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해요."


이설화의 그 한 마디에 유중혁은 마치 심장이 널뛰는 듯 쿵쾅거리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 중혁 씨?"

"이설... 화..."

"좋아한다구요, 제가 중혁 씨."


아.


순간 그는 알 수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실타래처럼 흩날리는 흰 머리칼이, 세상에 저만을 담은 듯 순수하고 말간 눈동자가, 그리고 모든 것들이, 각인처럼 남으리라는 것을.


사랑은 지치지 않는다. 

사람은 지치고 실수하지만, 사랑은 남는다.


유중혁은 그 순간 이미 몇천번의 회귀를 거쳐서라도 다시 이설화를 사랑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언젠가 그나 그녀가 지쳐 버거워 할 때, 언제든 그는 세상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으므로.


그렇게 평생을, 몇만년을 이어갈 맹세를 깊게 다짐하며, 유중혁은 이설화에게 입을 맞췄다.


첫 키스였다. 첫 눈같은 여자와의.


*  *  *


여자 의사 한 명이 죽었다. 

사인은 자살이었다. 


유중혁은 문득 그가 그녀와 키스를 한 시점에서 이미 두 번의 회귀를 거쳤음을 기억해냈다.


그래서 그렇게 싫어했나. 잠에 취해서 한 짓을.

점차 맑아지는 정신을 뒤집어보니, 이번 회차의 이설화는 아이를 가지고 있었던 것도 같다. 

아니, 그건 저번 회차인가.


그녀가 기쁘게 임신을 알리는 순간 스스로 목에 검을 꼽는 감각이 여전히 생생했으니까.


그렇다면 이설화는 이번 회차에서 왜 죽은 거지? 남편에 대한 정절도 아닐 텐데. 

아니면, 고작 강압적인 관계 한 번에 의지를 꺾여서?


그런 상념에 잠겨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순간이었다.


"이 싸이코패스 새끼!"

"..."


순간 마주친 유중혁의 눈동자에, 남자는 흠칫했다.

그가 항상 봐오던 권태가 아닌, 다른 감정이 그의 칠흑같은 눈동자에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잠시였다.


"그렇게 야리면 뭐 어쩔건데! 이, 개자식아! 아이를 임신했다는 여자 앞에서 갑자기 제 목에 칼을 쑤셔넣더니, 기껏 살려두니까 내 아내를 범해!?"

"... 아, 그렇게 된 거였나."


유중혁의 눈동자에서 흥미가 사라졌다. 

이번 생은 글러먹었나.


앞으로 이설화가 임신했을 때에는 그냥 남편을 쥐도새도 모르게 죽여볼까? 

그러면 힘도 없고 그 와중에 아름다운 여자가 어떻게 되는 줄 잘 아는 이설화라면 그에게 기꺼이 도움을 청할지도.


"... 이 개...!"


쾅! 


남자의 얼굴은 뭉개진 듯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변해있었다. 

아니, 이미 안면이 다 벗겨졌는데 그렇게 설명하는 게 맞을까.


유중혁은 피에 젖은 손을 잠시간 응시하다, 이내 짙게 밴 웃음을 터트리며 눈을 곱게 접었다. 

흰 건치가 다 드러나 광기마저 엿보이는 웃음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남자 하나가 죽었다.


사인은 자살이었다. 어느 여자 의사와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