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수영은 부쩍 사당에 들르는 일이 많아졌다.
뭐, 절대로 김독자가 보고 싶어서 가는 건 아니고, 그냥...날이 요즘 추워졌는데 따듯한 사당에 나른하게 누워있는게 좋아서이다.
사당 벗나무에 앉아 자는 것은 정말 정말 편안하다. 마치 자신을 위한 나뭇가지 인듯 등이 모양 알맞게 딱 들어맞았고, 잠을 자면 벚나무가 살랑살랑 흔들리며 풀소리를 낸다. 따듯한 봄날씨에 잠이 들면 아주 그냥 선계가 따로 없달까.
한수영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도 봄이다. 봄이 되면 한씨 집안의 모든 나무에서 꽃이 만개하기 때문이다.
척박한 한씨도 아름다워 보이는 유일한 계절이다.
또, 한수영은 봄이 되면 버찌 따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자신은 먹지 않지만, 돌아가신 제 어미가 그것을 참 좋아했기 때문이다.
어릴적에 버찌를 따서 어미에게 갔다주면 어미가 한수영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했다. 뭐, 거의 기억도 안나는 어릴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습관이 남아 한수영은 종종 버찌를 따러 가곤 했다.
"이게 그렇게 맛있나?"
한수영이 벚꽃나뭇가지에서 서책을 읽다. 자신의 앞에 열린 버찌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 반대편에 앉아 자신을 빤히 바라보던 김독자가 한수영에게 대답했다.
"너 그거 좋아하지 않았어?"
"?왠 과거형?"
"...안 좋아해?"
"뭐, 좋아하진 않는데. 우리 엄마가 이거 엄청 좋아했어."
한수영이 버찌를 뚝 따내었다.
한수영은 전생의 한수영과 정말 닮아있다. 김독자가 생각했다.
뭐, 같은 영혼을 공유했으니 그런 것인가.
전의 한수영과 또 닮은 한수영은 자꾸만 김독자를 유혹하는 듯 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김독자에게 이런 생각을 하게 하였다.
이번 한수영과 함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오랫동안 함께
"야 근데 생각해보니까."
한수영이 멍한 김독자를 불러 세웠다.
"넌 여기 혼자 있을 때 뭐해?"
"나? 나야 뭐, 그냥 잠 자지."
"아 그러냐? 나 오늘 여기서 자고 가도 되?"
"응?"
김독자가 놀라서 되물었다.
"아니, 뭐 음흉한 생각은 하지 말고. 오늘 시녀가 제사 치룬다고 본가로 돌아갔거든. 아버지도 요즘 나랏사정 때문에 한양으로 올라가셨고.내가 혼자서 잠을 못자거든"
"자고 가던가. 침대는 없지만"
"나 원래 침대에서 안자. 침대 싫어해."
한수영이 앞머리를 메만지며 말했다.
한수영의 머리 맡에 있던 벚송이가 활짝 만개했다.
-
'미친 한수영'
한수영이 앞머리를 헝클이며 생각했다.
아비가 한양에 올라갔다는 건 사실이다. 요즘 나랏사정이 말이 아니니까.
근데 저택에 아무도 없다는건 거짓말이다.
갑자기 말이 그렇게 나간 것이다.
'한수영 미친! 남자랑 외박을해? 신이 노하시겠다! 근데 외박하는 사람이 신이니까 괜찮지 않나'
온갖 생각이 들었다.
볼이 붉어지진 않았을까, 김독자의 시선을 살폈다.
김독자의 귓가가 홍매처럼 붉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