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년은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어딘가 포근한 느낌이 드는 어둠 속에서, 소년은 자신이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어둠 저편에서 검고 반짝이는 무언가가 자신에게로 몰려오는 것을 보았다.

 무기력하게 떠다니던 그에게 닿은 활자는 기억을 노래했고, 계속해서 다채롭게 변화하는 공간에서 그는 잠시 멍하니 있었다.

 곧, 그는 양손을 꼭 붇잡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은 마치, 사랑하는 이에게 안겨 웃는 아이 같았다.



...



'여긴 어디지?'


 정신이 드는 순간, 눈꺼풀 너머로 느껴지는 환한 불빛과 그것을 살짝 가린 그림자가 보였다.

 눈이 감긴 채, 몸이 다시 구성되어가는 것을 느끼며 길어진 찰나 속에서 기억을 더듬었다.

 마지막 기억은... 그리운 느낌이 드는 어둠 속에서 깨어난 내게 문장을 건넨 녀석.

 녀석은 내게 '내가 너흴 읽어줄게'라고 적고선 말도 없이 사라졌었고...


'...미안하다. '


 모든 것이 이해됐다.

 녀석, '제4의 벽'은 수많은 '김독자'를 대신해 '가장 오래된 꿈'이 되었고, 나는 모든 '이야기'를 되찾아 동료들에게 돌아온 것이었다.

 ...신체의 통제권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음에 감사했다. 아니었다면 분명, 흘렸을 테니까.

 감각이 돌아오며 온기가 느껴지고,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서로 다른 문장들이 외치는 소리였지만 마치 화음을 쌓아가듯 어우러진 이야기는 모두 모여 '나'를 이뤘다.

 기억의 편린에서 본 소설이 나를 잠시 감싸안았다가 끝을 고하듯 흩뿌려지는 그 사이로.

 내가 지켜봐왔고 사랑했던 이야기들이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될지 고민하던 나를 감싸안는 그들의 따뜻함을 느끼며, 말이 필요치 않음을 느끼고.

 애써 굳은 몸을 움직여 나도 그들을 안았다.

 다시금 세상이 암전되기 전 그때 내 표정이 어땠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앞의 그들은 모두 웃고 있었다.







 한수영은 빛 속에서 몸을 일으키는 형체를 보았다.

 소년에서 성인으로 변해가는 그는 오래전 보았던 그 복장을 하고 있었고, 흩날리는 원고지들 사이에서 마침내 몸을 일으켰다.

 자신이 바보같이 웃으면서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달려나가고 있음을 인지하면서도.

 일어난지 얼마 안 된 그에게 안정이 먼저임을 이해하면서도.

 그녀는 달려가서 그를 껴안고 있었다.

 뒤를 이어 들어온 동료들이 다 같이 달려와 끌어안은 그 속에서.

 상대의 체온을 느끼며 힘겹게 고개를 들어서.

 그의 뺨에 흐르는 눈물 한 방울과 그립고 익숙한 미소를 보면서 한수영은 생각했다.

 정말이지, 바보 같다고.


...


 눈을 뜨자 보이는 새하얀 천장. 막 동이 트면서 밝아지는 온통 새하얀 시야 구석에 검은 물체가 보였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보이는 검은 차림의 사내. 그 아래에는 이불을 가져와서 내 병실 침대 주변에 누워 자고 있는 동료들이 보였다.


''...돌아왔구나.''


 나도 모르게 조심스럽게, 이 세상이 이제라도 깨어질까 걱정하며 작게 읊조린 뒤에야 새삼스럽게 실감이 났다.

 그리고 그 속삭임을 들었는지 대답이 돌아왔다.


''일어났나.''

 ''중혁아.''

 ''뭐지?''

 ''그냥 한번 불러 봤다.''


 불침번을 서고 있던 건지 기둥에 기대어 서 있는 유중혁의 옆에는 조그만 책상과 책이 있었다.

 ...그나저나 저 녀석은 왜 불침번을 서 있던 거야?


 ''중혁아.''

 ''이번엔 또 뭐냐.''

 ''왜 그러고 있냐?''

 ''....''


 유중혁은 말 없이 앞에 있는 한수영을 발로 툭툭 쳤다.

 ...저럴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을거다.

 여러번 치자 한수영은 잠깐 웅얼거리더니 일어나서 멍하니 유중혁 쪽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정신이 좀 드는지 고개를 휙휙 돌리더니 내 쪽을 보고선 다시금 훌쩍였다.

 내가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하는 사이에 진정이 됐는지 한수영은 비틀거리며 다른 이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야... 일어나... 김독자 일어났어...''


 ..저렇게 작게 말하면 들리기는 할까?

 그런 의문도 잠시, 그 말을 듣고 일어난 일행들은 단체로 눈을 비비더니 나를 보고선 조용히 다가와 둘러쌌다.


 ''여러분?''


 나와 멀리서 지켜보는 유중혁을 제외하고 서로 눈짓을 주고받더니 유상아가 내게 말을 걸었다.


 ''독자 씨, 토마토 좋아해요?''

 ''....예?''


 이건 갑자기 무슨 질문인가.

 잠깐 얼빠진 채 있다가 질문의 의도를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좋아합니다.''




 


 심장이 철렁했다.

 또 다시 도망친 건 아닐까, 아직도 그곳에 김독자가 남아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독자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떨구던 그들은 애써 웃으며 다시 그를 바라보았고,


 ''...아 진짜!!''


 김독자의 귀에 걸릴 듯이 올라간 입꼬리와 그런 김독자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유중혁을 보고선 그가 농담했음을 깨달았다.


 ''농담입니다, 농담. 저는 토마토 싫어해요. 그리고 다들, 정말 고맙습니다.''


 어딘가 뜬끔없는 김독자의 말을 듣고선 다시금 모두 눈가를 닦았다.

 ..시간이 좀 지나고, 유중혁이 다가와 말문을 열었다.


 ''김독자.''

 ''왜?''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지?''

 ''그렇지 않아도 말하려고 했어. 여러분, 좀 긴 이야기가 될 텐데 괜찮죠?''


 이길영과 신유승은 김독자 옆으로 올라갔고, 나머지 일행은 김독자의 침대 주변에 걸터앉아 김독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아바타를 만들어서 대신 내보냈을 때를 이야기할 때 그들은 김독자를 타박하며 웃고, 0회차의 이야기를 할 땐 놀라워했다.

 슬픈 이야기도, 즐거운 이야기도 이제는 김독자가 있으니 상관 없다는 듯 그들 사이에선 계속해서 웃음이 나왔다.

 이야기하는 도중에 들어온 지인들과 성좌들을 위해 몇번이고 되풀이되는 김독자의 이야기를 그들은 계속해서 들었다.

 유중혁은 아침부터 서 있던 자리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어느 사이엔가 나타난 비유의 물음에 대답했다.


 ''대장, 기분은 어때?''

 ''...더할 나위 없다.''


 유중혁은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



 내가 돌아온 지 어느덧 2주가 지났다.

 몸 상태는 완전히 회복되었고, 나와 함께 돌아온 시스템의 힘도 안정화되면서 모든 것이 제자리를 되찾았다.

 공필두에게서 도심이지만 그럭저럭 한적한 거리의 집을 얻어 모두 모여 살게 되었고, 아이들은 학교에, 동료들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분명 이야기의 행복한 마무리에 있을 터인 나는 지금, 방을 탈출하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야! 김독자 다시는 못 튀게 가둬!''


 한수영이 외쳤고,


 ''독자 씨, 이것 좀 다시 쓰고 다니시는게 좋겠어요.''


 유상아가 긴고아를 들고선 살벌하게 웃었으며


 ''독자 씨는 보호관찰이 필요하니까 제가 감시할게요.''

 ''저도 옆에서 같이 지켜보겠습니다!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을 겁니다!''


 정희원과 이현성이 나섰다.

 그 밖의 모든 인물이 만장일치로 동의하면서 만들어진 감옥이 바로 이 방이었고, 온갖 감시 장치와 생활용품이 구비되어 있고 문이라고는 철문과 창문 하나 뿐이었다.

 물론 처음엔 나도 나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일행들이 밖에서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너무 궁금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조심조심 모든 장치를 파훼하고서 내 아바타를 세워두고 창문으로 탈출했다.


 ''모두에게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어. 음.''


 일단 아이들이 있는 학교로 향해서 가고 있었다.

 길 한복판에서 스킬을 쓰면 들킬 것이 뻔하고, 추격전이 벌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나는 빠르게 다리를 놀려 걸어갔다.

 주변으로 지나가는 복구된 도심을 돌아보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했다.

 맑은 하늘과 상쾌한 공기는 오늘 하루가 무척이나 좋게 흘러갈 거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평소처럼 흰 코트를 입고 나온 것이 잘못이었을까,


 ''...구원의 마왕이다!''

 ''뭐? ..진짜네?! 사진 찍어서 올려야지!''


 순식간에 내 양옆으로 휴대폰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모이고,


 찰칵ㅡ찰칵ㅡ


 나는 내 탈출이 뭣됐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생각을 증명하듯이ㅡ


 ''독자 아저씨 저기있다ㅡ!!!''

 ''김독자 이 자식아!! 거기 안 서?!!''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술렁이며 길을 여는 모습에 나는 조용히 양 손을 올리며 대화를 시도했다.


 ''얘들아, 내 말 좀 들어ㅂㅡ''


 퍼억!



...



 ㅡ김독자 컴퍼니. 내분인가? 오늘 오후 2시경, 우리나라의 영웅 김독자컴퍼니의 대표...

 저녁 7시, 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입을 열었다.


 ''야, 유중혁.''

 ''왜 그러지?''

 ''너 나한테 할 말 없냐?''

 ''나는 0회차의 빚을 갚았을 뿐이다.''

 ''....''

 ''독자 씨! 팔 똑바로 들어요!''


 슬쩍 눈을 돌리는 유중혁과 그걸 노려보는 나, 그리고 그런 나를 도끼눈을 뜨고서 꾸짖는 정희원.

 내 머리에 난 혹을 살펴보던 한수영은 나를 툭 치며 말했다.


 ''야. 그러게 왜 말도 없이 나갔다가 걸려서 그러냐? 너 우리 마음 다 알면서 어떻게 그래? 어? 너 없어지면 또 사라졌나, 또 혼자만 뭐 생각하고 짊어지고 해결하려고 하나, 어디서 쓰러진 건 아닌가 걱정할 사람이 여기 태반인데! 좀 가만히 있어달란 말이야!''


 그라데이션처럼 점점 올라가는 한수영의 목소리가 점점 길어지는 도중,


 ''사실 저는 딱히 그렇게까지 걱정하진 않았어요. 독자 씨도 이제 안 그러기로 했고 믿었으니까요.''


 유상아가 선을 그으며 웃었다. 그러고서 덧붙이는 말.


 ''사실 한동훈 씨가 보내준 사진을 보고서 제일 먼저 뛰쳐나가서 다급하게 움직인 것도 수영 씨였구요.''


 그 말을 들은 다른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쳐다보자 한수영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야! 너희도 당황하고선 급하게 움직였으면서..!아, 아니거든!! 그런거 아니거든?!''


 ''뭐가 아닌데?''


 슬쩍 물어보자 한수영은 휙휙 우릴 쳐다보더니 복도로 뛰쳐나갔다.

 그걸 보며 실실 웃고 있었더니 주변에서 일행들이 하는 말.


 ''역시... 맞는 것 같죠?''

 ''그러게요. 수영 씨는 그때부터 그랬으니까요.''

 ''그치? 놀리러 갈까?''

 ''이지혜. 조용히 해라.''

 ''다들 무슨 얘기입니까?''

 ''그 시꺼먼 누나가? 안 돼! 독자 형은 내 꺼야!''

 ''뭐래, 내 꺼거든!''


 소란이 일어난 틈에 슬그머니 팔을 내리고 한수영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려던 그때.


 ''독자 씨, 팔 다시 올려요.''

 ''넵...''



...



 집 옥상에서.

 한수영은 혼란스러웠다.

 김독자가 돌아오고 나서 2주 동안 생각해 봤던 것이지만 쉽사리 답을 낼 수 없었다.

 머릿속에 아무리 많은 '한수영'을 만들어서 토론해 보아도 여전히 판단불가인 탓에, 베란다 창에서 밖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김독자가 시야에 없으면 불안하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으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보게 만들고 싶고.

 얼핏 보면 그를 좋아하는 것 같지만 그녀가 그렇게 답을 낼 수 없는 이유는 그 모든 것에 또다른 이유가 붙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참동안 별을 보며 사색에 잠겼던 한수영은 이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에휴... 내가 뭔... 그 바보자식, 알게 뭐야? 방에 가서 소설이나 써야지. 이번에 써야할 부분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플롯을 써가는 그녀의 뒤에서 발소리가 났고, 이내 유상아가 옥상 문을 열고 나와서 한수영을 불렀다.


 ''수영 씨.''

 ''왜?''

 ''바람이 차니까 이제 들어가는 것이 어떨까요?''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꺼.''

 ''유중혁 씨가 밥 제때 안 먹으면 없다고 전하라 하시던데요.''

 ''...알았어. 가면 되잖아.''


 한수영은 폰을 끄고서 유상아를 따라 들어갔다.

 절대 밥 때문이 아니라고, 들어갈 때가 된 김에 밥도 챙기는 거라고 마음속으로 애써 변명하는 한수영이었다.



...



 돌아온 지 어느덧  2달이 지났고,

 나는 여전히 백수다.

 동료들에게 직업을 구하겠다고 하면 여전히 쉬라는 대답만 돌아오고, 직접 돌아다니며 구직 활동을 해도 합격 통지를 받은 바로 다음날 이유 없이 철회되기 일수였다.

 하루는,


 ''지혜야.''

 ''왜, 아저씨?''

 ''너 오늘 공강이니?''

 ''아니? 곧 갈건데?''

 ''...그런데 칼은 왜 들고 나가니?''

 ''아, 아저씨는 알 거 없어!! 나 그럼 갔다올게!''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대화지만, 문제는 이 대화가 내가 면접 합격 통보를 받고 동료들에게 알린 다음날이라는 것이다.

 그날 저녁 합격 취소 문자가 왔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의심할 수 있지 않은가?

 이에 대해서 유중혁한테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과대망상이다.''라는 말 뿐이었다.

 다른 동료들도 비슷한 답변만 하는 상황.

 그런고로 그에 대한 생각을 접어두고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면,

 
[설화, '돌멩이와 나'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돌멩이가 되어 거리로 나가 돌아다니는 중이다.

 저번의 실수를 다시 범하진 않으리라...!!

 걸어서 가기 위해 일단 가장 가까운 한수영과 이지혜가 다니는 대학에 왔지만 그냥 들어가도 되는 건가 긴가민가 했다.

 '...뭐, 별일 있겠어..?'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대로 건물 내로 들어갔다.

 바람이 솔솔 부는 한가로운 날씨에 몰려다니는 학생들을 구경하고.

 잔디밭을 지나 건물로 들어가자 보이는 휴게실에 이지혜가 있었다.

 친구와 떠들고 있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지켜보는 도중에 떠오른 사실.

 '한수영은 이미 이 설화를 알고 있으니 효과가 없을 터...  절대 먼저 모습을 보이면 안 돼...!'

 다시금 긴장하고서 한수영이 강의하는 교실을 찾으려고 돌아다녔다.

 새삼 이렇게 긴장하고서 활동하는게 얼마만인지 감회에 젖어있었는데.


 ''김독자..? 너가 왜 여깄냐?''


 아.






참고 : 이 글의 종착역은 독수 역입니다. 환승할 역은 없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