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링크

https://arca.live/b/reader/43943983

한 여자가 마차를 이끌며 느긋하게 달렸다.
아무도 그녀를 독립군이라고 상상도 못할만큼

“흐음~여유롭네.”

한수영이 신나는지 콧노래까지 불렀다. 이런 여정에선 긴장하면 할수 록 불리하다는 것을 이제 곧 19살이 되는 한수영은 잘 알고 있었다.

“이 총 만 있으면…”

최근 독립군들의 전투 소식을 들으면 백이면 백, 모두 패배 소식 뿐이었다. 이것은 인원 부족 이나 훈련 부족등의 원인 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무기가 딸린다는 소리였다.
아무리 초짜라도 다발총만 있다면 전장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다.

“이길 수 있어.”

최근들어 반도 내에서 일본의 핍박이 강해지자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만주로 대피했고 그중에는 독랍군도 대다수 존재하였다.
그런 독립군들을 토벌하기 위해서 일본은 호시탐탐 만주로 군을 보내기 위해 대기를 타고 있다.
그런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이 무기들은 작지만 분명한 힘이 될 것이다.
그때

“거기 잠깐 멈춰.”

경찰의 제복을 입은 한 남자가 한수영에게 소리쳤다.
괜히 다투기 싫어 한수영은 최대한 다정하게 말했다.

“무슨 용건이세요?”

“일단…”

경찰이 모자를 조금 위로 올리자 한수영에게 조금은 친숙한 얼굴이 튀어나왔다.

“밥 좀 먹자.”

조금 굳은 얼굴을 한 김독자였다.

*

“너, 여긴 어떻게 왔냐? 접선지는 여기가 아닌데.”

“막혔어.”

“뭐?”

“평양이 막혔어. 밀항선장이 일본인에게 폭로해서 유중혁이 고전중이래”

“그렇다면…반도를 통과할 수 밖엔 없다?”

“대안이 없어.”

“인원은? 우리 둘이 전부야?”

“불행중 다행으로 이현성과 연락이 닿았어. 자기들도 최대한 내려가 보겠다곤 하는데 백두산 정도가 최대일 것 같아.”

“그렇다면…백두대간으로 가는 게 제일 적합하겠네.”

“괜찮겠어? 산은 체력을 많이 소비 한텐데…”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아무튼 서두르자. 시간이 없어.”

“그래.”

둘은 서둘러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때 한수영이 김독자에게 물었다.

“근데, 넌 몇 살인데 나한테 반 말이냐?”

“나? 열 일곱”

“에엑? 애기네”

“뭐래, 넌 몇 살인데?”

“시팔”

“…나이 물어봤는데 욕은 조금 너무하지 않아?”

“아니 내 나이가 18살이라고!”

둘 사이에 머쓱한 기류가 흘렀다.

“결정했으면 빨리 출발하자, 속전속결이라고 했어.

”알았어, 준비하자.“

값을 지불한 김독자가 먼저 나간 한수영의 뒤를 쫒았다.

*

덜컹 덜커엉 쿵

철로 만든 마차의 바퀴가 결국 산 중턱을 넘지 못하고 돌에 걸렸다.

”이 정도면 많이 온거야. 이젠 총을 우리가 움겨야지.“

”뭐? 소총 한 자루당 6근(3.6k)은 될텐데?“

”그러니 조금씩, 여러 번 움직여야지. 그리고 넌 내가 더 나이 많은데 왜 존칭 안쓰냐?“

”한 살 차이는 그냥 동갑이라고 아버지한테 배웠어.“

”에휴…아무튼 이제부터 작전을 설명할 거야, 잘들어“

한수영이 지난 번 꺼냈었던 반도의 지도를 마차 위에 펼쳤다.

”우리는 지금…여기 있어.“

한수영이 의정부 근처 운악산을 가르켰다.

”이곳은 한북정맥(漢北正脈)의 중심부인 운암산이야. 이 산맥을 타고 올라가면 백두대간중 하나인 죽가령(추가령)에 도착하게 돼. 총을 숨길 수 있을 거야. 그곳에 총을 숨겨놓고 조금씩 움기는 거지. 우리는 소총을 다섯 자루 씩 매고 부전령 까지 가야 해. 모두 움기고 나면 다시 다섯 자루씩 백두산 가지 움겨야 되겠지.“

”…오래 걸리겠네.“

”그만큼 중요해.“

한수영의 말을 모두 들은 김독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가자, 죽가령으로“

”그래.“

산맥을 따라 걷다보니 체력을 많이 소비할 것 같아 이들은 산 중턱을 돌아가며 빠르게 이동하였다.
거리가 비교적 짧았기에 이번엔 15자루씩 낑낑대며 움겼다. 그렇게 10주야정도 지나니 죽가령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으어어 죽가령이다…“

”다…왔다…씨발…“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한수영이 들판에 대(大)자로 누웠다. 그 옆으로 김독자도 풀 위에 엉덩이를 붙였다.
잠 자고 밥 먹고 용변을 볼 때를 빼면 걷기만 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이제 여기서 이 총들을 숨겨야 되지?“

”그렇지…“

”그럼 빨리 올라가자.“

”젠장할 조금 쉬고 싶다고…“

둘은 같이 산을 올랐다. 혹시라도 산짐승 등을 만나게 되면 함께 맞서 싸우기 위함이었다.

”우와악!“

김독자의 발이 깍아 만든 듯한 절벽 밑으로 떨어지려 하였다.

”야! 조심해!“

한수영이 제빨리 팔을 뻗어 김독자를 잡았다. 엎드린 상태로 주변 작은 나무를 잡은 한수영이 김독자를 위로 들어 올리기 위해 용을 썼다. 그런데

”어?“

김독자가 떨어질뻔 한 그 절벽에 넝쿨 식물로 덮혀있어서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동굴이 있었다.

”야…김독자…저 옆에…동굴 있…어…“

”어? 뭐가 있다고?“

”옆에…동굴..이…“

”좀 크게 이야기 해줘!“

”아 씨발 저기!“

한수영이 일어서며 손가락으로 동굴 쪽을 가르켰다. 그 손은 김독자를 잡고 있던 손이었다.

”야아아아! 한수영 죽여버린다!!!“

*

검은 바위로 이루어진 동굴에서 장작이 타닥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여기 이런 동굴이 있었다니…“

”여기 오길 잘했지?“

”여긴 왜 동굴이 있는거야?“

”여긴 화산이거든.“

”뭐? 그…그럼 폭발할 수 도 있는 거 아니야?“

”여긴 오랬동안 폭발 안했어. 그러니 안심해. 이건 용암 동굴이야. 탐라에 동굴이 많은 것처럼 여기도 비슷한 거지.“

”야 탄다 탄다!“

”아 처먹을 거면 니가 좀 해!“

방금 잡은 토끼의 고기가 노릇노릇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

”토끼가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근데 제일 맛있는건 돼지야, 나중에 맷돼지 한 번 잡자.“

”좋은 생각이네.“

해는 벌써 지고 있었다. 산이라 그런지 유독 날이 빨리 가는 것 같았다.

”오늘은 여기에서 자자.“

김독자가 자신의 가방에서 침구류를 꺼냈다. 전엔 근처에 마을이 많아서 숙소를 잡았지만 강원도에 온 이상 산 뿐이었기 때문에 아껴두었던 얇은 이불을 꺼낸 것이다. 두꺼운 이불 보다야 못했지만 나뭇잎보다는 나았다.

”…너 그런 것 도 있어?“

”이래봬도 부잣집 아들이야.“

한수영이 김독자에게 다가왔다.

”저기…그것 좀 빌려주라.“

”안돼, 하나 밖에 없거든.“

”가녀린 숙녀 한테 양보도 못하냐?“

”니가 어딜 봐서 가녀리냐?“

”아 그러면 같이 자던가!“

그래서 같이 자기로 했다.

*

별이 하늘을 수놓은 밤.

한 동굴 안에선 나뭇잎을 깔고 누운 남녀가 있었다.

‘이런게 아닌데…’

자지도 움직이지도 못한 채로 가만히 누워 있었다.
슬쩍 옆을 돌아본 김독자의 얼굴에 홍조가 띄었다.
한수영이 김독자에게 기댄 채로 잠들어 있었다.

‘왜 이런 선택을 해가지고…’

김독자는 밤에 잠깐 근처를 살펴보러 동굴을 나갔었다. 그런데 다시 돌아와보니 한수영이  너무 불편해하며 잠을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이 조금 안쓰럽고 귀엽기도 하여…잠깐 귀여워? 아니아니 그런건 아니고 아무튼
불편해 보여서 잠깐 팔배게를 해 주었는데 그것이 편했는지 한수영은 아예 거의 안긴채로 잠들어있었다.

‘이거 참…움직이면 깰까봐 못 움직이겠고 자면 잠꼬대 할까봐 못자겠네.’

여러보로 신경이 많이 쓰이는 밤이었다.


*


아직 여명이 지워지지 않은 아침, 한수영은 알수 없는 포근함과 함께 잠에서 깼다.

‘뭐지 이 푹씬함은’

눈을 뜨자 한수영의 앞에는 남자의 몸이 있었다.

‘…ㅅㅂ?’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한수영이 주변을 살폈다.

‘내가…김독자 한테 안겨서 잤다고…?’

뭔가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은 아침이었다.

*

“오늘 아침은…토마토다!”

돌로 만든 탁자에 잘 익은 토마토가 차려졌다.

“지난번에 받은 음식이 다 떨어지고 이거 밖에 안 남았더라. 에휴…”

김독자는 그 토마토를 보며 얼굴을 굳혔다.

“나…토마토 못먹는데…”

“수분도 섭취가고 배도 부른 걸로는 토마토가 제일이야! 빨랑 처먹어!”

“안먹는다니까?”

“굶어 죽을래 맞아 죽을래 먹고 죽을래?”

“…살 수는 없는 거니?”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