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다가오면 손꼽아 기다렸던 사람들의 준비가 시작된다.



모일, 그레이 레이븐 소대 휴게실.


분주한 임무가 일단락된 이후 월병을 만드는 데 필요한 소모품을 제외하면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당분간 이곳을 떠날 필요가 없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모여서 추석 카드를 쓰기 시작했다.



루시아

지휘관님, 니콜라 사령관님께 드리는 연하장을 작성했습니다.


루시아에게 카드를 건네받았고, 그 위에는 니콜라 사령관에게 그레이 레이븐 소대 전체의 이름으로 올리는 축하 인사가 적혀있었다.



아시모프에게 보내는 연하장도 작성했습니다. 읽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 줄여놨습니다.


리에게 카드를 건네받았고, 리의 그 말은 단지 한 두글자를 축약해서 쓰는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어휘를 반토막내버리는 바람에 그것의 전체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머리를 굴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머리를 써서 생각해 보면 확실히 알 수는 있다.



리브

지휘관님, 하산 의장님에게 보내는 연하장입니다….


연하장을 한 장 한 장 살펴본 뒤, 펼쳐진 편지를 마주하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


이상함을 눈치챈 듯 루시아는 자신의 허락을 받은 뒤 고개를 옆으로 내밀었다.


루시아

'...너희들이 하는 짓은 나를 비롯한 이들이 이미 알고 있어. 우리가 너희들의 일그러진 욕망을 바로잡고, 너희가 네 입으로 죄를 고백할 수 있도록, X월 X일, 각오해...'


편지지에는 특별한 점이 없지만, 그 위에 적힌 글자들은 뜻밖에도 다른 곳에서 적힌 글자를 오려내 네모난 조각으로 이어 붙여 만든 것이다.


수신자도 끝이 아니라 첫머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이것은 분명...




[1]

지휘관

(1)나나미의 작품이야. 

(2)카무이의 글씨체야. ← 선택

(3)내가 쓴거야.


카무이가 그런 짓을 할 리 없으니 적어도 그렇진 않을 겁니다...아마도, 어쩌면, 이건, 분명히...


리브

얼마전에 나나미가 글자를 오려내는 것에 대해 물어봤던걸로 기억하는데… 혹시 나나미가 만든 편지가 아닐까요?



[2]

지휘관

(1)나나미의 작품이야. 

(2)카무이의 글씨체야.

(3)내가 쓴 거야. ← 선택


루시아

하지만 지휘관님은 그럴 틈이 없었을 거예요. 저희가 휴식을 취할 즈음에 보고서 같은 것을 쓰느라 정신이 없었죠...


그래서 귀중한 휴일동안 이 편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려고 했는데...


리브

얼마전에 나나미가 글자를 오려내는 것에 대해 물어봤던걸로 기억하는데… 혹시 나나미가 만든 편지가 아닐까요?




나나미

딩동댕! 지휘관 정답! 어때, 나나미의 작품 괜찮았지?


단말기를 통해 나나미와 연락이 닿았는데...


지휘관

그러니까 나더러 이 편지를 함께 부치라는 소리야?


나나미

어, 그건 만우절 때 쓰려고 한 건데 웬일인지 지휘관한테 몰래 가버렸네.


나나미

그럼 지휘관이 나 대신 좀 맡아줘. 나나미가 물건을 다 산 후에 다시 가지고 갈게. 아, 사장님, 여기 혹시 단검같은거 있나요? 던져서 벽에다 편지를 박을 수 있는 그런...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는 와중에 통신이 끝났다.


만우절 소란 예고인 만큼 그때 가서 처리해도 문제없을 텐데….


어쨌든 바쁜 나날을 보내고 난 후에 주어진 이번 휴가는 그레이 레이븐 소대와 함께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다.


그러나 어렴풋이 머릿속에 어른거리는 스케줄이 자신에게 은밀히 경고하는 듯했다.


갑자기 울리는 초인종은 마치 현실로 자신을 모질게 잡아당기려는 종소리 같았다.


집행부대원

지휘관님, 수송기가 준비되었습니다.


지휘관

...



...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리브

지휘관님은 오늘도 회의 일정이 있나요?


내가 아는 바로는 적어도 원래는 없었어.


루시아

혹시 무슨 돌발상황이 일어난 거 아닐까….


지휘관이 여기에 있으라고 한 이상, 긴급사태는 아닐 거야. 아마도 휴일과 관련된 사소한 일이겠지.


리브

하지만 방금 집행부대원이 수송기가 준비되었다고 말하지 않았었나요?


아마도 회의 장소는 공중정원에 있지 않을 거야.


아무튼 우리는 일단 수중에 있는 준비 작업을 다 마쳤으니까 연하장 꾸러미를 정리하는 대로 바로 예술협회에 통지할게.


그리고 개인 단말기를 클릭하자마자...



아이라

아이라 왔어!


문이 '쓱' 열리자 소녀는 작동된 프로그램처럼 튀어나왔다.


아이라

예술협회를 호출했니?


리브

엄청 빠르네요.


아이라

우리가 약속했던 서류 찾으러 가는 길에 달려왔는데…어? 지휘관은?


루시아

지휘관님은 공중정원을 떠난 것 같아요.


아이라

어? 회의 장소는 분명...음...지휘관이 혼자 가려고 했나보네...알았어.


잠시 고개를 숙여 고민하다가 아이라는 눈앞의 리브와 루시아가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리도 고개를 돌려 귀에 있는 라디오 장치가 자신을 향하도록 했다.


그러자 그녀는 얼른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이라

헤헤헤. 그럼 축하카드 가져간다. 이만 실례할게.


아이라는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고 탁자 위의 종이더미를 집어들고 돌아서서 자리를 떴다.



루시아, 리브

...


지휘관은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는 것 같으니까, 우리는 계속 명절 준비를 마무리해야 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리는 여전히 휴대단말기를 들고 뭔가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리브

지휘관님이 여기에 놓았던 서류철 본 사람 있었나요?


리브는 탁자를 정리하면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루시아

앞서 지휘관님이 말씀하신 사문서? 지휘관님이 나갈때 같이 가지고 간 걸로 아는데...


이런, 혹시 아이라가 실수로 가져간 거 아니야?


리브

지휘관님이 설명한 바로는 아마 비교적 사적인 문서였던 것 같았어요...


루시아

아이라는 아직 멀리 가지 않았을 거야. 찾으러 곧 출발할게.



나나미

다다~ 다다다다~ 다다다다다~


나나미는 파워에 앉아 광장 근처에서 들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대기실로 돌아오는 길을 걸었다.


문득 낯익은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나나미

으악!!


파워는 한 손으로 떨어질 뻔한 나나미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지면을 눌러 브레이크를 걸었다.


나나미

무슨 일 있어?


루시아도 어쩔 수 없이 멈춰섰고, 굳게 서 있는 그녀의 눈은 여전히 도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루시아

미안해, 나나미. 지금은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어.


루시아

지휘관님이 우리에게 맡긴 사문서를 잃어버려서 지금 예술협회 쪽에 있을 것 같아 막 달려가려던 참이었어.


나나미

사문서? 아주 중요한 물건인가?


루시아

아마도...아무렇게나 열람할 수 없는 서류같은 거겠지.


나나미

나나미의 도움이 필요해?


루시아

리가 연락을 시도했지만 응답이 없었어. 일이 있어 바쁜 모양이야.


서둘러 대화를 나눈 루시아는 나나미를 향해 손사래를 치며 예술협회 본사 쪽으로 달려갔다.


루시아

아무튼 나는 지금 당장 그것을 되찾으러 가야 돼.


나나미

...



나나미

!!!


뭔가 납득한 듯이 나나미의 표정이 갑자기 진지해졌다.


나나미

지휘관은 남들이 볼 수 없는 중요한 비밀문서를 갖고 있다가 지금 빼앗긴 거구나.


나나미

어쩔 수 없는 상황인가 봐. 파워, 출격!



카무이

아싸! 드디어 이 게임의 100번째 확장팩을 손에 넣었어.


한바탕 바람이 불어서 하마터면 카무이가 들고 있던 자루를 날려버릴 뻔했다.


카무이

뭐야? 누가 공중정원에서 비행체를 가지고 노는 거지...나나미?



나나미

아, 카무이 아니야? 마침 잘 왔어.


나나미

지금 긴급 상황이라구.


카무이

긴급 상항? 무슨 일 있었어?


나나미

음...


여러 정보가 난잡하게 흐트러져 있어 나나미가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카무이의 눈에는...


카무이

입을 열기가 어려울 정도로 일이 꼬였구나….


나나미는 루시아가 제공한 정보를 자신의 이해에 따라 조금씩 모습을 보완했다.


나나미

마치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의 편지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간 것 같았어.


카무이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의 방에 몰래 잠입했던 걸까? 단서는 있어?


나나미

아, 몰래 잠입한 게 아니라...아마 루시아는 그걸 잃어버렸다고만 했었고 편지는 지금 예술협회의 손에 있다고 했을 거야.


카무이

그 편지는 얼마나 중요한 거지?


나나미

절대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되는 그런 거래.


카무이

이미 해봤겠지만 혹시 예술협회 쪽에 연락은 해봤대?


나나미

안 된대. 아마 우리랑 상대하지 않을 속셈인가봐.


카무이

신통치 않네. 왠지 사전에 준비된 일처럼 느껴지잖아.


카무이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그들이 뭔가 장난을 치려고 한 게 아닌 게 확실해?


나나미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그 편지를 찾고 있어.


파워는 뭔가 힌트를 주는 듯한 소리를 냈고, 카무이는 순간 그것이 수색 임무에서나 쓸 수 있는 사운드라는 것을 떠올렸다.


나나미

아무튼, 이런 상황이야. 가능하다면 도와줄 사람을 더 많이 찾고 싶어. 나와 파워는 일단 반대편으로 가볼게.


말이 끝나자 나나미는 지체없이 파워를 작동시켜 강한 추진력과 함께 날아갔다.


카무이는 멍하니 머릿속으로 정보를 짜맞추기 시작하더니, 끝나자마자 통신을 취했다...



크롬

카무이, 무슨 일이지?


카무이

큰일 났어 대장. 예술협회의 단원들이 그레이 레이븐 소대 지휘관의 편지를 빼앗았어. 그것은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보여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비밀 편지래.


카무이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다른 사람들을 동원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그들을 찾았지만, 그쪽에서는 모든 통신 요청을 거부하고 있고 어딘가에 숨어있다고 해...







바보 듀오가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