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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신기한 화법이다.
대답 대신 자신의 이야기로 끌어 들인다니, 정말 본 받고 싶어질 정도로 자유로운 화법 같다.
거기다 다짜고짜 놀자니, 순서도 뒤죽박죽이다.
나는 머릿 속으로 ‘논다’ 라는 단어를 떠올려보았다.
누군가와 논다.
그리 중요하게 생각 해본 적은 없다.
같이 있으면 즐거운 것이 누군가와 노는 것이라는 건 머리로 이해했지만 정작 즐거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정확히는 즐거웠던 경험이 있어도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을 정도로 오래 전일 것이다.
지금 친구인 유중혁조차 그의 있는 듯 없는 듯한 노력으로 이어져 오는 관계에 가깝다.
그런데도 누군가랑 논다니, 이게 맞는 걸까?
내 고민을 그녀는 다르게 읽었는지 급하게 서랍에서 트럼프 카드를 꺼냈다.
세련되고, 단순한 패턴으로 되어 있는 종이 케이스가 눈에 쏙 들어왔다. 그녀가 그걸 들고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카드도 있어요! 아, 혹시 화투가 더 낫나요?”
그녀가 남은 한 손으로 다시 서랍에서 화투를 꺼냈다.
대중적인 붉은 색 화투였다.
둘 다 만져본 적은 없다.
물론 카드게임도 해본 적 없다.
거기다 뭐라 얘기해야 할지조차 모르는데 어떻게 같이 놀 수 있을까.
다시 시작된 고민에 멍하니 그 카드를 바라보고 있자 유상아가 의아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역시, 좀 그렇죠?”
무안한 듯 말하는 그녀에게 차마 같이 놀 수 없을 거라 말 할 수 없었다.
젠장, 이럴 때면 마음이 약한 게 후회된다.
나는 두 카드를 유심히 보다가 그나마 놀이에 가깝다고 판단되는 트럼프 카드를 골랐다.
그러자 유상아가 화투를 서랍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뒀다.
그리고는 카드 윗 면을 열었다.
열린 윗 면으로 보이는 카드 뭉치는 산 지 얼마 안 됐다는 걸 증명하듯 정갈하고, 깔끔했다.
그녀가 반대 쪽 손으로 카드를 꺼냈다.
종이케이스에 그려진 그 문양이 그대로 카드 뒷면에 그려져 있는 게 제법 신기한 느낌도 들었다.
그녀가 카드를 두 손으로 가리고는 재밌는 거라도 생각 했는지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혹시, 블랙잭이란 게임 알아요?”
*
“다시 해요!”
유상아가 그렇게 선언하고는 다시 카드를 섞었다.
섞는 속도부터, 포즈, 그리고 그 엉성함에서 그녀가 카드를 만져본지 얼마 안 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거기다 운은 또 얼마나 안 좋은지 매번 압도적인 차이로 내게 졌다.
이번 판으로 5판 째.
또 다시 뽑은 카드들을 뒤집자 내게는 총합 16인 카드들이 있었고,
그녀의 손에 쥐어진 카드들은.
A, A, 3, 5, 7.
총합 17로 나를 이겼다.
다섯 판중 네 판이나 압도적으로 이겼으나 마지막 한 판을 근소한 차이로 지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이예!”
유상아가 정말로 기쁜 듯 침대에 몸을 맡기듯 뒤로 누웠다.
해맑게 웃는 게 보기는 좋았으나, 한 판이라도 지지 않겠다는 각오로 임해버렸기 때문에 기분이 그리 막 좋은 건 아니었다.
오기가 붙어버린 나는 두세 판 하고 손을 뗀다는 계획과는 다르게 입을 움직여 버렸다.
“다시, 다시 한 판만 더.”
*
“잘 가세요, 패배자.”
유상아가 나를 놀리듯 가슴을 당당하게 펼치고, 기쁨과 뿌듯함에 꿈틀대는 입꼬리를 숨기지 않고 잔뜩 올린 채 나를 배웅했다.
아까의 패배로 기세가 꺾인 나는 계속되는 연패로 병문안 제한 시간까지 총합 20여 판의 게임을 했으나 결국 다섯 판도 채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는 신세였다.
아까의 쓴 패배를 곱씹으며 나를 향해 이젠 손을 흔들어주는 그녀에게 선언했다.
“내일은 안 질 거니까 각오해요.”
그러자 유상아가 잠시 멍한 표정으로 듣더니 이번엔 감동 받았다는 듯 웃으며 내게 말했다.
“내일은 늦으면 안 돼요.”
나는 반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밖으로 나왔다.
확실히 저녁 식사 시간이 다 와 가는지 밖에는 아까보다 적은 인원만 있었다.
신경 쓸 성격도, 쓸 이유도 없었기에 그저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정문을 통해 병원을 나왔다.
아직도 손 끝을 맴도는 카드의 신기한 감각은 뒤로 한 채 온 길 그대로 돌아갔다.
지하철을 타고, 걷고.
그러다가 저녁으로 먹을 것을 사고.
하루는 이것으로 마무리를 준비한다.
돌아가는 길 편의점을 들러 먹을 만한 걸 골라낸다.
다행히 오늘은 조금 비싼 걸 먹을 수 있다.
내 스마트폰 화면에 비춰져 있는 통장 잔고는 생각보다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먹을 걸 고르며 머리 속으로 계산을 시작했다.
월세도 내고, 수도세, 가스비 등.
이걸 다 내면 받은 돈의 대부분이 사라진다.
그리고 밥을 먹으면?
한 달에 한 번 부모란 작자들에게 오는 돈은 거덜난다.
다행히 몇만 원 정도는 남아서 대중교통 정도는 다닐 수 있다.
교복도 이 모은 돈으로 낼 정도로 플러스 마이너스조차 없이 정확히 매번 같은 날에 입금되는 돈들이다.
쓸데없는 생각들이 길어졌다.
나는 잡념을 가득 머리에 담은 채 음식들이 가득 담긴 비닐 봉투를 들고 집으로 향했다.
*
아까 산 삼각김밥을 데워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오랜만에 키는 컴퓨터라 켜질까 의문이긴 했으나 관리는 열심히 한 덕분인지 별 문제 없이 켜졌다.
거진 1년 만이라 그런지 뭐가 뭔지 제대로 기억도 안 난다.
나는 겨우 인터넷 아이콘을 발견했고 겨우 검색을 시작했다.
“설···화···병.”
입으로 찾고 싶은 것을 중얼거리며 느릿느릿하게 타자를 쳤다.
그리고 엔터 버튼을 누르자 검색어의 결과들이 쭉 나왔다.
설화병 관련 기사들이나, 관련 문서들, 심지어는 논문 해석본이 올라와 있는 블로그들도 보였다.
나는 답지 않게 그것들을 전부 한두 번씩 읽었다.
제법 많은 양 덕분에 일찍 자기는 오늘도 글렀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잠을 선택하기에는 전력낭비만 한 거란 걸 깨달았고,
그 순간 잠에 대한 미련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나는 익숙치 않게 마우스를 움직여 맨 위에 있는 기사들부터 하나씩 읽어갔다.
*
다 읽은 건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이 시대 최고의 화재 거리기도 했지만, 쓸데 없는 일명 ‘어그로’들이 넘쳐났다.
그런 것들을 거르며 지식을 쌓은 나는 이윽고 알게 된 것들을 메모장에 정리했다.
여기서도 걸러야 할 것은 걸러야 하지만, 그건 나중에 해도 되는 문제였다.
중복되거나, 이어지는 내용들은 간추리고, 또 어순에 맞게 끼워 맞추다보니 얼추 봐줄만한 글이 되어 있었다.
각 잡고 읽으며 고치고 싶은 마음은 안 들었다.
그렇기에 나는 대충 저장을 한 후 컴퓨터를 껐다.
메모장에 오랜 시간 뭔가를 쓴 덕분인지 아까처럼 힘겹게 마우스를 움직이지는 않았다.
컴퓨터가 멈춘 걸 확인한 나는 침대에 몸을 던졌다.
당장 베개에 머리만 대도 잘 것 같은 상황이었기에 말 그대로 바로 잠에 들었다.
어떻게 잠에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알게 된 건 꿈에 들어온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