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민수는 3개월 뒤면 죽는다.

의사가 췌장암 말기라고 했다.

발견하기 힘든 암인데다가 너무 늦어버려서 손도 쓸 수 없다고 했다.

민수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민수에겐 사랑스러운 여자친구 지혜가 있다.

지혜는 어디에 있던 무엇을 하던 민수 생각만 한다.

지나가다 옷을 봐도 민수에게 어울릴만한 옷인지 남성복을 먼저 봤고

자신의 옷을 고르더라도 민수가 좋아할만한 옷인지 먼저 고민했다.


민수가 시한부 판정을 받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지혜에 대한 걱정이였다.

지혜는 민수에게 삶의 너무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었다.

이대로 민수가 죽어버린다면 지혜는 많이 힘들어할 것이다.

어쩌면 따라서 죽어버리겠다고 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죽고나서도... 지혜는 행복했으면 했다.

민수는 고민에 휩싸였다.



민수는 지혜와 헤어지기로 결심했다.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도록, 기억 속 흔한 전남친으로써 남도록...

갑자기 헤어지자 라고 말을 해도 지혜는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므로 적절한 이유가 필요했다.

그래서 민수는 악역이 되기로 했다.

민수는 지혜에게 단 한번도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이건 민수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는 거짓말이다.


먼저 민수는 바람을 핀다는 의심을 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지혜에게 무관심한 척을 했고 대화도 단답만 하기 시작했다.

지혜와 만나는 도중에도 스마트폰만 바라보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혜는 의심은 커녕 무슨 일이 있냐며 걱정해주고

더 민수에게 관심을 가지며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

그런 지혜의 모습에 민수는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지만

지금 자신이 아픈만큼 지혜가 덜 아플거란 생각에 꾹 참았다.

정말로 참기 힘들땐 화장실을 핑계로 자리를 떠나고서 울었다.

민수는 울었던 게 티가 나지 않게 한참을 찬물로 세수한 후에야 나갈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민수는 바람을 피울 상대를 찾고 있었다.

물론 진짜로 바람을 피울건 아니였다.

절대 들켜선 안되는 일이기에 돈을 주고 실력이 좋다는 연기지망생을 섭외했다.

사정을 들은 연기자는 민수를 말려도 봤지만

민수의 무릎까지 꿇어가며 하는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민수는 일부러 다른 중요한 일이 있는 척 지혜와의 약속을 취소했다.

지혜는 먼저 약속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기다리던 중 민수의 일방적인 약속취소 통보를 받게되었다.

지혜는 나중에 더 오래 같이 있어달라고 해야지 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민수와 다른 여자가 팔짱을 끼고 걷는걸 보게 되었다.

지혜는 조금 기분이 나빴지만 무슨 오해가 있는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화로 풀기위해 민수를 불렀다.


민수는 일부러 지혜가 집으로 돌아갈 동선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지혜가 오는게 보이자 연기자와 팔짱을 끼고 다정한 연인을 연기했다.

내 옆에 있는건 지혜다.. 내 옆에 있는건 지혜다... 그렇게 되뇌이자 하자 연기가 조금은 편해졌다.


지혜가 민수를 발견했는지 민수의 뒤에서 지혜의 목소리가 들렸다.

민수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지혜를 향해 뒤로 돌았다.


민수와 지혜는 처음으로 다투게 되었다.

일부러 민수는 지혜에게 상처가 될만한 말만 쏟아내었다.

그렇게 한참을 다투다가 결국 민수는 이젠 더 이상 널 사랑하지 않는다며 말을 했다.

난 이미 다른 사람이 생겼다고 너도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며 지혜에게 헤어지자고 했다.

민수는 그렇게 지혜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연기자의 손을 잡고 나가버렸다.



지혜와 헤어진 그날 밤

민수는 너무나도 큰 고통에 강한 마약성 진통제를 먹었다.

하지만 진통제로도 마음의 아픔은 괜찮아지질 않았다.

민수는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한참을 짐승처럼 울었다.


민수는 날이 갈수록 수척해져만 갔다.

너무나 큰 고통에 마약성 진통제를 달고 살았다.

그렇게 민수는 진통제의 환각 속에서나마 지혜를 보았다.


민수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지혜가 모르길 바랬다.

지혜에게 알리지 말아달라며 주위 친구들에게 무릎을 꿇고 부탁했다.

친구들은 수척해진 민수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민수는 마지막을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민수는 부모님께도 지혜에게 자신의 죽음을 비밀로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못난 아들의 마지막 부탁이라는 말에 결국 그러겠다고 약속을 하셨다.

민수의 부모님은 눈물을 감추지 못하셨다.

민수는 죽기 직전, 지혜가 너무나 보고싶었다.



그렇게 민수는 죽었다.



민수의 장례식날.

지혜는 장례식에 오지 않았다. 아니 오지 못했다.

관을 발인하고 마지막으로 화장하는 그 순간까지도

지혜는 민수가 죽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렇게 몇년이 지나 지혜는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했다.

취직한 직장에서 우연히도 바람녀를 만났다.

바람녀도 지혜를 알아본듯한 눈치였다.

지혜는 바람녀를 무시하고 지나치려 했지만 바람녀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지혜는 당황스러웠다. 혹시 민수와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또 민수가 또다른 바람을 피우면서 바람녀에게 상처만 주고 떠난걸까?

하지만 모두 다 아니였다.


지혜는 바람녀에게 모든 진실을 듣게 되었다.

민수가 시한부였다는 것도

바람녀에게 돈을 주며 부탁했다는 것도

그리고 마지막까지 모든걸 비밀로 해달라는 부탁도

하지만 그 비밀은 한낱 연기자인 그녀가 짊어지기엔 너무 무거운 부탁이였다.

그래서 결국 지혜에게 비밀을 털어놓게 되었다.


지혜는 민수의 일이라면 모든걸 알고 있었다.

민수는 지혜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거짓말을 하려해도 지혜는 그전에 모두 알아차렸다.

하지만 민수의 마지막 거짓말은 ...

지혜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지혜는 다급하게 민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민수의 번호는 휴대전화에서 삭제한지 오래됐지만

지혜에겐 잊어버릴 수 없는 전화번호였다.

곧 통화가 연결되고 여보세요 라는 목소리에 지혜는 안도했다.

하지만 곧 민수의 목소리가 아닌걸 알아차렸다.

민수의 전화번호는 이미 다른 사람이 사용중이였다.

지혜는 불안함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지혜는 민수의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민수의 어머님은 지혜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흐느끼셨다.

아버님은 그 여자의 말이 거짓말이라며 애써 부정하셨다.

하지만 모든 사실을 전해들었다는 지혜의 말에 결국 진실을 말해주셨다.


지혜는 곧바로 민수가 있다는 납골당으로 갔다.

오는 길에 참지못하고 뜯어버린 손톱에선 피가 나고 있었다.

지혜는 아직도 민수가 죽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민수의 유골함에는 지혜와 함께 찍었던 사진이 붙어있었다.

사진 속 민수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지혜는 가로막힌 유리벽을 부여잡고 오열했다.


지혜는 처음으로 민수를 원망했다.

민수의 바람으로 헤어질 때에도 원망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더 좋아진거구나.. 내가 모자랐던걸까..

자책감만 들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민수가 원망스러웠다.

도대체 왜 그런 거짓말을 해서...

혼자서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지혜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다 그렇게 정신을 잃었다.

지혜는 민수가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온 지혜는 잠을 자는 시간이 늘어났다.

꿈 속에선 민수와 만날 수 있다는 이유로 항상 잠을 잤다.

잠이 오지 않을 땐 수면제를 먹어가며 잠에 들었다.

지혜는 꿈 속의 민수에게 처음으로 때리고 욕도 했지만

그래도 항상 마지막엔 민수의 품에 안겨서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면 지혜는 혼자였다.


지혜는 더이상 꿈과 현실의 차이를 견딜 수 없었다.







지혜는 결국 민수와 같은 곳으로 가게 되었다.

부모님들의 합의 끝에 같은 유골함에 보관하기로 결정했다.


유골함의 사진에는 민수와 지혜가 환하게 웃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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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물을 써보고 이번엔 어떤 다른걸 써볼까 고민했는데

오해물도 보고싶다는 글이 보여서 한번 써봤습니다.

지혜가 오해하긴 했으니 오해물이 맞긴하죠..?


지혜와 헤어지는 부분이나 중간중간 빌드업이 좀 부실합니다.

다른 내용을 다 쓰고나니 제겐 너무 매워서 쓸 기력이 나질 않았습니다..



예상 질문 1) 민수가 괜한짓해서 지혜가 죽은거 아님?

A) 말 안하고 죽었어도, 시한부인걸 알고 마지막 까지 꽁냥거리다가 죽었어도, 지혜는 민수를 따라 죽었을 겁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민수의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았다면 잘 살아갔을겁니다.


예상 질문 2) 민수때문에 지혜가 죽었는데 지혜 부모님이 용캐도 같은 유골함 쓰는걸 허락했네?

A) 민수에 대한 원망으로 부모님들간 다툼이 있었지만 마지막엔 결국 지혜의 행복을 바라면서 허락하셨습니다.



좀 허무한 엔딩이라 마음에 안드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해피엔딩도 고민했지만 처음 떠오른 스토리가 배드엔딩이라서

이번엔 끝까지 밀고 가봤습니다.


긴 글 끝까지 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