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방황했다.


나는 철없는 아이였으며 마을에 크고 작은 폐를 끼치며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런 나를 말려주지 않았기에 이런 짓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틀렸다고 해줬다.


태양의 빛이 담긴 은빛 머리칼과 호수처럼 푸른 눈을 지닌 소녀는 엄하지만 따스하게 나를 타일러줬다.


그게 바로 엘과의 첫 만남이었다.


엘은 성직자 집안에서 자라 언제나 올바른 교육만을 받고 살았으며 그렇기에 어린 나이 임에도 불구하고 어른스럽고 친절했다.


미모또한 작은 마을에서는 그 누구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기에 또래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받았다.


평범한 동네 꼬마였던 나하고는 다르게.


하지만 이런 나한테도 그녀는 거리낌 없이 손을 뻗어주었고 그렇게 우리 둘은 친구가 되었다.


무척이나 기뻤다. 하지만 의문스러웠다.


비록 엘만큼은 아니어도 나에 비하면 착한 아이들도 있었을텐데 왜 굳이 나한테 말을 걸었을까?


궁금했지만 동시에 이것을 물으면 우리의 관계에 금이 갈까 두려웠던 나는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거기에 대해 엘은 부끄러운 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가 외로워보였으니까."


누군가는 그것을 값싼 동정심 아니면 위선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때의 나에게 있어서는 그 말은 이 세상의 어느 것보다 소중한 말이었다.


그후 나는 엘의 옆에 서기 위해 바뀌기로 했다.


지금까지 폐를 끼쳤던 모든 마을사람들에게 사과를 하고 몸을 때우는 것으로 죗값을 치르고 나아가 그들의 신뢰를 얻었다.


시간은 무척이나 걸렸지만 그 안의 사소한 순간들도 그녀와 함께 했기에 더 없이 반짝였다.


그렇게 어른이 됐을 무렵 마을에 굶주린 늑대 무리들이 나타났다.


본래라면 불을 휘두르는 것 만으로도 쫒아낼 수 있는 무리였지만 하필이면 광증에 걸렸기에 모두가 도망치기 바빴다.


우리 둘도 예외는 아니였기에 재빨리 벗어나고자 했지만, 엘이 실수로 넘어져버리면서 늑대에게 공격을 받았다.


원래라면 무력했을 나였지만 갑자기 손등이 빛나면서 주변의 시간이 느려지더니 손안에는 빛의 창이 생겨났고.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늑대에게 투척하자 공격을 받은 늑대는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늑대들도 투창의 여파에 의해 모두 빛으로 변해버렸다.


너무나 순식간에 이루어진 일이기에 나도 엘도 어안이 벙벙해졌지만 변화는 나한테만 온 것이 아니었다.


엘의 손등에도 순백의 빛이 나기 시작하더니 그녀를 중심으로 빛의 퍼지며 넘어졌던 상처는 물론 주변의 흉흉한 기운들도 완전히 가라앉았다.


이후 그것을 본 마을 사람들은 말했다.


용사와 성녀가 나타났다고.


전래동화로만 여겨졌던 그 이야기가 지금 구현되고 있는 것이라고.


그것을 시작으로 처음에는 마을의 문제를 이후에는 도시의 문제를 또 그 이후에는 왕국의 문제를.


시간이 지날 수록 우리는 단순히 동화 속에서 나온 상징적인 용사와 성녀가 아닌.


용사 듄과 성녀 엘이라는 사람으로서 명성을 떨쳤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은 기뻤으나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바로 엘의 변화였다.


그녀는 성녀로서 각성한 후 나를 이름으로 부르기보다는 용사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선택한 채 존댓말을 고수했다.


자신은 그저 곁에서 도와주는 걸로 충분하다면서.


처음에는 그러한 태도에 아쉬움을 느꼈지만 그것은 엘 나름대로의 각오라고도 할 수 있었기에 금방 익숙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우리는 마왕을 상대하게 되었다.


마왕은 그 칭호에 걸맞게 무척이나 강력하고 사특한 주문을 외웠으나 성녀 엘의 가호와 용사로서의 나의 힘으로 어떻게든 무찌를 수 있었다.


마왕과의 싸움에 의해 만신창이가 된 나를 보고 그녀는 울면서 나를 치료했다.


왜 그렇게 무리를 하냐고, 여기서 죽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나를 두고 가지 말라고 말했다.


생과 사의 경계에 있던 나는 온몸에 새겨진 부상보다 그녀의 눈물 한 방울에 마음이 갈라지는 것이 더 아팠다.


그렇기에 무의식적으로 지금까지 숨겨뒀던 마음을 전했다.


"엘, 나와 결혼해줄 수 있을까?"


너에게 부정당하는 게 무서웠기에, 상냥한 너를 음심으로 보는 자신이 혐오스러웠기에, 아직도 모자른 것 같은 내가 부끄러웠기에 못했던 말이었다.


이때는 뭐가 뭔지 몰랐기에 제대로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지만.


"네, 기꺼이."


무척이나 부드럽고 따뜻한 무언가가 나를 안아준 것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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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이라고는 하지만 대놓고 거기 등장인물 이름이나 작품 제목 언급하기에는 여기 챈 규칙이 걸리기도 하고.


무엇보다 전체 스토리 다 보면 내상이 터질 것 같기에 거의 창작에 가까울 정도로 써봤습니다.


반응이 좋으면 빌드업 쌓고 후회 파트도 쓸까 하는데...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