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과 사고는 늘 갑자기 들이닥친다.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치 않겠다!"

"사랑과 미의 전사, 스노우화이트!"

"순순히 항복해라! 피그 브라더스, 세븐 드워프, 웨어울프!"


"크윽, 성가신 마법소녀들!"



내가 갑자기 이 망할 만화에 빙의된 것처럼.



[페어리걸즈 - 동화책 속 소녀들-]


여러 동화가 모티브인 마법소녀들이 우드시티를 지키고 못된 악당들을 물리친다는 내용의 마법소녀물.



능력자물 세계관이 으레 그렇듯 아스팔트 도로가 깨지는 건 귀여운 수준이고, 건물도 가끔 무너진다.


마법소녀나 빌런들은 별 상관없겠지만, 평범한 시민인 나에겐 큰 일.


허나 내가 누구인가.

이 만화를 시작부터 완결까지 10번이나 본 애독자.



"1월 15일, 오늘은 시장 아주머니가 괴물로 변하는 날이었으니까... 오늘은 마트에서 장 봐야겠다."


불행과 사고가 언제 어떻게 벌어질지만 알 수만 있다면, 


"요즘 자주 보네요 시민분! 이번에도 신고 고마워요! 못된 악당들은 신데렐라의 마법소녀, 크리스탈이 처치할테니 걱정마세요!"


"예, 수고하세요."


"자,잠깐! 우리 싸움 말고 말로..!"


"시끄러워! 사랑과 희망을 유리구두에 담아, 재가 되어라! 글라스 힐 킥!!!"


"끼아아아악!!"


그리고 신고 번호만 안 다면 피하는 건 일도 아니다.


덕분에 이 험난한 세상에 맨몸으로 온 것치곤 잘 살고 있다.

작지만 집도 생겼고, 일할 곳도 구했다.

넉넉하진 못해도 혼자서 거의 숨만 쉬며 사니 적당히 여유는 있다.



"앞으로 몇주동안 빡세게 일하고, 29일부터 몇주 쉬어야지."


원작 기준 29일 날, 새로운 악당이 등장한다.


블러디 메리.

어떤 악당이 주인공을 본 따 만든, 능력자물에 흔히 나오는 주인공 흑화 버전의 마법소녀.

정확히 몇월이었는진 기억 안 나지만 지금이 2월달이니 아마 3월에 나타나, 주인공이 격돌하면서 몇달동안 온갖 사건사고가 벌어질 거다.


"내 기억이 맞다면 다음달에 이 골목에 출몰하겠지? 그럼 이번주부터 그때까지 빡세게 일해서 미리 돈을 벌어놓고 1,2주 정도 쉬자."


29일 전까지 어떻게 할지 고민하면 골목으로 걸어갔다. 인적이 드물지만 집까지 가장 가까운 지름길. 방금 장도 봤고 치킨도 샀으니 식기 전에 얼른 가자.



"... 아니다, 차라리 마법소녀들에게 미리 신고를.. 아, 괜히 그랬다가 원작 전개가 비틀어질 수도.."


"뭘 비틀어? 모가지?"


"...어?"


분명 나 혼자뿐인 골목.

그런데 갑자기 여자가 나타났다.


아니, 정확히 튀어나왔다. 

전봇대 앞, 쓰레기 봉지에 튀어나온 거울 조각에서.



"말해 봐. 뭘 비틀 건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 회색빛의 머리카락과 피처럼 붉은 눈동자, 피가 묻은 드레스와... 허리춤엔 온갖 흉기들이 있는 여인.


"왜 그래? 날 보고 놀란 거야?"


어둠의 마법소녀, 블러디 메리.



'시발.'


왜 쟤가 여깄지? 분명 29일에 나타날텐데. 이것 만큼은 확실하다. 그리고 2월은 분명 28일까지...


'...설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에 든 핸드폰을 바라봤다.


[2월 29일. 오늘의 날씨:맑음]


"...."


눈을 깜빡이고 다시 봤다.


[2월 29일. 오늘의 날씨:맑음]


"...."


'그레고리 시발새끼.'


빌어먹을 윤일이구나. 망할 그레고리력의 오차 땜빵 같으니라고.


"왜 대답 안 해? 나 무시하는 거야?"


메리가 다가왔다.

얼굴은 무표정하고, 목소리는 감정 없이 차갑지만, 손은 허리춤의 흉기들로 향한다.



이 날 깨달았다. 

불행과 사고는 갑자기 들이닥치기에 불행과 사고란걸.



"저기... 치킨 좋아해요?"


아무래도 내 인생은 단단히 꼬인 거 같다.


.

.


블러디 메리.

어느 미치광이 과학자가 마법소녀를 쓰러뜨리기 위해 만든 인조 마법소녀.


그녀는 다른 마법소녀들과 비교도 안될 만큼 강력한 힘을 지녔으나, 만들어지지 얼마 안된 만큼,


"나 아기상어TV 볼래. 핸드폰 내놔."

"그래, 여기."


"병아리 쿠키 더 줘. 공룡모양 너겟도."

"응, 금방 해줄게."


정신연령은 어린애나 다름 없었다.



"하아...."


정말 운 좋게도 메리는 내가 내밀었던 치킨과 과자들을 마음에 들어했고, 더 줄테니 살려달라는 내 제안을 수락했다.


'이거 더 줘. 아니, 다 내놔.'

'이, 이제 없는데...'

'그럼 가져와.'


문제는 너무 마음에 들어했다는 거.


녀석은 집까지 쫓아와 더 달라고 했고, 이후로도 주기적으로 찾아오더니...


[아기 상어 뚜루루뚜루~ 촉법상어~ 뚜루루뚜루~]

"뚜루, 뚜루, 뚜루."


"메리, 먹으면서 뛰지 말아줘. 과자가루 날려."


이젠 아예 눌러살고 있다.


방 하나 없는 쥐꼬리만한 집,

침대 겸용으로 쓰는 소파는 그녀의 차지고,

몇 없는 옷도 내 것보다 메리가 사달라고 협박한 것들이 많으며,

냉장고 안은 녀석의 삐약의 달걀쿠키와 어린이 공룡너겟으로 가득찬지 오래.

당연하지만 내 통장과 지갑은 텅텅 비었다.


신고하고 싶지만 보복당할 걸 생각하면 불가능한 짓이다.

거울처럼 상이 맺히는 곳만 있으면 어디로든 순간이동하니, 신고했다간 조만간 살해당할 거다.

그렇다고 말하는대로 안 들어주면 바로 토막날테니 시종처럼 지내고 있다.



"'원래라면 여기 있을 애가 아닌데...'


연구소를 박살내고 우연히 오게 된 도시를 재미로 파괴하다가 마법소녀들과 충돌, 

이후 그녀의 힘을 원하는 악당들이 꼬셔서 악의 편으로 활동하다가, 

주인공의 설득과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정의의 편으로 거듭나는게 만화 속 그녀의 행적.


[실시간 인기 1위, 마법소녀들의 늑대군단 처치!]


그러나 지금의 메리는 공룡너겟 먹으며 유튜브 보기 바쁘다.



"민진아, 이 사람은 누구야?"


소파에서 너겟을 먹던(소스를 다 흘리며 먹기에 먹는 족족 내가 바닥을 닦고 있다) 그녀가 물었다.



영상 속에선 마법소녀들이 늑대괴물들과 싸우고 있었다.


[2번 무기 장전, 애플 런처 발사!]

스노우화이트가 7종류의 총을 바꿔가며 늑대들을 쏘고,


[죽어라, 할머니의 할머니의 원수의 후손의 사촌이 만든 괴물들!]

레드후드는 음속의 속도로 도끼를 던져 늑대들을 날려버렸으며,


[재가 되어라, 글래스 힐 킥!!!]

크리스탈이 바닥에 수정이 솟아나게 해 적을 묶은 뒤, 킥을 날려 우두머리 늑대를 쓰러뜨렸다.


메리는 그중에서 크리스탈을 가르키며 물었다.


"이 사람, 나랑 닮았어."



밝은 금발에 생기 넘치는 하얀 피부와 호수처럼 푸른 눈, 늘 미소 가득한 표정의 크리스탈.

회색 머리에 창백한 피부와 피처럼 붉은 눈, 일절 변화 없는 무표정의 메리.


대비되는 부분이 많았으나, 기본적인 원판은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닮은 모습.



'걔가 너 닮은게 아니라 네가 그 사람 닮은 거야.'


과학자가 크리스탈을 엿먹일려고 일부러 똑 닮게 만들었지.


"...그러게, 엄청난 우연이다. 하하하하..."


근데 그걸 말할순 없으니 적당히 대꾸하며 과자나 더 줬다.



"....꼭, 동화속 공주님들 같아. 예뻐. 진짜 예뻐."


그녀는 무언가에 홀린듯 영상을 몇번이고 보더니, 아기상어 대신 마법소녀들에 대해, 동화책에 대해 찾아봤다.


마치 난생 처음 변신로봇이 나오는 만화를 본 어린애처럼, 계속 영상들을 뚫어져라 봤다.



그러고보니 원작에서도 메리는 마법소녀들과 대치하면서도 그들을 좋아하고 부러워했으며, (목을 조르고 뼈를 분질러 협박하여)친구로 삼으려 했다.

이유가 자기와 닮은 유일한 존재들이라서 그랬었나.


동시에 시기와 질투도 했다.

닮았지만 엄연히 다른, 보다 빛나며 모두에게 사랑 받는 존재였기에.



[*호러 *괴담 *미스터리/거울 속의 살인마, 블러디 메리]


[밤 12시, 혼자서 어두운 방에 촛불을 킨 뒤 눈을 감고 메리를 3번 부르고 눈을 뜨면, 거울에 메리가 나타난다.]

[메리는 행운과 불행, 미래의 배우자등 당신이 알고 싶어하는 것들을 알려준다.]

[만약 메리가 흉기를 들고 나타났다면 제빨리 도망쳐라. 메리가 당신을 잔혹하게 살하할테니.]


마법소녀들에 대해 검색하다 자기 이름을 치자 나온 영상을 멍하니 바라보는 메리.


"난... 달라?"


늘 변함없이 무표정하고 높낮이도 감정도 담기지 않은 차가운 목소리지만, 어딘가 슬프게 들린다.


"...아냐, 너도 예뻐."


과자 부스러기와 허니 머스타드 범벅인 입가를 닦아주었다.


"..히히."


메리가 날 끌어당겨 품에 안고 머리를 툭툭 쳐댔다.


"잘했어, 잘했어, 잘했어."


"...."



다른 건 다 똑같으면서 유일하게 원본인 크리스탈보다 2배 이상 큰 흉부.

얅은 박스티 너머, 속옷도 없어 거의 생으로 느껴지는 수박의 촉감이 안면과 목을 기분 좋게 감싸니,

폭력적인 포근함과 부드러움 앞에 스트레스와 짜증이 눈 녹듯 사라진다.



"잘했어, 잘했어. 잘했.. 뭔가 딱딱해."


"...메리. 다음엔 동물 잠옷 말고 속옷 사자."


"싫어. 답답해."


"제발."


"그럼 아기 상어 팬티 사줘."


"...그래."


.

.


메리와 만난지 어느덧 한달이 다 되어간다.


여전히 지갑을 거덜내고 있지만, 처음보단 많이 좋아졌다. 이제 5번 떼쓰는걸 3번 밖에 안 한다.

유튜브로 이상한 말들을 배우고 있지만, 덕분에 배우는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어제 구구단 100점 맞았으니, 오랜만에 치킨 사줘야지."


큰 마음 먹고 산 황금올리브 치킨.


분명 좋아할 거다.

좋아할텐데....



"멍청한 새끼, 이런 늦은 시간에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다니."

"늑대 출현했다는 재난문자도 못 들었냐?"


아무래도 전해주긴 힘들거 같다.



갑자기 습격한 늑대괴물 둘.


그것들의 공격에 한쪽 다리가 부러진채 저 멀리 날아가 담벼락에 몸을 박았다.


'늑대괴물이라니.... 씹....'


마법소녀들이 저번에 다 잡은 거 아니었나?

혹시 메리가 우리 집에서 지내며 전개가 바뀌건가.



"전... 화..."


마법소녀에게 신고하기 위해 핸드폰을 찾았으나 어디에도 없었다.


'맞다, 나가기 전에 메리한테 로로뽀 보라고 주고 갔지 참.'



"마침 배고팠는데 잘됐군."

"고작 1명이지만, 그래도 먹으면 힘을 좀 회복할 수 있겠어."


늑대괴물들이 발톱을 꺼낸채 서서히 다가온다.


불행과 사고는 늘 갑자기 닥치는 법이지만, 이렇게 찾아올 줄이야.



"메..리... 메리..."


지금쯤 유튜브 보고 있으려나. 또 집 안 어질러놓진 않았겠지.


"...메리..."


얼른 치킨 줘야 하는데.


.

.

.


"나 불렀어?"


"누구냐!"

"어디서 나는 소리지?"


"...메,리?"


주변을 둘러봤다.

허나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여기야, 여기."


목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전봇대 옆의 물웅덩이가 보였다.


가로등 빛을 받아 거울처럼 상이 맺힌 작은 웅덩이.



"...다쳤어?"


웅덩이가 붉게 변하더니 그녀가 튀어나왔다.


창백한 피부와 회색빛 머리, 피처럼 붉은 눈과 결코 깨지치 않는 무표정, 피 묻은 드레스에 망치, 톱, 가위, 칼... 온갖 흉기들을 허리에 찬 그녀가.



"누구냐 넌! 오즈의 심복이냐?"


"여긴 늑대의 구역이다! 좋은 말로 할때 꺼져!"


"..쟤들이 그랬구나."


메리가 늑대괴물들에게 다가가며, 허리춤에 찬 가위를 꺼냈다.


가위를 둘로 쪼개자, 하나는 그녀의 키만큼 기다란 장검으로 변해 어깨에 걸쳤고, 다른 하나는 찌르기에 적합한 단검으로 변해 역수로 쥐었다.



"메리, 메리, 메리. 

나는 블러디 메리. 


운명을 알려주는 거울 속의 여인, 

때때론 피를 부르는 악귀."


"뭐라는 거야! 이 건방진.."


한 놈이 소리치며 메리에게 발톱을 휘둘렀으나 그녀에게 닿지도, 말을 끝맺지도 못했다.


바닥에서 튀어나온 거울조각이 놈의 앞발을 베고, 메리의 검이 그 잎을 찢어발겼으니.


"무,무슨...!"


"자, 어리석은 늑대야. 이리 와."


그녀가 나와 늑대괴물 사이에 서서, 장검을 바닥에 박았고, 늑대에게 단검을 내밀었다.

마치 모든 불행과 사고를 막아주겠다는듯, 내 앞을 지켜줬다.



"너의 운명을 알려줄게."


3월 29일,

원래라면 블러디 메리가 빌런으로 데뷔했을 날은,


마법소녀 블러디 메리의 데뷔식이 되었다.


.

.


신데렐라, 빨간모자, 백설공주등 대충 동화를 모티브로 한 마법소녀들


주인공의 복사 버전 + 흑화 버전 클리셰 여주

남주 덕분에 원작보다 일찍 마법소녀로 활동함

다른 소녀들과 달리 철저히 본인 이득과 남주 위해 활동

남주와 마법소녀들의 영향으로 점차 진짜 정의가 마법소녀가 되는 여주


전통 마법소녀 히어로물 보고 싶어어어어

한우 먹고 싶어어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