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나는 죽는다.



마지막에 이럴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결국 머리속을 채우는 건 후회뿐이라,


결국 잃어버릴 것이라고 치부하며, 삶을 냉소적으로 살아온 것들과,


열 가지 버킷리스트의 단 한 가지도 하지 않은 것,


동료들에게 더 친절하지 못했던 것, 가족에게 사랑한다고 전하지 못한 것,


마지막까지 그녀에게 고백하지 못 한 것,


그와 같은 후회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번뇌는 후회를, 후회는 회한을 낳고,


그도 모자란 듯 기억 속을 점차 검게, 더 검게 물들인다.



"수명을 버린다."


앞으로 남은, 의미 없는 세월 따위는,


"존재를 버린다."


사람들에게 칭송받거나 혹은 회상될 미래 따위는,


"기억을 버린다."


대의를 위해 희생을 망설이고, 결국 검게 물든 마음 따위는,


그 무게와 걸맞게도, 가벼히 버려졌다.



모든 걸 잃었지만, 관성은 여전히 나를 앞으로 밀어냈다.



여기서 나는, 죽었다.


여생, 감정, 기억, 칭송과 명예,


그와 같이 어두운 후회가 휩쓸려 사라지자, 기묘한 해방감마저 들어,


웃음이 나왔다.





"기가 뒤틀렸어요, 앞으로 3일이나 남았을까."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침울한 얼굴로 한 말이 끝나자,


앞에서 또 다른 누군가 이야기한다.


"뭐라고 말 좀 해봐요."


무슨 뜻인지, 누구인지, 대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네? 제발요, 제발."


내가 서있던 그곳 근처에 쓰러져 있던 그녀가 일어나자,


내가 가진 조금 검붉은 것이 묻은 하 것에 검은 것이 색칠된 무언가를 주니 이런 모양새다.


"이럴 거라면, 왜 그렇게까지 이기신건데요."


서둘러 날 여기까지 끌고 와서, 이곳저곳 살피더니 슬픈 표정을 짓는다.


왜 슬퍼하는 걸까, 나는 이렇게 기쁜데.


"아."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나 해서 본능적으로 입을 열어 소리를 냈다.


그리고 나쁜 의도는 없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빙긋 웃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터져나왔지만.


"아, 아?"


"용사님의 소원, 제가 같이 들어드릴게요."


"아?"


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나를 끌기 위해 조심히 붙잡은 손길에 점칠된, 후회, 회한, 번뇌와, 염원, 그리고 실낱같은 희망에 몸을 맡길 뿐이었다.





작가들은 어케 5천자씩 매일매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