가 장난치나?"


장난으로밖에 볼 수 없었다.

솔직히 그렇지 않은가?

무슨 게임인지 알려주지도 않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다짜고짜 베타테스터로 초대에 참여하고 싶다면 자기 전에 종이를 찢으라고?

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


-찌익


솔직히 찢지 않을 수 없잖아?

이렇게 수상한 초대장이라면 받지 않을 수 없잖아?

특히 나같은 장붕이라면 더더욱.

고대하고 고대하던 이세계로 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가즈아! 


나는 종이를 찢자마자 곧바로 잠에 빠져 버렸다.


...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을 해 주세요.]


'정말이네 이거.. 게임같아.'


내 눈앞에 있는 것은 커스터마이징 창이었다.

그렇다.

나는 지금 자각몽을 꾸고 있다.


'베타 테스트라고 했던가?'


나는 늘 하던 대로 캐릭 커스터마이징을 시작했다.

RPG게임 캐릭은 무조건 이쁜 여캐다.

굳이 남캐를 키울 이유가 없다.

게임 하는 내내 제일 많이 구경해야 할 캐릭이다.

그리고 남자 구경하는 취미는 나에겐 없다.


'오.. 이번 커스터마이징은 역대급으로 잘 됐는데?'


만족스러웠다.

보기만 했는데도 꼴린다.

더 이상 잘 만들 자신이 없다.

그렇다면 끝난 거지 이제!

나는 옆에서 깜박거리는 완료 버튼을 눌렀다.

이제 시작이다!


...


{위잉! 위잉! 위잉!}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격벽이 떨어져 내렸다.


"함정이다! 보안 시스템을 건드렸어!"


{허가받지 않은 루트로 진입한 유기체 발견. 생명활동을 강제로 정지시킵니다.}


"전방에 안드로이드! 교단 열등인 새끼들.. 어떻게 이런 걸 만든거지? 마력도 없이!"


{사격 개시.}


"전방에 실드! 교단의 화살이다! 맞으면 죽어!"


-투타타타탕


안드로이드들의 석궁이 불을 뿜었고, 수없이 많은 미세한 화살들이 날아왔다.

교단의 화살은 그야말로 마탄.

크기가 작지만 위력은 일반적인 화살을 아득히 상회하며, 연사력 또한 뛰어나다.

마법을 제대로 배운 우등인들에게조차 위협이 될 정도로.


"실드마법 소모가 너무 빨라! 오래 못 버텨!"


"괜찮아! 마력 풀로드 완료됐어. 전방에서 비켜! 발사한다! 폴터가이스트캐논 맛좀 봐라!"


-콰아아아아


폴터가이스트캐논이 청백색의 빛다발을 뿜어냈다.

폴터가이스트캐논은 폴터가이스트 매직미사일을 발사하는 마도공학 장비.

폴터가이스트 매직미사일은 술자가 지정한 적을 끝까지 추적해서 파괴한다.


{.. system malfunction.. 신체 제어 불능.. 수리 요망.. 작동을 일시중지..}


-퍼석


"영원히 중지다! 깡통새끼야!"


잘름 장군은 무력화된 안드로이드에게 화풀이 하는 부대원을 가만히 바라봤다.


"..."


그러자 잘름 장군의 부관, 오토 빈트시가 잘름 장군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 아니다.. 단지.. 이번엔 좀 많이 위험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 일반적인 연구소 수준에 끽해야 독가스 함정 좀 있었던 다른 신전들과는 달라.. 왠지 여기야말로 그들이 진심으로 숨기고자 했던 장소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빨리 이 신전의 사도를 찾아야 해. 세계에 남은 마지막 불확정성.. 거의 다 왔는데 너무 불안하군."


"다 잘 될겁니다. 여태껏 우리 군단은 잘 해오지 않았습니까? 12개의 신전과 12마리의 사도.. 그 중 11개의 신전과 11마리의 사도를 제거했습니다. 이제 여기가 제일 마지막. 이걸로 악성의 교단은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군.."


다행스럽게도 희소식이 들려왔다.

우측 통로를 탐사하던 부대원으로부터의 전음 마법이었다.


{신전의 매인 채플을 찾았습니다. 예의 그 유리관이 보입니다. 유리관 내부에 미라 같은 무언가가 들어 있습니다. 추청하기로 교단의 인조생명체.. 호문쿨루스입니다.}


"예의 프로토콜에 따라 파괴하라."


{네!}


빈트시가 웃음을 띄었다.


"것 보십쇼. 잘 되지 않았습니까? 이제 장군님은 대장으로 승진하실 일만 남았습니다."


"... 그래. 끝났군."


호문쿨루스 특수개체 사도..

세계와 싸우다 저물어간 이름없는 교단의 마지막 발악.


[라스트 바탈리온(최후의 부대)].. 그리고 그 부대를 이끄는 지휘관 [사도]..


마법을 통한 발전을 거부하고 과학기술과 자연법칙을 통한 발전을 추구했던 열등인들이 싸지른 해악.

그들이 그간 모아온.. 이른바 과학기술이라는 것의 정수가 집중된 특수 호문쿨루스.

이름없는 교단의 후계자이자 상속자.

그런건 이제 없다.

모든 것은 마법과 함께 찬란하게 빛나는 우등한 이성의 힘 앞에 무릎을 꿇으리니.


"가자. 마무리를 지으러."


"네. 장군님."


...


'분명히 난 커스터마이징 완료 버튼을 눌렀고.. 지금은..'


눈 앞의 장면이 이상하게 바뀌었다.

마치 물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물이 가득 찬 투명한 유리관 안에 들어온 것 같은..


{접속을 환영합니다. 당신은 지금부터 바벨교단의 최후의 사도입니다. 요청받은대로 신체를 재조정할 예정이오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길.}


'뭐? 신체 재조정? 뭔 말이야?'


신체 재조정이라는 것이 진행되는 중에 갑자기 눈 앞에 있는 문이 열렸다.

뭔가 멋들어진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그래.. 마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군복 같은..


"@#^$%&.."


"$&%^*(&^)(**)!!!"


"@(*)#^!!!"


뭐라고들 떠들고 있었다.

그런데 알아들을 수는 없다.


{긴급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현재 해당 신체가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니 우선 적의 공격에 즉응할 수 있는 호신용 소프트웨어를 인스톨합니다.}


'응? 호신용 소프트웨어? 윽..'


그 순간 머릿속에 정보가 쏟아져 들어왔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지금 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사람들의 목적 같은 것들이.

그러니까.. 저 사람들을 잡아야 하는 것 같았다.

멋진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놀란 표정으로 뭐라고 허둥대더니 갑자기 무언가 위험해 보이는 짓을 하기 시작했다.


{전방에 뇌전 마법이 날아옵니다. 위력은 당신이 들어있는 기계의 회로를 태워버릴 정도로 강력합니다. 대응이 필요합니다. 대응을! 당신이라면 할 수 있습니다.}


'마법? 아.. 그래.. 이거 게임이었지.. 이걸 막으라고?'


신기하게도 어떻게 막는지 알것 같았다.

아까 인스톨 해준다던 호신용 프로그램이 그건가?


"분명히 이렇게 손을 내밀고.. 생체전기로 뇌를 오버클럭해서 연산력을 부스팅 한 다음에.. 날아오는 마법의 마력구조를 역산하여 해체하는 거였지."


엄청난 위력의 번개가 내가 있는 유리관으로 날아왔다.

하지만 이펙트만 요란했을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내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했다.


'이거.. 좀 쩌는데?'


{신체 재조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유리관을 엽니다.}


곧이어 내 몸을 담고 있던 유리관이 열렸다.

유리관에 가득 차 있던 수액이 전부 흘러나가고 나는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리고..


"어.. 왜 내가 여자가 됐어?"


그것도 아까 내가 커스터마이징한 그대로 몸이 만들어져 있었다.


'내가 여자가 되고 싶다고 한 적은 없는데..'


가상현실 같은 게임인줄 알았다면 남자 골랐다.

구경하는 것이 꼴려서 여캐 하는거지 여자가 되고 싶어서 여캐 하는게 아니니까.


'뭐..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저것들부터 치워 둘까? 보아하니 튜토리얼 같은데."


나는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허공에서 멋들어진 총을 하나 끄집어냈다.

아공간 기술이 적용된 보관함 속에 적재된 무기.

이것도 어째선지 꺼낼 수 있었다.

그 인스톨이라는 것 덕분에 얻은 지식 때문인 듯 했다.


"만발 사수 특급전사의 실력을 보여주마!"


...


유리관 안에 떠 있는 사람의 외관만 가진 살덩어리..

그게 이름없는 교단의 사도.. 호문쿨루스였다.

11개체의 사도들 전부 그랬고, 이번 12번째 개체도 그랬다.

방금 전까지는..


"호문쿨루스가.."


"모습이 변하잖아!!!"


"사도가 각성한다!!!"


사도의 각성.

이름없는 교단의 마지막 프로젝트에 관련된 정보를 입수한 정보부가 상정한 최악의 상황.

끝까지 이 우등한 마법문명을 적대한 열등종자들이 세상에 심은 폭탄.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될 일.

사도가 각성하면 그 끔찍한 종교전쟁을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만들어진 신. 

그것이 사도니까.


"막아! 완전히 각성하기 전에 파괴해야해!"


"무슨 마법으로?"


"나도 몰라!"


우왕좌왕하는 대원들의 뒤에서 호통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둥대지 마라!"


대원들이 뒤를 돌아보자 그 자리에 잘름 장군과 빈트시 부관이 있었다.

잘름 장군은 각성이 진행되는 모습을 보면서 혀를 찼다.


"쯧.. 그래.. 그렇게까지 잘 될리가 없지. 하지만 아직 각성이 끝나지 않은 것이 사실. 막을 수 있을 거다."


-딱


잘름 장군이 손가락을 튕기자 빈트시 부관이 아공간에서 뇌전 증폭기를 꺼냈다.


"교단 놈들은 마력이 아닌 자연력.. 그 중에서도 전자기력을 이용한다고 알려져 있지. 그러니 교단 놈들의 물건들은 전자기력을 잘 받아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전자기력에 대한 방어가 제일 약하다. 뇌전이다. 최대치의 뇌전 마법으로 저 기계를 태워버려!"


"네! 장군님!"


뇌전 마법이 즉시 준비되었다.

그리고 제국 최정예 마법사 여럿이 동시에 캐스팅하여 뇌전증폭기를 통해 증폭시킨 뇌격이 사도의 신체를 담은 유리관에 작렬했다.

그러나..


"$*&^#%&#*#*^$#$^&* (*^)(^(@## *^&*."


유리관 안의 사도가 뭐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더니 뇌전이 그대로 소멸해 버렸다.


"뭣.."


'그러고 보니 그들이 만든 최후의 성서.. [호문쿨루스 사도화에 관한 계획서]에 그런 말이 있었지. -신의 권능 앞에 마법은 빛을 잃으리- 라고..'


곧이어 각성이 완료됐는지 유리관이 열리고 사도가 그 안에서 걸어나왔다.

나신의 여성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적이 아니었다면.. 도시에서 만났다면 나이를 잊고 데이트 신청이라도 넣어볼 만큼.

사도는 그런 젤름 장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덤덤한 표정으로 아공간에서 교단의 석궁을 꺼내들었다.

그 모습을 본 젤름 장군은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이건 진 게임이라고.

마법이 통하지 않는 사도..

한때 세계 전체에 대항해 싸움을 걸 정도로 강대했던 교단의 모든 것을 이어받은 상속인..

이길 수 없다.
그렇다면 해야 할 것은 정해져 있었다.


"... 빈트시."


"네.. 장군님.."


"브로큰 애로우를 요청한다. 사도의 준동을 대비해서 전 세계 모든 국가가 합심해 설치한 [초대형 마력가속로] 폭격을 이곳으로 요청한다. 이 신전과 반경 3km는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은 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장군님.."


"우리는 제국의 군인이다. 우리는 국가와 세계를 지키는 자. 열등인으로부터 숭고한 문명을 지키는 자. 그 의무를 잊지 마라."


".. 모실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내세가 있다면 다시 보자."


...


몸에 에너지가 넘친다.

비유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로 에너지가 넘친다.

마치 전기를 주체할 수 없는 전기뱀장어처럼 생체전기가 넘쳐난다.


{전자기력은 교단이 쌓아올린 과학력의 기본 에너지. 그런 교단의 사도가 된 당신이 막대한 생체전기를 생산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말인 것 같았다.

나는 교단이 숨겨놓은 병기들의 권한을 지닌 스위치.

내가 충분한 생체전기를 사용해 원하는 시스템을 부팅하면 시스템은 제공된 생체전기를 사용해 내가 원하는 일을 해준다.

요컨대 내가 충분한 생체전기를 이용해 미사일 폭격을 요청하면 내가 지정한 지역에 교단이 숨겨놓은 미사일들이 와르르 떨어지는 것이다.

과학의 힘을 빌린 메테오라고나 할까..


'상당히 발전된 과학은 마법과 구별하기 힘들다더니.. 과연..'


과학에 종교가 적대적.. 혹은 비우호적인 현실 세계와는 달리 이쪽 게임세계에서는 종교가 과학에 우호적이었다.

과학적 방법론을 통한 탐구 자체가 곧 신학.

세상의 원리를 밝히는 것은 곧 신의 계시를 받아들이는 과정.

신의 힘인 자연력을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마력을 사용하는 저 사탄들에 대항하여 성서의 백성들을 지키는 길. 

교단은 마력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노예화하려는 사탄들과의 전쟁이 결국 패배로 귀결되리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그들은 최후의 방법으로 사도를 만들어내기로 결정했다.

교단원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져 사탄들과 싸우는 대신, 교단의 뜻과 모든 무력을 계승한 압도적인 강자를 만들어내어 사탄들을 쓸어버리기로.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신체에 들어온 나는 교단이 축적해온 모든 무장의 권한을 지니고 마력을 사용하는 사탄들을 정죄하는 심판자.

그런 설정인 듯 싶었다.


{신전 내의 안드로이드 전부 가동. 남은 잔당을 처리합니다. 이제 해당 신체는 안전합니다. 조금 전에 미처 인스톨하지 못했던 소프트웨어를 마저 인스톨합니다. 본 음성파일은 당신에게 인스톨되어야 할 지식. 인스톨이 완료되면 당신은 이 음성의 조력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다만 당신의 지식 속에 녹아들게 될 것이기에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부디 사도여.. 이 망가져버린 세계에 구원을.}


"윽.."


다시금 두통이 몰려왔다.

아까 얻지 못했던 지식들..

그것들이 머릿 속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요컨대 이 세상의 언어를 번역해주는 통역패키지, 주변 국가들의 정세, 마법의 원리와 마도공학 지식.. 같은것들.

인스톨은 5분 정도 걸렸다.

그리고 감상은..


'후.. 이 세상.. 정말 미친 세계네?'


말 그대로 디스토피아인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할 것은.. 응?'


신전의 상공에 에너지반응..

격렬했다.


'뭐야? 핵폭탄이라도 되는거야 이 에너지량?'


나는 바로 역산을 시도했다.

마법이라면 해제하면 그만..


그렇게 생각했지만 바로 그만두기로 했다.


'미친.. 역산으로 해결될 규모가 아니야..'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그대로 저 대마력에 신전과 같이 녹아 흔적도 남기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 내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새로 얻은 지식을 열심히 되새겨봐도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저 대마력을 아공간으로 흡수하는 것.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 대마력을 결국 내가 소화해야 한다.

아공간 안에 저 대마력이 들어있는 한 나는 대마력을 흡수하는데 쓴 아공간을 풀지 못하게 되고, 그 아공간을 유지하는데 쓰이는 만큼 생체전기의 출력이 저하된다. 


'별수 없지.. 그건 그렇고.. 이딴 선물을 보낸 놈들한테 나도 한방 먹여줘야겠어.'


나는 마법폭격의 원발지를 역산하여 특정하고 그 자리에 탄도미사일 패키지를 선물로 보냈다.

아마 다시는 이런 짓을 할 생각은 못할 것이다.

물론 앞으로 생체전기가 제약될 나도..


그리고 마침내..

대마력을 품은 초대규모 공격마법이 신전 위로 떨어졌다.


...


"제12신전은?"


"마력가속로를 이용한 마법폭격에 정확히 직격. 그러나 건재합니다."


"뭐? 주변 3km 반경을 초토화시킬 마법이다. 그걸 맞고 건재한 구조물 같은게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폭격이 제12신전에 작렬하는 순간 갑자기 마법 자체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다시 발사해."


"그.. 그게.. 마력가속로가 9서클을 되어 보이는 메테오를 얻어맞고 파괴가.."


"... 우리의 마법저격을 막고.. 그 마법의 발사위치를 역산해서 메테오를 날렸다고?"


"... 네.."


"..."


"... 저.. 의장님.. 마력가속로 건설을 다시 추진할까요?"


"그걸로 선빵 쳤는데 적은 건재하고 우리만 박살났잖아.. 그걸 또 하자고? 마력가속로가 한두푼 하는줄 알아?"


"... 죄송합니다."


"사도..라.. 열등인 놈들.. 기어이.."


"..."


"세계마도평의회를 소집해라. 현 사태는 인류의 생존에 있어 전대미문의 위기.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


"네. 의장님."


...


로그아웃이.. 불가능하다..


'아니 이게 뭔 엿같은 경우야?'


로그아웃 시스템을 부팅하는데 생체전기가 은근히 많이 들었다.

아마 차원간 이동이기 때문에 그런듯 싶었다.

문제는 내가 마법폭격으로 날아온 대마력을 잡아두기 위해 상시적으로 아공간 시스템을 부팅해 두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로그아웃을 위핸 생체전기 요구량을 못 맞추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빙의된 상태에서 이 신체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고?'


내게 인스톨된 지식이 속삭였다.

로그아웃 이외의 방법으로 이 세계를 빠져나갈 방법은 없으며, 그 상태에서 몸을 잃어도 그건 마찬가지라고.

몸을 잃은 정신이 무엇을 뜻하는가?

죽음밖에 더 있겠는가?


'어떻게든.. 아공간에 쑤셔박은 대마력을 소멸시킬 방법부터 찾아봐야겠네..'


당연한 말이지만 생체전기를 회복하겠다고 대마력을 풀어놓으면 바로 그자리에서 내가 폭사한다.


'일단 다른 이 바벨교단의 다른 신전들 부터 가볼까? 이걸 해결할 방법이 있는지?'


나는 인벤토리용 아공간에서 적당한 옷을 한벌 꺼내 골라입고 길을 나섰다.

이것이 내가 이 세계에서 보낸 첫번째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