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썼던 뱀파이어AU 2편

캐붕 좀 심함

생각해보니 중수 아닌듯




다시 눈을 떴을 때 수영은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정신을 잃고 있던 건지 가슴의 통증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붕대를 풀어보니 가슴 중앙엔 치료한 흔적과 희미한 흉터만이 남았을 뿐, 몸의 컨디션 또한 나쁘지 않았다.

머리를 털어내고 정리하며 방의 구조를 둘러 보았다.

지극히도 현대적인 흑백의 방이었다.

흰 벽면과 검은 책상.

검은 의자와 흰 책장.

희고 검은 서랍장과 검은 노트북.

자신이 누워있던 침대까지도 희고 검었다.

좋게 말하자면 깔끔했고, 나쁘게 말하자면 지나치게 삭막했다.

마치 색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 흑백의 세계에 들어온 것 같았다.

창밖마저 짙은 어둠만이 보였다.

아무래도 수영을 처음 만난 날처럼 한밤중인 것 같았다.

자신의 옷가지와 무기는 침대 옆에 깨끗하게 개어져 있었다.

상의와 코트를 걸치고 허리춤에 검을 매자 하얀 문이 열리며 수영이 들어왔다.


"뭐야, 일어났네?"


양 손에 하나씩 머그잔 두개를 들고 들어온 수영은 중혁과 눈이 마주치자 살짝 웃어보였다.

살짝 달콤한 초콜렛 향기가 풍겼다.


"너도 먹을래? 코코아."


수영이 제 몫의 코코아를 홀짝이며 반대편의 컵을 내밀었다.

잠깐 깨었을 때의 기억과는 달리 닫히는 눈꺼풀 사이로 보였던 눈동자는 방 안의 것들과 같이 검었다.

중혁은 대답 대신 검을 빼어 들었다.


"넌, 누구냐."


"흐응, 나 그래도 생명의 은인 아니야?"


수영은 검을 코앞에 두고도 전혀 긴장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 태연함이 중혁의 의심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었다.


"나 팔 아픈데."


오히려 내민 팔을 거두지 않고 장난스레 인상을 찡그리는 수영의 모습에 중혁의 인상이 구겨졌다.


"어쩔 수 없군."


변함없는 수영의 모습에 중혁은 눈을 감았다.


"응?"


그리고, 중혁의 검이 움직였다.

쐐액!

바람을 찢는 소리와 함께 휘둘러진 검은 곧바로 제 자리를 찾아 검집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 피잇, 하는 소리와 함께 수영의 한 쪽 눈 아래, 눈물점 아래쪽에 작은 실선이 생기고 그 위로 붉은 핏방울이 맺혔다.


"이게 뭐하는 짓일까?"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도 수영은 자세 하나 바꾸지 않았다.

중혁을 향해 내보이던 미소 또한 그대로였다.

단지 조금 올라간 눈썹으로 미약하게나마 그녀의 기분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분노로 보이지는 않았다.


"흥,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는 것은 그 쪽 아니었나?"


중혁은 그렇게 대꾸하며 수영의 손에서 컵을 낚아챘다.

코코아는 조금 달았다.


"...억측이었나."


"응? 뭐가?"


눈 앞에서 멋대로 칼을 휘둘렀음에도 수영은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중혁은 알 수 있었다.

저 미소는 단순히 무조건적인 호의에서 나오는 미소가 아니다.

마치 재미난 장난감을 발견한 듯 한, 아이같은 미소.

지금 이 상황에 상당한 여유를 갖고 있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표정이었다. 

중혁은 코코아를 서랍장 위에 내려놓으며 팔짱을 낀 채 잠시 고민했다.

검을 휘둘렀을 때 알 수 있었다.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지만 최적은 아니었다.

장소 또한 자신보다 상대가 훨씬 잘 아는 장소였고, 자신은 상대의 정체조차 모른다.

짧은 고민을 끝낸 중혁이 입을 열었다.


"...흡혈귀는, 피를 흘리지 않는다."


중혁은 수영의 뺨에 맺힌 붉은 핏방울을 바라보며 말했다.

조금씩 제 부피를 늘려가던 핏방울은 이윽고 수영의 하얀 뺨을 따라 흘러내렸다.

그 광경이 마치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모두 붉은 눈을 가졌고, 태양빛을 꺼려 해가 진 이후에 움직인다. 뇌를 파괴하기 전까진 죽지 않으며, 인간의 피를 제외한 그 무엇도 먹지 못한다."


지금 자신이 왜 수영에게 이런 정보들을 말하고 있는 건지 중혁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어쩌면 이것도 자신의 감일까. 알 수는 없었지만 말을 멈추지는 않았다.


"흡혈귀에게 당한 피해자들 중 일부는, 그들에게 감염되어 또다른 인간의 피만을 갈구하지. 이른바 하급이라는 녀석들. 그들은, 결코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다."


누군가 지인이 흡혈귀에게 당하기라도 한 걸까, 수영을 바라보는 중혁의 눈은 옅은 분노를 담고 있었다.


"처음엔 네가 흡혈귀라 생각했다. 지금도, 그날도 여자 혼자 돌아다닐 시간은 아니었다. 녀석이 죽기 전 말한 것처럼, 나는 그 창을 뽑을 수 없었다." 


자신이 언제 이렇게까지 말을 길게 한 적이 있었던가. 중혁은 말을 멈추고 수영을 내려다봤다.

수영은 그저 조용히 코코아와 함께 중혁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넌, 대체 정체가 뭐지?"


"그냥 평범한 소설간데."


수영이 코코아를 홀짝이며 대답했다.

너무나도 태연자약한 수영의 태도에 중혁의 인상이 조금 구겨졌다.


"안 웃어? 진짜야."


수영은, 태연하다 못해 웃고있었다.


"지금이 밤인건... 소설가라는게 원래 일반인과 밤낮을 바꿔 사는 존재라서 그래."


"..."


수영의 장난섞인 대답에도 중혁은 그저 팔짱을 끼고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알았어, 내가 졌다. 중혁의 부라린 눈을 마주하던 수영이 피식 웃고는 손을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땐 전보다는 조금 진중해진 모습이었다.


"음, 그래. 그 정도구나."


"뭘 말이지?"


"너희가 아는 것들. 긴 이야기가 될 거야."


수영은 그렇게 말하며 곁에 있던 의자에 걸터앉았다.

중혁 또한 경계를 풀지 않으며 방금 전까지 누워있던 침대에 앉았다.


"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허공을 응시하는 수영의 눈은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보였고, 목적을 잃고 허공을 부유하는 손가락은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쓰다듬는것 처럼 보이기도 했다.


"너는, 우리들의 기원이 무엇인지 알고있어?"


한참을 망설이며 오물거리던 수영이 중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라 함은..."


"응, 맞아. 나도, 우선은.... 너희의 말을 따르면, 뱀파이어야."


수영의 눈은 더이상 검지 않았다.

흑과 백뿐인 이 방에서 저 홀로 존재함을 과시하듯 빛나는 눈동자.

언젠가 보았던, 당장이라도 흘러내릴것만 같은 그 검붉은 핏빛이었다.

그 두 눈을 빛내며 수영은 입을 열었고,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음, 내가 '시작'이었을 수도 있어."


"나도 정확히는 몰라. 그냥, 눈을 떠보니 이 세계에 있었어."


"그저,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날, 캄캄한 곳에서 눈을 떴고, 배가 고팠어. 본능이었을거야."


"마침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뭔가가 내 앞을 지나가기에 입을 벌렸지."


"깨물고, 이빨을 박아넣고, 피를 빨았어. 향기처럼 달콤하더라."


"굶주림은 바로 채워지지 않았어. 나는 계속 배가 고팠고,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것들은 그 밖에도 많았지."


"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유일한 포식자였던 걸까?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그 아이들은 나를 보고도 도망가지 않았어. 편했지."


"죽었냐고? 글쎄, 쓰러져서 더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면 피가 더 나오지 않았지. 아마 죽었을거야."


"그저 배가 고프면 피를 빨았고, 쉬고 싶으면 어디든 누워 잠을 잤지."


"이른바 낙원이었어. 어딜 가든 먹을게 있었고, 나를 위협하는 존재도 없는."


"그렇게 아주 오래,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모르겠네. 몇 십년일 수도 있고, 몇 백년, 어쩌면 몇 천년일 수도 있지."


"그런 눈으로 쳐다봐도 어쩔 수 없어. 사실인걸."


"괴물이라 생각해? 부정할 생각은 없어. 100년의 짧은 생애를 살아가는 너희 인간들에겐 우리가 괴물이라 느껴지겠지."


"뭐? 너는 네 기원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해? 인간이라는, 어디선가 뻗어져나온 뿌리를 타고 찾아가면, 그 뿌리에 있는 존재가 자신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어쨌든, 나는 그렇게 셀 수 없는 시간을 홀로 보냈어."


"외로움? 글쎄, 그런 감정은 아직 알지 못했던 때라서."


"그러던 어느날, 네 말대로 감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났지."


"내가 살던, 아니 그걸 단순히 살았다, 라고 말해도 될 지 모르겠네. 단순히 배가 고프면 먹고, 잠이 오면 자고. 어쨌든 내가 존재했던 곳은 깊은 숲 속이었어."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숲은 더이상 '깊은' 숲이 아니게 되었어."


"나무가 베어지고, 풀들이 쓰러졌어. 동물들의 길목엔 자갈이 깔렸고, 호수는 메워졌으며, 산이 무너졌지."


"응, 맞아. 인간. 너희들."


"응? 그럼 나는 너희와 시작을 같이 했냐고? 글쎄, 너희들의 기원 따윈 내 알 바가 아니니까. 어쩌면 내가 먼저일 수도 있고, 너희가 먼저일 수도 있겠지."


"우선 내 말을 들어. 어찌 되었든 숲이 점점 좁아지고, 어느 날 한 인간의 무리가 내 앞에 나타났어."


"그 중심에 선 작은 인간에게선 지금껏 먹어보았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극상의 달콤함. 그런 향기가 났어."


"하필 그때 내가 막 식사를, 그것도 꽤 과식을 마친 후라서, 바로 덮치지 않았던 것이, 과연 그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네."


"이빨을 세우기 직전, 그 아이가 나에게 말을 걸었어."


"어쩌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말을 했을 수도 있지."


"그 아이가 나에게 손을 뻗었고, 함께 가자 했었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해봐도 무척이나 귀여운 아이."


"뭐? 왜 순순히 따라갔냐고?"


"만약, 너희가 본능이 아닌 감정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면, 가장 처음 느끼는 것이 뭐라고 생각해?"


"나 같은 경우에는 호기심이었어. 이 먹이를 따라가면 어떻게 될까, 뭐 이런거? 그 당시엔 위험이란걸 겪어본 적이 없으니 아무 생각 없었겠지."


"그 정도 지능은 없었나? 하여튼, 오래된 일이니 정확하진 않을 수도 있고."


"어쨌든 그 아이의 손에 들려서 그들을 따라갔지."


"뭐야, 왜 그렇게 봐? 내가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었는 줄 알아?"


"음, 지금 존재하는 동물중에, 제일 비슷한게.... 응, 고양이랑 닮았네. 처음엔 그런 모습이었어. 작고 검은 고양이."


"꽤 귀여웠던 모양이야. 뭐,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뭐, 그렇게 그 아이와 꽤 오래 살았지. 나름 귀여움도 많이 받았고."


"피? 글쎄, 인간의 음식들은 생각보다 맛있는게 많더라. 그 아이보다 달콤하고 향기로운 음식들이 많았어."


"그래서일까, 어느새 그 아이의 피를 빤다는 생각 자체를 잊었더라고."


"음, 어쩌면 그 아이를 좋아했을 수도 있었겠네."


"충분한 사랑을 받아왔고, 아마 나도 그 아이를 사랑했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해 보면 인간과 애완동물의 관계일까? 잘 모르겠네."


"피는 빨 생각 없었다니까?!"


"그래. 그 땐 아직 인간의 피를 빤 적은 없었어."


"...그래, 그 일만 없었다면, 내가 그 아이를..."


이젠 수영의 검붉은 두 눈은 더이상 그리움을 담고 있지 않았다.

마치 타오르는 듯 한, 이야기를 시작할 때 보다 더욱 진해진 그 눈에 담긴 것은 명백한 분노였다.


"아, 미안. 코코아가 다 떨어졌네. 당 떨어진다. 잠깐 기다려줄래?"


이야기를 이어가려던 수영은 빈 컵을 들어 안쪽을 확인하고는 한숨을 뱉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입이 말라서 더 말하기가 힘드네. 너도 한 잔 더 줄까?"


"...되었다."


그럴 줄 알았어. 수영은 옅게 웃으며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수영을 바라보고 있는 중혁은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무어라 말하려는 듯 입을 달싹거리다 말기를 수 차례. 결국 수영이 문 밖으로 사라질 때 까지 꺼낼 말을 정하지 못한 중혁은 우선 수영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것을 택했다.

중혁은 그렇게,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수영이 사라진 방 문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아직 듣지 못한 이야기가 남았고, 묻고 싶은 것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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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걍 헌터 유중혁이랑 뱀파이어 한수영의 이야기를 쓰고싶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건지 모르겠음

제목은 못정하겠고

점점 산으로 간다

수영이 말투가 존나 이상하긴 한데 옛날 이야기 들려주는 할머니 모드 정도로 생각하셈


엣? 이게 전독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