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쓴 칼럼이 반쯤은 농담삼아 이야기 한 거에 가깝다면

이번 칼럼은 좀 많이 진지한 이야기임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이전 역사는 조선이고 조선의 이데올로기는 유교지

그런데 왜 이런 유교는 흔히 유교탈레반이라 불릴 정도로 강압적이고 교죠적으로 변해 버렸는지에 대한

그리고 왜 유교의 발전이 정체되어 버렸는지에 대한 이야기임 


먼저 유교에 대해서 말하자면 사실 유교는 유교라기 보다는 유학이라는 게 더 옳음

왜냐하면 동양에서 종교라는 개념은 약간은 느낌이 다르거든

그러니까 종교라는 단어에 부합하는 개념은 있었음

토착신앙 같은 것들 말이지 

그런데 실질적으로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하면서도 종교라고 볼 수 있는 건 동양에서 약간은 애매함

먼저 불교를 보자면 불교에 경우는 사실 붓다 즉 석가모니의 가르침 그 자체임

그리고 유교 역시도 같은 맥락으로서 공자가 제창한 하나의 가르침임

특히나 유교에 경우는 공자 본인이 제창한 다음 여러 후계 학자들이 이것저것 연구를 해서 기틀이 다져졌지

흔히 아는 순자와 맹자가 바로 이런 공자 이후의 유교의 대학자들임


유교는, 아니 유학은 종교라기 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이데올로기 그 자체라고 보는 게 옳음

예를 시작으로 한 인의예지신은 사람이라면 지켜야 할 것이며 

군주가 이러면 어떻게 해야 하고 백성은 어떻게 다스려야 하며 국가 운영은 어떻게 해야 하고 

사회는 어떻게 꾸려나갈 것이며 어떻게 하면 저 인의예지신을 지킬 수 있는 지 

그런 것들에 대한 통합적인 사상이 유학임

가장 비슷한 종교가 있다면 역시나 이슬람이겠네 

이슬람은 종교의 틀에 들어가지는 종교라기 보다는 거대한 이데올로기에 가까우니까

물론 유학이랑 이슬람은 비교 자체를 하기에는 애매함

이유는 유학은 애초에 그 창설 부터가 사람이 어떻게 하면 평화롭게 살 수 있고 더 나아가 국가가 평화로울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의 산물이니까

애초에 유학은 유교라고 부르기 참 애매한 것이 제사는 조상에 대한 예의일 뿐이니까 

공자님 자체가 유학을 창설할 때 부터 했던 말이 뭐다? 괴력난신 OUT! 이었다 

즉 공자님 입장에서 지금 있는 모든 종교들은 다 괴력난신으로 보일 거임 


아무튼 간에 이런 유학은 발상지인 중국을 시작으로 동양의 각 국가들이 전례가 됨

그리고 이런 유학에서 대표적인 이데올로기인 충, 이 충이 바로 왕조 국가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개념이었고

아들이 아버지에게 하는 것 처럼 신하가 군주에게 하는 것 같이 충성하라

유학의 기본 개념인 이 충이라는 개념은 동양의 왕조 질서를 잡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

그리고 이런 유학이 아예 핵심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은 것이 송, 명, 조선 이 세 나라임

당연하게도 유학은 시대를 가면 갈 수록 여러 학자들의 연구와 교류를 통해서 발전함

공자가 시작한 유학에 맹자, 순자, 주자 등등 많은 학자들이 이론을 더하고 더함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주자가 만든 유학인 주자학, 흔히 말하는 성리학임

이 성리학은 송나라에서 탄생했고 명나라와 조선의 중요한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음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여러 이전 학자들의 연구도 있었지만 송나라가 학문과 경제가 꽃을 피울 수 있는 환경이었기 때문임

더해서 당나라 시절 부터 이어져 온 여러 학자들 간의 교류로 인한 축적된 것들이 굉장히 많았고 

주자는 그것을 집대성하여 성리학이라는 형태로 만들어낸 것이지

이걸 그대로 핵심 이데올로기로서 받아드린 명나라와 조선은 당연하게도 각자 선비층들이 이런 학문을 연구함

그리고 이런 성리학에 큰 발전을 주도한 건 명이 아니라 조선

조선에서 율곡 이이와 퇴계 이황 이 두 사람이 성리학에 큰 발전을 주도함

대표적으로 율곡 이이와 퇴계 이황이 각각 주장한 이기일원론과 이기이원론임

사실 이쪽 까지 가면 본래의 유학에서 보던 것들과 많이 달라지는데 이건 세상의 그 본질에 대한 탐구 때문임

단적으로 말해서 성리학은 유학을 연구하다 연구하다 연구하다가 이제 세상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고자 했던 학문이기 때문

즉 따지고 보면 서향 철학에서 알아먹기 힘든 형이상학적 이론을 이야기하는 수준까지 오게 됨

이기일원론과 이기이원론 역시도 이런 것 

세상의 본질은 이와 기 둘로 나뉘는데 이이는 이와 기는 하나라는 이기일원론을 이황은 하나가 아니라 둘로 나뉘어 있다는 이기이원론을 주장함

더해서 성리학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가 있었기에 양명학이라는 것도 발전하게 되었는데...

문제가 있다면 유학의 발전이 딱 여기까지라는 거임

흔히 말하는 실학이라는 것도 유학의 발전에 끼워넣을 수 있긴 하지만 이건 유학의 발전이냐? 라고 하기에는 좀 동떨어져 있는 것들이지

따지자면 유학이 본래의 근본처럼 다시 한 번 백성들과 실질적인 국가의 문제에 해답을 내놓자라는 건데 주류가 아니었고 


여기서 이제 본론임

필자가 생각하는 유학의 발전이 멈춰버린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라고 할 수 있음

1: 교류의 부재

2: 사상의 경직화 


먼저 교류의 부재는 말 그대로임

본래 학문이라는 건 끊임 없는 교류와 토론을 통해 성장하는 방식임

데이터가 쌓이고 쌓이고 쌓여서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내는 게 학문의 발전 방식이고 

어느날 갑자기 천재가 딱 하고 나타나서 거대한 성취를 낼 수도 있지만 

이건 참 드문 일이고 어지간해서는 교류를 통해서 발전하는 일종의 거대한 브레인스토밍 같은 게 학문의 발전임

그런데 유학은 어느 순간 이런 게 끊겨 버림

토론도 교류도 모두 경직되어 버림

이건 중국과 조선 모두 봐야하는데 

중국 쪽에 경우는 명나라가 패망하고 청나라가 새워지면서 유학이 반쯤 망했다고 보면 됨

그러니까 원래부터 사상탄압이 간간히 있었던 중국이지만 청나라는 그 수준이 훨씬 더 심했음

문자의 옥이라는 본격적인 사상탄압을 사용해서 청나라는 여진족인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과 우월성을 확보하려 했지

이러다 보니 본래 있던 학문의 성장이 있을 리가...

결국 기존 선비층들과 유학자들이 할 수 있는 건 고서들을 해독하고 연구하는 고증학이 됨

대놓고 말하자면 그냥 히키코모리가 되어 버렸다고 하면 됨

열심히 고서나 해독하는 그런 상태가 

그리고 조선에 경우는 역시나 청나라가 새워지며 사실상 상국이자 아버지의 나라였던 명나라가 멸망하는 걸 봄

더해서 청나라가 호란 두 번으로 조선을 강제로 복속시켜버렸고 

결정적으로 이미 이 전 부터 이이와 이황의 후계들 끼리 서로 당파를 나눠 짓고서 당쟁을 겨루고 있었음

이런 복합적인 것이 작용하다 보니 점점 유학자들과 선비층은 학문의 성취보다 당쟁과 청나라에 대한 적개심으로 머리가 굳어버리지

당연하게도 각 학파의 이론과 교류는 어림도 없어졌고... 왜냐하면 이들은 학파가 다르다는 건 당쟁의 라이벌이라는 거니까 


두 번째인 사상의 경직화 역시 그럼

중국쪽에서는 연구를 잘 못 했다가는 다 같이 죽는 꼴이다 보니 고증학으로 히키코모리화 되어버렸고 

조선쪽은 당쟁을 중심으로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 점점 학파간의 교류가 줄어들어갔고 외부에서의 교류 역시 사라졌지

왜냐하면 청나라는 조선 입장에서는 말만 상국이지 원수의 나라이자 개 같은 오랑캐들이었으니까

일본? 반쯤 원수 + 일본은 유학보다는 불교가 더 주류여서 의미가 없었고 오히려 일본에서 조선의 유학을 수입해가는 처지였음

여기서 학문의 교류가 있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상황에서 결국 성리학은 경직화 되어 버림

애초에 성리학 자체가 형이상학적 탐구를 하기에 본래의 유학에 비해서 대중과 멀어진 상태였음

마치 현대의 예술이나 철학과 같이 

이러다 보니 사상의 발전과 교류가 사라지는 만큼, 그리고 이 학파 자체가 당쟁이나 마찬가지가 된 만큼 경직화 되어 버림

이론이 아니라 신앙 수준이 되어 버린 거지

송시열의 사문난적 드립 같은 것만 봐도 정치적인 것도 있지만 사상적으로도 저 새끼는 선비 아니라는 말이랑 같음

학문이라는 건 다각적인 면모로 보고 연구해야 하는 건데 조선의 선비들은 그러지 못하고 결국 편협한 하나의 시각으로 만 학문을 보고 말았음

더해서 새로운 관점의 유입 역시도 여러 이유로 차단되었고 


이런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유학은 결국 발전이 멈춰버림

더해서 발전을 하고 싶어도 조선 후기에는 나라 자체가 개판이 되었고 선비층의 도덕적 헤이 문제가 심각해져서 성리학은 그냥 병신이 되어버렸지 그리고 이런 선비층에 본래 선비와 아예 결이 다른 돈은 많지만 배운 건 없는 백성들이 신분을 사서 유입됨

이러니 원래 부터 가지고 있던 선비층의 문화와 학문이 어설프게 전해지고 왜곡된 거지 

그래서 지금의 유교탈레반화 된 거임

사실 당쟁 초반에는 서로 그냥 말 싸움 하는 건전한 정당 수준이었음

문제는 우리의 술처먹고 시지은 개새끼가 서로 숙청으로 피를 흘리게 만드는 개짓거리를 벌이면서 

당쟁은 평범한 정당 수준이 아니게 되었지 

그리고 이때 부터 조선 유학의 발전 동력은 멈추기 시작한 거고 


뭐 결론을 요약하자면 

1: 유학 자체가 너무 대중과 떨어지는 수준 까지 도달함

2: 청나라로 인해서 유학의 교류와 발전이 정체됨

3: 당쟁의 과격화로 유학의 교류가 사라지고 이론이 신앙수준으로 교조화됨

대충 이렇게 되겠다 


유학이라는 학문은 따지고 보면 현대의 철학이 걷고 있는 길을 먼저간 거라고 보면 됨

최악의 경우긴 하지만 말이야

결국 현대의 철학들도 교조화 되고 교류가 사라지는 순간 그대로 유학처럼 멈춰버릴 테니까 

사실 어떤 학문이든 교조화와 교류가 사라지면 좆되는 거다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