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사람 하나 없어 적막한 방에서는 아무런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문 앞에 서 있던 정희원은 방 가운데 걸어 들어가고서, 침대 옆의 의자에 걸터앉았다.
똑딱거리는 시곗소리를 지겹도록 듣다 못해 그 바늘이 한바퀴를 돈다해도 침대에 누운 이가 깨어날 리는 없었다.
타는 속과는 다르게 침대 위에 뉘여진 얼굴은 편안해 보이기만 한다. 그것이 얄밉게만 느껴져 정희원은 흰 뺨을 약하게 꼬집었다. 침대 위에 편히 누운 그는 언제나 미운 사람이었다.
약속도 잘 지키지 않는 미운 사람. 혼자서 어디로 가지 않겠다는 약속도, 다시는 희생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그는 지키지 않았다.
"...진짜 미운 건 알아요?"
가만히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듣다 듣지 못할 말을 허공에 내던진다. 들을 사람 하나 없는 말은 당연하게도 대답이 없었다. 만약에 깨어 있었다면 말을 돌리려 애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편안한 얼굴만을 띄우고 있는 지금과는 다르게 말이다. 만약에 라는 말로 시작하는 가정이었지만, 차라리 말을 피하며 뺀질거리는 모습을 보는 게 지금처럼 잠든 모습만을 보는 것보다는 훨 나았다.
편안히 잠든 모습. 그 모습은 언제나 밉던 모습이었다. 편안히 잠들어 있을 때는 어디론가 사라지거나 크게 다쳐 돌아왔을 때 뿐이었으니 편히 잠들어 있다는 것은 다치고 돌아왔다는 뜻이기도 했었다. 언제나 크게 다쳐와서는 잠들 때만은 편히 있던 모습이 하나 둘 씩 떠오른다.
의자에 기대어 앉아 온갖 상념들을 떠올린다. 그들 중에는 즐거웠던 기억도 원망스럽던 기억도 있었으나 그들은 전부 그와 함께한 기억이었다.
정희원은 방 한구석에 있던 얇은 이불을 침대 위에 펼쳐 올렸다. 그는 미우면서도 원망할 수는 없던 사람이었다. 상처를 주되 상처를 받는 사람이었고 그것을 상처라 느낄 수 있었던 것도 그로인해 살아남았기 때문이리라. 그러니 그것은 원망과 닮아있으면서도 본질적으로는 달랐다.
원망할 수는 없으나 고맙다는 말은 할 수 없었기에 밉다는 간단한 한마디로 정리해버렸으니, 그를 미운 사람이라 느끼는 것또한 그저 투정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밉다는 말은 못 마땅하거나 싫어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태에 있다는 말이라 했던가. 그것이 밉다라는 말이라면 그는 미운 사람이었다. 약속 하나 지키지 않고 제 몸 하나 만큼은 아끼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해서 마주하기 싫었다. 그러나 마주하지 않는 것또한 싫었다. 실은 그가 혼자 떠나지 않고 제 몸을 아끼는 것을 보고 싶었다.
방에 들어온 지도 그새 두시간이나 지났다. 이쯤이면 푹 잤겠지.
"독자씨, 이제는 일어나죠? 조금 있으면 저녁 시간인데."
정희원은 볼을 비틀어가며 꼬집었다. 그에 빨갛게 부어오르는 뺨이 퍽 아파보였으나 이쯤은 해야 깰 터였다.
"...뺨을 꼬집을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 같은데요."
"안 그랬으면 밥도 거르고 그대로 잤을걸요. 곧 저녁 먹을 시간이니까 어서 일어나요."
덮인 이불을 거두며 툴툴대듯이 말한다. 꽤 피곤해보이는 탓에 데이트 시간도 포기하고 푹 재웠으니 이정도 투정은 괜찮을 터였다.
그 투정의 의미를 알아차렸는 지, 하얀 얼굴에 호선이 띄워진다.
"...희원씨, 밥 먹고 나면 둘이서 놀러갈래요?"
"그러죠. 우선 그전에 밥부터 먹어야겠지만요."
적막하던 방에는 두명의 말소리가 들린다.
들리는 것은 두 명의 소리. 호선이 띄워진 얼굴도 두 개.
다시는 떨어지지 않을 둘이 모이면 한짝.
+
실은 김독자 돌아온 이후의 시점이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