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며칠 뒤, 지휘관과 슈페, 도이칠란트를 태운 헬기가 벽람항로의 본부가 있는 섬에 당도하였다.


많은 함선소녀들은 들뜬 마음 반, 불안한 마음 반으로 지휘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지휘관은 다시 돌아올 필요가 없었다. 그 날 부산기지에서 엔터프라이즈와 뉴저지에게 개쌍욕을 박고 쫒아냈어도 됐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지휘관만 애타게 찾고있는 구축함 아이들이 마음에 걸려 돌아온 것이었다.


“…”


이윽고 헬기가 착륙하였고 문이 열렸다. 


“지.. 지휘관님..!”


많은 함선소녀들은 정말로 돌아온 지휘관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걷는 그의 모습을 보고 또 다시 죄책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원래는 완전히 망가진 아킬레스 건 때문에 슈페나 도이칠란트의 보조에 맞춰 걷는 지휘관이었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기에 무리가 있기에 주문제작된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걷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지휘관은 자신의 지팡이 차림새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함선 소녀들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역겨워..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워..”


실제로는 엄청난 미모와 색기를 겸비한 미소녀들이 한 가득이었지만 지휘관에게는 그저 흉측한 괴물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언제든 다시 잡아먹기 위해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밖에 안보였다.


“우윽..”


지휘관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헛구역질을 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눈 앞이 암전되었다. 지휘관이 소녀들에게 모진 고문을 받은 뒤 생겨버린 만성 PTSD 후유증이었다.


“지휘관.. 괜찮아.. 자, 심호흡 하고.”


“그래, 하등ㅅ.. 아니, 지휘관.. 진정해. 우리가 옆에 있어.”


슈페와 도이칠란트는 지휘관의 양 옆에서 지휘관의 투박한 손을 꼬옥 잡아주며 지휘관을 진정시켰다.


“후우.. 그래, 고마워.. 이제 좀 괜찮네..”


지휘관은 다행히도 후유증에서 빠르게 벗어났다. 






“지휘관, 어서와라. 많이 기다렸다..!”


“여도.. 여도.. 많이 기다렸노라..! 지휘관이여.. 앞으로는 떨어지지 말자꾸나..!”


앞서 지휘관을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던 엔터프라이즈와 나가토는 붉어진 얼굴로 지휘관을 맞았다. 


“지휘관, 왜 이제서야 돌아온거야..?! 감히 이 엘리자베스님을 기다리게 하다니.. 건방.. 읍!”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처럼 후회하고 지휘관을 그리워하고 있었는데 말만 그렇게 하는지 모를 로얄 네이비의 수장 퀸 엘리자베스의 말이 그녀의 뒤에 서있던 메이드 장 벨파스트에게 의해 막혔다.


-HMS 퀸 엘리자베스-


“주인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지휘관은 벨파스트의 말 따위는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지휘관, 돌아왔군.. 일단 정말 미안하다.. 어떠한 말로 용서를 구해도 쉽게 풀릴 수는 없겠지..”


“…”


“하지만.. 앞으로 지휘관이 우리를 완전히 용서할 때 까지 계속 반성하고 용서를 빌겠다..”


“아가.. 우리가 우리 아가에게 해서는 안되는 짓을 해버렸다는 건 잊혀지지 않을 일이란다.. 잊지도 않을거고, 앞으로 계속 반성해야겠지.. 정말 미안하구나..”


마지막으로 철혈의 수장인 미스마르크는 고개를 숙였고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셰는 지휘관에게 다가와 따듯한 포옹을 해주기 위해 팔을 벌렸다.

-KMS 비스마르크-


그러나..


탁!


“치워.”


지휘관은 차갑고 짧게 일갈했다. 그러자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셰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지휘관의 냉담한 반응에 당황한 듯 크게 눈을 떴다.


-KMS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셰-


“아.. 아가야..?”


그러자 지휘관은 더욱 냉담한 목소리로 소녀들에게 말했다.


“난 너희들이 평생 후회하든 반성을 하든 관심없다. 너희의 감정이 어떻든 내 알 바는 아니지. 난 너희와 하하호호하러 온게 아니다. 너희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해 세이렌을 물리치러 여기에 온거다.


엔터프라이즈에게 모두 들었겠지. 내가 뭘하든 건들지 마라.. 지켜라. 그게 내가 개인적으로 너희에게 거는 마지막 기대니까..”


지휘관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절뚝거리며 공관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땅한 환영식도 없이 지휘관의 복귀가 이루어졌다.





다음 날, 지휘관은 업무를 봐야하는 자신을 위해 마련된 공관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헛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 이래야지.”


책장에는 자신이 마련했던 전술서, 세이렌을 물리친 작전 문서, 연습일지, 함대자금관리장부 등이 거의 제거되어있었다.


대신 거기에는 딱 봐도 꽂은지 얼마 되지 않고 시기도 자신이 쫒겨난 이후에 행한 작전으로만 가득찬 문서들이 가득차있었다.


그렇다. 지휘관이 오해로 인해 추방당한 후 지휘관의 손으로 작성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불태워진 서류들을 대체하기 위해 급조된 문서들이었다.


끼익..


“주.. 주인님..?”


그 때 하얀 단발의 머리카락의 메이드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의 이름은 시리우스, 지휘관을 심문할 때 검으로 지휘관을 찔러가며 몇 날 며칠동안 재우지 않은 전과가 있는 메이드이다.


-HMS 시리우스-


당연히 지휘관은 시리우스에게 날선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나가.”


“주.. 주인님.. 여기 다과를..”


“나가라고.”


“하.. 하지만..!”


“나가라. 두 번은 말 안한다. 넌 지금 내 두번째 요구를 어기고 있다. 내 요구를 어기면 떠나겠다고 분명 말했을텐데?”


하지만 시리우스는 물러서지 않았다.


“주인님.. 잘못한 건 잘 알고 있습니다만.. 많은 분들께서 편지를 보내오셨습니다.. 부디 읽어주시길..”


시리우스는 고개를 숙이고 공손하게 편지들을 건넸다. 


“…”


지휘관은 시리우스에게서 편지를 받아들고 보낸 이들의 이름을 빠르게 훝고는 시리우스의 눈 앞에서 편지들을 파쇄기에 넣었다.


“!!”


지휘관은 갈리는 편지들을 싸늘하게 바라보고는 무겁게 한 마디를 날렸다.


“나가. 이딴 편지들 받을 마음없다.”


지휘관의 말에는 분명 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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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람 츄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