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로부터 정을 나누기 시작한지 거즘 3년이 되어가던 때에, 기어코 사달이 일어났다.


으레 일어나는 연례행사처럼 연인간의 갈등이었지만

우리들의 갈등은 여타 다른 커플처럼 그리 녹록치 않게 흘러갔다.




여친이었던 그녀는 워낙 성정이 불같고 과격한지라,

옆에서 조율하는 입장이었던 나는 흘러가는 물처럼 그리 눈에 띄지 않는 성격이었다.



전형적인 외강내유인 그녀는 겉으로 쓴소리와 투정을 해도 표현이 서투를뿐. 

절대 나에게 크게 상처되는 말은 일절 삼갔었었다.


난 그녀를 사랑하고 또 그만큼 최대한 배려했기에

그녀도 그것을 알아주고 고집이 드세어도 나에게는 한 풀 꺾어주는 그러한 사람이었다.



그러했기에 우리 둘은 사귀었던 그날 밤 이후로 처음 다투듯이 했었다.




여태 쌓아두고 밖으로 표출하지 않았던 자잘한 것들이

서로 모르게 축적되어있다가.


기어코 터지고야 만것이다.




시발점은 어처구니 없게도 매우 사소한 일이었다.


내면으로는 유약해도 털털한 성격이었던 그녀는 집안일은 매우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었고,

난 잔소리를 하면서도 그녀를 위하는 마음에 언제나 즐겁게 청소를 하곤 했었다.





"후순아, 몇번 말한것 같은데..양말은 제발 뒤집어 놓지 말고 ...동전도 주머니에서 좀 빼고..."



"아. 어련히 잘 할거야...좀 귀찮게 하지마!

나 이번주까지 마무리해야 할 잔업이 있다 분명 얘기했는데.


남친이 그거 하나 이해못해줘?

오빠가 남친이지 나 잔소리해주는 사람이야...?

좀 적당히 해...!"


빙긋 웃음지으며 안마해주려던 두 손은 퀭한 눈으로 컴퓨터만을 응시하는 그녀의 칼 같은 비정한 소리에 갈 곳 없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지속해왔던 철야와 각종 스트레스로 인한 거대한 폭탄이

나로 인해 짧게 늘어진 도화선으로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하...내가 오빠처럼 한가한 줄 알아?"



사실이었다.


알바만을 계속해오기를 n개월째, 마땅한 일처도 없이 그녀의 집에 얹혀사는 백수에 불과했다.




최근 들어서 그녀가 쌀쌀맞아진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고민해왔다.


알바를 몇개 더 늘리고나서 몇몇 이벤트도 준비해보려 했지만, 그때마다 회사로 달려나가는 그녀의 바쁨을 서포트 해주는것에 불과했다.



그래도 그녀이기에. 하고 수긍했다.


나와는 달리 매우 유능했던 그녀는, 군대 1~2년의 공백으로도 변명 삼지 못할만큼 빠르게 성장했고 일처리 또한 순식간에 습득해나가 입사 1년차만에 과장이라는 대형 직함을 달았고.

그녀의 그림자에는 내가 놓여져 있었다.








빠리팟게트 요구르트 케이크.


쓸데없는 지출을 줄이던 나에게 뼈아픈 출혈이었지만,

집에 있을 그녀를 생각하면 양손 무겁게 든 케이크 포장박스와 맥주캔들이 깃털처럼 가벼웠었다.



그 날은 곧 여름임에도 조금 서늘해 반팔 밑으로 뻗은 내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비밀번호 4자리를 기입한 후에 도어락을 해제해 현관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집에는 나갈때 미처 끄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침실 안 작은 버섯 전등이 은은하게 집 전체를 비추었다.






그녀의 생일이자 처음 만났단 날이기에 특별함은 더욱 증폭되 어느새 나도 모르게 싱글벙글 미소 짓고 서 있었다.




아침에 그녀에게 대놓고 공표한 후에 칼퇴근 하겠다는 확답을 받아놓은 상태였지만, 어째서인지 좀 늦어지는 그녀의 귀가시간에 점점 불안감이 더해갔다.





7시 정각. 8시 50분. 9시 40분.




시간은 속수무책으로 흘러갔다.


노란색 버섯 전등은 운이 나쁘게도 약이 다한 모양인지 픽 하는 소리와 함께 꺼진지 오래였다.



구닥다리 같은 방식이지만 하트의 모습로 세워둔 불 붙힌 초는 촛농이 다 흘러내려 원래의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는 흰 찰흙 덩어리처럼 굳어만 갔다.



어느새 집 안의 불빛은 부재중 전화로 가득찬 통화란을 나타내고 있는 핸드폰 불빛만이 내 얼굴을 환하게 비췄다.











그녀의 연락이 온 것은 새벽을 지새운 나에게 오전 11시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