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네놈은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세상을 파괴해서 네놈이 얻는 것이 도대체 뭐란 말이냐?"


용사가 내게 물어왔다.

수없이 되풀이 되어 왔던 이 상황.

너무나도 익숙하다.

그러니 내가 할 말 또한 이전과 같다.


"진실이 눈을 뜨면 신기루처럼 사라질 세상에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이냐?"


그렇다.

이 세상에선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

빛나는 황금도, 나라도, 심지어 사람조차도.

오히려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거대한 악을 구성한다.

그러니 나는 세상의 적이 되어 이를 심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네놈의 손에 죽어간 이들에게 일말의 죄책감도 없는가?"


용사의 성검이 빛나기 시작했다.

용사가 분노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헛소리 그만하고 와라."


죄책감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있나?

내가 한 일에 죄책감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허나 그것을 용사에게 이해시킬 수는 없겠지.

그러니 문답무용이다.

이제 이 일을 끝낼 때가 왔다.


"와라. 용사여. 네놈을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 종말을 고하겠노라."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중년의 아주머니 한 분이 양손으로 내 오른손을 꼭 부여잡고 연신 고맙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내가 그녀의 아들을 살렸기 때문이다.


"전 단지 제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렇다.

나는 내 일을 했을 뿐이다.

의사로서 환자를 살린다..

내가 한 일은 그뿐인 것이다.


-삐용 삐용


또 앰뷸런스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새로운 환자를 데리고 오는 거겠지.

다른 병원에서 포기한.. 그러니까 죽음이 거의 확정된 환자를.


'피곤해.'


그렇다고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양 손을 들어 양쪽 뺨을 한번 친 후 수술실로 들어갔다.


...


'이번엔 꽤 아슬아슬했어.'


오늘 받은 마지막 환자는 상태가 매우 심각했다.

만약 내가 없었다면 DOA로 취급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물론 그런 환자를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나다.

다만 나도 인간이다보니 한계가 있는 것이다.

어느 시점을 넘으면 제아무리 나라고 하더라도 살릴 수 없다.


'돌아갈까?'


이제 병원 문 닫을 시간이다.

나는 더 이상 환자가 없길 바라며 병원을 나섰다.

그 순간 뒤쪽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김장붕 씨?"


"네?"


-푹


"어?.."


내가 뒤를 돌아본 순간 어떤 괴한이 내 배를 칼로 찔렀다.

복부가 붉게 물드는 것과 동시에 견디기 힘든 작열감이 복부로부터 퍼져나오기 시작했다.


".. 어째서?.."


어째서일까?

정말로 이유를 모르겠다.

나는 사람을 살리는 의사.

원한을 살 일이 없을 텐데?

그런데 왜 내가 칼에 찔린 거지?


"내 고객님께서 말씀하시길 살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살린 죄라고 하더군."


"그.. 무슨.."


그것이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


'그러니까 이 상황은.. 일단 누군가가 내 몸을 수습하긴 한 건가?'


눈앞에 펼쳐진 세계를 보며 든 생각이 그것이었다.

아직 늦지는 않았다는 것.

분명히 칼에 찔린 내 몸에 생명반응이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세계는 그 기회를 형상화 한 것이라는 것.


'...'


다른 사람의 세계는 많이 봐 왔지만 나 자신의 세상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내 잠재의식은 이렇게 생겼구나..'


이 세상은 내가 만든 세계.

정확히는 나의 정신이 실체화된 세계.

아마도 혼수상태에 빠졌을 현실의 나 자신이 꾸고 있는 꿈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럼 내가 눈을 뜬다면.. 이 세상은 끝나는 것인가?'


정신이 돌아오면 꿈은 끝난다.

내가 여태까지 의사로서 해왔던 일들이 그것이다.

환자들의 꿈에 들어가 꿈을 깨뜨림으로서 정신을 현실세계로 끌어올리는 것.

즉 환자들의 꿈으로 만들어진 세계의 적대자가 되어 세계를 멸망시키는 일을 반복해 온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해야할 일은..'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