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가?
지금 일하는 곳은 상품이 주문 들어오면 주문서대로 상품을 적절하게 뽁뽁이나 신문지, 완충제등으로 감싸고 상자에 넣은 다음에 송장 붙이고 탑차 오면 싣는 일을 하고 있다. 일하는 시간은 점심시간인 12시부터 6시까지 6시간. 12시까지 출근해야 해서 집에서는 10시 30분에 나가고(나가면서 쓰는 중) 집에 도착하면 7시 반이다. 노동강도는 어떻냐면 추노할 정도는 아닌데 하루에 10시간 정도 잠을 못 자면 다음날 지장 있는 정도? 일한지는 한달 넘었다.
논영체험은 앞에 글에서 쓴 것처럼 편의점식이나, 가정식이지만 반찬 1,2개 정도로 편식을 하면서 그동안 먹던 영양제를 전부 끊고 생활해 보는 것이다. 이게 아마 오늘날 일용직-저소득 노동자의 삶과 가장 유사하기 때문이다.
2. 왜 사서 고생함?
내 전공이나 일하는 곳들은 원래 이정도로 힘든 일을 하지 않고, 적절한 돈을 받으면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나에게 몇 번 주었고 특히 코로나 시국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기회들이 오긴 왔었다. 하지만 3차 산업혁명이후 다품종 소량생산 시기로 접어들면서 사람들의 직종이 극도로 세분화 됨에 따라 자신이 일하는 직종을 제외하고는 이해도나 시야가 극도로 좁다는 것이 특징일 것이다. 특히 여기 남챈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적잖은 사람이 블루칼라일 수도 있지만 화이트 칼라거나 학생신분인 경우가 더 많을 것이고 그나마도 서로간에 생활상을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일 것이다. 조만간 알파고님께서 세상을 지배하시면 기본소득과 함께 인간은 쾌락장치 안으로 들어가서 생명을 겨우 연장하겠지만, 노동이 완전히 종말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노동을 경험하고 이해하고 싶었다. 그래서 굳이 몸 쓰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두번째로는 인터넷에 도는 논영체험이 21세기 한국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과거와는 달리 16시간 노동도, 아동노동도, 극도로 열악한 식사도 없다. 무시당하긴 해도 노동법이 엄연히 존재하며, 저질육이긴 해도 저렴한 민쓰고기정도는 최저임금으로도 맛이나마 볼 수 있고,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을 지라도 원룸 정도는 최저임금으로 감당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노동자들은 산업재해나 자살등으로 삶이 끝나게 된다. 왜 그럴까? 그동안 나는 유물론의 영향을 크게 받은 사람으로써 물리적인 환경이 개선되면 결과 역시 바뀌게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노동자들의 비극이 과거 산업혁명과 달리 수치상으로는 변했어도, 비극의 강도는 그대로인 점이 의문이 들었기 때문에 체험을 하게 되었다.
3. 정상식사와 활동을 그동안 하면서 느낀 점
그동안은 피곤해서 종합비타민을 챙겨먹었는데 놀라운 점이 하나 있었다. 그동안에는 비타민B 때문에 화장실을 가면 소변의 색이 진하게 나왔지만, 일한 이후로는 정상적인 색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흡수가 잘 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저용량 비타민인데도 불구하고 체감이 가능할 정도로 피곤한 것도 특징이다.
생활 패턴이 단순해진다. 피곤하다보니 약속을 최소화 하려고 한다. 안그래도 내향적 성격인데 더더욱 약속을 안 잡게 되고 집에 오면 씻고 폰 좀 보다가 잘 뿐. 사고도 단순해진다. 먹는거-자는거 두개만 생각하게 되고 성욕이나 다른 욕구들은 퇴화라는 느낌으로 전락해 버린다. 신경이 안 쓰이는건 아닌데 앞에 두 욕구가 그냥 다른 욕구들을 먹어치우는 느낌? 철학적 담론이니 정치니 하는 것들은 "왜 저런 일이 일어난거지?"보다는 "저 쪽이 나쁜 놈들"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만 커지는 것을 느꼈다.
정치이야기는 예민하지만 논영체험을 했던 사람들이 입모아 한 말은 자신의 성향이 왼쪽으로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한데 그동안은 진보나 왼쪽에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원내 정당들이 전부 오른쪽으로, 원외 정당 몇개는 중도로 보일 정도로 더 심하게 기울었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의원들이나 정치인들 중 실제로 블루칼라 출신인 경우가 거의 없다 보니까 앞서 말한 "이분법적 사고"로 인해 의원들은 전부 노동 안해본 사람들 정도로만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4. 논영 식사 1일차 후기
어제는 편의점 햄버거 1개, 삼각김밥 1개, 초코유우 1개를 저녁에 일 끝나고 먹었다. 아침을 먹지 않고 일하는 것이 의외로 힘들진 않았다. 물론 일 끝날 즈음에 힘이 빠져서 물건을 몇 번 놓칠 뻔 했지만 일단 건강상으로 문제가 있거나 체력이 딸린다는 느낌은 없었다. 총 칼로리는 1400정도였고 가격은 4500원이다.
지금 일어나서 글을 쓰면서 느끼는 것은 속이 더부룩한 것 제외하고는 의외로 피곤한게 더 심하거나 배고프지는 않다는 점이다. 그동안 편의점 음식을 먹으면 소화를 거의 시키지 못할 정도로 약한 장을 가지고 있는데, 아침부터 속이 난리를 쳤다. 하지만 피곤한건 수면 시간의 총량이 더 중요한거 같고 실제로도 피곤한 정도는 기존과 동일했다. 배고픈 것도 일어나서 몇시간은 배가 안 고팠기 때문에 그냥 이냥저냥 버틸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