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요약하자면 내 생의 최악의 날이다. 아침에는 소나기를 맞았다. 점심에는 하나 남은 친구에게 버려졌다. 그리고 방과후에는 내 삶의 원동력이었던 그녀를 잃었다. 잃었다는 표현은 너무 자기중심적일까? 뭐 됐나.

 나는 최악의 기분을 삼킨 채, 미소를 머금으며 동아리 실 문을 열었다. 언제나 처럼 웃는 얼굴로 나를 맞이해주던 그녀가 없었다. 그곳에는 그저 이곳이 문예부임을 보여주는 잔잔한 재즈 음악과 펴져있는 책, 그리고 앉은 흔적이 남아있는 의자만이 남아있었다.

 나는 그녀가 화장실을 갔으리라 생각한 채 책장을 정리했다. 책을 하나하나 들어올릴 때마다, 그 책에 관해서 얘기했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책장을 정리하고 보니 약 한시간 정도가 지나 있었다. 화장실을 이렇게 갔을리는 없으리라 생각하며, 그녀가 보고 있었던 책을 덮어 책장에 넣었다. 

 최악의 기분을 풀지 못한 채, 집에 돌아와 그녀에게 문자를 보낸다. 어째서 오지 않았냐고, 보고싶다고, 사실, 오늘 하고싶었던 말이 있었다고, 그리고 내일은 꼭 와달라고 적는다.


 다음 날, 수업에는 집중하지 못한 채, 방과후만을 기다렸다. 지루하지 않는다. 절대로! 그동안 어제 하지 못했던 말을 떠올리며, 그녀가 받아주는 상상을 하고 있다보면 시간은 의외로 금방 갔다. 종이 울리자, 나는 곧바로 동아리 실로 달려갔다. 

-쾅 

 힘껏 문을 연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제와는 달리 더욱 더 절망적인 형태로 말이다. 인기척조차 존재하지 않는 그곳에, 온몸에 힘이 풀린채 걸어가 의자에 앉는다. 그 모습은 마치 마취총에 맞은 것만 같았다. 아니 그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하....”

 휴대폰을 꺼내서 문자를 들어가보니, 그녀에게서 온 몇 개의 문자가 남아있었다.

[11/28]

-19:45 동민아! 미안! 오늘 뭔가 일이 조금 생겨가지구.... 내일은 꼭 갈거니까!! 

[11/29]

-17:02 헐, 어떡해 미안...진짜미안!! 이 누나가 약속이 좀 생겨가지고 오늘도 못 갈 것 같아...

-17:08 아마도 내일도 못갈 것 같아. 남자친구가 생겨버렸거든! 남자친구가 문예부 가는걸 좀 싫어해서.... 이 누나 없다고 외로워하면 안된다?!


“대체 왜 해맑은 거야...남자친구라고?”

믿을 수가 없다. 아니 그렇잖아? 내가 그녀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내 단순한 착각이 아니다. 그야 매일 방과후, 몇시간이나 이야기 한다거나, 주말에는 같이 모여서,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옷을 사거나, 함께 밥을 먹거나, 진짜로 언제나 함께였으니까.

그런데 대체 남자친구가 생길 틈이 어디있는건데? 그렇다면 나는...나는 대체 뭐였는데? 


-


띠리링~ 띠리링~

알림이 울리는 소리에 몸을 움찔! 하고 떨어버렸다.. 옆에서 눈치 챘을까 하고 바라보니 역시나... 그렇게 입가리고 웃으면 모를줄 알아?!

“이수~ 나 잠깐 전화좀!”

조금 으스스하긴 하지만, 전화를 시끄러운데에서 받으면 민폐잖아? 그것도 우리 귀여운 후배님 전화인데 말이야!

음! 이정도면 괜찮겠는데? 계단이 바람이 너무 불어서 조금 춥긴 한데...어쩔수 없지 뭐!

“네! 전화받았습니다~ 이곳은 수아, 수아입니다”

-...”

“응? 동민이 아니야?”

-저 맞아요 누나...”

“다행이다.. 놀랐잖아! 왜 말도 안하고!”

-누나, 남자친구 생긴거 진짜에요?

얘가 평소답지 않게 목소리가 죽었네... 기운을 좀 더 넣어줘야되나??

“응! 이 누나 드디어 외로움 탈출!”

-...누나, 그럼 대체 우린 무슨 사이였던 거에요?”

“응? 당연히 동민이는... 내 소중한 친구지?”

-아...네...아...하....하...

얘가 참... 왜 이러지 오늘따라.. 이 누나 축하는 못해줄 망정! 쯧쯧~ 바람 좀 넣어줘야겠구만

“빨리 축하한다고 말 못해? 이 요오망한 후배가!!”

-...

“...?”

잠깐의 정적, 5초쯤 됐나? 계단 아래에서 이수가 올라오면서 “전화를 왜이리 오래하는데?”하고 물어본다. 

-네.. 축하드려요. 그럼 지금 둘이 계시는 거에요?

“뭐야 남자야?”

“어...응? 그렇지? 아! 인사해! 내 소중한 후배님~ 동민이랍니다~”

“하... 수아야, 폰 내놔”

“어..? 으..응..”

“네 여보세요”

-...여보세요

“진짜 어이가 없어서 그러는데, 니 지금 수아한테 얘기 못들었냐?”

-...

“그냥 다시는 수아한테 연락하지 말고, 알아서 하자?”

그러고는 이수는 전화를 끊고 나한테 휴대폰을 넘겨줬다.

“어...어??어??? 이수야 왜그래..?”


-


 하, 진짜 짜증나 뒤져버리겠네. 대체 뭐가 좋다고 그렇게 히히덕거려? 참나,

“야 신수아”

“어..?”

“너 지금 나랑 사귀는 거 맞지?”

“어...그렇지”

“근데 지금 뭐하는거야? 남자하고 몰래 연락을 해? 그것도 사귀기로 하고 하루 뒤에? 이건 나한테 좀 예의가 아니지?”

“그치만 동민이는”

아- 짜증나네 진짜, 그놈의 동민이동민이동민이

“아 씨발 좀!”

쾅- 띠이잉-

“그냥 좀 닥치라고, 이딴식으로 할거면 그냥 헤어져”

그 길로 집에 돌아와보니, 부재중전화가 수십통, 하, 이래야 연애지.

60개에 달하는 문자들, 내용은 전부다 미안하다는 말들, 그리고 동민이랑은 연락을 끊겠다는 말들, 재미있네. 

-22:58 수아야, 아까는 미안했어. 진심이야. 진짜 미안해. 내일부터 진짜 잘할테니까 오늘은 진짜로 미안해. 하지만 동민이랑은...알지? 그건 부탁하면 안될까?

-22:58 응! 당연하지!

참, 재미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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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이야, 돌아오지마.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