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안심했다.
그나마 살아나갈 구멍이 생겼다.
작가가 텍본을 보냈단게 좀 걸렸지만 뭐 어떤가.

[전용 특성을 획득했습니다.]
[전용 스킬 슬롯이 활성화 되었습니다.]

파일을 실행하자 귓가에 알림음이 들렸다.
세계가 멸살법이 되었다면 꽤나 당연한 일이였다.
저기 서 있는 이현성도, 주인공인 '그 자식'도 가지고 있는게 전용 특성과 전용 스킬이니까 말이다.
나는 옆에 더욱 어께가 좁아진 유상아를 힐끔 보고 속으로 "특성창"이라 속삭였다.
전용 특성은 희귀하기도 하고 꽤나 강하다. 그렇다면 확인해둘 필요가 있다.

[특성창을 활성화 할 수 없습니다.]

두 눈과 귀를 의심했다.
나는 다시 속으로 외쳐보았지만 여전히 시스템은 똑같이 말하고 있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 백승이라지만 나조차도 모르면 한번은 이길 수 있을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시스템 오류가 났다면 고쳐질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나는 그동안 멸살법을 읽기로 했다.

[전용 특성이 활성화 되어 읽기 속도가 증가합니다.]

순식간이였다.
멸살법의 초반부가, 지하철부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 여파인지 지끈거리는 머리를 뒤로 한 채, 필요한 부분을 찾아냈다.

『그는 3703칸 뒷문에 모여든 사람들을 보았다.』

나는 화면을 멈춘 채 안도 섞인 숨을 뱉었다.
그는 3703번, 즉 뒷칸에 있다.
그렇다는건 멸살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하려했다.
그때 뇌리를 생각이 세게 강타했다.
그럼 이 칸 사람들은 어떻게 됐지?
나는 얼른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는 흐릿한 창문으로 아비규환이 된 3807칸을 바라보았다. 저기는 이미 늦었나.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저 칸에서 살아남는건 둘 뿐이니까.』

둘. 아마 이현성과 '그 새끼'겠지.
나는 초점을 잃은 유상아의 눈동자를 보았다.
아마 이 여자도 죽겠지. 나도 곧 죽을거고.
하지만 죽긴 싫다.
적어도, 적어도 연애는 해보고 죽고 싶다.
그렇기에 머리를 굴린다. 빠르게 눈도 굴렸다. 시나리오도 읽는다. 그리고 어렵사리 찾아냈다. 이 시나리오의 허점을.
그걸 실행하기 전, 유상아가 흐릿했던 눈을 제대로 뜨고 내게 말했다.

"저거, 말려야 하지 않을까요?"

또렷해진 그녀의 눈이 향한 곳은 칸 구석이였다.
사람들이 몰려있었지만 확실히 보였다.
노인이 잡혀있다.
한 학생에게 잡혀있다.
평균정도는 되는 키에 교복, 험악하지만 반반한 얼굴, 하얗게 물든 머리카락.
알 수 있었다. 그는 김남운이다. 유중혁이 데리고 다니던 놈이자 가장 잔혹하고 미친 놈이다.

"씨발, 안 닥쳐? 가득이나 개 같은데 쳐 울지 말라고."
"이거 놔줘요! 난 영감을 보러 가야하는데···!"

자세히 보니 노인의 얼굴이 피멍에 물들어있었다.
그녀를 잡고 있는 김남운이 섬득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영감탱이 이미 뒤졌을걸? 아 죽여달란거야?"

그를 노려보거나 째려보는 이는 많았다.
하지만 그를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폭력은 더욱 박차를 가했다.
뺨을 치던 손바닥은 굽어 주먹이 되었다.
그 주먹은 노인의 얼굴에 박혔다.
뼈가 부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노인이 바닥에 넘어졌다.
그런 노인에게 발길질을 하려는 그때,  중년이 그를 막았다.

"지금 무슨 짓거린가? 어르신께 폭력이라니!"

한 부장이였다.
그는 셔츠 소매를 말아 올리고 김남운을 막았다.
그러자 김남운이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씨발, 다 뒤지는 꼴 보고싶어? 이 할망구 뒤지는꼴이 그리 보기 싫으면 네가 뒤지던지."

김남운의 검지손가락이 공중에서 중계중인 장면으로 향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또 죽었다.
어느 곳에서는 서로를 못 죽여 다같이 죽었다.
그리고 어느 새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말했다.

"적어도 난 뒤지기 싫어, 여기 모두 뒤지기 싫을걸? 그니까 이 할망구 죽이고, 다 살자고."

솔직히 말하면 틀린 말이다.
저 노인을 죽인다 한들, 다 살 수는 없다.
결국은 서로를 죽이게 된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나마 머리가 돌아가는 한명오조차 그의 어께에서 손을 떨궜다.
그리고 몇몇은 이미 노인을 패고 있다.
가만히 있던 사람도 노인을 팼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고 옷 위로 피가 배어나왔다.
어느 새 모두가 그 노인에게 린치를 가했다.

"제발 뒤져!"
"죽어야 우리가 산다고!"

마치 사형수를 죽이려는 교도관처럼 그들은 폭행을 가했다.
유상아가 뛰쳐나가려했다.

"이러다가 죽겠어요!"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아요."

그녀의 어께를 눌렀다.
유상아가 눈물이 고인 채로 말했다.

"하지만···!"
"지금 가면 상아씨가 죽는다구요."

역시 이런 세상에도 주인공 같은 사람은 있다.
회사에서도, 이런 상황에서도 빛이 난다.
하지만 용기와 만용은 구분해야한다.

"이번 한 번만 가만히 있어줘요."

유상아가 주먹을 꽉 쥐었다.
손이 떨리면서도 그녀는 내 말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독자씨?"

원래라면 조금 이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움직일 타이밍을 셌다.
셋, 둘, 하나.
지금.
콰아아앙하고 뒷칸을 잇는 문의 유리가 깨졌다.
그리고 그 폭발로 인해 연기가 자욱해진 지금, 나는 몸을 움직였다.
어디지? 어디야!
김남운이 넘어졌다.
하지만 할머니를 구할 생각은 추호에도 없었다.
나는 자욱한 연기속에서 꼬마를 찾았다.
내 앞에 앉아있던, 그 꼬마를.
자는 연기를 가로질러 꼬마에게 가 말했다.

"이 채집망, 누나가 좀 빌릴게."

그 꼬마에게서 채집망을 받아 손을 집어넣었다.
기분나쁜 질감이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거기서 메뚜기 두마리를 들고 한마리는 꼬마에게 쥐어준 후 소리쳤다.

"다들 멈추세요, 그 할머니 죽여봤자 다 못 살거니까."

폭발음 후 정적덕인지 내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선명하고 깔끔하게 들렸다.

"그 할머니를 죽여서 최초의 살상이 됐다고 칩시다, 그럼 그 다음은 어떻게 할겁니까?"

그러자 흠칫하는 사람이 많이 보였다.
좀만 더 말해보자.

"살려면 뭔갈 죽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 사람들은 모두가 살긴 힘들겠죠."

뭔갈 깨달은 듯 사람들은 다시 서로에게서 공포에 휩싸여 멀어졌다.
다들 알고 있었다.
동지였던 옆에 사람이 어느순간 본인을 죽일지 모른다는걸.

"뭔 걱정이야? 이 할망구 죽이면 저 년부터 죽여버리면 되는데, 확률은 이쪽이 더 높잖아?"

저럴 줄 알았다. 저 새끼는 원래부터 저런 새끼였지.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다시 말했다.

"그런 도박 할 필요 없어요, 100% 확률인 방법이 있으니까."
"뭐?"
"그게 무슨 방법인데?"

나는 들고 있던 메뚜기를 보였다.

"시나리오는 살인을 하라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아니여도 되는거죠."

그 메뚜기를 잡아 뭉갰다.
끈적끈적한 액체가 터져나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만 효과는 굉장했다.
사람들이 내게 시선을 옮겨 손을 뻗었다.

"한 마리만 줘!"
"얼른 줘!"

겨우 54kg에 167cm짜리 몸이다.
밀면 밀쳐질 몸이다.
그럼에도 이런 도박을 하는 이유는.

"갖고 싶다면, 가지세요."

나는 사람들이 있는 반댓방향으로 메뚜기를 던졌다.
그러자 모두가 그걸 보고 있었다.

"이런 씨발!!"





빛명오는 노인공경도 할 줄 아는 이 시대 참 사회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