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2편


***


"...저기, 아루 씨?"

"일어나 보셔야 할 것 같아요."


곤히 잠든 아루를, 하루나가 깨우며 말했다.


"으읏...."


"저희들의 운전이 편하셨나보군요. 후훗."


"ㅁ,뭐? 아... 아앗!!"


아루는 길게 늘어져버린 침을 황급히 닦아 내었다.

시치미를 때 보는 그녀였지만 이미 모든 것을 봐버린 그녀들에겐 추호도 통하지 않았다.

이에 괜스레 부끄러워진 아루는 황급히 대화 주제를 돌렸다.


"...그래서, 여긴 어디야?"


"저희도 몰라요. 일단 아비도스는 확실히 벗어난 상태에요."

"엉망인 길가를 보니 아마도 게헨나 같은데..."


"게헨...나라고요?"


그때, 뒷좌석에서 깨어난 하루카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게헨나면... 저희들의 학원이니 안심이네요..."

"...히,히야앗? 왜, 왜들 그렇게 처다 보세요오오...?"


"...우리는 게헨나로부터 도망처 나오는 길 이었어."

"너가 뭘 몰라서 하는 소리야. 게헨나는 지난 일주일 동안 최악의 마굴이었다고..."


운전석을 잡은 준코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루는 몹시 당황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준코를 향하여 되물었다.


'자,잠깐! 일주일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응? 너야말로 무슨 소리야? 너도 우리와 같은 피폭자잖아."


"그,그게 우리는...! 이제 막 깨어난 참이라..."


"그래? 그럼 다행이네."

"...그 참극을 보지 못했다는거니까."


준코는 시니컬하게 대답을 하곤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지금 상황이 하나도 이해되지 않던 아루였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준코의 손을 보곤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경과를 지켜보던 하루나는 이내 결심을 굳힌듯 준코를 향하여 말했다.


"길을 돌아서 가도록 하죠. 게헨나로 다시금 진입하기엔 곤란하니까요."


"...엉? 근데 뭔가 엄청나게 떨리지 않아?"


문득 미세한 진동을 느낀 아루.

지진이라도 난걸까, 아니면 자동차가 고장이 난걸까.

미약했던 진동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강해져 이내 모두가 느낄 수 있을 수준이 되어버렸다.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모두가 숨을 죽이고 주변을 경계하던 그때.

뒷좌석에서 후방을 주시하던 아카리가 말했다.


"....준코! 속력을!!!"

"아비도스 놈들이 따라 붙었습니다!!!"


"...뭐???"


"잠깐..."

"...아비도스가 탱크를 소유하고 있었나요?"


"탱크? 잠시만 이리 줘보세요!"


아카리로부터 망원경을 넘겨받은 하루나는 얼굴이 사색이 되더니, 이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준코!!!! 뒤 돌아보지 말고 전 속력을 내서 달리세요!!"

"어서! 조금이라도 늦춰지면 우린 끝장입니다!!"


"왜!! 뭔데 그러는데!!!"


아루가 황급히 하루나로부터 망원경을 빼앗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내 그녀도 온 몸이 굳은 채 공포에 질릴 수 밖에 없었다.


그야 그럴만도 한 것이, 망원경 너머로 비친 풍경은 다름 아닌 탱크.

게헨나 학원의 학생회, 만마전 소속 토라마루였으니까.


"거기 멈춰라!!! 이 테러리스트들!!!!"

"배신자 선생을 비호하는 세력들아!!! 당장 거기 멈춰!!!!"


수상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는 학생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토라마루의 거대한 주포가 불을 뿜었다.

다행히 첫 발은 빗겨가 근처 식당가 건물을 때렸으나, 안타깝게도 두 번째 발은 그녀들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날아온 포탄에 바퀴를 직격당한 미식연구회의 트럭은 얼마 가지 않아 성대한 소음을 내며 좌초되고야 말았다.


"크윽... 젠장. 이래서 내가 운전 하지 않겠다고 한건데..."

"나는...! 뭐든지! 잡으면 망해버린다고!!! 운이 최악이라고 나는!!"


"지금 그런 시덥잖은 농담을 할 때가 아니잖아요? 일어나세요 준코!"


"...이미 늦었어."


아루가 등 뒤로부터 전용 무기를 꺼내들며 말했다.

매케한 연기와 불길 사이로 웅장한 모습의 토라마루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해치를 열고 등장한것은 보랏빛이 도는 풍성한 적발의 소유자인 학생이었다.


"드디어 잡았네요, 미식연구회."


"음하하... 모든것은 다 학생회장인 나의 덕택이거늘..."

"이번만큼은 칭찬 해주도록 하지. 이로하."


"...헛소리 하지 마시죠, 마코토 회장."

"네~ 뭐 아무튼. 이제 더 이상의 도주는 없습니다. 순순히 오라를 받으시길."


자신을 이로하라고 밝힌 여성이, 토라마루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아루는 곧바로 그녀를 향하여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탄환은 빗나가 엉뚱한 가로등을 폭파시키고야 말았다.

이로하는 그런 아루를 무척이나 한심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응?"

"뭐야, 사츠키? 아. 아니구나. 햇갈렸네."

"네가 누군지는 몰라도 헛된 생각 따위 접어두는게 좋을거야."


'젠자아아앙...!!! 이걸 빗나간다고오오오?!?!?!?!?'


아루가 당황하여 표정이 사색이 된 사이, 하루나가 총기를 빼어들어 그녀를 겨누었다.

이 광경을 본 이로하는 가소롭다는 듯 비웃은 뒤, 비아냥 거리는 어투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 단순한 무기로 우리들을 상대하실 수 있을 것 같나요?"

"그만하고 포기하세요. 지금 당장 당신들을 무력으로 제압할 수도 있지만 참는겁니다."


"...나츠메, 이로하라고 하셨죠?"


"응. 그렇습니다만?"


"후후... 조만간 당신들도 알게 될거에요."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당신들이 어떤 오해를 하고 있는지 말이죠..."

"마치... 저희들이 그랬던 것 처럼 말이죠..."


"...변명이 길군요."

"좋아, 더 이상의 자비는 없습니다."


"...뜷고 나가는 우ㅇ..."

"으으으윽...!!!!"


이로하는 순식간에 총을 걷어차 하루나를 제압한 뒤, 그녀의 팔을 반대로 꺾어버렸다.

끔찍한 고통에 몸부림 치는 하루나였지만 그럼에도 끝끝내 비명은 지르지 않았다.


"...이상하군요. 어째서 비명을 지르지 않는거죠?"

"꼴에 자존심은 지키겠다, 그 말이신가요?"


"쿨럭... 저,저는 그저... 당신들을 위해서 그런 것 뿐..."

"다른 이유가 있거나 그런건 아니라구요...!"


"그래? 정말 고맙네요. 저희들을 생각해줘서."

"그래서, 마지막으로 남기실 말은 그것 뿐 인가요?"


"....후훗."

"준코!!! 지금이에요!!!!!"


"하아? 뭔 소릴..."


바로 그 순간.

이로하는 어느샌가 자신의 뒤로 바짝 다가온 준코와 눈이 마주치고야 말았다.

그녀는 황급히 몸을 움직였지만, 준코의 사력을 다한 사격 앞에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윽... 꺄아아아악...!!!!"


이로하는 방금 전의 그 기백이 우습게 초라한 꼴로 날아가 바닥에 쓰러지고야 말았다.

그녀의 몸에 있어 꽤나 큰 무리였는지, 준코가 휘청거리는 몸을 겨우 부여잡으며 말했다.


"흥...! 토라마루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놈이...!"

"어이, 아루라고 했어?"


"아...! 으,으응!"


"...먼저 가서 선생을 보필하도록 해!"

"아마 평생 쫒아올지도 몰라... 이 녀석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놈들이니까..."


"하,하지만 너희들은...!"


"아까도 봤듯이 지금 전 키보토스가 제정신이 아니야!!!!"

"너와 같은 학생들을 찾아!!! 헤일로가 검게 물든... 피폭자들을...!!!!"


"ㅁ,뭐어?? 갑자기 그게 무슨 소ㄹ..."


"시간이 없어!!! 빨리 가야만 해!!!!"

"우리는 신경쓰지 말ㄱ... 끄아아악!!!!"


준코는 아루와의 대화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뒤에서 날아오는 포탄을 미처 피하지 못했다.

결국 영거리 포탄사격에 직격당한 준코는 한마디 단말마와 함께 근처 건물에 처박혀 폭발하고야 말았다.

이윽고 연기가 걷힌 뒤 드러난 준코의 모습은 살아만 있는 상태의 처참함 그 자체였다.


"아...아루님!!!!"


"아,알고 있어!!!! 젠장!!"


아루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하루카와 함께 다리 밑으로 뛰어내렸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이로하가 이를 쫒고자 했지만 이즈미와 아카리의 저항에 부딪히고야 말았다.

잠시 뒤, 아루와 하루카가 저 멀리 사라진 모습을 본 하루나는 만족한 표정으로 되내었다.


"...부탁합니다 아루 씨."

"부디, 저희 대신 샬레에 도달하시길...."

"저희들의 죄악을... 저희들을 숙원을 부디...!"


"이...이 자식들...!!!! 샬레의 끄나풀 주제에!!!!!"

"...아아아아악!!!! 이거 놔라 배신자들아!! 내가 풀려나기만 하면 즉시 너희들을...!!!"


온 몸이 포박당한 마코토가 이를 갈며 발버둥쳤다.

허릿춤에서 권총을 꺼내어 저항하려는 이로하, 그리고 그녀를 막기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이즈미와 아카리.

결국, 힘에서 밀리기 시작한 이즈미가 다급하게 외쳤다.


"으그그그극.....!! 이,이젠 이쪽도 한계야!!!"

"하루나.... 어서 버튼을...!!!!!!"


하루나는 씨익 미소 지으며, 품 속에서 자그마한 스위치를 꺼내었다.

곧이어 그녀는 토라마루 위에서 서로 얽히고 섥인 이로하와 미식연구부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러분, 우리가 누구죠?"


"뭐야~ 결국 하는거야?"

"...후훗. 후후후훗...! 우리는 미식 연구회!!!"


하루나의 말에 준코, 아카리, 이즈미가 활기차고도 사악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황한 마코토와 이로하를 뒤로 하루나가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래요... 우리들은 미식 연구회..."

"미식만이 우리를 이끌며... 미식만이 우리 삶의 목표..."


"이... 이 자식들이 지금 뭐라는거야!!!"

"이로하!!! 뭐라도 좀 해봐!!!"


"윽... 저도, 시도하는 중 이라구요...!!!"

"...아! 됐다!"


마침내 두 사람을 뜷고 총기를 쥔 손을 꺼내는데 성공한 이로하.

그런 그녀를 보며, 하루나가 비장한 목소리로 전력을 다하여 소리쳤다.


".....EAT OR DIE!!!!!!!"


그녀가 버튼을 누르자, 이내 작렬하는 불길과 함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사방을 울리는 폭음과 더불어 솟구치는 화염. 그녀들의 각오에 어둠도 잠시 주춤하였다.

급양부에서 훔친 미식연구회의 트럭도, 만마전의 자랑이던 토라마루도 화염앞에 모두 녹아 사라지고야 말았다.

그 자리에는 오직 그을린 하루나의 모자만이 남아 팔랑거릴 뿐 이었다.


"...젠장!"

"젠장젠장젠장젠자아아앙...!!!!! 크흐윽...."


아루는 이들의 최후를 짐작하고는 고개를 떨어트릴 수 밖에 없었다.


.

.

.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말 없이 한참을 다리만 움직인지 오래.

그녀들이 남긴 최후의 미식도 어느덧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즈음, 하루카가 숨을 헐떡이며 아루에게 말했다.


"...아루님..."

"이 정도면... 꽤 멀리온 것 같습니다... 안심해도 될 것 같아요."


"...하루카."


"...예,에엡.."


"저들이 누구라고 했지...?"


흩날리는 잿가루들을 바라보며 아루는 말했다.

하루카는 잠시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그게..."

"미식... 연구회라고... 외쳤습니다."


"미식연구회..."

"...꼭 전해줄게. 내 이름을 걸고, 선생에게 꼭....!!"


어금니를 갈며, 아루는 되내었다.

그녀의 흙투성이 볼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


밀레니엄 학원.

이공계의 신화이자 키보토스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장소.

선생이 이 곳을 향한데에는 아리스의 복구를 위한것도 있지만 밀레니엄의 지성을 빌리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그는 과거 이곳 밀레니엄에서 있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신을 자칭하는 AI와 그것을 보조하는 충직한 예언자들의 출몰을.

이를 진압하고 수복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받았던 도움과 추억을.


"...후우."


선생은 마음을 다잡았다.

누가 정상인지 아닌지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지금, 섣불리 위험지역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이바 자매의 말 처럼 자살행위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로지 선생만이 가능한 일 이었다.


멀리서 밀레니엄 타워의 밝은 불빛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하지만 무언가가 이상한 광경에 선생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타워의 불빛이... 원래 붉은 색이었나...?"


마음이 다급해진 선생은 속력에 박차를 가했다.

그가 점차 더 가까워질수록,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에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드높은 밀레니엄 타워가 맹령한 화염의 혓바닥에 의해 집어 삼켜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젠장... 서둘러야겠어."


잠시 뒤, 밀레니엄 외곽구로 진입한 선생은 자동차에서 내린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따라붙은 미행자는 없는 듯 했다.


'여기부턴 역시 걸어가야겠지. 괜스레 시선을 끌면 곤란하니까.'


들어선 외곽 지구는 고요했다.

여기저기 부숴지고 망가진 시설물들과 미처 꺼지지 않은 불씨만이 이곳에 굉장한 혼란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선생은 근처 골목에 몸을 숨긴 뒤 전화기를 꺼내었다.


[...]

[...여보세요? 선생님?]


"에이미? 혹시 에이미니??"


[으응... 그렇다만, 무슨 일이야?]

[평소답지 않게 목소리도 다급하고... 왠지 이상해 선생님.]


"하아.... 다행이구나. 지금 어디야 에이미?"


[응? 나야 뭐 늘 부실에 있지.]


"괜찮아? 히마리는? 히마리는 주변에 있어?"


[부장은 에어컨이 너무 춥다며 잠시 밖으로 나갔어. 그런데 부장은 왜?]


선생은 자신도 모르게 풀린 다리를 부여잡고 주저 앉았다.

에이미의 존재는 그에게 있어 밀레니엄으로 향한 이유이기도 했다.

적어도, 그녀는 늘 각종 전자파 차폐체로 둘러쌓인 부실 안에만 있는 편이었기에 사태의 영향으로부터 안전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바깥으로 나갔다니. 선생의 입장에선 크나큰 낭패나 다름 없었다.


[아마 곧 돌아올거야. 부장이 도착하면 알려줄게.]

[그런데 조금 오래 걸리네... 보통이면 2분 정도면 너무 덥다며 다시 들어오곤 했는데.]


"에이미, 혹시 지금 바깥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고 있어?"


[응? 잘 모르겠어. 혹시 무슨 사건이라도 일어난거야?]


선생은 키보토스를 덮친 재앙에 대하여 천천히, 그리고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비록 수화기 너머였지만 그는 에이미가 서서히 공포와 충격에 질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그럼 큰일난거 아니야? 지금 바로 부장에게 연락해 볼게.]


"그래, 고마워. 연락이 닿는다면 바로 알려줘."

"...그리고 괜찮다면 혹시 지금 키보토스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줄 수 있어?"


[음... 선생님도 잘 알잖아. 나는 현장 작전 전문이야. 머리를 쓰는 것은 어디까지나 부장의 몫이야.]

[무엇보다, 부실의 네트워크는 오직 부장만이 접속할 수 있어. 내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뜻이야, 선생님.]


"그,그래... 그렇다면 이만 끊을게."

"그리고 명심하렴. 절대 밖으로 나오면 안돼. 혹시 모르니까."


[응. 알겠어, 선생님.]


전화가 끊어지자 선생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러다 문득 복부에 느껴지는 통증에 선생은 미약하게나마 신음하였다.


그러나 그 순간, 불현듯 날아온 눈먼 총알에 선생은 기겁하며 자신의 입을 황급히 틀어막았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린지 오래였다.


"거기 누구야!!!!"

"있는거 다 알고 있어. 당장 손 들어!!!"


어디선가 들려오는 의문의 목소리에 선생은 천천히 두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어둠으로부터 누군가가 천천히 발걸음을 내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선생은 온 몸의 신경을 집중하였다.


"너도 한패인거지!! 뒤돌아서 이쪽을 바라ㅂ... 으응?"

"서,선생님??? 선생님이 왜 여기 있어?"


"이 목소리는... 마키?"


마키는 황급히 총구를 내린 뒤 주변을 경계한 후, 선생에게 달려갔다.

이윽고 도착한 마키는 당황한 표정과 함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미쳤어 선생님???? 대체 왜 여길 온거야???"


"그,그게 히마리를 만나려고..."


"부장은 왜...? 아니야,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고 선생님."

"빨리 이 곳에서 나가야해! 밀레니엄은 곧 있으면 멸망하고 말아...!!"


"잠깐, 잠깐만 마키!"


자신을 이끌고 황급히 발걸음을 옮기는 마키를 불러 새우며, 선생이 말했다.


"멸망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선생님은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하긴, 알고 있었다면 여기로 다시 돌아올 이유가 없을테지..."

"좋아. 시간이 없으니 간단하게 말할테니 잘 들어, 선생님.


선생은 숨죽이며 마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내 잠시동안 망설이던 그녀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킨 뒤, 마침내 그 입을 열어 말했다.


"리오 회장이 당해버렸어."

"정확히는... 미처버렸다고 하는게 맞으려나."


"...뭐어?"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대화중이던 마키와 선생의 뒤로 거대한 로봇이 나타나 그들에게 총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마키는 그 즉시 노련한 움직임으로 로봇을 격추한 뒤, 주변 경계를 시작하였다.

그런 마키의 변해버린 모습을 보며 선생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왠지는 모르지만, AMAS들이 캠퍼스 내를 활보하고 있는 상태야."

"...아마 리오 회장의 짓 이겠지."


"많이... 날쌔졌구나, 마키."


"응? 아... 이거?"

"...목숨이 달린 상황 앞에서 저질체력 따위, 아무 것도 아니지."


웃으면서 말하는 그녀였지만 선생은 알 수 있었다.

그 미소 너머의 이면에는 큰 상처가 존재하고 있음을.


"다른 부원들은?"


"...치히로 선배는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연락이 끊겼고, 하레 선배는 토대를 지켜야 할 사람이 필요하다며 대피하지 않았어."

"코타마 선배는 첫 날부터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고... 모르겠어, 이젠 나도 잘..."


말없이 흐느끼는 마키를 위로해주며, 선생은 불타오르는 밀레니엄 타워를 바라보았다.

흩날리는 잿빛 잔해들과 불꽃들. 그는 자신이 너무 늦게 도착한 건에 대하여 크나큰 죄책감을 느꼈다.


"그,그래도 너무 걱정하진 않아도 돼."

"선배들처럼 탈인간급은 아니지만, 일단은 나도 베리타스니까 말이야. 선생에게 어느정도 도움은 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래서, 선배는 무슨 일로?"


"지금 상황을 명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히마리의 컴퓨터가 필요하거든."

"하지만 그곳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히마리의 허가가 필요해. 그래서..."


"흐음...? 그래?"

"그런데 선생, 나와 선배가 무슨 동아리 학생인지 잊어버린거야?"


"응? 베리타스..."

"...서,설마. 안돼, 마키...!! 히마리의 보안의식이 얼마나 높은데!"

"해킹이라니, 당치도 않을거야!"


"글쎼. 해보기 전 까진 알 수 없는 법이지."

"자, 우선 전산실부터 가자고. 그곳에서 노트북과 관련 장비를 챙겨야 하니깐 말이야."


선생은 그녀의 안내를 받으며 밀레니엄 타워로 향했다.

가는 길은 결코 편하지 않았지만, 마키의 보호덕에 선생은 어렵지 않게 타워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고마워, 마키... 이 은혜를 어찌 해야할지..."


"에이, 은헤는 무슨 은혜! 그저 해야할 일을 했을 뿐 인데."

"아직 끝나지 않았어. 선생님, 이쪽이야."


고요한 복도와 엘리베이터를 지나 도착한 전산실.

이곳저곳에 잔뜩 새겨진 탄흔으로 하여금 분위기가 절로 을씨년스러웠다.


"어,어라... 왜 문이 안 열리지?"

"분명 ID 카드도 인식했고... 이럴리가 없는데?"


그러나 그 순간.

문이 벌컥하고 열리더니, 내부로부터 잔뜩 공포에 질린 표정의 하레가 허겁지겁 튀어나왔다.

얼얼한 코를 만지작 거리던 마키는 하레를 보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선배?"


"선생...님....? 마키....???"

"여...역시.... 모두 무사 했구나....."

"정말.... 정말 다행....이.....ㄷ....."


철퍼덕.

하레는 이내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선생과 마키는 이에 황급히 그녀를 대리고 전산실로 들어갔다.


"ㅅ,세상에... 이 판자들은 도대체...?"


"아마 하레가 한 일 같은데...."


'젠장... 여기 무슨 일이 일어났던거지...?'


부실로 들어온 선생은 크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는 마키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저기 널려진 탄피와 곳곳에 박혀있는 판자, 그리고 못자국. 부숴진 컴퓨터까지.


"컴퓨터를 부숴서... 바리케이드를 만든거야? 어떻게 그런... 얼마나 다급했으면 선배가...!"

"아니, 그 전에 내 노트북은.... 설마 이게...."


마키는 바닥에 떨어진, 부숴져 너덜너덜 해진 노트북을 들어올렸다.

마치 무언가를 향해 휘둘러 깨진듯한 상처. 마키는 자신도 모르게 근처 쓰러져 있는 AMAS를 바라보았다.


"...바리케이드가 아니었어."

"방어가 뜷리자... 주위에 잡히는 모든것으로 저항을 한 거였어 선배는...."


"미...미안, 마키..."

"네 노트북.... 그렇게... 쿨럭! 만들어서...."


그떄 깨어난 하레가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만 마키는 그녀에게 화를 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오히려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노트북 따위가 지금 무슨 상관이겠어... 괜찮아, 선배?"

"토대를 지킨다는게 이런 의미였냐고, 바보! 그냥 도망쳐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을텐데..."


마키는 눈물을 흘리며 하레를 끌어안았다.

하레는 조금 얼떨떨 한 표정이긴 했어도 그녀를 딱히 거부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런 그녀들의 모습을 보며, 선생은 실로 오랜만에 미약하게나마 미소 지을 수 있었다.


잠시 뒤, 어느정도 기력을 회복한 하레는 선생에게 그동안 조사하고 수집했던 자료를 나열해 보여주기 시작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녀의 정보 수집력과 분석 실력은 실로 대단했다.


"여기, 전반적으로 공통적인 특징을 찾았어."

"헤일로가 물들지 않은 아이들의 모모톡과 SNS를 통해서 알아낸 정보인데, 변질의 유무는 완전 렌덤인 것 같아."


"'갑자기 빛이 비춰지더니 나만 빼고 모든 아이들이 헤일로가 물들었다' 라..."

"어쩌면 미도리와 모모이가 말해주었던 가설이 맞는 것 일지도 모르겠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상황은 더욱 암울해... 누가 정상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는거잖아..."


마키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근처 자리에 착석하였다.

골머리를 썩히는건 선생도 마찬가지였다.


"하아... 이렇게 언제까지나 시간을 끌 수는 없는 노릇인데..."

"역시 현장 조사를 해봐야겠ㅇ... 으응?"


문득 느껴지는 진동에 주머니를 확인해 보니, 선생의 전화가 요란하게 울리기고 있었다.

아마도 에이미일 것이라 짐작하며 그가 전화를 받으려던 그때.


쾅.

쾅.

무언가가 전산실의 문을 반복적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판자와 잡동사니를 동원해서 문을 막았다고 쳐도 이대로 가다간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뜷려버릴 터.

하레와 마키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전투 준비를 했다.


"콰아아앙!!!!"


이윽고 문이 부숴지자, 그 너머에 있던 AMAS 로봇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우직한 몸체. 기괴한 형상의 팔과 더불어 수상할 정도로 아방가르드틱한 유선형 디자인까지.

한 눈에 봐도 위험한 느낌이 풀풀 나는 로봇이었다.


"읏.... 쏴...!!!!"


마키와 하레는 즉시 총알을 갈기기 시작했지만 로봇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느새 총알이 바닥난 마키와 하레였지만 어째서인지 자신들을 공격하지 않는 로봇을 보며 그녀들은 의문을 품었다.

그러나 그 순간.


[샬레의 선생님.]

[전화를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

"서,선생님...???"


"...나?"


[네. 선생님.]

[선생님을 모셔오라는 리오 회장님의 전언이 있었습니다.]

[전화를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


선생이 전화기를 확인하자 전화를 건 대상은 정말로 리오였다.

그는 충돌하는 이해관계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리오는 멀쩡한건가...? 하지만 아까 마키가 분명히 미쳤다고..."


"바,받으면 안돼 선생님!!"


마키가 다급하게 외쳤다.

옆에 있던 하레도 그녀의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그런 그녀들을 선생은 잠시 동안 바라보더니, 이내 결심을 굳힌 듯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선생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츠카츠키 리오 입니다.]


"...리오?"

"기다리고 있었다니.... 무엇을...?"


[그야 당연히 선생님께서 밀레니엄을 방문해 주시길 말이죠.]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정말로 리오였다.

선생은 내심 안심하면서도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선생님께서도 아마 아시리라 믿습니다. 지금 키보토스에 일어난 비상사태를 말이죠.]

[학원의 책임자인 학생회장으로써, 저는 학원 내에 발생한 혼란을 잠재울 의무가 있었죠.]

[AMAS 배치는 그러한 이유에서 였습니다. 부디 이해해 주시길.]


"그래... 그랬구나..."

"하지만 왜 하필이면 나에게 전화를 한거야?"

"사태 파악을 위해서라면 세미나나 다른 동아리들이 더 나았을텐데."


[당연히,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서죠.]

[지금 밀레니엄은 중대한 위기에 빠져있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누구도 아닌 선생님의 도움이 더욱 절실한 상황입니다.]

[부디, 저희들을 도와주십시오. 부탁입니다.]


"...그래, 알겠어."

"세미나 실까지 가려면 조금 위험하니까, 인원 한 명 정도는 대동해도 괜찮겠지?"


[아니오. 혼자 오셔야만 합니다. 제가 피신해 있는 컨트롤 타워는 일반 학생들에게 공개가 엄금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안전이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쯤이면 아마 제가 보낸 호위 로봇이 선생님의 위치에 도착 하였을겁니다.]


선생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우두커니 서있던 AMAS 로봇이 넌지시 손(으로 추정되는 기관총)을 좌우로 흔들었다.

LCD 패널에 미소짓는 이모티콘까지 띄우며 말이다.


"...좋아. 곧 가도록 할게."


[이해가 빠르시군요. 그렇다면 곧 뵙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걱정마, 마키. 하레. 나도 다 생각이 있으니까 말이야"

"하레는 정보수집과 현황 파악에 힘 써줘. 마키는 그런 하레를 옆에서 보조해주고."


선생이 소지품을 챙겨 떠나려던 그 순간.

불현듯 마키가 선생님의 앞길을 가로막아 섰다.


"...마키?"


"가지마, 선생님."

"리오는 제정신이 아니야... 내 말 믿어줘!"


"마키..."

"솔직히 말해서 나도 그녀의 말을 확신하지는 않아."

"하지만 선생으로써... 학생을 위해서라면 그것이 거짓임을 알고 있음에도 믿어 줘야할 때가 있는 법이야."


"..."


울상이 된 마키는 잠시동안 훌쩍이다 이내 두 팔을 가득 벌렸다.

영문 모를 그녀의 행동에 당황한 선생은 말했다.


"마키??? 이게 무슨..."


"...안아줘."


"...???"


"안아줘. 안아주기 전 까진 안 보낼거야..."


갑작스러운 마키의 행동에 하레의 두 눈도 덩달아 커지기 시작했다.

선생은 몹시 당황스러웠지만 상황이 긴박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자그마한 품으로 몸을 우겨 넣었다.


"ㅈ,자. 이제 됐니...?"


"응. 이제 됐어."


마키는 만족한 듯 선생의 등을 몇 차례 두드렸다.

긴급한 상황에서 갑자기 애정심이라도 든걸까. 

선생은 여전히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저기, 선생님..."

"혹시라도 위험한 상황이 오면... 바로 불러야돼...? 알겠지?"


"...응. 물론."


선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AMAS 로봇 위로 몸을 실었다.

그러자 잠시동안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던 로봇은 이내 선생을 싣고 어딘가를 향하여 재빠르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탑승자의 멀미는 철저히 무시되었다.


***


헤일로가 검게 변한 학생들은 외형이 상당수 변했다는 설정임.

그 대표적인 예로 이로하가 아루를 사츠키로 착각하는 대목이 있지.

끝으로 커여운 아루짤 두개 던지고 나는 마저 쓰러 감.

그리고 미움약 돌아와...!!!!! 장편은 힘들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