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주변을 돌아보니, 이 모든 것이 꿈만 같이 느껴졌다.

행복한 삶이 계속되는 것이....방금까지 있던 일이.....

침대에 걸터앉아 상념에 빠지게 한 것도, 그 상념에서 나를 다시 행복한 현실로 돌려준 것도 한수영이었다.

"나 왔어."
".....응."
"나 머리 좀 말릴게."

한수영이 화장대 앞에 앉아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자 나는 자연스레 뒤로 향해서 드라이기를 뺏어 들었다.

"어?"
"내가 말려줄게."
"아.....응, 고마워."

위이이이잉.

드라이기 소리가 들려오고, 한수영의 부드러운 머릿결을 만지고 있자니, 지금이 현실이라는 것이 점차 선명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곳은 현실이고 방금 전까지 나와 한수영은.....

나도 모르게 떠오른 정사를 어떻게든 다른 생각을 함으로써 이거내고 한수영의 머리를 전부 말려주었다.

"이제 잘까?"
"응....피곤하다."

한수영은 오늘 아침부터 에너지를 많이 소비한 탓인지, 침대에 눕자마자 거의 반쯤은 이미 잠이 든 것 같았다.

"내일도 여기 있으니까, 푹 자. 뭐 특별히 다른 일정 없으니까."
"웅.....고마워어....."
"잘 자."
".....웅, 독자도 잘 자아....."

마지막까지 말 맺는 것도 힘들었는지, 마지막 말과 함께 한수영은 곤히 잠들었고, 나도 그런 한수영을 보고 작게 웃고는 짧게 입을 맞추고 잠에 들었다.

잘 자. 수영아.

*

"하아아암....."

창문을 타고 비춰오는 태양빛에 눈을 뜨고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니, 상황 파악이 완료되었다.

"아....어제 그러고 잤었지."

나는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킨 다음에 옆을 돌아봤지만, 한수영이 보이지 않았다.

음? 어디 갔지?

그때 방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가니 한수영이 소파에 누워 있었다.

"수영아....? 침대에 있지 왜 거기 누워있어? 불편하게."
"아니....그....."

하지만, 한수영은 그런 나를 보고도 일어나지 않고, 그저 똑바로 누워서 말을 이었다.

"오늘 일어나서 너 자는 거 보고 아침 해주려고 했는데....."
"그런데?"
"허리가 너무 아파....."
"아....."

나는 어제 한수영과 나눈 일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돌리며 헛기침했다.

"미안....."
"아니야! 전혀 너가 미안해할 일은 아니지."

미안한 마음에 한수영에게 다가가 부축해 일으켜주고는 [도깨비 보따리]에서 허리에 좋은 약을 사서 한수영에게 건내주었다.

"일단 이거라도 먹어. 금방 괜찮아질 거야."
"응....."
"앞으로는 좀 조심해야겠네....."
"아, 아니야! 나 진짜 괜찮으니까, 똑같이 해줘."
".....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걱정 안해도 된다고....."

한수영이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이자, 나는 웃으면서 다가가 옆에 앉았다.

"알았어. 그래도 일단 오늘은 완전 여유로우니까, 편히 쉬자."
"응."

원래대로라면 오늘은 밖을 좀 돌아다닐 생각이었지만, 한수영의 상태가 생각보다 좋지 않았기에 오늘까지 안에서 쉬기로 결정을 했고, 우리들은 어제와 다름없는 시간을 보냈다.

"밥 먹자."
"응."

어제와 똑같이 조금 쉬어서 괜찮아진 한수영이 점심을 해주었고, 나는 저녁으로 보답했다.

"오늘은 그냥 얘기하다가 자자."
".....응. 솔직히 너가 원하면 해주고 싶은데, 어제가 처음이어서 그런지 오늘은 좀 참아주라."
"당연하지. 너가 원하는대로 다 해줄게."
"응....고마워."

쪽.

한수영이 얼굴을 붉히며 침대에 누운 내게 입 맞추고는 자신도 누웠다.

"고마워. 참는 것도 힘들텐데, 항상."
"뭘, 이런거 가지고."
".....그, 다음에....원하는 대로 해줄게."
"그런 소리 함부로 하면 너 큰일날텐데."
".....변태."
"음....그냥 변태하지 뭐."
"뭐야 그게."

어제와는 달리 달콤한, 하루의 피로를 싹 씻어주는 대화를 나누며 침대에 누웠고, 우리 둘은 언제부턴가 손을 꽉 잡은 채 하루를 보냈다.

*

"흐음....."

한수영은 시간이 흘러 저절로 떠진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무언가가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것을 느끼며 이불을 살짝 들췄다.

"......"

김독자가 자신의 손을 꼭 붙잡고 깊은 잠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며 한수영은 작게 미소지으며 다시 누워 김독자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잘생겼네.'

조심스레 잡지 않은 손으로 김독자의 머리카락을 쓸며 얼굴을 조물조물 만져보았다.

'내 남친.....'

그리고 김독자와 있었던 일을 회상하다 시나리오가 시작되고서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하며 쓴웃음을 지었고, 아군이 되었을 때를 회상하며 작은 미소로 바뀌었다가, 빌어먹을 희생이 떠올라 인상을 구기면서도 생생하게 재생되는 생각을 멈추거나 하지 않았다.

'욕심쟁이네.....대체 몇 개의 소설을 읽고 싶어하는 거야.'

자신이 써준 소설을 두 개나 읽으면서 살아남아 지금에 와서도 로맨스 소설을 읽고 있는 김독자의 모습에 한수영은 모르는 사람이 봐도 사랑이 느껴지는 눈으로 조용히 잠든 김독자를 바라보았다.

'평소에는 그렇게 장난기 있고 따뜻하고 배려많은 애가, 밤에는.....'

그리고 흐르던 기억이 최근의 기억에 도달하자, 떠오른 첫날밤의 기억에 얼굴을 잔뜩 붉히며 약하게 손부채로 얼굴을 식혔다.

"으음....."
"....일어났어?"
"아.....응."

아직 온전히 깨지 못했는지, 어눌한 말투로 대답하는 김독자가 귀여워보여서 한수영은 김독자의 품으로 쏙 들어가 껴안은채로 김독자를 올려다봤다.

"얼른 일어나. 이제 슬슬 나갈 준비해야지."
"아.....그러네."

쪽.

김독자가 갑작스레 자신에게 입술을 맞추더니 침대에서 일어났다.

"지금 몇시야?"
"....언제부터 이렇게 능숙해진 건지.....지금 9시 30분 조금 넘었어."
"아....11시까지 나가야하니까 슬슬 준비해야겠네."
"그래. 얼른 씻어."
"응, 나 먼저 씻을게."
"그래."
"....."

슬슬 준비를 해야하는데 김독자가 옷을 들고서 멀뚱멀뚱히 서 자신을 보고 있자 한수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래?"
".....같이 씻을래?"
"닥치고 얼른 씻고 나와."
"넵."

황당한 김독자의 물음에 내가 눈을 치켜뜨자 김독자는 작게 미소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에휴....엉큼해졌어, 언제는 취향 아니라면서."

*

위이이잉.

샤워를 하고 나와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나와서 옷을 갈아입었다.

"난 준비 끝."
"그럼 먼저 짐 좀 싸주고 있어. 나도 금방 씻고 나올게."
"응."
".....엿보면 죽어."
"알았어, 당연히 안 그러지. 내가 그렇게 못 미더운가?"
".....그냥 해보는 말이지. 왜 또 삐지고 그래.....미안해."
"괜찮아. 얼른 씻고 나와."

나는 한수영의 빠른 사과에 약간의 불만도 깨끗히 사라지자, 작게 미소를 짓고는 먼저 짐을 챙겼고 뒤이어 나온 한수영과 짐 정리를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

"진짜 좋았어."
"나도. 여행도 사실 처음 와본 거라."
"나도 그래."

짐을 차에 싣고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점심을 고르고 있었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음.....딱히?"
"그래....? 흠....역시 뭐 먹을지 고민하는 게 가장 힘들어...."
"그냥 분식이나 먹을래?"
"여행와서 분식은 좀 그렇지 않아?"
"뭐 여행이라고는 해도. 다음에도 또 올 수 있고, 분식이라고 여행와서 먹으면 안되는 것도 아니잖아?"
"음....그것도 그러네. 그럼 분식 먹자."

고민끝에 분식으로 메뉴를 고르고 들어간 분식집에서 맛있게 밥을 먹고서야 우리는 다시 차에 올라탔다.

"출발하겠습니다."
"네, 조심해서 부탁드려요."
"분부대로."

*

2박 3일의 여행이 끝이나 다시 차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생각보다 이동하는 차가 많아서 예상 시간보다 긴 시간이 소요되었고, 가는 둥 마는 둥 이동했기에 한수영은 피로에 못 견뎌, 곤히 잠에 들었고 나는 그런 한수영의 의자를 조심히 눕히고서 조심히 운전을 해 막혀서 늦어진 예상시간보다도 조금 더 늦게 집에 도착했다.

"수영아~ 일어나~"
"으음....."

한수영이 비몽사몽한 상태로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나는 의자를 먼저 일으키고는 한수영의 손을 꼭 잡아주고서 다시 한수영을 깨웠다.

"수영아 도착했어."
"아....도착했어?"
"응."
"운전하느라 수고 많았어...."
"흠....? 그게 다야?"
"어휴.....수고 많았어 자기."

내 부탁에 못 이겨 한수영이 나를 달콤하게 불러주었다.

음~ 운전으로 인한 피로가 한 번애 싹 가시는 느낌.

"덕분에 하나도 안 힘드네."
"뭐래."

턱.

한수영과 차에서 내려 집 안으로 들어가자, 차가 온 소리를 들어서인지, 집에 있던 일행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어서오세요."
"다녀왔어."
"오냐."

가장 먼저 마중을 나온 아이들의 반가운 인사에 대답하고서 우리는 짐을 끌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독자 씨 어서오세요."
"네, 다녀왔습니다."

이어서 다른 일행들과도 인사를 하고서 우선 짐을 풀고서 나는 일행들에게 조금만 쉬겠다 말하고서 침대에 드러누웠다.

"하아아암....."

육체적으로 힘들지는 않았지만, [제 4의 벽]도 없는 지금, 정신적 피로는 조금 있었다.

조금 자고 일어나야겠다.

*

똑똑똑.

"들어가도 돼?"

.....

한수영은 여행때 꾸준히 자신을 챙겨주고 마지막 운전까지 마친 김독자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조금이라도 피로를 풀어주기 위해 방을 찾아갔지만, 노크를 해도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벌써 잠들었나.....?"

똑똑.

다시 한 번 노크를 해도 대답이 없자, 한수영은 조심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냥 들어갈게...."

예상대로 김독자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서 입고 온 옷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워 자고 있었다.

한수영은 그럼 김독자에게 다가가서 몸을 움직여 침대에 바로 눕혀주고는 침대에 걸터앉아 김독자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육체적으로는 전혀 무리가 없었을 김독자가 이렇개 뻗은 것을 보니, 역시 마지막 운전에서 많은 정신적 피로가 쌓인 모양이었다.

"고생많았어.....도, 독자 오빠."

아무도 듣는 이 없는 말이었지만 한수영은 오빠라는 단어가 주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김독자의 이마를 쓸어주고서 조용히 김독자의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이건 고생한 내 남친에게 주는 상."

그리고 그대로 흘러내리는 자신의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이마에 입을 맞춰주었다.

쪽.

"고생했어요."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으로 향하다가 그 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다.

"언니 대박....!"
"헐...."

'.....망했다.'

문 앞에서 안쪽을 바라보고 있는 정희원과 이지혜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한수영은 망했다는 감정을 여실히 느낄 수가 있었다.

"다들!! 모여봐!!"

이지혜가 잔뜩 신이 난 얼굴로 거실 쪽으로 뛰어가자 한수영은 소리를 지르려다가 우선 발걸음을 떼 방에서 나와 문을 닫았다.

"아~씨, 독자 깰까봐 소리지를 수도 없고."

그리고 그대로 달려 이지혜를 쫒았지만.....

"그래서 수영 언니가 방금!"

이미 늦은 것 같다.

"너 안 닥쳐!"
"헐.....언니, 아저씨가 언니가 나쁜 말 쓰는 거 싫어하는 거 알면서."
"그건 그거고! 어디까지 얘기했어!"
"음....그냥 수영이가 자고 있는 독자씨에게 달콤한 말과 행동을 쏟아내면서 이마에 뽀뽀했다는 거?"
"유상아! 너까지!"
"반응이 재밌어서 그만."
"이지혜!"
"살려줘 언니!"

행복한 여행의 뒤에는 뜨거운 뒤풀이가 남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