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폐허가 된 신전의 고해소에서 잠을 청하던 날 밤.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릴 정도로 장대비가 내리던 날 밤.


그 당시, 잠이 오더라도 세차게 울리던 천둥 때문에 고작해야 잠결에 빠졌을 때, 나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빛을 봤다.

번개에서 나온 빛이라고 하기에는 순간 번쩍 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닌 태양같이 환한 빛이었고.

벌써 새벽이 온다고 여기기에는 해가 져서 어둠이 사방에 깔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나는 작금의 상황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노력했지만 그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다니엘아."


거기에 환청까지 들려오자 사방으로 고개를 획획 돌려봤지만 주변에는 도저히 말을 걸만한 생명체가 하나도 없었다.


"어찌 하여 나를 두려워 하느냐. 나는 네가 발붙인 곳의 주인이니라."


"여...신님?"


그제야 어떻게 해서 이런 상황이 조성됐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처음부터 여신님의 권능이라고 설명하면 밤인데도 주변이 순식간에 밝아진다거나 환청이 들린다거나 하는 것들이 납득이 되니까.


"이제 좀 진정할 수 있겠느냐?"


"아... 예..."


여신님께서 진정하라고 하신 뒤에야 나는 겨우 안도할 수 있었다.

엉겁결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가 다시 앉을 정도로.


그나저나 이쯤에서 나는 새로운 의문이 하나 생겼다.

어찌하여 여신님께서 이 밤중에 친히 내 눈앞에 이리 강림하신 까닭이 무엇인지를.


"내가 어이하여 이곳에 행차하였는지 궁금하더냐?"


"예? 예..."


여신님의 물음에 나는 바보같이 놀라서 얼떨떨하게 대답하고 말았다.

머릿속에 든 의문을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았는데도 여신님께서 이미 알고 계셨으니까.

어쩌면 경전에서 가르치듯 여신님께선 진정으로 전지하신지도 모르겠다.


"이 검이 무엇인지는 너도 잘 알고 있느냐?"


허공에서 그림이 그려지듯 생겨난 검은 역사책이나 동화에서 많이 본 검이었다.


"성검...이 아닙니까."


시대마다 주기적으로 출현하는 마왕.

그리고 그런 마왕을 토벌하기 위해 여신님께서 점지하신 용사.


용사가 마왕을 무찌르고 세상의 영웅이 된다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나 유명하다.

길거리 음유시인들은 역대 용사들의 위업을 음악에 섞어 노래했고.

어린 소년은 소꿉친구인 소녀에게 목검을 보여주며 용사가 되겠다고 다짐했으며.

역사가들은 용사의 발자취를 역사서에 기록하기 위해 여전히 뒤쫓고 있다.


"맞다. 그렇다면 왜 내가 이 자리에 있는지는 너도 잘 알 것이다."


"제가... 이 검을 받아도 되겠습니까?"


"못 받을 것이 무엇 있느냐. 너의 무고함은 네가 가장 잘 알 것인데."


"...모르겠습니다. 이제 와서는 저도 제가 정말로 무고했는지 아니면 죄를 저질렀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여, 여신님께서는 아십니까?"


"내가 모를 리 없잖느냐. 너는 무고하다. 그렇기에 너는 이 검을 들 자격이 있다."


"하지만 제가 이 검을 받는다면 제가 누명을 뒤집어 썼을 때 방관하던 이들까지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불경하겠지만 저는 그들마저 구하기 싫습니다."


"그들 중에는 네 가족이나 약혼녀가 포함되어 있는데도?"


"이제는 아닙니다."


"그러면, 일단 놓고는 가마. 네가 용사가 되어 마왕을 무찌를지, 아니면 그저 방관만 할 지는 네 선택이다. 또한 네 책임이기도 하니,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거라."


-땡그랑


성검이 허공에서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빛은 사그라들었고 여신님의 음성은 멎었다.

주변은 마치 방금 전까지의 일이 꿈이나 환영인 것 마냥, 어두컴컴한 밤에 귀뚜라미만 홀로 우는 소리만 날 뿐.

그 외에는 어디서도 빛이나 소리같은 것들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성검만이 여신님께서 내가 계신 곳에 친히 행차하셨다는 증거로만 남았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성검을 주워 검집에서 뽑았다.


-스르릉.


맑은 금속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정순한 검날이 검집에서 뽑혀 나왔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낡은 검과는 비교도 되지 못할 만큼 좋은 명검.


나는 문득, 과연 이 검이 금화로 얼마나 쳐질까라는 불순한 생각이 들었다.

가문에서 내쫓긴 뒤로 늘, 주머니 속 사정을 걱정한 나다.

값비싼 물건을 보면 돈으로 환산하는 태도가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다.


어쨌거나, 좋은 검이 하나 더 생겼으니 나쁠 건 없었다.

오히려 이득이면 이득이겠지만.


어느덧, 동이 터온다.

쉬지 않고 걷는 다면, 오늘 내로 가고자 하는 도시에 도착할 테니 부지런히 걷기로 했다.


그 전에, 가지고 있는 붕대로 성검을 감싸서 숨겼다.

성검은 곧 용사의 상징이기도 하니 괜히 들켰다가 귀찮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용사가 나타나는 순간, 대륙의 모든 신전에 신탁이 내려지니까.

성검을 들고 다닌다면, 나 용사요, 광고를 하는 꼴이 된다.


그러니 성검을 붕대로 감싸서 적당히 지팡이처럼 보이게 한다면 의심은 받아도 들키지는 않을 것이다.


아침이 될 무렵, 채비를 마친 나는 도시를 향해 걸어갔다.

용사가 될지 안 될지를 놓고 고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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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단편 몇 편 쓰다가 if를 쓰려고 했는데, 그냥 이것도 빨리 끝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if여서 설정이 몇 가지 바뀔 겁니다.


등장인물의 경우 나이가 바뀌는 경우가 있고 아예 사라질 수도, 엑스트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