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일요일 아침 어쩐지 오늘은 평소보다 하늘이 맑아보였다.방에서 나나와보니 거실에는 희원 씨 혼자 덩그러니 앉아서 쉬고 있었다. 혼자 있는 희원 씨를 보고 있자니 문득, 장난이 치고 싶어졌다.
"저기 희원 씨."
"아 독자 씨 일어나셨어요?"
"정말 뜬금 없지만 희원 씨는 가만 보면, 감금과 구속을 정말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희원 씨가 인상을 찌푸리며 쳐다 보았다.
"아침부터 그게 무슨 말이죠. 말씀 잘 하셔야 할 겁니다. 독자 씨"
빠득- 하고 이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짜릿해
"말 그대로입니다. 늘, 절 가두고 묶어두시고..."
"그건 독자 씨가..."
"아! 혹시 그런 취향이신 겁니까...?"
라고 말하며 조금은 과장스럽게 팔로 내 몸을 감쌌다.
"이... 오징어 같은 작자가!!!"
장난이 과했는지 희원 씨가 칼을 빼들고 달려왔다. 잠깐, 시나리오도 다 끝났는데 무기 소지가 가능해? 이런 바보같은 의문이 들었으나, 생각할 시간 없이 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희원 씨를 피해 이리저리 도망가다 상아 씨의 집으로 숨어들어갔다. 이 사람이라면 날 숨겨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상아 씨!!"
"아! 독자 씨! 언제 오신 건가요? 문 열리는 소리도 못 들었는데... 독자 씨니까 상관은 없지만 엄연히 주거 침..."
쾅-
상아 씨에게 뭐라고 말을 채 건네기도 전에 나를 찾아낸 희원 씨가 격하게 벽을 부수고 들어왔다. 흰자위가 보이는게 광전사화 특성이라도 개화하신 건가?
"독자 씨?"
상아 씨가 싱긋 웃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상아 씨의 입은 웃고있지만 그녀의 눈은 차마 입에 담지 못 할 욕으로 가득차 보였다.
'화나셨구나.'
어떻게든 수습하고자 웃음 지으며 말을 건넸다.
"하하... 제가 다 설명하겠습니다. 그러니 잠시만 숨겨주실..."
"사랑 싸움은 나가서 하세요들. 수리비는 청구할 거에요. 그렇게 아세요."
상아 씨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집 밖으로 던져버렸다. 명백한 축객령. 나는도축장에 끌려 가는 소가 된 기분으로 희원 씨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화가 어느 정도 가라 앉았는지 조금은 진정한 것처럼 보였다. 어쩐지 희원 씨의 얼굴이 붉어 보였다.
내가 희원 씨에게 이런 장난을 치는 이유는 사실 뭐 별 거 없다. 왜, 어릴 때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으면 괜히 더 괴롭히고 싶고, 울리고 싶고 그런 맘. 그런 짓궂은 맘. 나는 희원 씨를 좋아하니까.
누구보다 나를 위해준, 나의 검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가끔 불같이 화를 내다가도, 정은 또 많아서 속으로 화를 삭히던. 모질어 보이지만 상냥한 희원 씨를 좋아한 지는 제법 되었다.
자... 이제 희원 씨의 화를 어떻게 풀어준담?
"독자 씨."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몸이 흠칫 떨렸다.
"...넵."
"하아..."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숨을 내 쉰 그녀가 나를 흘깃 쳐다보았다.
"그런 장난 치면 재밌어요?"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아... 죄송할 짓을 하지 마시라구요. 알겠어요?"
"네!"
"하여간... 대답은 잘 한다니까..."
희원 씨의 말에 싱긋 웃어보였다. 그녀는 주먹을 들었다가 한숨을 쉬며 주먹을 내렸다. 뭘 잘했다고 웃냐는 핀잔은 덤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말 없이 있던 그녀가 정적을 깨었다.
"저기 독자 씨. 미안하면 제 부탁이나 하나 들어주세요."
"무슨 부탁인가요?"
"오늘 시간 있으시죠?"
"시간은 있긴 하다만..."
"그럼 그 시간 저한테 좀 쓰세요."
"네?"
"시간 저한테 쓰시라구요."
어딘지 부끄러워하는 희원 씨의 모습에 장난스러운 마음이 동했다.
"이거... 데이트 신청입니까...?"
희원 씨가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의외의 대답에 입이 벌어졌다.
"... 그게 중요한가? 맞아요. 데이트 신청."
"어... 그...렇습니까?"
"네. 장난은 그만 치시고, 들어가서 옷 갈아입고 다시 만나죠."
희원 씨는 말을 마치고 재빠르게 일어나 자리를 떴다. 그런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그녀가 뒤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다 씨익 웃으며 말을 꺼낸다.
"뭐해요. 데이트라니까. 제대로 안 꾸미고 나오면 나 화낼거에요."
이러한 전개를 바랐던 건 아니지만,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나를 향해 내가 바라던 미소를 지어주는 그녀를 보니 지금이 꼭 기회처럼 느껴져,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한 걸음씩 떼어내며 그녀에게 향했다. 한 걸음 두 걸음. 희원 씨와 가까워질 때마다 심장이 요동쳤다. 떨리는 마음이 그녀에게도 전달 되었을까? 그녀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만 있다.
"앗! 독자 씨 이게 무슨..."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안은 채 숨을 골랐다.
"좋아합니다 희원 씨."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던 희원 씨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이게 뭐에요 독자 씨. 무드도 없고... 무슨 고백이 이래."
핀잔을 주는 것 같아 부끄러웠으나 무어라 답할 수 없었다. 아마 지금 내 얼굴은 익힌 토마토처럼 빨개졌을테니까. 고개를 들면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들킬 것 같았다. 그때, 희원 씨의 한 손이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뭐, 독자 씨 답고 좋네요. 독자 씨 시나리오 클리어만 잘했지. 인간관계는 서툴잖아요."
"...그런가요."
"너무 뜬금없지만 나도 좋아해요 독자 씨. 독자 씨도 절 좋아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라며 배시시 웃는 그녀의 얼굴이 조금씩 가까워졌다. 머리를 쓰다듬던 손은 어느새 나의 얼굴에 와 있었다.
쪽-
"이건 제 대답이에요. 그럼, 이제 진짜 옷 갈아 입고 다시 보는 거에요?"
그렇게 말한 희원 씨는 빠르게 멀어진다. 아직도 입술에 그녀의 감촉이 남아있었다. 손으로 입술을 만져보았다. 아직 남아있는 희원 씨의 여운을 느끼며, 멀어져가는 희원 씨를 따라갔다.
어쩐지 오늘은 평소보다 하늘이 맑아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