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난 이제 지쳤어. 허망하고 긴 짝사랑에.
끝없이 너만을 되새기던 밤은 이제 끝이라고, 한수영은 그렇게 되뇌였다.
별 짓을 다 해도 살아나지 않는데, 뭘 어쩌라고.
시체나 다름없는 허상을 끌어안고 사랑에 목맨 사람처럼 평생을 지낼 수도 없는 법이었으니.
한수영은 들고 있던 노트북을 거칠게 내리쳤다.
"... 또 지랄이군."
"말투가 경박해지셨어, 회귀자 나으리."
무언가 허탈하다는 듯 웃는 여자를 유중혁은 그저 바라보다, 이내 알 수 있었다.
감정에 무디고 공감하기엔 빛이 바래버린 사람이지만, 이렇게 대놓고 미친 년 마냥 상처입은 고양이처럼 굴면 모르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으니.
유중혁 역시 그런 과일 뿐이었다.
그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김독자는 살아있어. 난 그걸 느껴. 그리고 너도 알잖아? 그 새끼가... 언젠가는..."
"그만. 백주대낮부터 술이라도 쳐먹은 건가."
그 말을 하루에 세 번 씩은 듣는 것 같아, 귀에 딱지가 내려앉을 지경인데.
하지만 그걸 알 턱이 없는 한수영의 얼굴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네가... 내가 느끼는 걸 못 느끼면, 누가 날 알 수 있지?"
"누구도 서로를 완벽히 알 수는 없어."
"지금 그딴 소리를 하자는 게 아니잖아! 그 미련한 새끼는 독자고, 난 작가고, 넌 주인공이야!"
"..."
"그러니까, 그러니까 너는 날 이해해야지. 다른 모두가 내게 미련을 접으라고 말하며 질책해도 너만은 나와 같은 늪에서 영원의 고통에 잠식되어야 하는 거잖아. 나는 그런데, 너는!"
한수영은 일종의 광기와 닮아있었다.
혹자는 이걸 사랑이라고 말하곤 했다.
사랑. 이딴 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는 알 수 없었다.
적어도 그의 통념 속의 사랑이란, 이런 광기를 동반하지는 않았으니.
그러나 유중혁은 또한 확신할 수 없었다.
세상에는 한수영과 같은, 미친 사랑이 존재할지도 몰라. 하룻밤 열병에 취한 듯 따스한 열감을 가진 첫사랑과도 같은 파릇한 것은, 그가 아는 사랑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넌 왜 김독자를 원하지? 사랑?"
"그런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이것이 사랑이던, 혹은 광증에 사로잡힌 미친년의 집착이던. 한수영은 아무래도 좋았을 것이다.
김독자가 없어 공허한 가슴 한 켠은 사랑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럼에도 일반적인 타자들이 상상치 못하는 정도로 그를 바라는 것은 집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녀에게 김독자가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는 결코 채워지지 못할 결핍이라는 것.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한수영은 또 미친 사람처럼 악을 써대기 시작했다.
"왜! 하필이면 왜 김독자야! 세계를 설계하고 창조하고 그 모든 것을 본 건 너도, 나도 마찬가지잖아! 왜 하필이면 그 새끼냐고! 왜! 왜!"
"너도 알지 않나."
"..."
"이 이야기를 사랑할 수 있는 건 김독자 뿐이야. 나는 지독히 반복되는 회귀에 환멸이 나고, 너 역시 맹목적으로 그 글을 써댄 목적의 끝에는 김독자가 있었지. 하지만 그 녀석에겐 그런 게 없었다."
해봤자, 살아가고자 하는 발악.
하지만 한수영은 인정할 수 없었다. 그저 살아보고자 그 지독하게 길고 끔찍하게 재미없는 소설을 보던 놈에게 신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결국 그런 상처를 가진 이에게 끝까지 희생을 강요한 것은 누구였을까.
한수영의 눈가가 물기로 어룽졌다.
그러다가 곧 울었다. 저도 모르게 서글픈 울음이 마구 터져나왔다.
+외전 못 보고 본편만 봐서 뒷이야기 어떤지 모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