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으..아아...유, 유유 상, 상아씨. 저, 저 좀 살려주세요...제발..."


 김독자는 유상아의 품에서 겨울철 사시나무 마냥 벌벌 떨고 있었다. 유상아는 그런 김독자를 천천히 쓰다듬고 있었다.


"괜찮아요. 이제 아무도 독자씨를 건드리지 못해요. 독자씨는 안전해요."


왜 이 남자는 이리도 고통 받아야 하는 것일까.


.

.

.


김독자는 주방에 있었다. 그는 무사히 돌아오고 난 뒤, 작아졌던 몸은 설화와 시스템의 복구로 인해 2달만에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그 2달동안, 김독자는 이설화의 병원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오는 아이들, 무언가 바리바리 싸들고 오는 성좌들과 김독자 컴퍼니까지......배가 불러도 조금이라도 더 먹으며 빠른 퇴원을 노력하는 그 였다.


그리고, 유중혁이 과일을 깎을 때, 김독자는 잠시 몸을 떨었다. 그가 쥐고 있는 과도를 보자 어릴 적 기억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신유승이 그를 부르자 겨우 정신을 차린 김독자였다.


그러니까 지금은 김독자에게서 제 4의벽이 사라진 상태이다.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느끼게 된 김독자는 산책을 하며 풍경을 즐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제 4의벽은 일종의 정신 방어 스킬이었다. 고통을 경감시켜주고 정신을 침착하게 해주며 이성적으로 생각하게 도와주는 스킬.


그리고 그 스킬이 없자 김독자는 가끔씩 어릴 적 트라우마가 떠오르기도 했다. 다행히 눈치빠른 한수영과 유중혁, 유상아의 도움으로 인해 겨우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봤자 순간적인 조치였을 뿐이다.


"후우......"


그런 그의 앞에, 식칼과 도마 위에 올려진 당근이 있었다. 아직 식칼을 보면 그 기억이 떠올랐지만......그것을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 모두가 자리를 비운 지금을 틈타 이 자리에 선 것이었다.


"이제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


김독자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조용히 식칼을 잡았다. 그 손잡이의 딱딱함에 소름이 돋았다. 호흡이 조금 가빠지는 것 같았다.


ㅡ싹둑......싹둑.......싹둑


천천히, 아주 천천히. 김독자는 당근을 썰기 시작했다. 그가 스스로 생각해낸 극복법이었다. 식칼을 쓰는데 익숙해지다보면 언젠가는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라고.


"읏! 아아......씨발."


분명 그랬어야 했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덜덜 떨리던 손이 순간적으로 미끄러진 탓에 손가락이 살짝 베였다.


손에 묻은 피, 식칼에 묻은 피, 거친 호흡......그것들이 자신의 어린 기억을 건드렸다.


결코 건드려선 안되는 기억을.


"으흑, 으흐으, 아으아아아아......!"


김독자는 어느새 주저앉아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호흡소리인지 짐승의 울음소리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식칼은 이미 바닥에 떨어져있었다. 식칼에 묻은 피는 아주 적었지만......그에게는 최악이었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점점 더 깊숙히, 김독자는 오래된 기억의 심해 속으로 빠져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


.

.30분 뒤.

.


"다녀왔어요~."


유상아는 가볍게 인사하며 신발을 정리했다. 그러나 곧, 이상함을 느꼈다. 보통 이 시간에는 김독자가 있을 텐데......


'낮잠 주무시나?'


의아함을 느끼며 거실로 들어선 그때, 유상아는 주방에 떨어진 식칼을 발견했다.


'식칼이 어째서 여기에?'


식칼을 집으러 다가가던 찰나, 주방 한 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김독자를 발견했다.


"세상에, 독자씨? 독자씨! 정신 차려요!"

"내가 죽인거야, 내가 죽였어, 내가, 내가......."


심하게 떨리고 있는 몸이 너무 안쓰러워 보였다. 그리고 유상아는 어떤 상황인지 이해했다. 

김독자의 트라우마.


"독자씨! 날 똑바로 봐요."


크게 소리치자 김독자의 몸이 들썩였다. 겨우겨우 고개를 들자 보이는 건 눈물로 범벅이 된 김독자의 얼굴이었다.


"아아아....아아.....으으...유, 유유 상, 상아씨...저, 저좀 살려주세요...제발..."


유상아를 발견하고는 와락 달려들며 매달리는 김독자였다.


"제발....제발..."

"휴...괜찮아요. 이제 아무도 독자씨를 건드리지 못해요. 독자씨는 안전해요."


그를 품에 안은 채 다독이며 진정 시키자 겨우겨우 떨림이 잦아들었다.


"억...어흑....어어어..."


비참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김독자가 정신을 차린 건 5분 후의 일이었다. 울음소리는 잦아들었고 간헐적으로 훌쩍이는 소리만 새어나왔다.


"이제 진정이 되셨어요?"

"네......"


김독자는 머쓱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났지만  김독자는 식칼이 눈에 들아오자 힘들게 시선을 피했다. 유상아가 그를 진정시키며 주방을 정리했다.


"그...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괜찮아요. 그보다 조금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 이, 이제 괜찮습니다. 정말요."


김독자가 손사래를 치자 유상아가 그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당황한 김독자가 뿌리치려 했지만 이내 그것을 포기했다.


"저...유상아씨."

"잠깐만 기다려요. 알겠죠?"


김독자는 졸지에 자신의 방에 잡혀왔다. 조금의 시간이 흐르자 유상아가 머그컵과 이설화의 금창약을 들고 들어왔다.


"이건..."

"핫초코요. 독자씨 핫초코 좋아하시잖아요?"

"네..."


유상아는 금창약을 김독자의 손에 바른 뒤, 그에게 핫초코를 건네주었다. 김독자는 조금씩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핫초코를 입으로 가져다 대었다.


"......"

"......"


유상아는 아무말 없이 김독자가 핫초코를 마시는 것을 지켜봤다. 한 모금, 한 모금...천천히.


"......감사합니다."


유상아는 그런 그에게 싱긋 웃어주었다.


"일단 한 숨 주무세요. 자고 일어나시면 훨씬 괜찮을 거에요."

"네......"


김독자는 마지못해 침대에 누웠다. 따뜻한 핫초코와 몰려온 피로 덕분에 순식간에 잠드는 김독자였다.


10분쯤 그 모습을 지켜봤을까. 김독자가 인상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유상아는 탄식했다.


꿈에서조차 편안하지 못하는 모습이, 울면서 벌벌떨던 그 처량하고 안쓰러운 모습이......


유상아는 잠 든 채로 괴로워하는 김독자의 손을 조심스럽게 맞잡아 주었다.

그러자 떨림이 잦아들고 얼굴은 평온을 되찾았다.


방 안에 퍼진 달달한 핫초코 향기가 오늘만큼은 너무나 썼다.


.

.

.


그 다음날부터, 김독자는 유상아에게 의지하는 날이 많아졌다.


"기억을 쫓아가지 말아요. 침착하게, 심호흡 하는거에요."

"노력해...볼게요."

"독자씨라면 잘 해내실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정신을 다잡을 수 있도록 호흡법을 가르쳐 준다던가.


"과거는 과거일 뿐, 행복한 내일을 상상해봐요. 아이들과 같이 놀러다니는 것도 좋을걸요? 그리고 수영씨가 써놓은 작품 아직 안 읽어봤죠? 독자씨도 분명 마음에 드실 거예요."

"그리고 무조건 괜찮다고 말하지 마세요. 싫은 건 싫다고 말씀해주세요. 독자씨에겐 저와 사람들이 있잖아요?"


더 이상 과거의 기억에 붙잡히지 않도록 기쁘고 좋은 일을 알려주기도 했다.


마치 어디로 갈지 몰라 길을 잃은 사람의 이정표가 되어주듯 유상아는 김독자에게 현재를 주었고, 미래를 주었다.


"저...유상아씨."

"네?"


김독자는 그런 유상아가 너무 고마웠다. 사교성 없고 늘 헛짓거리만 해대는 한심한 자신을 이끌어주는 태양같은 사람. 세상에 단 한명뿐인 소중한 사람......그리고 그가 처음으로 사랑한 사람.


"......"


김독자는 오늘도 태양앞에 섰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할지 알기위해 선 것이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자리잡은 감정을 고백하기 위해서 지금 이 자리에 섰다.


"좋ㅇ......"

"알아요."


힘겹게 열린 김독자의 입이 유상아의 말에 끊겼다. 무슨 말이 나올지 알겠다는 듯.


"알아요. 독자씨의 마음."

"......"

"그리고, 저도 같은 마음이고요."


김독자는 유상아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예상치 못한 답이었는지 입을 조금 뻐끔거리는 그 였다.


유상아는 피식 웃으며 김독자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니까 이리와요. 아이들과 사람들과 함께해요. 저는 그곳에 있으니까요."


김독자는 그렇게 앞으로 한발짝, 한발짝 나아가기 시작했다. 길고 긴 터널 너머로 보이는 빛을 향해.


그리고 그 밝은 빛을 등진채 웃고 있는 더욱 밝은 유상아를 보면서 어두운 암흑 속에서 자신의 구원을 향해 걸어나갔다.


김독자는 한 번도 성경은 읽어본 적 없었다. 신이니 부처니 하는 것은 믿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무엇이 '신'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김독자의 마음을 덮은 철옹성처럼 두껍고 차가운 벽을 한번에 녹여버린 유상아의 모습이 너무나 성스러워 보였다. 신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밝은 미래를 향하여 김독자는 드넓은 홍해를, 머나먼 사막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자신의 길잡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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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상이 없으니 자급자족으로 써올린다

항상 부족한 글 읽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