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 자신은 차에 치인 너무나 현실같던 꿈 아니 꿈인지 아닌지 모를 현실과 꿈의 경계에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고 육체를 통제할 수 있게 되자 유상아는 걸음을 내딛었다. 어디를 향해서? 무엇을 위해? 그런 것은 몰랐다. 그저 걸어야 할 것만 같은 본능에 따라 걸었다.
['여보 대체 상아한테 왜 그러는 거에요!'
'저리가 이 여편네야!'
"이 소리는..."]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던 그날의 기억. 유상아의 인생이 뜻하지 않는 변환점을 맞을 때.
유상아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한 걸음씩 걸어갔다. 한 걸음 내딛을때마다 잊고 있던 작은 기억의 조각이 흘러 들어왔지만, 유상아는 그것들을 무시하고 걸어갔다.
이윽고 소리의 근원지에 도착했을 때, 유상아는 이곳이 어디인지를 깨달았다.
이곳은 자신의 기억이 모이는 장소라는 것을.
삶이라는 이야기에 결말을 맺은 이는 자신의 삶을 돌아볼 기회를 얻는다.
그 기회를 얻는 곳이 바로 이곳, 유상아가 있는 장소인, 기억의 무덤인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을 알리 없는 유상아는 하나씩, 하나씩 자신의 기억을 탐닉해갔다.
어느 기억은 희미했고, 어느 기억은 자신이 기억하던 것과는 달랐다.
한 이야기를 다시 읽을 때,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처럼. 유상아 자신의 기억임에도 어딘가 낯선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기억들을 탐닉해갈 때, 유상아의 눈에 한 기억이 들려왔다. 마치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듯이.
['그럼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어떻게 됐나요?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언제였던가, 차에 치였을 때 떠올렸던 질문의 답이 저곳에 있었다.
그 답을 향해 손을 뻗을라 하자, 한 불덩이가 유상아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자신을 위로 해주는 듯한 따뜻한 불길에 유상아는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다.
***
딸랑.
시끄러운 카페 내부와는 달리, 종소리는 은은했다. 은은하게 퍼진 종소리가 사람들의 소리에 섞여 갈 때, 순간 주변에 소리가 멈추었다.
"무슨 얼굴이.."
"미친 진짜 잘생겼어.."
주변의 반응이 싫은 듯 얼굴을 찡그린 유중혁은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걸을때마다 느껴지는 온기는 그와는 거리가 너무 먼 것이었다.
망자들의 울부짖음, 슬픔, 분노. 이런 차가운 감정을 느껴야하는 저승사자이기에. 유중혁은 카페에 오는 것을 그닥 선호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유중혁이 이곳에 온 이유는
"어 중혁아 왔어?"
이 뻔뻔하게 웃고 있는 이 남자때문이다.
"김독자...!"
"어우 여기서 화내지말고 일단 앉아."
겨우 겨우 터질듯한 분노를 누른 유중혁은 자리에 앉았다.
"김독자. 어제 저녁 11시 58분 네놈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뭘 말이야?"
"한 사람의 생명이 다시 타오르는 일. 그것이 너 밖에 더 있나?"
음절 음절 하나 하나에 분노가 스며들었다.
"언제 들키나 했는데 이렇게 바로 들킬 줄 몰랐네."
"인과율을 거스르는 것이 무엇을 초래할지는 누구보다 잘 알터인데. 왜 그런 것이냐 대답해라."
마치 대답을 안하면 정말로 죽일 것 같은 느낌. 어딘가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김독자는 입을 열었다.
"악귀였어."
"....뭐라고?"
"내가 살린 사람. 악귀때문에 죽었다고."
악귀(惡鬼).
저승사자가 미쳐 잡지 못한 영혼에 한이 쌓여 만들어진 귀신. 쌓이는 한에 따라 저승사자를 죽이는 일도 벌어지기도 한다.
악귀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은, 악귀가 될 확률이 높기에 인과율을 거스르더라도 살리는 것이 원칙이다.
"그럴리가. 근 200년간 악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랬지. 하지만 분명 악귀였어."
말을 하는 김독자의 표정에 아주 잠깐 슬픔이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일반인이었다면 몰랐겠지만, 유중혁은 아주 찰나에 드러난 그의 슬픔을 놓칠리 없었다.
"그 악귀. 네놈이 '인간'이었을때 만난 적이 있었나?"
"....그냥 느낌만 비슷한 거야."
"...알겠다. 이만 가겠다."
자리에서 일어난 유중혁은 카페를 나섰다.
그 자리에 남아있던 김독자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 앉아 사람들의 표정을 지켜보았다.
'독자씨!'
'독자형!'
'아저씨!'
지금은 조금 먼 과거의 인물들. 그들과 만나고, 헤어지며, 그에게 슬픔이라는 것을 알려준 이들.
사람들이 웃을때마다 그들도 웃는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마치 지금처럼 생생하게.
이것은 기만이다. 나에게 하는 기만. 그들은 죽었고, 그들의 이야기는 결말을 맺었다.
다시 그 이야기를 쓰고 싶었지만, 그는 그들에게 너무나 큰 죄를 저질렀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이어주지 못했다.
"그런데 왜 너희들은 악귀가 되버린거야. 벌은 나 혼자 받아도 충분한데."
주변의 온도는 따뜻해도 그에게 만큼은 차가운 밤이었다.
후기 : 다음 편은 언젠간 써보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