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한달 뒤


21호는 정기적으로 모의전투 훈련을 하고, 자신은 원격링크 지휘관을 맡아 전투에서 의식의 바다의 안정을 취하도록 도왔다.


계속되는 조정 속에 21호와의 호흡은 점점 더 잘 맞았고, 21호는 의식의 바다 이탈로 인한 통제 불능의 빈도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나중에 동기화 링크를 하지 않아도 21호는 위험 등급이 매우 높은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모의 전투의 마지막 날이 왔다.


모의 전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21호의 활약은 흠잡을 데 없었다.


모의 전투용 원격 링크 실험실에서 일어나자, 21호가 문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지휘관

결과는 어떻습니까?



기술자

...의식의 바다가 안정되어 최근 20차례의 모의 전투에서 더 이상 편향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기술자

이렇게 되면 전장으로의 복귀도 더 이상 기각되지 않을 것입니다.


연구원은 길이의 놀라운 임무 보고를 뒤적거리며,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술자

저도 드디어 야근에서 탈출하게 될거고요...


기술자

자, 모의 전투 보고서는 제가 제출할 테니 당신들은 먼저 떠나도 됩니다.


지휘관

감사합니다.



21호

끝났어?


21호

21호, 이제 임무 수행 가능한 거야?


지휘관

통보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돼.


지휘관

하지만 얼마 안 걸릴 거야.


21호

응.


21호

그럼 이제 뭐 해야 돼?


지휘관

일단 기지로 돌아가자.


21호

알았어, 【지휘관 이름】은?


지휘관

난 일이 있어서 먼저 떠나야 돼.


21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곧장 나이트호크 소대 기지 쪽으로 걸어갔다.


21호가 제대로 싸울 수 있게 됐다면, 마지막으로 정리해야 할 문제가 있다.



케르베로스 기지 밖 복도, 구조체 병사들이 들어서려던 21호를 가로막았다.



구조체

어...21호, 안녕.


21호

?


구조체

나는 그날 나이트호크 소대의 대원이었는데, 네가 르노의 명판을 내게 가져다 줬었어.


21호

...명판.


【지휘관 이름】

사람마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


【지휘관 이름】

다음에 만날 기회가 있으면 사과하렴.


【지휘관 이름】

너의 방식대로 말이야.



21호

괜찮아.


구조체

난 너한테...어?


21호

21호, 사과해야 해.


21호

그때, 웃으면 안됐는데, 그때 웃는 것은 옳지 않아.


구조체는 21호가 먼저 사과할 줄은 예상하지 못한 듯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저었다.


구조체

아니...사과해야 할 건 나야, 네가 가져온 명판은 나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어.


구조체

근데 그때는 내가.. 너무 속상해서 너한테 실례되는 말을 해서 정말 미안했어.


미안한 기색이 역력한 구조체는 깊게 머리를 숙이고 다시 고개를 들어 조심스럽게 21호의 표정을 살폈다.


21호는 의외라는 듯이 눈을 깜박거렸을 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구조체

그리고 네가 나를 비웃으려는 게 아니었다는 걸 알았어.


구조체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이 내게 말해줬어.... 그때 너의 표정관리에 문제가 생겼는데, 사실 날 위로하려는 거였지?


지휘관

(...왜 그런 말을 하는거야!)


구조체

표정 제어가 안 돼서 힘들었을 거야. 일상 전투에 지장을 주진 않지만 구조체 유지보수과에 찾아가서 처리했던 기억이 나는데...


21호

표정관리......?


21호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다른 한쪽의 구조체는 21호의 의혹을 눈치채지 못한 듯,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돌아서서 등뒤 전술 배낭에서 뭔가를 꺼냈다.


구조체

별건 아니지만...그래도 받아줬으면 좋겠어.


구조체는 손에 둥글둥글한 하얀 솜털 인형을 21호에게 건네주었다.


구조체

난...너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마음대로 골랐는데......광장에 있는 선물가게에서 이걸 샀어.


구조체

이거 마치 너의...파트너 로봇처럼 보이지 않아?


21호는 몸을 바짝 움츠리고 자기 앞에 건네는 인형을 응시하며 경계하듯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21호

이건 뭐야?


구조체

어...그 일종의, 선물이야. 감사의 표시로...


21호

검사 완료...위협 없음.


21호

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해?


구조체

어? 아...


구조체

응, 받아줬으면 좋겠어.


21호

...


21호는 말없이 손을 뻗어 솜털 인형을 껴안았다.


인형의 크기는 21호에게 제법 커 보였고, 그것을 받아들자 21호의 머리가 인형에 반쯤 가려져 껌뻑거리는 한쪽 눈만이 보였다.


구조체

그날 내가 억지부린 걸 용서해 줘...


구조체

그리고 정말 고마워.


구조체

명판뿐이지만... 그가 싸웠다는 증거이기도 해.


구조체

그의 이름이 황야에 묻히지 않게... 네가 그의 명판을 가지고 와줬어. 


구조체

우리가...기억할 수 있도록 말이야.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한 후 구조체는 작별을 고하고 떠났다.


21호는 품에 안은 인형을 똑바로 바라보며 가까이 가서 냄새를 맡더니 '아우'하고 한 입 베어물었다.


21호

웅웅...


변함없이 무표정하지만 그녀는 기분이 좋은 것 같다.


아까부터 줄곧 마음에 걸렸던 것을 내려놓고, 몸을 돌려 떠나려고 했다.


21호

왜 기둥 뒤에 숨어있어?


지휘관

(으악!)

(언제 내 등뒤에 왔어!)



21호

【지휘관 이름】의 냄새를 맡았어. 왜 여기 있는 거야?


지휘관

지나가는 길인데.


21호

아니야, 아까부터 여기 있었어. 21호 착각같은 거 안 해.


21호는 단언했다.


모퉁이에 숨어 상황을 훔쳐보다가 바로 들키자 난감해하고 있는 와중에 21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인형을 들어 자랑하듯 자신의 앞을 향해 끌어안았다.


지휘관

좋은 선물 받았구나.


21호

응, 이거, 【지휘관 이름】랑 꼭 닮았어.


지휘관

(나랑...?)

(나보다 너의 '꼬맹이'[치비코] 닮았겠지.)


21호

음, 꼬맹이 같기도 하고.


21호는 인형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21호

그것을 봤을 때, 마치 【지휘관 이름】을 보았을 때와 같은 포근함이 느껴졌어.


21호

그래서, 닮았어.


21호

이런 느낌, '행복'일까?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21호가 인형을 꼭 껴안고 있는 모습을 통해 그녀가 이 사례에 매우 마음에 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지난번처럼 21호에게 이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 나타난 감정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지휘관

그건 '기쁨'이야.


21호

기쁨...


21호는 낯설고도 익숙한 단어를 음미하다가 손을 들어 자신의 품에 인형을 안겼다.


지휘관

?


21호

너 가져.


21호

난 이미 꼬맹이가 있어.


21호

하지만 넌 없어.


21호

그리고 나도 고마워.


지휘관

뭐가 고마워?


21호

21호는 알아. 【지휘관 이름】 때문에, 이걸 받을 수 있던 거야.


이번이 처음일지 모르지만, 그녀는 낯선 사람으로부터의 선의를 실감했다.


이 '기쁨'을 자신에게 나눠주고 싶은 걸까?


지휘관

고마워, 정말 기뻐.


지휘관

그치만...이건 다른 사람이 너에게 준 거야.


지휘관

혼자 보관하고 있는 게 더 나을 거야.


21호

응...


21호

그럼 【지휘관 이름】, 어떤 '사례'를 원해?


지휘관

난...


21호

대장이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21호는 이미 자신의 뒤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베라

꼬라지를 보니 문제는 이미 해결한 모양이네.


베라는 팔짱을 끼며 다가왔고, 그 뒤로 녹티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따라왔다.

 

녹티

하하하하하하하, 너 손에 든 거 뭐야, 진짜 멍청해 보인다. 너보다 더 크잖아ㅡㅡ


베라는 칼자루를 돌려 노크티의 갈비뼈를 쿡쿡 찌르고는 익숙한 웃음을 지었다.


베라

보아하니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이 나를 실망시키지 않은 듯 한데


베라

감동할 시간 없어. 21호, 임무가 떨어졌어.


베라

이렇게 긴 휴가를 주었으니, 앞으로 나에게 아주 잘 해줘야 할 거야.


21호

21호, 상시대기.


녹티

쳇, 요즘 니가 없으니까 나 혼자 욕받이 노릇 다했다니까.


녹티

아 재미없네.


21호

하지만 그전에도 녹티만 욕 먹고 있었어.


녹티

하?!


베라

얻어맞으려고 기를 쓰고 노력하는 놈도 너 하나 뿐이잖아.


베라와 녹티가 여전히 팽팽히 맞서고 있는 가운데 21호는 둘 사이에 서서 느긋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 자신도 눈치채지 못한, 보통의 여자아이와 같은 미소였다.


전투 중 의식의 바다의 불안정 문제를 해결하고, 구조체의 오해를 풀고 21호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되면.....21호와의 짧은 협동은 끝나고 이제 베라가 챙겨줄 것이다.


마침내 마음을 놓고 일어나서 떠났다.



21호

...


인간이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돌아본 21호는 무언가 이상한 감정이 가슴속에서 피어올랐다.


서운하고 섭섭한 듯한 느낌이 들어 한순간 뒤쫓고 싶게 만들었다.


21호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