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가슴 속의 몇 안 되는 공기를 수압으로 밀어내고, 코에 들이마신 바닷물은 숨을 쉴 권리를 박탈하는 공포의 모습을 보여줬다.


암흑, 차가움, 고요함이 사방을 에워싸고 자신을 끌어내린다.


일련의 환영들이 끊임없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삶과 죽음, 익숙함과 낯설음, 기억 속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다가온다.


희미해져가는 가운데 누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나미

지...내...손...


지휘관

(뻗어!)


손아귀에서 단단한 금속의 감촉이 되돌아오고, 이어서 상승하는 힘이ㅡㅡ



차가운 바닷물에서 벗어나 잃어버렸던 공기를 크게 들이마셨고 적홍색 빛이 어둠을 몰아내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밝은 적색 거성이 시선을 압도했다.


지휘관

적색 거성?



나나미

맞아, 노년기의 상징이기도 해.


우주복을 입은 나나미가 자신의 곁에 서 있었다.


지휘관

이번에는 우주여행?


나나미

지휘관은 좋아?


지휘관

(신기해.)

(현실적이지 않아서 다행이야.)


우주 비등, 치명적인 방사선, 극한의 온도, 그리고 인간의 육체를 쉽게 파괴할 수 있는 기타 우주 현상들은 말할 것도 없다.


스스로 숨을 제대로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식에 어긋난다.


나나미

지휘관이 우주에서 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약간의 꼼수를 썼지.


나나미

나나미는 오랫동안 준비한 끝에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어.


나나미는 자신을 마주보고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나나미

지휘관, 나나미와 함께 가도 될까?


지휘관

(손을 뻗다)


지휘관

나한테 부탁할 필요 없어.


지휘관

너답지 않은 걸.


그 말에 어리둥절해 하던 나나미는 손바닥에 얹힌 손을 꼭 잡았고, 힘이 세어 통증을 느낄 정도였다.


나나미

응!



우주는 매우 크다.


이것은 일반적인 인식이며, 이 점에 대해 공중정원에서 오래 머물다 보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우물에 앉아 하늘을 보는 것일 뿐이다.


나나미의 '작은 꼼수'에도 자신은 처음보는 온갖 우주의 진풍경에 혀를 내둘렀다.


먼지로 이루어진 오색 성운, 다이아몬드처럼 투명하지만 늙어가는 백색 왜성, 항성을 집어삼키는 블랙홀, 서로 부딪치며 어우러지는 은하….


그러나 아무리 기이한 광경도 우주의 경계 내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다.


수 억 년전 옛 빛의 그림자는 한없이 넓은 굴레를 만들어 모든 것을 '광속'이라는 울타리 안에 가두었다.


만나는 것은 지난날의 잔향에 불과하고, 쫓던 것은 이미 오래 전에 꺼졌는지도 모른다.


지금 망막에 투영되어 있는 것은 마치 호박 속에 갇힌 벌레처럼, 시간 속에 무자비하게 남겨진 수십만 년 전의 한 장면일 뿐이다.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오직 자신에게 실감되는 것은 손바닥으로부터 전해오는 온기, 그리고 그 앞의 은백의 모습뿐이었다.


무언가를 눈치챈 듯 나나미는 걸음을 멈추었다.



나나미

'산책' 시간이 거의 끝나가니까 지휘관을 집에 데려다 줘야겠어.


나나미

지휘관, 나나미 속도 올릴거야, 그 손 놓으면 안돼.


지휘관

(꼭 잡다)


나나미

으…그렇게 꽉 잡을 필요는 없고…


앞쪽의 시야가 파랗게 변하고 별 하나하나가 옆을 스치는 순간 붉게 변하며 등뒤에 펼쳐진 붉은 성운에 녹아든다.


일정 수준의 가속을 해야 볼 수 있는 적색편이 현상이다. 시간과 공간은 색채로 나누어져 있고, 먼 곳의 파란색은 '미래'를, 그 뒤의 빨간색은 '과거'를 의미한다.


마치 차원을 초월한 것 같은, 너무나 환상적인 경치였다.



시야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자 눈에 익은 푸른 별이 나타났다.


나나미

지휘관은 돌아가야 해.


소녀는 손을 떼고 살짝 밀어 인력과 함께 자신은 푸른 어머니 행성을 향해 추락했다.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끼며 작은 그림자를 향해 소리쳤다.


지휘관

그럼 너는!



나나미

나나미는 여기 있을 거야, 그치만...


소녀는 눈을 깜박이며 익숙하고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되찾았다.



나나미

언제나 항상...


뒤의 말은 잘 들리지 않았고 의식이 하애졌다.


나나미

지...




몸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고 눈앞에서 희미한 사람 형상의 그림자가 흔들리고 있엇다. 다시 감촉을 되찾고 나서야 소파로 옮겨졌음을 깨달았다.


나나미

지휘관 깨어났구나, 어땠어?


지휘관

이미 로그아웃 한 거야?


마지막으로 겪은 우주여행은 주변이 친숙한 사무실인데도 현실로 돌아왔는지 아닌지를 확신할 수 없는 불확실한 느낌을 주었다.


나나미

당연하지, 봐봐.


나나미는 책상 한쪽에서 서류 몇 장을 뽑아왔다.


나나미

지휘관이 아직 처리하지 않은 문서인데 어때, 기억나?


나나미

나나미는 맥보에게 여러 가지 상황을 실었지만 지휘관이 임시로 처리한 서류까지 되살릴 만큼 정확하지 않아.


자세히 보니 눈앞의 진척도가 자신의 기억과 맞아떨어져 게임에서 로그아웃 한 게 확실해 보였다.


나나미

그러면 지휘관, 나나미 먼저 가볼게.


나나미는 맥보를 문밖으로 끌어내면서 자신에게 말했다.


마치 도둑이 제 발 저린 느낌인데?


그러나 자신이 묻기도 전에 나나미의 모습은 문 밖으로 사라졌다.


지휘관

됐어...


마음속으로는 여러 가지 의문이 남았지만 당분간 고백하기 싫은 나나미인 만큼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기다리는 것뿐이다.


책상으로 돌아가자 갓 우려낸 커피 한 잔이 김을 내뿜고 있었다.


지휘관

나나미도 다 컸구나.


커피를 들고 입가에 대자ㅡㅡ


지휘관

푸웁!


결국 참지 못하고 전부 다 내뿜어버렸다.


지휘관

설탕을 얼마나 넣은 거야!



소녀는 마구 교차하는 맥보의 전선에 매달려 무언가를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나나미

어…어디다 두었지?


맥보

힌트, 맥보의 전송 인터페이스는 오른쪽 팔걸이의 후방에 위치합니다.


나나미

어, 진짜네, 맥보 너 대단해!


맥보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라서 맥보는 나나미에게 맥보의 중앙처리장치 보호 케이스에서 드라이버를 즉시 떼어내길 제안합니다. 전송 인터페이스는 거기에 없습니다.


나나미

헤헤, 데이터 전송 시작...


나나미

나나미는 이 기억들을 반드시 꼬옥 간직해야 해.


맥보

질문, 나나미의 저장소에도 관련 기억 데이터가 있는데 왜 맥보의 데이터를 내려받는 것입니까?


맥보

맥보는 이것이 무의미하고 리소스의 낭비를 초래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나미

이건 낭비가 아니야. 상대방을 조금이라도 더 알 수 있다면 다들 이렇게 할 거야.


나나미

이런 일에 있어서 쌍방 모두 득실을 따지지 않을 거라고.


맥보

이런 일이요?


나나미

맥보도 크면 알게 될 거야!


맥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