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가 점점 장편이 되며, 김독자의 설화 파편이나 일행들의 면담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에피소드가 계속해서 늘어났다. 이길영이 투털거렸다.
"그냥 지난번처럼 대충 때우면 안 돼요?"
"내가 언제 대충 때웠냐? 이설화, 준비한 거 부탁해!"
한수영의 말에 이설화가 여러 개의 빨판이 연결된 장치를 병실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유상아가 말했다.
"......설화 파편 추출기잖아요?"
이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여러분의 설화 파편을 추출할 거예요."
"우리 설화를요?"
"평소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게 있을 수도 있고, 무의식 중에 잠재된 것들이 있을 수도 있어요. 다들 알고 있겠지만 설화의 대부분은 무의식에 축적되어 있거든요."
"아, 어쩐지 부끄러운데...... 이상한 설화라도 나오면 어떡해요?"
당연히 그러길 기대한다는 듯, 한수영이 사악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 이길영. 이지혜. 너네부터 해봐."
그 말에 이길영과 이지혜가 쭈뼛거리며 물러났다.
"아 왜. 우린 알고 있는 거 다 실토했다고. 그치 누나?"
"그럼 그럼!"
그러거나 말거나 한수영은 두 남녀를 잡아 의자에 앉힌 뒤 고무 빨판 같은 것을 머리에 씌웠다. 이길영이 발악을 했다.
"아, 기분 이상하다고! 뚫어뻥 머리에 쓴 거 같아?"
츠츠츠츠츠!
"으히히힉!"
['이길영'의 완전한 설화가 추출되었습니다!]
[설화, '마왕의 광신도'가 노래를 부릅니다.]
「"오오 그때 독자 형은 말했다네에......」
"그럴 줄 알았다. 설화 이름부터 광신도구만 뭘."
이길영은 축 늘어진 척 말이 없었다. 한수영은 실눈을 뜬 채 그런 이길영을 노려보다가 이지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때마침 이지혜의 설화도 막 추출되어 나온 참이었다.
['이지혜'의 설화 파편이 추출되었습니다!]
[설화 파편, '천부적인 왜곡자'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어쭈, 야 소설은 네가 써야겠다."
한수영의 시선을 피한 이지혜가 옆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너네 또 내 원고 조작하면 죽는다 진짜."
"......네."
"됐고, 다음 사람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 한수영이 새로운 빨판을 쥔 채 뒤를 돌아보는 순간, 장난스런 표정의 정희원이 한수영의 머리에 빨판을 씌웠다.
"아 뭐야! 이거 벗겨! 빨리!"
['한수영'의 설화 파편이 추출되었습니다!]
[설화 파편, '비밀스러운 첫 고백의 추억'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수영아"
"......왜"
"나랑 사귈래?"
"......"
"싫어.....?"
"다른 사람들 한테는 비밀이야......"」
"......?"
한순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완전한 적막이 흘렀다. 그리고 그 적막은 깨는 것은 정희원이었다.
"뭐야, 너 독자 씨랑 사겼어?"
"......"
"와, 진짜 뒤통수 제대로 맞은 기분이네"
"......"
"수영 씨?"
"......"
정희원과 유상아가 한수영을 추궁하는 동안에도 설화 추출기는 작동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한수영'의 설화 파편이 추가로 추출되었습니다!]
[설화 파편, '레몬맛 사탕의 추억'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근데, 그거 내가 먹던건데"
"그래서?"
"......재미없네, 진짜"」
정희원이 놀리듯 말했다.
"이야 진짜 별의별 짓을 다 했었구나."
"......"
"저렇게 대놓고 티내는데 우린 왜 몰랐었을까?"
"......"
"근데, 우리 작가님. 이런 귀한 장면들은 왜 본편에 쏙 빼뜨리셨어요?"
"......"
"상아 씨, 우리도 얼른 해봐요. 우리도 빨리 해야 작가님이 원고 쓰시지."
한수영이 얼굴이 새빨개진 채, 레몬 사탕을 바드득 깨부시는 사이, 다른 일행들도 하나둘 머리에 빨판을 쓰고 설화 파편 추출을 했다.
['유상아'의 설화 파편이 추출되었습니다!]
[설화 파편, '날카로운 첫 손 잡기의 추억'이 추출되었습니다!]
설화를 확인한 정희원의 눈에 이채를 띄었다. 그녀도 아는 설화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한수영이 물었다
"뭐야, 너 내 남친이랑 손 잡았었어?"
"이야 이젠 그냥 남친이라고 부르네?"
"이미 걸렸는데 뭐 어쩌라고. 유상아, 그래서 너 손잡았었어?"
"음~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저런 적도 있었지 참."
"왜 잡았는데?"
"궁금해요?"
"소설에 써야 되니까 빨리 대답해!"
"수영 씨랑 사귀기 전 이야기니까 걱정하지마요."
곁에서 정희원이 빨판을 머리에 쓴 채로 웃었다.
"야야 한수영, 절친한 동료끼리 손 정도야 잡을 수도 있지. 뭘 그렇게......"
['정희원'의 설화 파편이 추출되었습니다!]
[설화 파편, '구원의 마왕의 흑염룡을 본'이 추출되었습니다!]
한수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절친한 동료끼린 그런 것도 보여주냐?"
"하하하......, 이거 뭔가 오류가 있나 보네."
"나도 못 본 걸...... 얜 도대체 어디서 뭘하고 다니길래......"
['이현성'의 설화 파편이 추출되었습니다!]
[설화 파편, '구원의 마왕의 흑염룡을 본'이 추출되었습니다!]
깜짝 놀란 정희원이 물었다.
"현성 씨는 그 설화 왜 갖고 있어요?"
"희원 씨, 잊으셨습니까? 전에 같이 보셨잖습니까."
"와 진짜, 나만 빼고 다 보여주고 다녔구만. 김독자 돌아오기만 해봐. 아주 그냥 어우 씨"
"뭔데 뭔데! 왜 둘이 그런걸 본 건데!"
장하영의 재촉에 정희원은 곤란하다는 말투로 횡설수설을 시작했다.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는 사이, 한수영은 슬그머니 비켜나 성화 추출기 쪽으로 접근했다. 어쩐지 심란해 보이는 그녀는 복잡한 눈으로 일행들과 설화 추출기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추출깅 전원 버튼으로 손가락을 뻗었다. 그 광경을 발견한 정희원이 한수영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한수영, 뭐해? 또 나중에 오해하지 말고 내 말 똑바로 들......"
['한수영'의 추가 설화 파편 분석이 끝났습니다.]
[설화 파편, '실수로 구원의 마왕의 흑염룡을 터트릴 뻔 한'이 추출되었습니다!]
"하......시■. 아니, 전원 끌려는데 왜 붙잡아가지고......"
"절친한 동료한테는 보여주고, 여친한테 터트려질 뻔 하고...... 이 아저씨 뭐하는 사람이야?"
"너 그건 또 뭐냐?"
"와, 수영 씨가 저희보다 더 충격적인데요?"
"누나.....?"
"언니.....?"
"뭔데 뭔데! 오늘 김독자 흑역사의 날이야?"
정희원에게 집중되었던 모두의 관심은 어느새 한수영에게 쏠려 있었다.
"아, 몰라아! 김독자 오면 걔한테 물어봐!"
얼굴이 빨개진 한수영은 주머니에서 꺼낸 레몬 사탕에 분풀이를 하듯 아그작 아그작 깨부스며 건물 밖으로 부리나케 도망가 버렸다.
"에이, 뭐야 재미없게"
정희원의 말을 끝으로 일행들은 하나둘 해산하기 시작했고, 마지막까지 다른 이들을 배웅해주던 유상아만 덩그러니 남아 누워있는 김독자를 향해 중얼거렸다.
"독자 씨, 얼른 돌아와요. 모두들 그리워하고 있어요."
노력해봤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