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2편




Side 어드미럴 그라프 슈페


나는 지휘관을 처음 만난 그 날을 잊지 못한다. 


나는 그 전까지만 해도 다른 진영은 물론 같은 진영인 철혈 내에서도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는 함선이었다.


자그만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흉악한 형태의 의장.. 


구축함 아이들은 내 의장을 보면 늘 울먹거리며 다른 함선소녀들의 뒤로 도망쳤다.


그래서 의장을 벗고 다시 아이들에게 다가가봤지만 아이들은 슬금슬금 나를 피했다. 아마 의장을 끼고 있는 내 모습이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 일이 있은 이후 같은 철혈 내에서도 내게 내려오는 명령은 대부분 조용히 방에만 있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내 감정을 죽이고 조용히 지내기 시작했다. 누구를 만나도 늘 무미건조한 표정과 목소리를 내었다. 그러니 얼마 없는 친구들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당연하게도 스스로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장소는 자연스럽게 해역으로 한정되었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나는 미친 사람처럼 늘 전장의 선봉에 서 세이렌들을 사냥했다. 


포신과 부포, 그리고 어뢰관들을 모두 성능의 한계까지 끌어다 썼다. 그걸로도 모자라 그렇게 흉악하다고 소문난 손의 의장으로 세이렌의 고위 개체들의 머리를 터뜨렸다.


“아하하하하!!! 죽어버려!! 죽으란 말이야!!!”


나는 정말 야수처럼 날뛰었고 늘 내 의장과 손에는 진한  선혈과 기름, 그리고 기계 부품내음이 떠날 줄을 몰랐다.


그렇게 해역의 정리가 끝나고나면 길고 긴 고통의 터널이 시작되어 나를 정신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아득함이 늘 내 가슴을 옥죄어오고 가만히 있어도 지하세계의 검은 손들이 나를 붙잡고 땅 아래로  끌어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모항으로 돌아오면 숙소에 처박혀 술을 마시고 울고불고 또 술을 마시다 새벽녘에 기진맥진해 겨우 잠드는 나날을 보냈다.


당연히 나는 점점 망가져갔고 밖으로 나오는 일은 더더욱 줄어들었다.


그러다 문뜩 언니 생각이 들었다. 도이칠란트급 중순양함의 기함, 도이칠란트 언니. 언니가 있으면 이런 슬픔을 받아주지 않을까.. 응석을 부리고 싶다는 생각에 전 지휘관들에게 요청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등급도 낮고 애매한 성능을 지닌 언니는 늘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늘 돌아오는 서류는 대기 명단에는 올려놓았다, 기다려라. 밖에 써있지 않았다.


그런 답변이 오면 나는 아무런 말 없이 다시 요청서의 양식을 프린트해 다시 지휘관들에게 보냈다. 똑같은 답변이 돌아올 것 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정말 미쳐버렸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어느샌가부터 지휘관에게서 답변서가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 지휘관이 그냥 답변을 포기했거나 철혈 내부에게 지휘관에게 올리는 서류에서 내 요청서를 빼버렸을 터였다.


어느정도 예상은 갔지만 그냥 계속 요청서를 작성했다. 어느새 이것은 습관이 되어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창문 밖에 철혈 소속 함선 소녀들이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더니 곧 한 군데에 모여 누군가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멀리서 봤지만 소녀들이 한 사람의 주위에 둘러쌓여 있었다. 못 보던 남자가 해군 정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새로운 지휘관이 온 듯 해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니.. 새로운 지휘관에게 안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질 나쁜 사람이든, 옳은 인격을 가진 사람이든 상관 없었다. 더 이상 검은 손으로 인해 끝없이 끌려 떨어지는 느낌을 받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흉악한 나의 의장을 소환하고 방 밖으로 나섰다.


그대로 성큼성큼 지휘관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와락..



“!!!”


악어가 먹이를 삼키듯 흉악한 내 의장으로 지휘관을 감싸안았다.


그 때 지휘관에게서 나던 냄새는 아직도 기억난다. 상큼한 레몬냄새..


나는 지휘관의 정복에 얼굴을 파묻었다. 


다른 소녀들이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을게 뻔했지만 상관없었다. 지휘관이 질색하며 나를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봐도 상관없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듯한 온기.. 그것만으로도 내겐 충분했다.


하지만..


쓰담쓰담..


“..?”


“안녕? 네가 그라프 슈페구나?”


지휘관의 투박하지만 따듯한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온기.. 내 마음속에 얼어버린 심장을 녹이는 온기.. 갑자기 시야가 뿌옇게 변하더니 목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넘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으흑.. 으흐흑..”


나는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저런 따듯한 말을 들어본게 얼마만일까.. 경계심없는 어조의 말을 들어본게 대체 얼마만일까.. 


“그래그래.. 왠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슬펐나보구나.. 이제 괜찮아.. 응..”


지휘관은 계속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를 달랬다. 나는 그대로 의장을 벗어버리고 지휘관에게 안겨 마구마구 무거웠던 감정들을 벗겨버렸다.










그 날 이후, 지휘관은 계속 나를 예뻐해줬다. 구축함 아이들이 가진 오해를 직접 풀어주고 나를 모항의 일부로 녹아들게 만들어주었다. 처음에는 이 모든 것들이 어색했지만 어느새 나의 대한 평가는 많이 올라가있었다.


흉악한 의장 때문에 정감이 안간다. 라는 말을 들어왔던 나는 이제


의장과는 다르게 따듯하고 다정한 아이다. 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하지만 왜인지 그런 평가는 다른 함선 소녀들에게서 나오는 것이기에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그냥 지휘관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했다.


그래서 늘 지휘관의 곁에 맴돌며 그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려 노력했다.


그 노력은 다행히 결실을 맺었고 지휘관은 늘 나를 보고 방긋방긋 웃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하등생물, 하등생물! 이런 지긋지긋한 서류들은 나중에 하도록 하고 지금은 이 도이칠란트님의 심심함을 풀어주란 말이다!”


지휘관은 나의 언니, 도이칠란트를 건조했다.


-KMS 도이칠란트-


분명 같은 함급의 자매이지만 언니는 굉장히 콧대가 높은 사람이다. 분명 애타게 그리워했던 언니지만 언니가 지휘관에게 붙어 이죽거리는 것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정신이 어지러워졌다.


지휘관은 옆자리는 내건데..? 언니가 뭔데 지휘관의 옆자리를 뺏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고로 위장해 언니를 침몰시키는 것도 생각해봤다. 그렇게 된다면 다시 지휘관의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하지만 도이칠란트와 뤼초우 사이의 트라우마 때문에 매일 밤 괴로워하는 언니를 보며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생각을 조금 바꿨다. 당연히 지휘관은 사랑을 받는 것은 나지만 조금.. 조금이라면 언니에게도 나눠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언니가 너무나도 괴로워하면 늘 지휘관을 불러와 셋이 함께 산책을 하며 언니를 안정시키곤 했다.


그런 소소한 행복을 느끼던 어느 날이었다.


지휘관은 매일 밤 구축함 아이들을 강간했다는 혐의를 받고 모항 헌병대에 연행되었다.


나 역시 철혈 지도부 내에서 내려온 공문을 읽었다. 혐의 추정시간, 추정 장소, 그리고 범죄행각까지.. 상세히 적힌 공문을 모두 읽은 나는 의문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혐의 추정 시간으로 적혀있는 날짜와 시간애 분명 지휘관은 악몽으로 괴로워하는 언니를 달래려 언니를 업고 산책을 하고 있었다.


지휘관이 두 명도 아니고 대역을 쓴 것도 아닌데 뭔가가 이상했다. 그래서 나는 바로 철혈의 지도부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녀들이 있는 문을 열려는 순간 그 안에서 어떤 절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등.. 아니, 지휘관이 그랬을 리가 없잖아!! 그리고 계속 말하잖아..! 그 시간에 지휘관은 나랑 슈페와 함께 있었다니까?!!”


언니였다. 언니 또한 어딘가 이상한 것을 감지하고 철혈 지도부에 정식으로 의문을 제기하러 온 것이었다.


하지만..


“도이칠란트, 너는 지휘관과 가까운 사이가 아닌가? 범죄자의 가까운 사람이 범죄자를 감싸는 일은 생각보다 흔한 일이지.. 미안하지만 네 말은 믿을 수가 없다.”


철혈의 수장 비스마르크는 얼어붙은 목소리로 언니를 몰아붙였다. 


“으으.. 아니야!! 아니라고!! 진짜 그 때 나랑 같이 있었다고!!”


언니는 이성을 잃은채 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고 누군가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아니, 방금 그 남자로부터 자백을 받았단다. 모든 혐의를 인정한다고 하더구나..”


의장에서 비릿한 핏내음을 풍기는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셰였다. 그녀의 뾰족한 의장에는 유혈과 살점이 낭자했다..


아마.. 그걸로 지휘관에게 무자비한 고문을 행했을 것이었다.


“…”


언니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스스로 혐의를 인정했으면 더 이상 제 3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 숙소에 처박혔다. 아니.. 스스로를 가둬버렸다. 


지휘관이 광장에 끌려나와 함선 소녀들에게 모욕과 멸시, 그리고 질타를 받는 것도 모두 지켜보았고, 발목에서 끊임없이 피가 새어나오는 지휘관이 정체불명의 현대식 의장을 장착한 함선소녀에게 안겨 떠나는 것까지 지켜보았다.


우리는 점점 피폐해져갔다.


우리는 왜 그렇게 무력할까.. 아무런 잘못도 없는 지휘관이 그런 고초를 당할 때 우리는 아무런 것도 하지 못했을까.. 매일매일 나는 언니를 껴안고 울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지휘관이 보고싶었다.


한 시라도 시야에 들어있지 않으면 불안함을 느꼈는데 완전히 그가 떠나버리고 말았다.


나는 계속 울면서도 지휘관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슈페.. 우리.. 의장 반납할까..?”


어느 날 언니는 내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말은 안하고 있었지만 언니 역시 속으로 지휘관을 많이 보고싶어하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가 지휘관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함선 소녀임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함선 소녀로써 의장을 포기하면 힘을 잃는 것이다. 하지만 지휘관이 없는 이상 언니와 나에게 힘같은 것은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응..”


나는 언니의 의견에 찬성하였고, 그대로 철혈 지도부에 말을 해 의장을 반납하고 사회로 나가게 되었다.


우리는 원래 철혈인 독일로 돌아가야했지만 그냥 이민 신청을 내고 지휘관의 고국인 한국으로 국적을 바꿔버렸다.


그리고 비행편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가 지휘관을 찾아 헤맸다.


다행히 지휘관에게 접근을 취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의 도움으로 지휘관을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은 지휘관을 한국 해군의 함선 소녀들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세우고 싶어했다. 그래서 관계가 있었던 우리에게 그를 치유시켜줄 것을 요청했다. 


다른 함선 소녀들을 지휘하게 한다는 그들의 계획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는다면 지휘관을 만날 수 조차 없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협조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부산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아갔을 때 그는..








“으흑.. 으흐흑.. 슈페.. 도이칠란트.. 난 잘못한게 없는데.. 아무것도 안했는데..! 으흐흑..!”


우리를 안고 오열했다. 그의 정신상태는 이미 전쟁을 수차례나 다녀온 군인보다도 처참했다. 자기 자신을 늘 비하하고 술이 없으면 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게다가 그의 몸 상태 역시 심각했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져 걷지도 못하는 상황에 내장 또한 고문으로 많이 상한 상태였다.


“응응.. 지휘관은 아무것도 안했어.. 그년들이 나쁜거야.. 난 알아.. 지휘관이 아무런 잘못도 안했다는 거..”


나는 그 시절 나를 어둠에서 끌어내준 지휘관이 해줬던 것 처럼 지휘관을 달래주었다.


“하등ㅅ.. 아니.. 지휘관.. 바보같이 이게 뭐하는거야.. 빨리 일어나서 나와 슈페를 즐겁게 하란 말이야..”


언니또한 지휘관을 안아주었다. 말은 안하고 있었지만 언니또한 마음아파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다행히 그 날 이후 우리는 지휘관과 지냈고 지휘관은 빠르게 건강을 회복해갔다.


우리와 정부의 간곡한 설득 끝에 다시 지휘관으로 취업할 수 있었다.


나는 지휘관이 언제나 돌아올 수 있는 곳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지휘관이 유난히 좋아하던 빵 만드는 법을 배워 빵집을 열었다.


언니는 지휘관을 따라다니고 싶어하여 지휘관과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그 모항에서 있었던 일을 잊고 살아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점점 행복해져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오해였다는 진실을 안 그 년들이 덤벼들기 전 까지는 말이다..


Side 어드미럴 그라프 슈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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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글쓴이는 슈페의 착한 대사에 반해 그대로 서약까지 박아주었다.



다음 화부터는 시점을 옮겨서 후회물 시작할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