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난 마이클이 있었는지 눈치채지 못했어 잔디 깎는 웅웅거리는 소리가 성난 벌떼마냥 머리 속에서 울리고 있었거든
그 때 나는 이웃집 담장 근처에 마저 남은 풀들을 정리하고 있었어 나는 빨리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 뿐이었지 시원한 맥주가 티비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내가 정원의 마지막 남은 잔디를 깎고서 전원을 껐을 때야 비로소 등 뒤로 날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어
“폴아저씨?”
난 깜짝 놀랐지 가끔 혼자 깊게 생각하다보면 주변에 뭐가 있는 것들이 잊게 되잖아
난 내일 휴가 마치고 돌아올 아내 생각에 한창이었어 아내는 지난 주 내내 친구들과 스페인에서 있었거든 그래서 난 아내를 공항으로 마중나갈까 생각하던 참이었지 어느 시간 쯤 나갈지 그런 것들 말이야 그렇게 잠시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었는데 갑자기 이웃집 정원에서 들린 목소리가 내 세계에 구멍을 뚫고 들어온거야
난 잔디깎이 기계에서 몸을 돌려 낮은 담장 너머에 있는 이웃집 정원을 둘러봤어 처음엔 아무도 없어서 잘못 들었나 싶었지 이미 해가 저물어서 온통 어두웠고 정원을 비추는 빛이라고는 내 집 뒷편 길에 있는 가로등 불빛 뿐이었거든 그것도 겨우 앞을 분간만 하게 해주는 수준이었어
“여기에요”
그제서야 그 아이를 발견했어 마이클, 새로 이사온 이웃집 아이였어
아이들 나이는 가늠하기 힘들었지만 내 눈엔 한 열 살 쯤 되보일까 머리는 검은 색에 산발이고 눈은 커다랗고 갈색이었어 보통 아이들은 사람을 빤히 쳐다보고는 하잖아 얘도 그런 아이였어 지난 주 옆집으로 엄마랑 같이 이사 오고 나서 한 두어번 마주친게 다였는데 그 아이는 날 볼 때마다 날 동물원 우리 속 동물 보듯이 뚫어져라 쳐다봤어 좀 부담스러운 시선이었어 그렇게 쳐다보면서도 그동안 나한테 말은 붙이진 않았거든
“그래 안녕... 마이클 맞지?”
실은 그 꼬마 이름은 이미 알고 있었어 요 며칠전에 옆집을 담당하던 부동산업자를 마주쳤었는데 그 사람이 말해줬었거든 그치만 난 너무 친한 척하긴 싫어서 그냥 모르는 척했어
“맞아요 마이클이에요 폴 아저씨죠? 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그래 맞아 이사 온 새집은 어떻니?”
“좋은 것 같아요”
마이클이 큰 갈색 눈으로 날 올려다 보며 말했어 나는 아이들과는 말을 많이 해본 적은 없어서 확신할 수 없지만 왠지 마이클은 그 나이 또래 아이들보다 더 눈을 마주 보려고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거기다 눈도 거의 깜빡이지 않았지 적어도 내 경험 상, 어린 아이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잖아 에너지가 넘칠 나이지 하지만 마이클은 정반대였어 아마 좀 있으면 잠을 잘 시간이라 그런가 생각하다 반대로 오히려 방방 뛰어다니지 않아서 다행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게 에너지 넘치는 꼬마였다면 정말 피곤했을테니까
좀 이상한 건 아직 이사한지 얼마 안된 때라 정리할 것이 많을텐데도 마이클하고 그의 엄마는 밖에서 거의 마주친적이 없었어 난 주말내내 가구 옮기는 소리나 박스 끄는 소리로 시끄러울 줄 알았는데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더라 집을 나서는 사람도 전혀 보지 못했어 지난주 늦은 저녁에 집에 들어가는 걸 내 서재 창문을 통해서 봤을 뿐이야
마이클의 엄마는 그 때 키가 꽤 컸어 나보다 나이가 좀 많아보였고 얼굴을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미인이었어 그 집 가족과 대화를 나누는 건 이번이 처음이고 내일 베스가 집에 돌아오면 곧 한번 들러서 정식으로 서로 인사해야겠지 난 잔디깎이의 핸들을 접으며 생각했어
“그래 마이클 늦게까지 너랑 엄마랑 뭐하고 있었니? 잘 시간 아니니?”
잔디깎이를 들어서 정원으로 다시 옮기며 내가 말했어
“아뇨 아직 멀었어요”
“그래 아저씬 일찍 자러가는 편이라서 아저씬 들어가서 티비 좀 보다 누워야겠다 다음에 보자 알았지?”
이렇게 말하곤 정원 한켠에 있는 나무 창고에 잔디깎이를 넣었고 다시 뒷문으로 들어가려하자 마이클이 다시 나를 불러세웠어
“폴 아저씨”
“왜 그러니?”
“아저씨는 원래 밤에 잔디 깎아요?”
난 웃으면서 답해줬지
“아니 보통은 해가 떠있을 때 끝내려고 하지 아저씨 와이프가 내일 집에 오거든 그래서 정리 좀 해두려는 거야 이 시간에 잔디깎는게 좀 이상해보였구나?”
“아뇨 그렇지 않아요 뭐든지 밤에 하는게 재밌죠”
“그러니?”
“네 저는 밤마다 모험을 떠나요”
얼굴은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지만 마이클의 목소리는 한껏 들떠있었어 너무 어두워서 마이클은 그냥 어렴풋이 형체만 보였거든
“지난 번에는 밤낚시를 갔었어요 아저씨는 밤에 낚시 해본적 있어요?”
난 머리를 가로저었어
“아저씨는 낚시는 한 두번 해봤는데 전부 밝을 때 했었지”
“밤엔 훨씬 재밌을 거에요 뭐든지 전부 잘 안보이잖아요”
나도 모르게 또 웃음이 나왔어 집에 들어가고 싶기도 했지만 아이랑 대화하는게 재밌기도 했거든
“그래 나중에 다같이 모여서 가볼 수도 있겠구나 아저씨네보다 훨씬 재밌게 사는거 같네”
난 다시 문으로 몸을 돌렸어 내가 손잡이를 잡고 돌리려는 찰나에 마이클이 또 나를 불렀어
“아저씨”
“응?”
“혹시 아무거나 마실 거 없을까요 주스같은거요”
난 망설였어
“어 지금 뭐가 있는지 모르겠구나”
“아무거나 한 잔만 빨리 마시고 갈게요 엄마가 지금 주무시고 계셔서 그래요 엄마는 이번주 내내 정말 피곤하셨거든요 엄마 괜히 깨우기 싫어서요”
난 문고리를 잡은 채로 잠시 서서 생각을 했어 베스가 있었다면 아마 난 별 고민없이 바로 들어오라고 허락해주었을거야 하지만 어두운 정원에 서있으니까 순간 10살짜리 아이를 나 혼자 있는 집으로 들인다는게 좀 이상하게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무리 이웃이라고 해도 그리고 마이클의 어머니도 탐탁치 않아할 거 같았지
“아저씨 집에는 마실 거 없어요?”
난 아직 문에 손을 대고 있었지만 아직 손잡이를 돌리지는 않았어 같은 자리에 서있는 동안 머릿속에서 핑계거리를 만들어내려고 애쓰고 있었지 그러다가 바로 뒤에서 날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놀라서 까무러칠뻔 했어
뒤를 돌아보자 마이클이 코앞에서 서서 그 큰 갈색 눈으로 날 올려다 보고 있었어
“어...그래… 아이들이 마실 만한 건 없는 거 같네”
마이클은 분명 내가 등돌리고 있는 동안 정원 담장을 넘어 온게 틀림없었어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말이야
“아저씨 제발요 진짜 빨리 마시고 집에 돌아갈게요 그냥 서서 마시고 갈게요 진짜에요”
난 머리 속에서 계산을 해봤어 우리집 뒷문은 부엌이랑 바로 이어지고 냉장고에는 오렌지 주스가 있었거든 1,2분이면 마이클을 금방 집에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어 마이클의 어머니가 마이클이 우리 집 안에 들어갔던 걸 알면 이상하게 생각할수도 있지만 이웃인데 자기 아이한테 마실 것도 안주고 그냥 보냈다는 걸 알게되도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았거든
난 잠시동안 망설이다가 한숨을 내쉈어
“좋아 그럼 빨리 마시고 가야한다 알았지? 아저씨는 이제 정말 자러가야해”
마이클은 날 보고 웃고서 고개를 끄덕였어 난 손잡이를 돌리고 집안으로 들어갔어
“넌 올빼미족이구나”
“그게 뭐에요?”
난 냉장고를 열고 오렌지 주스를 꺼내주며 말했어
“밤에 깨어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란 뜻이야 밤마다 모험을 떠난다고 했잖니 밤낚시 같은거”
난 식기 건조대에 있던 컵 하나를 골라 집었어
“아 맞아요 전 그럼 올빼미족이네요”
유리컵에 오렌지 주스를 부으며 다시 내가 답했어
“그래? 아저씨랑 다르구나 아저씨는 네 나이 때 어두운 게 무서웠거든”
“익숙해질거에요”
“응?”
“익숙해지면 괜찮아요 그만큼 시간이 필요하지만요”
“그래 맞는 말이야”
난 마이클에게 주스가 담긴 컵을 건네줬어 마이클은 컵을 받고서 웃음을 지었어 마이클은 컵을 입에 가져가다가 멈추고서 컵 가장자리 너머로 날 바라봤어
“있잖아요 우리 엄마는 제가 이러는 거 이제 안좋아하세요”
“뭘 말이니?”
“낯선 사람들 집에 들어가는 거요 저번부터 그러셔요”
그 말에 난 마이클을 내려다보았어 마이클은 날 그대로 올려다 봤지 이젠 더이상 웃지 않고 있었지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어
“무슨 말이니 그게? 무슨 일이 있었는데?”
마이클은 마치 엄마가 거기 혹시 있는지 확인하는 지 닫힌 뒷문을 슬쩍 한번 쳐다봤어
주스가 담긴 컵을 입에서 떼더니 부엌 조리대 위에 올려놨어 그러고선 어깨를 으쓱해보였지
“아무일도 없었어요 예전에 살던 곳에서 몇 길 건너 사는 할아버지랑 친해졌거든요 그 할아버지가 음료수 한 잔 마시고 가라고 초대했었어요 그러더니 조금… 이상해졌어요
세상에, 난 놀라지 않은 척 표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어 처음 마이클이 부탁했을 때 안된다고 했어야하는데… 같은 동네에 살던 나이 든 변태가 마실 걸 핑계로 꼬득인게 틀림없었어 여기로 이사오기 직전에 그런 일을 겪었다면 마이클의 엄마가 지금 내가 우리집에 마이클과 단 둘이 있는 걸 안다면 뭐라하실까
“이상해지다니?”
내가 채 멈추기 전에 말이 이미 튀어나와버렸어 이 꼬마를 그냥 아까 보냈어야하는데…
그치만 호기심에 안 물어볼 수가 없었어 마이클은 날 바라보면서 발 끝 세워서 바닥에 문질러댔어
“그 할아버지는 저보고 지하실로 같이 가자고 했어요 밑에 자기가 모은 레고 컬레션을 보여준다고 했거든요 전 집에 가야한다고 했지만 할아버지는 제가 꼭 봐야한다고 그랬어요
입이 바싹 마르는게 느껴졌어
“그래서… 같이 내려갔었니?”
마이클은 양옆으로 고개를 거세게 가로저었어
“아뇨 전 바로 뛰쳐나와서 집으로 왔죠 엄마는 제가 낯선 사람들 집에 들어갈땐 부엌까지만 들어가라고 하셨어요”
난 그 말을 듣고 안도감에 마음이 놓였어 그런데 마이클이 한 말을 다시 생각해보니 뭔가 이상했지
“아까 혹시 낯선 사람들 집이라고 했었니? 그럼 어머니 친구분들 집이나 뭐 그런 뜻이니?
마이클은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이내 다물었어 그러더니 조리대 위에 있던 오렌지 주스 컵 쪽으로 몸을 돌렸지 이번엔 컵을 손에 쥐진 않고 손가락으로 조리대 위에 컵을 슬슬 밀기 시작했어 그리고 다시 뒤돌아서 날 바라보고선 내 말을 못 들은 것처럼 다시 말을 이어갔어
“제가 그 할아버지 얘기를 하니까 엄마는 엄청 화가 났었어요 엄마랑 다시 거기는 안들어간다고 약속했어요”
“엄마가 그 할아버지 일을 다른 사람한테 얘기하진 않으셨니?”
“아뇨 안하셨어요”
마이클이 슬쩍 미소를 띄고선 다시 나를 올려다봤어 꼭 내가 이해 못하는 장난에 빠진 기분이었어
“그래 엄마는 어떻게 하셨니?”
“엄마가 할아버지를 사라지게 했어요”
난 다른 질문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마이클이 한 말이 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어
그 다음에는 내가 잘못들었나 생각이 들었지
“뭐라고?”
“엄마가 할아버지를 없앴다구요 제가 밤에 하는 건 뭐든 재밌다고 했잖아요 사냥도 그래요”
마이클의 갈색 눈으로 나를 쳐다봤어 그의 눈동자는 어쩐지 갈색보다 훨씬 검게 보였어
거의 검은색처럼
“무슨…?”
난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했지만 뭐라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어 마이클이 멍하니 있던 날 보며 다시 웃으며 말했어
“되게 재밌어요”
“사람들은 우리 엄마가 초대받지 못하면 들어오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그거 완전 틀린 건데
사실 우리 중 한명만 초대받아도 들어올 수 있거든요 이제 엄마랑 저랑은 언제든 여기 올 수 있어요”
그 아이는 다시 한번 날 보고 웃었어
“걱정말아요 아저씨, 아저씨가 잘해줬다고 엄마한테 말씀드릴게요 엄마가 친절하게 끝내주실거에요 주스 잘 마셨어요”
그 말을 하고선 마이클은 뒤로 돌아서 뒷문을 열고 나갔어 난 오렌지 주스가 담긴 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 주스는 한 방울도 마시지 않은 채였거든 마이클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자 나는 그제서야 눈을 뒷문 쪽으로 돌렸어 마이클은 열린문 사이로 반만 몸을 내놓고 있었어 그림자가 진 나머지 몸은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거에요 그 다음부턴 어두워도 무섭지 않을거니까”
내 답을 기다리지 않고서 마이클은 그대로 어둠속으로 사라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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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룽 노루룽
괴담) 이웃집 아이와의 이상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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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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