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라도 온 것인지 우웅거리는 소리와 함께 울리는 핸드폰. 주머니에서 꺼내든 핸드폰의 화면에는 내가 아는 이의 이름이 떠올라 있었다.



ㅡ 이번주 주말에 한국 갈거에요.



 안나 크로프트.

 그녀는 왜 나에게 한국에 온다는 사실을 알린 것일까. 나는 이에 의문이 들었고, 곧장 답장을 보내었다.



ㅡ 그래서요?

ㅡ 20만 원짜리 코스 요리 기억 안나시나요?

ㅡ 아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장면이 있었다.


「 "나중에 한국에 한 번 놀러 오시죠. 20만 원짜리 코스 요리 정도는 대접해드릴 수 있으니까." 」


 언젠가 그녀에게 [리코메데스 왕의 가죽 장갑]을 받았을 때 했었던 말이었다. 나로서는 당연히 농담삼아 했었던 말이었지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ㅡ 어, 그거 농담이었는데.

ㅡ 됐고, 예약 잡아 놓으시라고요.

ㅡ ......예.



*



 "오랜만이네요."



 "네, 오랜만입니다."



 간단한 인사를 마친 나는 왜인지 모를 이질감에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어깨 아래로 흩날리는 금발부터 붉게 소용돌이치는 눈동자까지,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내가 느낀 이질감의 원인이었다.


 분명 한수영의 말대로라면 안나 크로프트는 집단 회귀에 참여하지 않았었기에 20년의 세월을 맞이한 모습이었어야 했다.


 시스템의 힘인 것인가? 아니면 설화의 힘? 나로서는 그 이유에 대해 알 수 없었다.



 "안나, 당신의 겉모습은 놀랍도록 그대로이군요."

 "칭찬인건가요?"

 "그냥 있는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당신은 집단회귀도 안하였을텐데 어떻게 그 모습 그대로 유지 중인겁니까?"

 "넥타르 덕이죠."



 넥타르.

 불멸과 불로를 상징하는 올림포스의 성유액. 그것이라면 자연스럽게 대부분의 것들이 설명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들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그녀의 답을 들은 내 머리속은 자연스레 몇가지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나, 올림포스의 화신도 아닌 안나가 넥타르를 어떻게 얻은 것인가.

 둘, 올림포스에 성유액을 만들 수 있는 성좌가 남아있는가.



 "그래서 언제쯤 도착하는 거죠?"



 생각에 잠겨 조용히 길을 걷고있던 나를 툭툭치며 말을 거는 안나. 나는 일단 의문들을 미뤄두고 현 상황에 집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거의 다 왔습니다."



 *




 "요리에 사용될 식재료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직원은 보자기로 둘러쌓인 자개함을 들고 나왔고, 그것을 열어 안에 들어있는 식재료들을 보여주었다. 중앙에 놓인 소고기부터 그 주위를 둘러싼 샤인 머스캣, 버섯, 밤, 마늘 그리고 참다랑어와 캐비어까지. 하나같이 신선하기 그지없는 것들이었다.

모든 식재료들을 하나하나 소개한 그는 자개함을 다시 주방으로 가져다 놓았다.



 "대충 아무데서나 때울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먼저 타락죽을 놓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잡담을 나누는 동안, 직원이 첫번째 코스 메뉴를 테이블에 놓아주었고, 이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이것은 밤 타락죽으로......"



 밤 튀김을 고명으로 올려놓은 타락죽. 고명의 씹는 식감과 고소함이 일품인 요리였다.



 "다음 메뉴는 참다랑어 입니다."


 "다음 메뉴는 한우 초밥......"


 "다음 메뉴는......"


.

.

.


 그 이후로도 몇가지 메뉴들이 나왔고, 드디어 메인 요리의 차례가 되었다.

 테이블에 놓여지는 작은 크기의 화로. 그것을 시작으로 여러 밑반찬들과 한우 안심, 그리고 육개장과 밥이 놓여졌다.



 "구원의 마왕. 이건 뭔가요?"

 "그건 육개장이라는 이름의 국물 요리입니다."

 "색이......"

 "안맵게 해달라고 주문했으니 걱정마시죠."



 안맵게? 그것은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내가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 "일행 중에 외국인이 있어서 그런데요."

     ㅡ 아, 그럼 하나는 덜 맵게 해드리겠습니다.

      "아뇨. 특별히 더 맵게 부탁드리겠습니다."

     ㅡ ......예?

      "청양고추 좀 미친듯이 넣어주세요.                」



 "흠, 믿어보죠."



 새빨간 색의 무언가가 잔뜩 놓여져 있는 그녀의 숟가락. 나는 잠시 뒤의 미래를 생각하며 터져나올려 하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고 있었다.



 "......풉"



 실수로 새어나온 웃음소리. 하지만 이미 그녀의 숟가락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안맵다면서요! 물! 물 내놔!"

 "흐ㅎ핳 크흡, 프하학"



 마치 방금 전에 먹은 청양고추의 색과 같이 붉게 물든 안나의 얼굴을 상당히 볼 만했다.



 "물 내놓으라고요! 아, 매워!"

 "흫, 프흐흡"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부짖는 안나를 보고 나는 배를 잡고 미친듯이 웃고 있었다.



 "아악, 진짜!"

 "크흡 아, 알았어요. 여깄습니다."



  「 "아, 수정과에 생강이랑 계피 좀 잔뜩 넣어주시죠."

       ㅡ ......네.                                                                    」



 꿀꺽꿀꺽


.

.

.



 "아악!"



*




"많이 화나셨습니까?"

 "......"

 "안나 씨?"

 "망할 구원의 마왕."

 "미안합니다."

 "......"




 "미안하면 술이나 사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