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채널을 통 둘러볼 여유가 없는지라 늘 한발 늦게서야 채널 정황을 확인해보게 되네요. 죄송합니다.


https://arca.live/b/philosophy/92740771?p=1
https://arca.live/b/philosophy/92747943?p=1


여튼 해당 사안에 관해서 긴급히 저의 다소 신중한 견해와 더불어 잠정적인 판정을 제시해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살짝 깁니다).


우선 적어도 상식적인 차원에서 보았을 때 보통 언론, 출판, 칼럼, 학술 등과 같이 각종 법적 · 제도적 효력에 따라 명확한 책임 관계를 배정받는 여타 분야들과는 달리 우리 모두가 향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은 기본적으로 그와 같이 상호 합의된 구속력을 적용받는 분야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즉, 비록 현재는 상당한 공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더라도 온라인 커뮤니티―특히나 디시 계열처럼 철저한 익명성과 높은 개방성을 지향하는 곳일수록―의 엄연한 본질은 어디까지나 '사적 영역의 확보'를 전제로 하여 제공되는 일개 소셜 미디어 서비스 중 하나일 뿐입니다. 


따라서 대다수의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범법 행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자신의 개인적인 활동에 대해서 필요 이상의 그 어떠한 사회적 책임을 져야한다는 명목은 "원칙적으로" 있을 수 없으며, 그렇기에 커뮤니티에서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만큼 원할 경우 언제든지 자신의 글을 삭제할 수도 있어야만 합니다. 적어도 그것이 특정 커뮤니티 내에서 시스템 상 제공하는 권리 중 하나에 해당한다면요. 


물론 이와 별개로 현재 상황에서 관건이 되었던 부분은 작성자 본인이 글을 삭제함으로써 타 유저가 공들여 작성한 댓글까지 모조리 삭제되어버리는 경우이기에 혹자는 "이것은 권리 문제를 따질 것이 아니라 온라인 커뮤니티도 엄연히 사회적 상호작용이 벌어지는 공간인 만큼 그에 걸맞는 규범 및 수칙의 필요성에 주안점을 두어야 하는 사안일 뿐이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네,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주장이라고 보며 이 점에 대해서는 따로 아래서 좀 더 집중적으로 설명할 것을 미리 밝혀드립니다. 다만 그 이전에 제가 여기서 피력하고자 하는 바는 '글 작성자의 자유가 먼저냐, 에티켓이 먼저냐' 하는 논의를 떠나서, 과연 현실적으로 글을 삭제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해야 한다는 명목이 평소 채널 운영에 있어서 필수적으로 고려해야할 만큼의 중대성과 보편성을 갖느냐는 의문입니다. 


보통 대다수의 커뮤니티에서 소위 말하는 '글삭튀'를 방지하려는 것은 대체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받자마자 글을 삭제해버림으로써 답변자의 노고와 정성을 존중하지 않는 "주변적인" 행태―그 외 여러 특수한 사정들 또한 포함해서―를 막기 위함이지, 애초부터 글 작성자와 댓글 작성자 간의 불균등한 권한 관계와 구조 따위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한다는 식의 거대한 의도가 반영된 결과라고 보기엔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죠. 


또한 댓글창의 존재는 본래 작성자의 글에 대한 타 유저들의 감상이나 의견 제시 또는 소통과 토론을 목적으로 마련된 부가적인 기능에 불과할 뿐, 그 이상으로 개인적인 기록을 남긴다거나 별도의 작업물을 전시하기 위한 공간은 아니기 때문에 특별히 글 작성자의 권한을 제한할 정도의 일반적인 가치를 지닌다고는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제 주된 입장을 정리해서 반복 진술하자면 공들여 쓴 댓글이 글 작성자의 자의로 인해 무단으로 삭제되어버림에 따라 원치 않은 피해를 겪는 경우에 정당한 불만을 표하고 그에 맞는 대책을 따로 요구할 수도 있지만, 이것이 곧 글 작성자의 삭제할 권한을 전적으로 제재해야만 하는 필연적 근거로서 취급하기에는 위에서 설명한대로 해당 사안의 심각성이 비교적 두드러지지가 않아 현실적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여기서 문제시되는 상황이 어느 정도로 부당한가와는 관계 없이 기본적으로 아카라이브 커뮤니티 이용자로서의 '형식적인 권리'는 원칙 상 보장되어야 함이 마땅하므로, 여기에 다른 범주의 문제를 끌고 와 대입시켜 글 작성자의 권리의 정당성을 논하는 것은 별안간 옳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간에 적어도 커뮤니티가 지향하는 기초적인 요건들을 충족시켜야만 채널은 이용자들이 기대했던 자유로운 활동에 부합함으로써 온전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시간과 노력을 들여 쓴 댓글 혹은 답글들이 허무하게 삭제되는 경우들을 방지하기 위해서, 반대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이듯 "개인의 권리와는 별개로" 최소한의 장치나 에티켓이 필요하다는 이의 제기에 대해선 저 역시 십분 공감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기존의 여타 채널들보다 훨씬 더 진중하고 사려깊은 댓글들의 비중이 높은 유레카 채널의 특성까지 덩달아 고려해본다면 해당 사안은 더 큰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줄곧 얘기해온대로 이 역시 어디까지나 '글 작성자의 삭제할 권한에 대한 일방적인 제재를 가하지 않는 조건' 하에서만 적용되는 것이야 합니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으로서 채널의 이용 규칙을 새로 제정한다거나 아니면 글머리 설정을 통해서 전체 '자삭 금지'를 걸어두는 것보다는 단지 '권고 사항'으로서만 제시하는 것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혹여 이보다 좀 더 확고한 수단을 원한다면 최소한 '질문·상담'과 '토론' 탭에 한정해서만 자삭 방지를 걸어두는 것도 방법이겠구요. 뭐 이에 관해서는 추후에 차차 결정해보는 것으로 하고요, 이쯤에서 그만 글을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추신) 

다소 에둘러 전해드리는 것이지만, 다른 유저에게 무언가 권유하거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자 한다면 되도록 그다지 명료하지도 않은 규범을 거론하면서 상대방에게 '명령조'로 강권하는 일만큼은 삼가주셨으면 합니다. 채널 규정에 실제로 명시되어 있지도 않은데다, 커뮤니티 전반에 통용되는 불문율 같은 것도 아니면서 그런 식으로 본인만의 잣대를 내세워 채널 동향에 멋대로 관여하시는 것 같아 보여서 완장으로서는 참 곤란합니다... 물론 정말로 그런 의도로 말하신 것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앞으로는 좀 더 자중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정중히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