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런 건데.... 제목엔 "게임, 영상화를 위한 아트북"이라 돼 있지만 평가를 찾아보니까


"소설 아트북"이라고 보는 게 더 옳은 표현에 가깝다고 하더라.



장붕이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난 개인적으로 소설 + 삽화 형식을 좋아하지 않아. 취향이 극단적이지 않아서 배척할 만큼 싫다까진 아닌데,


개인적으론 소설을 그럼 왜 보는 거야, 란 느낌이 강하게 들게 돼서. "직관적인 시각화 자료"에 대해선 그쪽 장르로 보는 게 맞음, 이런 가치관이었거든.


겁나 틀딱스런 표현이지만, 글이 가져 오는 상상력 자극이란 게 무시할 게 아님.


거장 이영도란 분도 교묘한 게, 잘 보면 그의 작품들에는 주인공과 그 일행, 등장인물의 외관에 대해 매우 특징적 요소 빼놓곤 잘났다, 예쁘다, 잘생겼다, 못생겼다 이런 부분을 거의 언급하질 않음. 즉 이영도의 글쓰기가 주는 울림은, "글"로 볼 때 무한히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러한 독자의 수용적 자극을 자유롭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장려한다는 데 있음.


굳이 말하자면, 해리 포터의 시각적 이미지를 떠올릴 때, 서구 카툰 풍 캐릭터 이미지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동양권 특히 일본 영향을 강하게 받는 애니메이션 풍의 이미지로 상상하건 독자의 취향대로란 거지.


근데 삽화는 이러한 직접적 상상력을 제한하기 때문에 좀 비판적이었어.


누군가는 그랬잖아. 과한 삽화가, 독자 입장에서 몰입도를 방해하고 심지어 파괴되는 경험까지 있어서, AI 그림 뭐 같다고도 하는 의견이 있었지.


내 입장은 그런 거였는데...



근데 저 눈마새 아트북은, 오히려 내 상상력이 지닌 한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는 것 같더라.


가령 너무 새로운 것. 내 머릿 속에 아예 사전지식이 없는 것들은, 단순 말과 글로선 상상력으로 구현되는 게 어려울 때가 있지. (물론 여기서 텍스처적으로 사고하고 상상한다란 개념과 텍스트를 영상적으로, 회화적으로 재구성해서 머릿속으로 상상한다란 비교개념 해석론은 내려 놓기로 하고)


예를 들자면 과거 "공룡" 복원처럼 말이야. 아무리 전체적인 복원도를 깜냥으로 상상해 봐도 실제랑 있을지도 모를 간극이 있지. 더욱이 오늘날의 동물의 뼈대와 기록된 정보를 통해 미래에서 마치 공룡 복원하듯 복원된 예상모습 같은 추측 자료를 찾아보면 기가 찰 정도로 동떨어져 있을 때가 많거든. 이게 텍스트만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시각적 상상력의 세계 그 한계일지 모르지.



물론 저 아트북 자체는 온전히 이영도 작가님의 상상력과 맞아 떨어지는 걸지도 불분명하고, 앞서 말한 내가 지닌 기본 스탠스처럼 여전히 그러한 아트북이 더 나은 상상력이 가능한 사람들의 사고 지평을 제한하는 걸지도.


그런데 한낱 독자 입장에선, 이영도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다른 사람의 노고"에도, 그 재해석의 결과물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더라. 웃기게도 저 아트북에 대한 평가가 뭔가 동의가 되는 듯하단 말이지. -> "눈마새를 처음 읽었던 당시의 기분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새로 읽는 경험처럼 다가올 것"이란 평가 문구에 뭔가 뽕이 차오르더라고.


저거에 완전 꽂혀서 뇌내 상상을 그만두는 게 아니라 추가적으로 자극 받아서 더 뻗어나가는 느낌?


기존엔 무한한 자유 속에 무엇을 토대로, 무슨 재료를 기반으로 무엇을 세워야 할 지도 모르는 황량한 평야 같은 이미지에서. 탑을 세우고 계단을 올리고, 그런 설계 작업이 가능해진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더라고.


그래서 적어도 어느 작품에 대하여, 알량한 IP 팔이가 아니라 그 세계관에 대해 깊이 탐닉하고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여러 다양한 시도들에 대해 좀 더 열린 접근을 해야 겠다고 생각했달까. 오늘 눈마세 얘기가 살짝 나온 김에 이런 생각들이 들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