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니싱이 업뎃을 멈췄다.
그것도 결말을 인류의 처참한 패배로 만들어놓고.

"...시발?"

나, 퍼붕이.
인생 업적 중 하나가 솔론의 돈통인 난, 충격적인 결말에 말을 잃었다.

그래, 투표한 최애캐에 따라 각자 마지막 스토리가 달라지는 건 좋아.
마지막에 죽기 전 고백으로 연인이된 것까지도 좋아.
근데, 왜 결말이야? 왜 업데이트 중지야?

갑자기 스토리 3챕터를 업데이트 한다고 할 때 눈치를 챘어야 했나?
아니면 힙스터 기질을 버리고 드디어 비키니랑 바니걸 스킨을 낼 때 눈치를 챘어야 했나?

"아니 시발 수미상관도 아니고 잘하다가 왜?!"

돈이 부족하다기에는 매출도 항상 3위권 안이었고, 협동 컨텐츠 대기 시간도 10초 컷인걸 보면 유저 수도 충분했다.

"내가 이상한거야?"

혹시 내가 스토리도 이해 못하는 겜안분인가 무서워 서둘러 챈에 들어가자, 챈은 이미 개판인 상태였다.

[응, 섭종해봐~ 함묵콘 버리면 그만이야~]

자신이 버려진 흑우라는 사실에 미친 사람부터,

[마지막인데 임신 걱정없는 무책임 로보트 아가방 키스 왜 없음?]

로봇박이는 물론,

[아 시발 최애 캐 리 투표하니까 리 나오는데?ㅋㅋㅋ]

게이는 당연했고,

[소피아는 페도여서 고백 장면 없음?]

농까지.
거기에 유동 분탕까지 섞여 혼돈, 그 자체였다.

난 아찔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글을 적었다.

*

제목: 스토리 이게 맞냐?
작성자: 아우양갈래손잡이

니들은 스토리 이게 맞다고 생각하냐? 최소한 엔딩은 좋게 나와야지. 뭔 다 죽는 엔딩이야 ㅅㅂ

ㄴ 니 닉은 맞고?
   ㄴ 아, 꼴리는데 어쩌라고.

ㄴ ㅇㅇ 맞음. 너가 이상함.
   ㄴ 나 진짜 진지함.

ㄴ 애초에 퍼니싱 스토리 자체가 다 암울하잖음
    ㄴ 그래도 결말은 좋아야지.
        ㄴ 그건 ㅇㅈ

ㄴ 솔직히 이기는게 무리긴 함.
    ㄴ 내 분쟁 4별 실력이면 가능함.
        ㄴ 지랄 ㄴㄴ
        ㄴ 인증 없음 뭐다?
        ㄴ 진짜 구할 수 있어?

*

"뭐야, 저건..."

챈질하며 댓글을 달던 중, 마지막 댓글이 보였다.
혼자서 담담해 보이는 댓글은 마치 게임에 빙의하는 클리셰처럼 보여, 난 황급하게 창을 닫았다.

''씨발...''

솔직히 나이 한두살도 아니고 빙의 같은 건 있을 리가 없다는 건 알았지만, 소름 끼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띠링! 띠링!

ㄴ 분탕 놈 튀었네ㅋㅋㅋ
    ㄴ ㅋㅋㅋㅋ

ㄴ 백퍼 월정액도 안 지른 놈임ㅋㅋㅋㅋ
    ㄴ ㄹㅇㅋㅋ

ㄴ 환통 종급 구경도 못 해서 그런 듯
    ㄴ 이거닼ㅋㅋ
    ㄴ 맞네ㅋㅋㅋㅋ

하지만 그런 내 심정은 상관 없다는 듯이 댓글은 계속 달렸고, 슬쩍만 봐도 챈에선 이미 날 매퍼노 분탕으로 확정한 채 돌려까고 있었다.

''아씨!''

자고로 한국인이라면 다른 건 다 참아도 겜 관련된 말을 참으면, 나가 뒤져야 하는 법.

난 결국 못 참고 4별과 월정액 인증과 함께 다시 챈을 키고 말았다.

그렇게 하나하나 댓을 달아 반박하기 1시간, 내 눈물겨운 노력 덕분인지 매퍼노 이미지가 완전히 벗겨지던 중,

띠링!

''응?''

이상한 댓글이 도착했다.

ㄴ 그럼 구해줘. 부탁이야.

''어? 어?!''

이상함에 다급하게 들어간 글에는 어느샌가 그 문제의 댓에 내 댓글이 달려있었다.

ㄴ 진짜 구할 수 있어?
   ㄴ ㅇㅇ 너는 못해도 난 쌉가능임
      ㄴ 그럼 구해줘. 부탁이야.

''뭐? 난 적은 적도... 아..''

순간 머릿속에 화가나서 제대로 읽지도 않고 일단 반박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난 허겁지겁 실수라고 달았지만..

ㄴ 늦었어.

''자, 잠깐만..!!''

내 애처로운 절규에도 불구하고 댓글을 단 사람의 닉이 빛나기 시작했다.

'指揮官'

발음은 Shiki-kan.
한국어로 지휘관.

"이런 씹-!''

***

예전부터 난 게임에 과몰입을 잘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캐릭터들이 죽는게 싫어 일명 원트클과 노데스에 목을 매는 타입이었다.

그런 내게 유일하게 오점을 남긴 보스가 있었다.
바로 맨 처음 시작했을 때 나오는 보스, 알파였다.

아직 뭣도 모르는 뉴비인데 지 혼자서 백스텝에 검기나 후룰룰루 날리던 모습과 사랑스런 내 캐릭터에게 칼을 박으며 티배깅하는 모습을 난 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악몽의 시작은 루시아의 칼이 허공으로 날아가며 시작됐다.

-카앙!!

그래, 지금 내 눈앞에 모습처럼.

''루시아...?''
''지휘관 님! 도망치세요!!''

알파는 손쉽게 공중에 있는 칼을 낚아채고는 루시아를 벽으로 밀쳤다.

쿵-!

''윽!!''
''루시아윽! 콜록, 콜록!''

충격에 밀려난 먼지가 마스크를 뚫고 호흡을 막았다.
숨막히는 느낌과 함께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졌다.

'뭔 먼지가 이래!'

이곳이 현실이라는 걸 말하는 듯, 먼지는 지독하게 내 주변을 맴돌았다.

'진짜야?! 저게 진짜로 살아 숨쉬는 루시아라고?'

난 눈물이 미친듯이 흐르는 눈을 힘겹게 뜨고 먼지 너머를 보았다.
루시아로 보이는 그림자는 비틀거리며 일어나려했지만, 다리 쪽에 문제가 있는지 자꾸만 주저앉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그림자 하나가 나타나 양손에 칼을 쥔 채 그녀에게 다가갔다.

'알파..!'

까먹었다.
빙의했다는 사실에 빠져, 이 다음 벌어질 일을 잊고 있었다.

다급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쏜 총알이 알파를 향해 날아갔다.

-탕!

''인간, 역시 이런 습관은... 못 고치는 군.''

갑작스런 사격에도 놀란 기색조차 없이 막은 그녀였지만, 그 정도로도 내 목적을 달성하기엔 충분했다.

''지금이야!''
''지휘관 님!''
''--!''

루시아는 알파의 시선이 잠시 내게 쏠린 틈을 타, 알파를 밀치고 내게 비틀거리며 달려왔다.

''괜찮아?''
''네, 지휘관 님 덕분에...''

알파는 잠시 루시아를 바라보다 내게 시선을 돌려 천천히 다가왔다.

''지휘관이라... 아직 그런 걸 믿고 있구나.''
''..느낌이 위험해요..''
''그래, 차라리 잘 됐어. 여기서 비참한 현실을 끝내자.''

'하하, ㅈ됐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솔직히 아까 전에 사격도 어떻게 쐈는지 감도 안 잡히는 마당에 이제는 총알도 없었다.
그래도 공략을 적던 할배의 자존심이 있지, 듀토리얼에서 또다시 질 수는 없었다.

''리, 도와줘.''
''네.''

그렇게 마음을 다잡자,

띠링!

알림음과 함께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등장했다.

[인류 전선에 합류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지휘관님. 부디 수석 지휘관이 되어 인류의 승리를 이끌어 주세요! 우선 선임 수석 지휘관님의 능력을 드리겠습니다. 그럼 무운을!]

[성공시 소원 1개를 빌 수 있습니다.]
[실패시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이 섭종합니다.]

[선 지급으로 수석의 마음가짐과 실력이 지급됩니다.]
[플레이어가 상시 침착해집니다, 각종 전략과 전투술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선 지급으로 '의식의 바다'와 연결이 지급됩니다.]
[검토 결과, 플레이어에게 가장 익숙한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 방식을 불러옵니다.]

''이게 뭔...''

뜬금없는 등장이었지만, 마지막 줄을 읽자 내 입가에 미소가 떴다.

[구조체: 리 이화와 연결하시겠습니까?]

''당연하지.''

이래선 질 수가 없잖아.

[구조체: 리 이화와 연결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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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해도 걍 봐줘. 진짜 할 게 없어서 심심해서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