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편


***


그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어둠속이었다.

이윽고 두 눈을 뜬 선생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둠.

빛 한 줄기 조차 들어오지 않는 칠흑의 어둠.


그는 조심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땅인지 수면인지 모를 축축하고도 기분 나쁜 바닥.

그로 하여금 서서히 두 다리가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허억!"


그는 재빨리 두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빨려 들어가는 발들과 깊이를 알 수 없는 수령이 그를 압박해왔다.

아무리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처도 다가오는 어둠에 그는 너무나도 무력했다.


"으윽.... 우으으윽....!!!!"


결국 얼마 가지 못해 넘어지고 만 선생.

바닥에 엎어진 그의 온 몸을 축축한 어둠의 손바닥이 천천히 감싸오기 시작했다.


"윽, 이... 이거 놔....!!!!"


".... ...."


"큿, 젠장....!!!!"


그는 몸부림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서히 솟아오르는 질척한 어둠에 이내 선생의 두 발이 완전히 집어 삼켜지고 말았다.

움직임이 봉쇄당하고 만 선생은 말없이 어둠의 끝을 노려보았다.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낸 어둠.

흘러내리는 암흑 빛의 진흙너머로 그 눈을 빛내며, 어둠은 말했다.


"...님."

"....생님. 선생님...."


"....헉!!!!"


선생은 그 눈빛을 알고 있었다.

이내 그는 처음으로 공포라는 감정에 이성을 마비당하고 말았다.

두려움에 떠는 그의 몸 위로, 어둠은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선생님.... 선생님....."

"어째서 우릴.... 버리신거에요....???"


"선생님.... 선생니이임.....!!!!!"

"저희들은 선생님을 믿고 있었는데....!!!"


뻗어오는 수많은 손길들.

선생은 공포에 몸이 굳어버린 나머지 저항 비스무리한 행동 조차 할 수 없었다.


"얘...얘들아..."


"어째서.... 어째서어째서어째서....!!!!!"

"저희들을 지켜주겠다고 하셨잖아요....!!!!!!!"


"우리가 얼마나 무서웠는데...."

"그럼에도 저희는 선생님을 끝까지 기다렸는데....!!!!!"

"어떻게 우리한테 이러실 수 있는거에요? 선생님???"


잔뜩 노이즈가 낀 얼굴과 기괴한 형상. 헤일로의 광택을 잃어버린 어둠들.

아니, 학생들이 선생을 향해 검은 피눈물을 흘리며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얘,얘들아.... 얘들아...!!!!"


"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쨰서...."

"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

"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


"흣, 흐읏....!!!!!"

"얘들아...!!!!!"


자신을 쥐어뜯고 잡아당기는 수령으로부터 뻗어온 지옥의 손길.

서서히 몸을 타고 올라오는 그녀들을, 선생은 밀어내거나 도망칠 수 없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아주 무겁고도 단단한 무언가가 그의 두 발을 자비없이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릴 버렸어.... 우릴 버렸어....!!!!"

"우린 당신을 믿고 있었는데..... 그런 우리를 당신은 배신했어....!!!!"


"얘들아... 나는....!!!!"

"나는 항상 너희들만을 생각하며 움직였어...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고...!!!"


"...거짓말."

"자가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면서 움직였잖아...."

"우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오직 도망칠 생각만 했잖아....!!!!!"


"그,그런.... 그렇지 않아...!!"


"거짓말!!!!!!!!!"


이내 그의 전신을 뒤덮는 격통.

수많은 손들이 그의 몸통을 뒤틀고, 그의 사지를 찢고, 그의 머리를 짓이겼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에 선생의 두 눈이 절로 뒤집히며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비명 한 번을 지르지 않았다.


"....미안."

"으흑, 흑.... 미안.... 미안하다 얘들아.... 내가...."

"내가 너희들을 지켜주지 못해서.... 선생이 학생들을 구하지 못해서....!"


.

.

.


"...선생님."

"선생님!!"


"...으응?"


"주무시고 계실 때가 아니에요 선생님!"


선생은 자신을 깨우는 목소리에 문득 그 눈을 떴다.

싯딤의 상자로부터 들려오는 아로나의 목소리.

아로나는 잔뜩 뿔난 모습을 한 채 선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은 다급히 자신의 온 몸을 더듬었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사지를 비롯한 신체는 멀쩡했다.

그는 안심하는 한편, 유난히 사실적이었던 방금 전의 환상에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으,으으...."

"시간이 얼마나 흐른거지...?"


"6시간이요, 선생님!"


"우왓.... 그, 그 정도나...?"


선생은 다급히 시계를 보았다.

아로나의 말 처럼 정말로 6시간이 흘러있던 상태였다.

이윽고 그는 무력하게 시간을 낭비했다는 사실에 또 다시 자괴감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선생니이임!"

"그렇게 자책하실 시간이 없어요!"


"...미,미안 아로나."

"하지만... 하지만 나는 학생들을 구하지 못했어..."


"대체 누가 그러던가요?"

"구하지 못했다니요, 이제부터 구하면 되죠!"


선생은 말없이 학생들의 명부를 바라보았다.

자비없이 쳐져있는 붉은 X표. 선생이 구하지 못한 학생들의 목록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떻게?"

"나도 마음만 같아서는 모두를 구하고 싶어...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너무나도 무력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할 수 있는게 있을까...?"


무력하게 주저 앉아있는 선생.

그의 얼굴은 온갖 근심들로 가득했다.

그런 선생에게 아로나가 천천히 다가왔다.


"선생님."

"책임을 지는 사람에 대하여 이야기 한 적이 있었죠?"


"...아로나."


"전생님께서는... 제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어른이세요."

"그리고 이 세계의 모든 학생들에게도..."


"..."

"하지만 나는... 무력하게 도망만 다니고 무엇하나 내 손으로 해내지 못했어."

"...솔직히 말해서 여기서 내가 무엇을 더 해야만할지 잘 모르겠어."


"학생들의 곁에서 그녀들을 바라 봐주는 것."

"...그리고 이끌어 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아로나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어른이란, 그런 직책이니까요."


"...그래, 난 선생이야."

"학생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고... 그녀들의 탈선을 되돌리고 교화시키는 것."

"...그리고 마지막까지 학생들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야 말로 나의 일이고, 나의 사명이며 나의 존재의의인거지. 안 그래?"


선생에 말에 아로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무언가 위화감을 느낀 선생은 감았던 두 눈을 떴다.


.

.

.


"...허억."


정신을 차린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베리타스의 전산실. 그 옆에 마련되어있는 침대.

꿰매어진 상처와 미약하게 느껴지는 배의 고통까지.

이전의 경험과는 다른, 참혹한 현실이었다.


시계는 오전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제서야 그는 사태가 발생하고 나서 처음으로 자신이 잠을 잤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한층 개운해진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는 중얼거렸다.


"...꿈, 이었구나."

"아로나... 날 위해서...."


'책임을 지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 한 적이 있었죠.'


"...그래. 나는 선생이야."

"책임... 지도... 그것으로 내 존재가치는 이미 증명되었어."


선생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명부의 전원을 지긋이 누르며 그는 되내었다.


"다들... 조금만 더 기다려 줘."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데리러 갈테니...!"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은 뒤, 굳게 닫혀있던 문을 열었다.

그를 맞이해 준 것은 밤새 철야에 시달리던, 히마리를 포함한 베리타스 학생들이었다.


"서,선생님....!!!!"


"미,미안... 잠시 감정이 격해져 있던 차라..."

"그래서, 얼마나 시간이 지났지?"


"...별로 안됐어요 선생님."

"저희들도 막 조사에 들어간 참인걸요 뭐."


히마리는 퀭한 눈가와 함께 애써 웃어보였다.

그리고 이는 다른 모든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라, 선생님. 왔어?"

"조금만 더 쉬고 있어도 됐는데 말이야~!"


"오셨군요, 선생님."

"상처는 괜찮으신지요? 다행입니다..."


"아, 왔어? 선생님?"

"아... 이건 그러니까... 윤활유라고 할까나."


하레는 책상 위 수북히 쌓여있는 에너지 드링크 캔을 치우며 말했다.

가슴속 깊은 곳으로 부터 느껴지는 미안함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피식하고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고마워. 다들."

"그럼, 모두를 구할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볼까!"


선생은 그녀들처럼 지능이 뛰어나지도, 신체적 능력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저질체력에 신체 내구도는 그녀들에게 있어 두부나 푸딩보다 약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모두이게 있어 필요한 존재였던 이유는 단 하나.

그가 학생들의 선생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잠시 이쪽으로 와주시죠."


히마리의 호출에 선생은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그에게 또 다른 명부 리스트를 보여주며 그녀가 말했다.


"선생님께서 방 안에 게시는 사이, 저희 나름대로의 대첵을 새워보았습니다."

"우선, 현재 연락이 닿는 학생들을 모두 추려보았어요."


"아코... 미도리와 모모이 자매... 무츠키... 후우카... 카린...!"

"카린, 카린이 살아 있었구나... 다행이다..."


"그 밖에도 수많은 학생들이 각자 자신의 방법으로 이 사태를 해쳐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그녀들에게도 한계가 다가오겠죠. 그래서 우리들이 서둘러야 한다는겁니다, 선생님."


"그래.... 그렇겠지."

"그렇다면, 이 사태를 종결시킬 방법이 없을까?"


히마리는 씨익 웃으며 키보드를 두들겼다.

잠시 뒤, 모니터에 커다란 지도들이 하나 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거짓된 성소]


게헨나, 트리니티, 백귀야행까지 총 3개의 학원 위에 표시된 붉은 점.

이들을 가리키며 히마리는 말했다.


"조사결과, 저희는 과거 대적했던 허망의 생텀과 비슷한 구조를 지닌 여러 성소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갯수는 총 3개. 이들 모두 색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죠."


"연결...되어 있다고?"


"네. 그것의 목표가 현재 무엇인지는 잘 모릅니다만, 잠정적인 휴식기에 들어가 에너지를 수집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수집의 주체는 다름아닌 저 성소. 색채의 실체화, 그것의 일부분이나 다름 없는 기관이죠."


히마리의 말을 들은 선생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그 말인 즉슨..."

"저 성소들을 치면 색채에게 유효타를 줄 수 있다는 이야기네?"


"네, 현재로써는."

"아마 직접적으로 자신을 내놓아 키보토스를 침식시키고자 하는 속샘으로 보이는데,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그래... 네 말이 맞아, 히마리."

"물론 조금 신중할 필요는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신중은 사치일 뿐이니 말이야."

"하지만 병력이 문제야. 설령 성소를 발견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칠 병력이 있어야 하는데..."


선생은 아파오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히마리의 분석은 정확했지만 그렇다고 성소를 직접 공격하자니 한정된 전투원과 물자가 발목을 잡았다.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

그러나 어떤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이내 히마리를 비롯한 베리타스의 모든 부원들이 천천히 미소짓기 시작했다.


"ㅁ...뭐야, 왜 그래?"


"하하... 그게..."


히마리는 대답 대신, 엔터 키를 조용히 눌렀다.

그러자 이내 수많은 모모톡의 메시지들이 화면을 수놓기 시작했다.

차마 일일히 샐 수 없을 정도의 물량에 선생은 입이 떡 벌어지고야 말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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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이 한 몸,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발키리 경찰국에서도 병력 지원이 가능하다는 점 알려드립니다.]


[선생님. 아루짱을 찾는다면서! 그럼 나도 함께 할게!]


[선생. 그 깡통 녀석, 되살릴 수 있는거 맞지? 나도 함께할 수 있어.]


[히나 부장님을 찾는데 도움을 보태주신다면 이 아마우 아코, 기꺼이 선생님께 힘을 보태겠습니다.]


[급식 그만 만들고 싶은데 저도 참여 가능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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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건..."


"선생님의 생존사실과 성소 공략의 기초적인 내용을 담은 문자를 모두에게 보낸 결과입니다."

"어림잡아도 대략 50여명 정도... 이 정도의 병력이라면 성소의 공략에는 차질이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이런 일이.... 세상에....!"

"고....고맙구나.... 덕분에 한 시름 놓았어..."


감탄하는 선생.

이윽고 그의 촉촉하게 젖은 눈가 너머로 희망과 감동의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본 히마리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실패하신게 아닙니다. 이들 모두가 모인 이유는 다름 아닌 선생님. 당신 덕분이니까요."

"따라서 감사해야 할 사람은 선생님이 아닌, 저희들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는 실패하지 않았다.

그 간단한 한 마디가 그의 척박했던 마음에 다시금 꽃을 피우는 게기가 되었다.

이윽고 선생은 넘처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외쳤다.


"...그래. 작전을 발인하자!"

"히마리, 연락이 닿는 모든 학생들을 여기로 인도해줘."

"마키! 키보토스를 도는 열차들의 인프라를 해킹해서 가능한 많은 학생들을 태울 수 있게 해줘."

"하레! 밀레니엄의 방공 시스템을 이용해서 적들을 유인해줘!"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응! 맡겨줘!"


"으응. 알겠어, 선생님."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학생들이 부실 앞으로 속속히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비도스. 게헨나. 트리니티. 밀레니엄. SRT. 발키리 등등.


세나와 하나에는 함께 힘을 합쳐 부상자들을 치료했고, 마키와 하레는 학생들을 공격하는 AMAS 퇴치에 힘썼다.

히마리는 도착한 학생들을 안내하고 기초적인 작전을 브리핑해주었다.


서냉이라는 이름 하에 규합된 학생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며 서로간의 이야기를 회고했다.

비록 각기 다른 학원 출신이고 이들 중에는 서로간 감정의 골이 깊은 학원 또한 있었지만 이는 더 이상 무의미 했다.

세상을 구한다는, 막중한 임무 앞에서 싸움의 대상은 성소 하나로 족했으니까.


이 모든 광경을 바라보며, 선생은 미소지었다.

꼴사납게 피해만 다니던 때는 끝났다. 이제부터는 반격의 때다.

그는 속으로 다짐하며 다가올 싸움을 준비하였다.


"...좋아! 반격 시작이다!!"


***


진히로인 아로나(現 총학)


선생의 과거편 스타트.

이와 동시에 빌드업도 스타트!

당분간은 아마 계속 이 정도의 분량으로 갈 듯.


선생이 어떻게 색채를 상대했는지, 어떻게 상처를 입고 샬레에서 사망했는지.

아루가 처자던 1주일 동안의 일을 차근차근 풀어나갈 예정이니까 많은 기대를 부탁드립니다.


+미카와 미사키도 곧 나올 예정. 후회물에 멘헤라가 빠지면 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