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카마

공간 스캔 완료… 지도대로라면 앞쪽이 마지막 전시관입니다.


아이라

마지막이구나...



그 대문이 열리는 순간, 쓸쓸하고 적막한 분위기가 밀려왔다.

바닥은 단단한 흰색 암반으로 변했고, 돔 위에는 별이 총총한 하늘, 푸른빛의 지구가 시야 한가운데 매달려 있었다.



아이라

이건 달이야...그런데...


별이 빛나는 하늘은 어떤 반사 패널에 의해 투영된 결과이지만, 분명 아직 완전히 디버깅되지 않았다.


아이라

이게 도대체...


???

제가 중도에 포기했다는 증거인 셈입니다.


자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르반테스

제가 이 전시관을 준비할 때, 마침 이중합 타워가 솟아올랐었습니다. 위기가 해소된 이후, 저의 일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질 것 같았죠.


가냘픈 기계체가 투영판을 합친 커튼 뒤에서 나와 그녀들 앞에 섰다.


하카마

세르반테스, 반갑습니다.


기계교회의 원로의 앞에서 하카마는 통상적인 예의에 따라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했다.


스푸너

...


세르반테스

만나서 영광입니다. 예술협회의 아이라.


아이라

드디어 뵙네요, '미역 더벅머리' 세르반테스 씨.


기계체와 구조체의 눈동자에 서로의 모습이 비쳤다.


세르반테스

하카마, 스푸너, 당신들이 여기에 온 목적은 알고 있습니다만, 그 전에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고개를 살짝 숙인 하카마는 스푸너를 데리고 두 사람의 교감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옆으로 한 발 물러섰다.


세르반테스

퍼니싱의 폭발 이후에도 예술협회의 규모는 축소되거나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인류 진영에서 무시할 수 없는 일부가 되었습니다.

원래는 예술협회의 사람들만 오길 바랐었는데, 앨런 씨는 이미 그의 이념을 실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라

당신이 앨런 회장님과 그런 과거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회장님도 콘스타레예를 재건한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우리를 보냈을 거예요.


세르반테스

그는 이미 저를 뒤로하고 멀리 떠났습니다. 만약 우리가 여전히 서로의 스승을 두고 힘겨루기를 한다면, 미켈레 선생은 저로 인해 부끄러움을 느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떤 식으로든 그 '답'을 얻고 싶습니다.

인류 문명의 잔상과 화려함을 목격하는 것도 좋고, 겉만 번지르르한 복제품을 만들어도 좋고…. 막무가내로 남에게 부탁해도 좋습니다.

저는 반드시 그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야만 선생을 대신하여 그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아이라

미켈레 바사리 씨...그가 추구했던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나요? 콘스타레예가 황금시대에 완성 되는 것을 보고 싶었던 건가요?


기계체는 잠시 침묵했고, 그의 손바닥은 코트의 특정 위치에 닿았고, 마침내 아래로 떨어졌다.


세르반테스

도시는 단지 '형식'일 뿐, 스승은 '등대'를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아이라

등대...?


세르반테스

세상의 안개를 밝혀주는 등대는 길을 헤매는 자들이 더 이상 방황하지 않게 하고, 나아가는 자가 방향을 찾을 수 있게 하며, 인류와 미래를 '다음 시대'로 이끕니다.

스승은 제게 '황금시대는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종착점이 아니며,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세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대규모 전쟁과 빈곤, 국토분쟁을 해소하고 경제적 번영으로 문명의 허상을 꾸며도 세계의 본질은 추악합니다.

전쟁이 없어도 충돌이 생기고, 가난이 없어도 계급이 생기고, 국토가 없어도 인류는 서로 다른 진영을 분열시켜 끝없는 대립과 투쟁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거짓된 황금의 바다에 가라앉아 보이지 않는 것에 얽매여 제 발길을 멈춥니다.

당신은 콘스타레예의 전말을 보셨으니, 소위 금자탑이라 불리는 이곳이 어떤 기초 위에 세워졌는지 아실 겁니다.


아이라

어떻게 보면 비리야가 당신에게 한 말과 같은 뜻이겠죠?


세르반테스

그 청년은 진실을 목격한 후 도피를 선택하였으나, 스승께서는 여전히 인류에 대한 믿음을 가지셨고, 사람들이 '예술'에서 미래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믿으셨습니다.

클라라 레싱이 들고 있는 깃발처럼, 장 폴 마라가 들고 있는 편지처럼ㅡㅡ비록 진흙 속에서 태어날 운명이었다 하더라도 콘스타레예는 그 등대가 될 것입니다.


아이라

하지만 미켈레 씨는 건설 초기에 정책결정권한을 넘겨야 했고, 당신의 기억으로는 그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었죠.

콘스타레예도 끝내 지어지지 않았고, 예술협회의 내부 기록에 따르면 퍼니싱 폭발 이후 설계도조차 대퇴각 때 분실되었어요.

결과적으로, 그는 '실패'하지 않았나요?


세르반테스

스승님은 실패한 적이 없었고, 실패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는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성공하리라 굳게 믿었었고, 그는 후계자를 남겼습니다ㅡㅡ그게 바로 저입니다. 그는 저에게 그의 의지를 이어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까지 말한 세르반테스는 서글픈 눈빛을 비쳤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마치 어떤 알리바이가 그를 꾸짖길 기다리듯이 손바닥을 움켜쥐었다.


세르반테스

그는 제가 그가 지켜온 그 '답'을 찾아서 그가 이루지 못한 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저는 '학생'으로서 그를 실망시켰습니다.

비리야라는 청년의 말이 옳았습니다. 기계체는 이성적 논리에 기초한 탄생의 산물이며, 후천적으로 어떤 영향을 받더라도 창조 개념으로서의 근간은 변하지 않습니다.

저는 계산할 수 있는 모든 가정을 소모했으나, 선생께서 말한 그 '미래'를 여전히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동포들이 자신이 빠진 논리적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고 자멸하는 것을 목격했으며, 그들은 모두 비슷한 문제를 생각하고 저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이 세상에, 미래는 존재할 수 없다.'


하카마

...


아이라

그래서 당신은 '인류'에게 시선을 돌린 건가요?


세르반테스

맞습니다. 당신들이 매번 우리의 결론을 뒤집었기 때문이죠.

저의 모든 시도와 모방은 실패로 끝났지만, 당신들은 모든 중요한 시점에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적조, 승격자, 이합생명체, 이중합 타워...어쩌면 제가 관측할 수 없는 곳에 더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아이라

왜 인류가 위기를 역전시킬 수 있었는지 알고 싶다면 왜 당사자에게 직접 묻지 않으려는 걸까요? 부끄럽지만 예술협회는 이런 일에 큰 역할을 하지 못했어요.


세르반테스

왜냐하면 당신들은 저와 같은 관측자이자 증인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필요로 하는 것은 구체적인 사례가 아니라 총결산될 수 있는 보편적인 원칙입니다.

인류가 과거의 예술을 연구하여 옛날의 세계를 추론한 것처럼, 예술가는 시대의 렌즈이며, 예술협회는 인간이 얻은 '결과'에 대해 가장 명확한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기계체가 나열한 '인'은 그러한 '과'를 도출할 수 없었고, 기적은 여러 번 촉발된 뒤 '패러다임'이라 불릴 수 있었습니다.


아이라

패러다임...이 세상에 시나리오나 소설처럼 해체 가능한 구조와 프로세스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나요?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만 터득하면 작품의 창작자처럼 모든 것을 원하는 결말로 이끌 수 있을까요?


세르반테스

시인은 결말을 생각해 낸 뒤에야 시를 썼고, 화가는 붓을 들기 전에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알고 있지요.

인간과 기계와는 반대로 기계체는 기존의 단서를 통해 결과를 추론하고,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명확히 한 후에야 움직입니다.

지구 탈환의 목적이 달성되지 않는다면 노력은 무의미하고, 기계의 예상을 기준으로 한다면 전 세계가 구룡처럼 만세명 속에 숨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을 다른 길로 가게 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여러분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패러다임이 되어버린 이상, 기계체에게 부족한 것은 인간이 가진 '원인'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원하는 대답입니다. 만약 인간이 사경을 헤쳐나가는 이면의 원리를 알고 있다면, 이 모든 것을 밀어낼 수 있는 만능 방정식을 가지고 있다면, 비슷한 결과가 복제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숫자 한 줄처럼 간단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방향과 목표만 확실히 정해지면 언젠가 저는 새로운 콘스타레예를 짓고 선생께서 원하시던 그 세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태연한 척하는 기계체도 흥분을 억누르지 못하고 모든 생각을 고백했고, 다음 순간 그의 오랜 염원이 이루어질 듯 눈앞의 아이라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이라는 묵묵히 눈을 감고 손바닥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복잡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라

...의식의 바다에서 당신이 저에게 한 질문 기억나시나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이야기의 창작자는 실제로 이미 답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는 인간이 천년 후 하늘을 나는 강철 날개를 발명할 줄 몰랐었고, 나아가 인간의 눈이 태양 뒤에 있는 풍경까지 목격할 줄 몰랐겠죠.

그러나 이카루스는 자신이 불타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태양을 향해 비상해야 했답니다.


세르반테스

...


아이라

미안하지만 저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없어요.

제가 보기에 이 세상 자체는 이야기도, 그림도 아니고, 최고의 서사도, 최고의 구성도 없고, 성공으로 가는 확실한 방법도 없어요.

최소한 제가 인정한 그 '주인공'은 '이길 수 있다'고 해서 싸우는 것은 결코 아니었어요.



세르반테스

불가능해, 성공하지 못할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것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어.

인간은 실제로 기계체의 예측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고, 나는 수십 년 동안 이 관점을 논증해 왔으며, 이 인식은 결코 틀리지 않아.

나는 지역마다 엄중한 장벽을 쳐 놓았지만, 당신들은 자신의 능력 범위를 벗어난 적들을 계속해서 물리쳤어.

당신은 계획 밖의 저항을 뚫고 이 자리에 왔어. 당신이 지금 내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은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


아이라

우리 가운데는 결과론적인 '똑똑한 사람'이 존재하지만, 당신이 말하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은 후일을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바보'들이 대부분이에요.

그 '바보'들이 가지고 있는 결의와 의지, 힘 중 어느 것도 제가 대표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저는 당신에게 저의 답을 알려줄 수 없는 거예요.

제가 고집하는 이상은 제 눈에도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저는 여전히 그렇게 선택할 거예요.

성공할 수 없다고 하는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옆에서 보기에 확실히 무의미하죠.

하지만 그 선택이 결국 정해진 실패로 이어지더라도 저는 거침없이 걸어갈 거예요.


세르반테스

이해할 수 없어. 실패는 과정에 대한 모든 부정을 의미해.

가장 광적인 도박꾼도 마지막 집을 걸기 전에 승률을 확인하는데, 뒤집힐 확률이 0이라면 처음부터 테이블에 오를 수 없어.


기계체는 '실패'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는 지금도 자신이 처음 믿었던 것을 믿고 있다.

그는 자신의 스승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고, 그 소망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신을 이용했다.

그가 일단 실패하면, 선생이 일생을 바쳐 분투한 사업이 모두 헛수고라는 것이다.

그의 죽음은 가치가 없어질 것이고, 그를 배신한 사기꾼, 탐욕스럽고 투기를 부리는 소인들은 끝까지 비웃을 것이다.


아이라

…이것이 바로 미켈레 씨가 이 풍차를 남긴 의미 아닐까요?

이 도시의 돈키호테는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한 것이 아니라 풍차임을 알면서도 돌격했어요.

자신이 풍차를 이길 수도 없고, 진짜 거인을 만날 수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사로서의 자태로 기억되고 싶어했죠.


세르반테스

스승님이...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그는 줄곧 그렇게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고, 분명히 끝까지 자신이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어.

또한 어떻게 정해진 실패에 자신의 인생을 걸 수 있는 거지?


아이라

...당신의 마음을 못 이해하는 게 아니에요.

저는 한때 아주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녀는 예술의 길에 있어 저의 '스승'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그녀는 자신의 재능으로 원하는 어떠한 성과도 얻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자신이 얻은 '성공'을 포기하고, 그 대신 실패를 맛보는 기회로 바꾸었죠.

저도 처음에는 그녀가 왜 그랬는지 몰랐고, 저 또한 제가 정말 가고 싶었던 그 길로 들어서야 비로소 깨달았답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모든 것을 얻었어요.

다시 한 번 되돌릴 기회를 주더라도, 그녀...세레나는 똑같은 결정을 내릴 거예요.


세르반테스

...

난...동의할 수 없어.

만약 정말 당신 말대로라면, 그는 왜 또 한 명의 학생을 남겨 두어야 했던 거지?

그는 분명 그 답이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기계체인 내가 찾도록 했을 거야.


아이라

음...당신 말이 맞을 수도 있어요.


세르반테스

그게 도대체...무슨 뜻이지?


아이라

저는 제 말이 무조건 옳다고 한 적 없어요. 단지 제 느낌을 당신에게 전달했을 뿐이랍니다.

미켈레 씨가 이미 돌아가셔서 그의 진정한 생각을 알 방법은 없어요.

단지 그가 일생을 바쳐 분투할 수 있는 비전을 찾았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죠.

그리고 그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만이, 자신이 한 일이 사실은 이 세상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될 거예요.

'자아' 그리고 '인생'이라는 발자국 말이에요.

모든 사람은 일생에 단 한번의 기회만 있어요. 그렇다면 물론 아무리 힘들고 길이 아무리 굴곡져도 계속 걸어가야 해요!


세르반테스

...



미켈레

우리는 세상을 본다고 여기지만, 사실 모두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



미켈레

자네는 육체에 시달리지 않고, 수명에 얽매이지 않으며, 자네의 영혼은 이 세상을 자유롭게 거닐 수 있어.

자네는 나보다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네.

모든 사람들은 내가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모든 사람들은 내 노력이 헛수고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

내가 널 찾았으니까.



세르반테스

나는...


쾅!


먼 곳에서 둔탁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스푸너

무슨 일이지!?


가장 먼저 경계 태세에 들어간 스푸너는 세르반테스를 노려보았고 후자의 표정에는 별다른 이변이 없었다.


세르반테스

...시작됐나.


아이라

시카 일행? 그녀들이 쿠로노의 부대와 마주친 거야!?


하카마

세르반테스, 이것도 당신 계획의 일부인가요?


세르반테스

...아니요. 쿠로노의 구조체 부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하든 저와는 상관없습니다. 저는 그들을 이용해 이 아가씨에게 혼란을 주어 더 설득력 있는 데이터를 얻고자 했을 따름입니다.

처음엔 그들이 찾고자 했던 소위 실험체라는 것을 회수하고 싶었던 이유는…. 단순히 인간의 창조물에 관심을 갖는 것 외에 어떤 '가능성'을 검증하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이런 모습으로 여기에 돌아왔을 때, 저조차도 뭔가 좀 불가사의하다고 느꼈습니다.


아이라

다시...여기로?


???

경보ㅡㅡ무단 침입자를 감지, 제거 계획을 실행합니다.


전시관 내 프로젝션 패널이 불규칙하게 작동하기 시작했고, 사이렌 소리가 아이라 주변을 맴돌았다.


아이라

한 번이면 괜찮아, 그런데 두 번도 모자라 이런 케케묵은 갈등 전개를 세 번이나 우려먹는다고!?

시청자들이 질리지 않을까 하는 건 둘째치고, 나까지 좀 짜증날 지경이라고?


하카마

세르반테스, 이건 뭐죠?


세르반테스

제가 아니라 외부에서 침입한 것입니다.


아이라

당신의 예술에 관한 조예는 평론하지 않겠지만, 확실한 건 당신은 틀림없이 네트워크 엔지니어로서는 엉망진창이에요!


세르반테스

그건 '마술사'의 전문 분야이고, 저는 단지 피상적인 부분만 배워온지라...

그리고 그 '실험체'를 결코 우습게 여기지 마세요.

그것은 연산력이 낳은 괴물인데다 처음에 남겨놓은 '백도어'가 존재해 도시 전체 관리 시스템을 장악하더라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아이라

...!?

뭐가 되었든 하카마, 스푸너, 다시 한 번 도와줄래?


스푸너

아무래도 다른 선택지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하카마

요청 확인, 합동 전투 모드 가동 개시!



전투 개시




콘스타레예

??? 전시관


아이라

어서 시카한테 가야되는데... 하카마, 스푸너, 부탁할게!


하카마

전투 프로세스를 최적화하여 최단 시간 내에 돌파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푸너

어쩔 수 없군...! 이 난장판을 깨끗이 청소합시다!




아이라

이러다간 끝이 없겠네...!


하카마

음...이곳에는 단지 그것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이라

이건...!?


하카마

어떤 괴물의 복제체인가….

고위험 유닛 감지, 경각심을 가져주세요...!


ㅁㄷㅊㅇ




하카마

이렇게 하면 길이 열릴 것입니다.

...저희들은 여기서 물러가겠습니다, 스푸너와 저는 처리해야 할 다른 일이 있습니다.


아이라

...알았어. 너희들도 몸조심해!



전투 종료




15분 전.

마지막 실내 산책로를 통해 시카 일행은 거대한 원형 방으로 향했다.

작은 궁궐처럼 생긴 천장에 4궁 별자리의 운행 궤적이 새겨져 있었다. 별마다 푸르스름한 형광빛이 희미하게 비쳐 내부에 한 줄기 빛을 드리웠다.


시카

여기가 마지막 홀….


레나

우리는 이미 이 예술관의 83%를 조사했고, 나머지는 중앙의 그 풍차와 연결된 부분이야.

그리고 사령부가 찾아달라고 의뢰한 실험체는….


레나는 방 한가운데를 내다보았다. 어두운 홀 중앙에는 각진 기둥 모양의 기단이 세워져 있었고, 기단 위에는 유리로 된 죄수 감옥이 있었다.

돔에서 나오는 희미한 별빛에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의 모습이 감옥에 같혀 있었다. 그러나 광원이 너무 어두워서 사람의 구체적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레나

...

쳇...



???

우리...찾았다...



까마득한 메아리는 마치 뇌를 꿰뚫을 기세로 레나의 의식의 바다에 잔물결을 일으키는 차가운 바늘 같았다.

그녀는 이 도시에 왔을 때부터 이 이상한 소리를 간헐적으로 들을 수 있었지만, 그 느낌을 소대원들에게 제대로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트로이는 믿을 수 없는 인물이었고, 시카는 지휘관으로서의 경력이 아직 얕아 맡길 수 없었다.



리더인 아이라가 가장 믿음직스러워 보이지만 종잡을 수 없는 인상이었다.



네 사람은 미묘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임무를 수행하였고 세르반테스만 찾으면 이 이상한 근원을 알아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백로와 그레이 레이븐의 교신이 들어오면서 사태가 복잡해지는 듯했다.

레나는 쿠로노의 실험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어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녀가 홍앵소대에 합류하게 된 것도 니콜라가 쿠로노의 집행부대 침투에 제동을 걸기 위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실제로 소위 실험체를 찾았을 때, 이러한 이성적인 고려는 더 본능적인 격동으로 조금씩 대체되었다.


시카

쿠로노의 사람들이 도착하기 전에 회수하고 안전한 장소로 가서 선배님들의 지원을 기다릴게요.


레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손에 든 활을 움켜쥐고 화살 주머니에서 화살 하나를 꺼내 늘어뜨린 활시위에 가볍게 걸치고 한 걸음 한 걸음 중앙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그녀가 실험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거리에 가까워지자 멀리서 획일적인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트로이

...


트로이의 시선이 발소리의 근원인 홀의 다른 입구에 다다르자, 잘 갖춰진 구조체 부대들이 무기를 들고 진형을 조절하기도 전에 홀 안으로 들이닥쳤다.



펜타클1

목표를 발견했다.


구조체 부대는 재빨리 일자로 늘어섰고 시카 일행의 퇴로를 봉쇄했다.


펜타클1

확인, 구조체 둘, 인간 하나. 신분을 밝혀라, 반복한다, 신분을 밝혀라.


트로이

동작이 깔끔하군. 과연 '거물'이 조련해 낸 부대다.


레나

너의 옛 동료야? 우릴 하나로 모으기 위해 대내외적으로 그들과 협력할 속셈이었어?


트로이

여기까지 오면서 너의 이런 얘기 때문에 사레가 들린 게 벌써 14번째다. 내가 정말 '목마'노릇을 할 속셈이었다면, 아이라와 헤어진 시점에서 너와 지휘관을 기절시키고 그들의 눈앞까지 데려갔을 거다.


레나

흥...



시카

저희는 공중정원 집행부대인 홍앵소대, 저는 지휘관 시카 르블랑이며, 이 두 구조체는 제 대원입니다. 저희는 공중정원 지휘부의 권한에 따라 이곳에서 임무를 집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구역에서 다른 구조체가 활동할 것이라는 어떠한 통지나 명령도 없었으니 당신의 신분을 밝혀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당신들의 신변의 자유를 제한하고 임무가 끝난 뒤 검찰과 정화부대에 강제감찰을 청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펜타클1

저희는 더 높은 수준의 집행 권한을 가지고 있으므로 귀하에게 신분을 보고할 필요가 없습니다. 즉시 이 지역에서 철수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필요한 경우 무장 사용 제한을 해제할 것입니다.


트로이

다들 출입구를 막고 있는데 철수하라고 하다니, 연기라도 제대로 해야하지 않나?


레나

그들의 목표는 실험체…. 여기서 물러설 수 없어.


트로이

상대는 13명으로 전력에서 결정적 차이가 있다. 게다가 막상 싸우면 지휘관의 목숨은 아랑곳하지 않을 거다.


레나

쳇...그레이 레이븐 소대...너무 늦잖아...


시카

...당신들의 집행 증명서를 보여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어떠한 양보도 할 수 없습니다.


그 중에 욱한 듯한 구조체가 갑자기 시카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펜타클4

사령부의 버려진 자식들이, 정말 누가 너희 소대의 생사따위 신경 쓸 줄 알았나!?



레나

'자식'...?

윽...


이 단어에 의해 어느 팽팽한 심금을 건드린 듯, 그 잡음이 다시 그녀의 의식 속에 울려 퍼졌다.



???

아무도 너희가 성공하든 말든 신경 안 써, 너희들은 우리가 다 쓰고 버린 자식일 뿐이야.



???

후후...

우리의 결말은...이래야만 하는 걸까...?

아...



???

어서ㅡㅡ! 내 손을 잡아!



???

돌아와...우리의 곁으로...

우리와...함께...



레나

...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 마치 보이지 않는 실에 이끌려 손에 있는 활시위가 가득 찼고, 화살깃은 그 포효하는 기억과 함께 손바닥을 떠나갔다.


펜타클4

너ㅡㅡ!?


화살이 쿠로노 구조체의 머리 외갑을 관통했고, 검은 순환액이 그의 목소리에 따라 쓰러진 몸이 땅바닥에 퍼졌다.


시카

레나!


레나의 갑작스러운 행동은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손에 든 활을 늘어뜨리고, 크게 뜬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듯,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녀의 격동하는 심경을 드러냈다.


레나

하아...하아...


펜타클1

펜타클4가 쓰러졌다. 전원, 구조체에게 화력 집중, 탄창을 모조리 비워라!


가장 먼저 상황파악을 한 것은 구조체 부대의 대장이었다. 레나의 행위는 시카와 굳이 시간끌기 외교 게임을 하지 않아도 될 충분한 발포 사유를 주었다.

제식총기가 맹렬한 불길을 내뿜자, 레나는 자신이 무언가에 의해 쓰러지는 것을 느꼈고, 총알의 폭음이 그녀의 귓전을 스쳐 지나가면서 따뜻한 액체가 그녀의 얼굴의 생체모방 피부에 떨어졌다.


시카

크윽....


시카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그녀의 손은 레나의 어깨를 누르고 그녀를 감쌌다.


트로이

진짜...!


트로이는 톤파를 가슴을 감싸면서 쿠로노의 구조체를 향해 돌격했다. 파일드라이버를 레나를 향해 발포하고 있는 구조체를 향해 날려 맞은편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려 했다.


시카

레나...여길 떠나 【지휘관 이름】선배에게 이곳의 상황을 보고하세요...윽ㅡㅡ


피가 시카의 눈가로 흘러내려 따끔한 나머지 눈을 뜰 수 없었다.


시카

당신의 발이 가장 빨라요. 저와 트로이 씨가 길을 열어줄 테니까...빨리ㅡㅡ


그녀는 억지로 눈을 뜨고 트로이를 향해 맹공을 퍼붓고 있는 구조체를 향해 몸을 돌려 사격을 시도했지만 피가 스며들어 시야를 대부분 잃어버려 제대로 조준할 수 없었다.


레나

나...너...


의식의 바다의 소음이 심해졌고 그녀의 마음 속에서 사나운 짐승이 포효했다.


레나

크으으ㅡㅡ


마치 떼지어 모인 꿀벌이 머리 속에서 팔자춤을 선회하는 것 같았다.

싸늘한 신경의 따끔거림과 점점 뜨거워지는 몸이 충돌에 무너지는 듯했다.

그녀는 산산조각 난 만화경 속으로 떨어졌고, 뒤엉킨 기억은 겹겹이 벗겨져나갔다.



???

승격네트워크...이것이 바로 내가 추구했던 거야...아쉽네, 지휘관. 이 쓸모없는 폐물과 함께 여기서 죽어.



???

레나...어서ㅡㅡ


레나

나는...도대체...



???

우리의...너의 마음 속의 한을 풀어내는 거다...

우리...하나가 되어...

우리는...네가 원하는 '정의'를 실현시킨다!



레나

...


레나는 몸을 돌려 시카의 허리를 껴안고 쏟아지는 총알을 피하면서 바닥을 몇 바퀴 굴렀다.


레나

역시...난 너와 마음이 잘 안맞아.


눈을 감은 채 이 말을 마친 그녀는 활을 쏘며 숨을 죽이고 조준했다.


트로이

이봐! 뭘 할 생각이지!?


레나가 가리키는 것은 쿠로노의 구조체가 아니라 홀 중앙에 있는 유리감옥이었다.

금속 화살이 유리를 깨뜨린 뒤 돔으로 쏘아 올리자 인공별빛이 소멸되고 홀은 캄캄해졌다.

그리고 눈부신 보라색 빛이 어둠을 찢었다.



???

...


그것은 기이한 모양의 기사상이었고, 마치 세상의 악을 처단하기 위해 신이 보낸 사자처럼 홀 중앙에 군림했다.

은회색의 갑옷이 신비한 자줏빛 광채를 적시고 있다. 약간의 숨소리는 마스크를 통과한 뒤 증기를 내뿜는 듯한 쉿소리로 바뀌었다.

봉인된 기사는 우리에서 벗어나 침묵으로 그 자리에 있는 모든 것을 들여다보았다.


펜타클1

이, 이건...!?


구조체들은 총격을 멈췄다. 그들은 소중한 실험체를 해치지 말라고 사전에 안내받았으나 이때의 반응은 기사상이 뿜어내는 강한 압박감에서 비롯됐다.



트로이

왜? 너희들은 무엇을 회수해야 하는지 듣지 않았었나?


레나

...


이 기괴한 정적을 깨뜨린 것은 레나의 발자국 소리였다.

그녀는 천천히 그 기사상 앞으로 가서 그것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트로이

칫...정말 곤란하게 만드는군ㅡㅡ!


아직도 우물쭈물하는 구조체 대장보다 트로이가 먼저 이 일련의 사변에 반응했다.

그녀는 톤파를 들고 기사상으로 달려가 레나가 그것과 더 깊은 연결을 맺는 것을 막으려 했다.

해머의 신관에 불을 붙이자, 파일드라이버의 철침이 벌뗴처럼 튀어나왔지만 기사는 한 손으로 쉽게 잡혔다.

기사상이 트로이를 앞에 끌어당겼고, 투구의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트로이의 눈동자에 비쳤다.


???

...


트로이

넌...?


???

▆▄▇▆▃▄▁▆█——!!!


장송을 앞둔 사람에게 바치는 애곡처럼, 해석할 수 없는 날카로운 포효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