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편


***


"...사오리. 사오리."


"...으,으윽."

"......내가 얼마동안 누워 있던거지...?"


"꽤 오랫동안."

"덕분에 하루카가 힘을 써줬지."


아루는 창밖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말했다.

그녀 옆에는 녹초가 되어 곤히 잠든 하루카가 새근새근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럼, 내리자."

"도로가 막혀 있어서 지금부터는 걸어가야할 것 같아."


"...얼마나, 얼마나 남았지?"


"아마 조금만 걸으면 될거야."


아루는 말없이 손가락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이내 미약하게 빛을 내는 생텀 타워의 푸른 헤일로가 사오리의 시선에 들어왔다.


"자자, 하루카! 이만 일어나!"


"ㅎ....헤으윽...?!?!!?"


"...그래, 정말 조금만 더 걸으면 되겠군."


사오리는 아루의 손을 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은 서로 미묘한 시선을 교환하였으나 이도 잠시, 이내 샬레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한참을 걷던 도중 아루는 불현듯 느껴지는 섬뜩함에 뒤를 돌아보았다.


"...왜 그러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

"아마 착각일 것이다."

"계속 이동하도록 하지. 정 불안하다면 주변 경계 하는걸 잊지 말고."


"응... 알겠어."


이후 한참을 더 걸은 끝에 그녀들은 마침내 그토록 고대하던 샬레 건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녀들은 처참하게 부숴져있는 정문을 천천히 열고 들어가 주변과 선생의 행방을 살펴보았다.

먼저, 그녀들을 맞이해 준 것은 처참한 전투의 현장이었던 엔젤 24였다.


"세상에... 여기가 그 편의점...?"

"성한데가 없잖아... 대체 뭔 일이 일어났던거야??"


"이건.... 탄흔이다. 아마 큰 전투가 있었던게 아닐까 싶은데."

"혹시라도 적이 튀어 나올지도 모르니 경계를 늦추지 말자고."


이내 그녀들은 한쪽 구석에 마련된 비상 계단을 발견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소름끼칠 정도로 적막한 샬레 내부 덕에 아루의 긴장과 불안도 서서히 심화되어갔다.

그러다 문득, 성큼성큼 앞서가던 사오리의 발걸음이 갑자기 멈춰섰다.


"...왜 그래?"


"쉿."

"들어봐."


아루와 하루카는 사오리의 말대로 귀를 기울여 보았다.

그러자 어디선가 무언가를 두드리고 긁는듯한 소름끼치는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ㅁ...뭐죠...?? 아,아루님... 혹시 들리세요...??"


"응... 나도 들려. 뭐지...?"


"...사람 소리 같군. 윗 층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데."


사오리는 다시금 방독면을 착용한 뒤 다시금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후 의문의 소리는 계단을 오르면 오를 수록 점차 더 커져가 확실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아루는 그 소음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쿵. 쿵.

무언가가 단단한 문에 부딪히면서 나는 둔탁한 파열음.


끼익. 끼익.

무언가가 문고리를 잡고 늘어지면서 나는 날카로운 마찰음.


"....흐윽, 흑.... 흑...."

"제,제발.... 열어.... 열어주세요오.... 제발....."


한 여성의 구슬픈 울음소리까지.

소음의 정체는 다름 아닌 닫힌 문에 절망하던 한 여성의 곡성이었던 것이다.


"...누구야, 저 사람?"

"잠깐만... 왠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선ㅅ.... 흐윽...!!! 선생님....."

"선생니이이임.... 흐윽,흑... 쿨럭, 제발 문을.... 문을 제바아알.....!"

"흐으윽,흑.... 끄윽,쿨럭.... 흐으윽.... 흑....."


단단한 철문에 머리를 쿵쿵 찧으며 오열하는 그녀.

사오리는 착잡한 표정을 지은 채 씁쓸히 말했다.


"....전에 말했던 그녀다."

"밀레니엄의 세미나..."


"...하야세 유우카."

"그런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거지? 밀레니엄은 반대 방향 아닌가?"


"ㅁ...뭔가 분위기가 매우 이상해요..."

"제압하고 가는게 좋지 않을까요...??"


"ㅁ,뭘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그나저나 왜 못 들어가는거지? 문이 잠겨있나?"


"그건 모르지."

"확인 해보러 가자고."


"자,잠깐...!!!"


아루의 말림에도 불구하고 사오리는 겁없이 샬레 정문을 향해 다가갔다.


"...하야세 유우카."

"오랜만이군. 샬레에는 무슨 일이지?"


"...흑, 흐흑.... 응....?"

"ㅁ....뭐야, 네가 왜 여기에....."


"왜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는거지?"

"문이 잠겨있는건가? 네 정도라면 샬레의 보안은 간단하게 풀 수 있지 않나?"


그러나 유우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말없이 그녀를 바라볼 뿐 이었다.


"...왜 그러지? 내 얼굴에 뭐라도 묻ㅇ..."


"끄흑...!!!!! 선생님..... 선생님 제발... 제바아알....!!!!"

"저를 제발.... 들여보내 주세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제발...."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쾅. 쾅. 쾅.

불현듯 예고 없이 유우카는 샬레의 정문에 그녀의 머리를 수차례나 강하게 찧기 시작했다.


"ㅇ...유우카...!!!"

"유우카, 네 이마가...!!!"


그러자 이내 그녀의 찢어진 이마로부터 뜨거운 혈액이 울긋불긋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잠시 뒤, 편안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나지막히 되내었다.


"..."

"...알고 있어."


그 말을 남긴 채, 유우카는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철문은 그녀가 남긴 혈흔과 파인 자국들로 가득 차 있었다.


"ㅅ,설마 고의로..."

"....어째서. 어째서 외면하는거지...?"

"누군.... 누군 안 도망치고 싶은 줄 아는건가...??"


"..."


"유우카.... 일어나, 일어나란말이다...!!!!!!"

"...젠장!!!! 이래선 예전과 다를게 없잖아...!!!!!"

"어째서.... 어째서 나는 조금도 바뀌지 못한거냔 말이다!!!!!!"

"어째서.... 조금도 성장하지 못한거지...?"


"..."


"선생.... 당신은 어떻게....."

"어떻게 그토록 암울한 상황에서 빛만을 찾아온 것 인가..."


이내 마음이 꺾여버린 사오리는 털썩, 하고 주저 앉아버렸다.

뒤늦게 사오리를 따라온 아루는 눈 앞에 벌어진 상황에 그저 경악할 뿐 이었다.


"ㅁ,뭐야...???"


"...내가 한 짓이 아니다. 오해말도록."

"단지... 그녀의 선택이었을 뿐이다."


이내 무언가를 느낀듯, 사오리는 말없이 외투를 찢어 그녀의 이마 위에 덧대었다.

그녀의 표정은 참혹함과 우울, 그리고 죄책감의 표상이나 다름 없는 형태를 하고 있었다.


"...대체 어째서 우리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어째서 이런 비극이 일어났는지. 어째서 이토록 상처입고 스스로를 해하여야 하는지...."

"...헛되다. 헛되고 헛되었으니.... 결국 모든 것이 헛되었을 뿐..."


"사오리... 괜찮아?"


"...아루, 너는 내가 구원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모두가 고통받는 지금, 내가 두 발을 뻗고 편히 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아루는 불현듯 이상증세를 보이는 사오리에 당황하며 말했다.

이에 사오리는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만 같은 표정으로 나지막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나는 선생을 해쳤다. 그의 다리에 총알을 박아넣고.... 그를 압박했다."

"한 순간이지만 그를 진심으로 죽이려고 했으며.... 실제로도 그리할 뻔 했다... 내가.... 이 손으로...."

"이 손으로 그의 목숨을 뺴앗을 뻔 했어....!"


"사오리..."


"....그러니 대답해다오, 아루. 내가 정녕 구원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내ㄱ... 흐윽, 내가.... 내가 다시금 선생을 마주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끝내 울음을 터트리고 만 사오리.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루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은 선생도 아닐 뿐더러, 누군가를 심판하거나 규정할 자격도 없는 그저 학생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

"사오리, 일단 진정ㅎ..."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던지며, 사오리는 흐느꼈다.

이내 분노와 고통과 죄책감이 느껴지는 눈빛으로, 그녀는 외쳤다.


"하야세 유우카는 선생의 배에 칼을 꽂았다. 단 한 번 뿐이지만."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이렇게 고통스러워 하고..... 스스로를 해하고.... 헛되기 그지 없는 짓을 반복하고 있어...."

"그러나 나는..... 나는 그의 대퇴부에 사격을 하고.... 그를 짓누르고.... 그의 목을 밟고...!!!!"

"....대체 이 행위에 무슨 의미가 있는거지...? 나는 무엇 때문에 이토록 노력하는거지...?"

"어차피.... 어차피 모든 것이 헛되었을 뿐인데...!"


"사오리!!!!"


"허억...!!!!"


순간적으로 들려온 아루의 함성에 사오리는 두 눈을 번쩍 떴다.

아루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향한 총구를 밀어낸 채 부들거리고 있었다.

사오리는 크게 숨을 몰아쉬며 쥐고있던 그녀의 총기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미친거야...??? 미친거냐고...!!"

"샬레에 가고 싶어하던거 아니었어? 선생을 구하고 싶다며...."


"허억.... 허억.... 허억....."

"허억.... 꿀꺽, 허억..... 흐으..... 흐으으으....."


사오리의 두 눈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비록 순간이지만 마음이 꺾인 자신이, 자기 자신을 살해하고자 한 행동이 너무나도 공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녀는 두 손을 떨며 서서히 그녀 자신의 얼굴을 감싸쥐었다.


"정말... 다들 왜 이러는거야..."

"보이는 사람들마다 다 죽으려고 하고... 도대체 왜 그러는건데... 너희들 마음이 그렇게 약해...???"

"너희들에게 있어서 선생님은 그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는거야...??"


".....결국 모든것은 헛된 법이다. 너와 나, 그리고 네 뒤에 있는 보라색 머리도."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결국은 범죄자, 테러리스트, 악당, 선생을 배신한 사람들이란 꼬리표가 평생 동안 따라붙겠지."

"나는..... 나는 어떻게 해야....."


"어떻게 하다니, 당연한거 아니야??"

"선생님을 만나러 가자... 그것 말고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잖아!!"

"그리고 아까 전, 널 보고 구원 받을 자격이 있냐고 물었지? 응! 그렇다고 생각해."

"모든 사람을은 두 번째 기회를 누릴 자격이 있으니까...!!"


"...이전에도 내게 선생이 그런 말을 했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그런 선생을 또 다시 해치고 말았다...."

"미안하지만 너는..... 너는 결코 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거야......"

"사랑하는 사람을 해치고도 뻔뻔히.... 뻔뻔히 살아있다는 그.... 그 죄악을..... 흐윽...!!"


끝끝내 말을 잇지 못한 채, 그녀는 무너지고 말았다.

이내 눈가 주위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마는 그녀를 보며 아루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저기... 아루님...?"


"...응? 왜...?"


"문이... 열리지 않아요."


"...그야 당연하겠지. 아까 유우카가 말했잖아."

"문 좀 열어 달라고. 자신을 들려보내달라고..."


"그게 아니라... 잠금은 이미 진작에 해제가 되어 있는 상태에요..."

"누군가가 안쪽에서 틀어막은 상태로 보여요 이건... 아마 문을 부수지 않고서야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아요."


하루카가 단단한 철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이에 아루는 지긋이 철문을 눌러보았다.


"...굉장히 단단한걸.""

"아무래도 우리들의 무기로는 무리겠어."


"ㄱ,그럼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글쎄. 아마 우리 4명이 한꺼번에 달려들면 될 것 같긴 한데."

"문제는 사오리는 이미 마음이 꺾여버렸고, 유우카는 기절한 상태고...."

"하아.... 진짜 딱 두 명만 더 있었더라면....!!"


"ㅇ,어쩌죠 그럼....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돌아가야 하는건가요오...??"


"....아니야."

"아직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아루는 전화기를 꺼내었다. 곧이어 실행된 모모톡.

그녀는 제빨리 누군가를 향해 문자를 보내었다.


"ㅁ...뭐하시는거에요...?"


"우리들 만으로 부족하다면 지원군을 부르면 되지."

"물론 올지 안 올지는 모르겠다만... 아무리 그래도 선생님의 문제인데 오지 않을까....?"


아루는 하루카를 향해 웃어보이며 말했다.

그러나 한 편으로 그녀의 눈빛은 불안감에 이리저리 떨리고 있었다.


"....모르겠다!"

"일단 우리들 만 이라도 문을 뜷고 있자. 지금은 한시가 급하니까...!"


"ㄴ...네엡...!!"


이후 잠시 뒤.

꾿꾿히 닫혀있는 문에 발길질을 하며 아루가 소리쳤다.


"젠장!!!!"


"아,아루님... 역시 이쯤 하시는게..."


"허억... 아직 포기하기는 일러."

"흐으읏...!!!"


아루는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한 번 주먹질을 하였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열릴 가망도 없는 문이 미약하게 흔들렸다.

이내 지쳐버린 아루는 힘이 모두 빠진 채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허억.... 허억...."

"크윽... 젠장......"


"아루님..."


아루는 절망했다.

눈 앞에 있는 열리지 않는 대문.

그 너머에 그녀가 그토록 찾아 해매던 선생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만날 수 없었다.


"아까보단 확실히, 허억... 헐렁해지긴 했는데..."

"역시... 역시 나 혼자로는 부족해..."


"그,그럼 저라도..."


"됐어... 총알이라도 아껴야지..."

"괜히 힘 빼봤자 아무 이득도 없는데 뭐...."


그녀는 얼얼해진 손등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괜스레 총을 성질을 내며 집어던진 그녀는 스스로를 감싸 안으며 벽에 기대었다.


"...하아."


"왜 그렇게 한숨을 쉬는거야?"


"..."

"....으응?"


아루는 의문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자신의 눈 앞에 나타난 예상치 못한 초대 손님에 아루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당황했다.


"일어나. 아직 포기할 때는 아니잖아."


"ㄴ...너가 여길 어떻게..."

"ㅈ,정말로 와준거야...?"


"뭐래... 자기가 불러놓고선."

"일어나, 리쿠하치마 아루."


아루는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손을 말없이 잡았다.

가냘프기 그지없는 검은색 장갑을 낀 손. 하지만 그 너머로 느껴지는 악력은 그녀를 아득히 상회하는 세기였다.


"...선도부장."

"모습이 조금 바뀌었네...?"


"응? 그야 당연하지."

"...생각을 바꿔보기로 했거든."


히나는 말없이 피식, 하고 미소지었다.

바닥에 떨어져있던 무기를 아루에게 건내주며, 그녀는 말했다.


"너가 준 진정제... 잘 받았어."

"덕분에 내가 얼마나 한심한 꼴이었는지 알겠더라."

"그렇게 앉아만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라... 이전에 비슷한 소리를 한 번 들은 적이 있어서 말이야."


멋쩍어 하는 아루를 향해 한 번 웃어보인 그녀는 천천히 두 손을 들어올렸다.

이내 서서히 내려앉는 황혼의 불빛과 더불어 찬란한 빛을 내며 그녀의 무기가 자태를 뽐내었다.


"아루, 괜찮다면 주변에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꺠워주지 않을래?"

"한꺼번에 공격하는거야."


"아,알겠어!"


벽에 기대어 침울하게 앉아있는 사오리.

아루는 그녀를 천천히 흔들며 다급하게 외쳤다.


"사오리! 일어나!!"


"....헛되고 헛되노니 모든것이 헛되도다."


"쌉소리 하지 말고 일어나!!"

"문을 뜷기 위해선 네 도움이 필요하다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거지...?"

"오히려, 나는 아무것도 하면 안될것이 분명한데..."

"나는..... 나 혼자선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해... 아무리 발버둥 치고 움직여봤자..."

"...그에게 용서를 받을 수 없을거야."


"하아, 거 참 시끄럽네."


빠악.


"윽...!!"


어느새 쓰러져 있는 사오리를 향해 부쩍 가까이 다가온 히나.

히나는 사오리의 조인트를 까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어나, 조마에 사오리."

"너가 용서를 받든 아니든, 그것은 선생님이 결정하실 문제야."

"그리고 그 결과를 알 고 싶으면 먼저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해!"


"...하지ㅁ"


"그거 알아? 에덴 조약 사태 당시, 난 너가 죽도록 증오스러웠어."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비록 방향이 비뚤어졌을 지언정, 너도 단지 우리와 같은 학생이었을 뿐이잖아."


"..."


"...봤지? 난 널 용서할 수 있었어."

"전혀 일어날 수 있을 것 처럼 보이지 않던 일도 언젠가는 일어나기에 마련이야."

"그러니 일어나, 사오리. 같이 선생을 만나러 가자."

"같이 선생님께... 용서를 구하러 가자."


히나는 사오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나?"

"내가.... 내가 정녕 구원 받을 자격이 있다고...?"


"...응. 모든 사람은 두 번째 기회를 누릴 자격이 있어."

"그것이 두 번째든, 세 번째든, 네 번째든... 그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아."


"..."


사오리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곧이어 내려놓았던 무기를 도로 집어든 그녀는 히나를 향하여 말했다.


"...솔직히 말해 너의 그 말이 와닿는건 아니다."

"다만... 삶을 이어나가는 데에 대한 달콤한 유혹이 되기엔 충분하군."


히나는 말없이 웃어보였다.

차마 깨어나지 못한 유우카를 재외하고 모두 모인 그녀들.

그녀들은 다함께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한 곳을 조준하였다.


"내 신호에 맞춰."

"하나.... 둘.... 셋...!!!"


곧이어 맹렬하게 불을 뿜는 그녀들의 총구.

잠시동안 자비없이 쏟아지는 탄알들과 더불어 히나의 압도적인 화력이 지속되었다.

연기와 잔해들이 걷히자, 그곳에는 이니 걸레짝처럼 너덜너덜 해진 샬레의 문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ㄸ,뜷렸어...!!"

"해냈어! 우리가 해냈다구!!!"


"ㄱ,그러게요 아루님....!!"


"....그래, 다행이군."


"아직 기뻐하긴 일러."

"선생의 안위를 확인하기 전까지 자축은 잠시 미뤄두자고."


히나는 자욱한 연기를 걷어내며 거침없이 전진했다.

이내 또 하나의 문이 그녀들을 가로막았지만 의미는 없었다.

잠시 뒤, 익숙한 풍경이 그녀들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때 마침 기절에서 깨어난 유우카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ㅁ...뭐야..."

"....여기, 샬레...?"


"응.... 저 책상. 저 칠판까지..."

"샬레야...! 샬레 사무실에 도착했어...!!"


"샬레.... 선생...!"


그녀들은 이내 떨리는 가슴을 안고 부실로 들어갔다.

부실 안은 수상할 정도로 차가운 냉기로 가득 차 있었다.


"으.... 으으.... 추워...."


"그,그러게요.... 우흐으으으....!!"


"누가 에어컨을 틀었네. 아마 선생님이 아닌가 싶은데."

"ㅅ...세상에, 4도...???? 뭐야....!!!"


히나는 황급히 에어컨을 껐다.

이윽고 웅웅거리는 소리가 줄어듬과 동시에 소름끼치는 적막과 침묵이 이어졌다.

무언가가 이상함을 감지한 히나가 나지막히 되내었다.


"...그런데 너무 조용하지 않아?"

"자리를 비우신건가? 그렇지만 에어컨이..."


"그,그러게?"


아루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깨져있는 유리창과 어지럽혀진 책상, 가지런히 접힌 종이학과 비어있는 의자.

수많은 포스트잇이 붙어있는 칠판과 아직도 웅웅거리며 돌아가고 있는 컴퓨터까지.

모든것이 제자리에 있었으나 선생만은 보이지 않았다.


"ㅁ,뭐어...??? 선생님이 없다고....?"


"그,그런...!! 그럼 대체 선생은 어디에...!!


이내 패닉에 빠져들기 시작한 유우카와 사오리.

자신들이 그토록 찾아 해매던 선생을 위해 온 샬레에 선생이 없다니.

그 동안의 순간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게 아닌가 싶어 모두가 절망하던 그 순간.


[자,잠깐!]

[나 여기 있어 얘들아!!]


"핫....!!!"


어디선가 들려오는 익숙하고도 굵은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내 그녀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소리가 들려오는 책상을 바라보았다.


"이 목소리는...."

"선생님...????"


붉게 비쳐오는 황혼의 노을 빛 너머로 무언가가 아른아른 모습을 드러내었다.

의자에 앉은 백색 양복 차림의 한 남성. 다만 그 눈은 학생들이 아닌 창 밖을 향하고 있었다.

이윽고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넘어간 그 순간, 의자에 앉은 선생의 뒷 모습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었다.


[모두, 오랜만이네.]


선생이 말했다.

그리고 잠시 동안의 침묵이 이어졌다.


"선생....님....?"

"정말... 선생님이세요...?"


유우카가 터덜터덜 선생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향한 선생의 반응은 의의의 것 이었다.


[아,안돼! 다가오지 마!!!]


"엣."


[다가오면 안돼.... 유우카를 포함헤서 거기 있는 모두!!]


"ㅇ....어....어째서....."

"어째서죠....? 선생님.... 어째서....."


[아,그....그게....]


"선생님.....!!!!"


이내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유우카가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간심히 그쳤던 눈물이건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그녀의 눈가에 또 다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어ㅉ...어째서... 선생님.... 역시, 저 같은 아이는 싫어지신걸까요...?"

"아아.... 아아아아....!!!! 죄,죄송해요.... 죄송해요 선생님.... 제가.... 제가 선생님을.... 아아아....!!"


[잠깐, 잠깐만 진정해 유우카!]


"역시 내가 싫어지신거야.... 역시 나 때문에.... 내 행동 때문에 나를....!!!!"

"아아..... 아아아아아....!!!!!! 죄송.... 죄송합니다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해야.... 제가....!!!"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며 오열하는 유우카.

선생이 다급하게 무언가를 외쳤지만 이미 무너진 멘탈의 그녀에게 그것이 들릴리는 없었다.

그리고 이는 사오리도 매한가지였다.


"선생.... 어째서 우리를 거부하는건가...??"

"우,우리는 선생의 말을 듣고 여기까지 온갖 역경을 해치면서 왔다고...?"

"정말로.... 정말로 그녀 말 처럼 우리가 싫어진건가....?"


[아잇 참....!!! 사오리, 너까지 왜 그래...!!]


"아아.... 그런.... 그런 일이...."

"어,어쩌면 당연할지도.... 내가 그런 짓을 했으니.... 내가 그를 상처 입혔으니..."

"아아.... 아아아.... 이걸 어찌 해야할 지.... 이 죄를 어떻게 용서를 빌어야 할지...."


두 손을 벌벌 떠는 사오리 뒤로 히나가 비틀비틀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바짝 줄어든 세로동공은 그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좌우로 떨리고 있었다.


"....선생님."

"솔직하게 말해줘... 차라리 그게 더 마음 편할 것 같아..."

"그,그렇게....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우리를 미워하지 말아줘.... 제발...."


[오, 안돼. 제발...]

[그리고 넌 또 왜 갑자기 존칭을 쓰고 그래....!!]


"으윽, 으으으윽....!!! 선생... 선생님...."

"미안.... 미안해.... 내가.... 내가 미움 받을 짓을 해버려서...."

"으흑, 흑.... 내가.... 내가 당신을 실망시켜 버려서....!!"


[그런거 아니니까 정신 차려...!!]

[으아니... 왜 다들 내 말을 안 듣는거지...??]


무너져 오열하는 그녀들을 보며 선생은 당황한 듯 어쩔 줄을 몰라했다.

다행히 아루와 하루카가 그녀들을 말리지 않았더라면 아마 선생에 대한 오해는 한참 동안이나 더 지속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까 난 너희들을 결코 싫어하지 않아. 알겠어?]

[그건 너희들의 본심이 아니었잖아. 나도 다 알고 있어.]


"그,그치만 나는 선생을 상처 입혔다..."

"선생의 다리를 쏘아서 걷지 못하게 하고... 선생을 죽이려고 했는데..."


[그러니까 괜찮다니까 그러네. 내가 죽지 않았으면 된거아냐!]

[옛말에 그런게 있잖아. 그 왜, '원수를 사랑하라' 라는 말 처럼 난 너희를 전혀 싫어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아.]


"원...수....? 아,아아.... 그렇군..."

"미안하다.... 미안하다 선생.... 나는 당신에게 원수가 되고 말았구나....!!"


[어허, 아니라니깐 그러네! 뚝! 울음 그쳐!]


"그,그래서 무슨 일로 부른거야?"

"분명히 선생이 위험하다고 그렇게 말했잖아...?"


아루의 물음에 잠시동안 침묵 하던 선생은 이내 무언가를 떠올린 듯 쾌활한 톤으로 대답했다.


[난 너희를 부른 적이 없어! D.U로 오지 말라고만 했지.]

[그렇게 하면 너희들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여기로 올거라고 생각했거든.]

[뭐, 어찌보면 부른게 맞긴 하네.]


"그,그런...."

"....우으윽,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미,미안 아루...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

[뭐, 어쨋든간에 내가 너희를 부른 이유는 단 하나야.]

[날 도와서 거짓된 성소 공략전을 수행해 줬으면 해.]


한없이 진지한 선생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학생들의 이목이 쏠렸다.


"거짓된 성소...?"


[응. 블랙마켓 구역, 알지?]

[그곳에 색채의 마지막 성소가 우뚝하고 서있어.]

[그것을 파괴할 수만 있다면 색채의 재앙도, 너희들의 수난도 모두 끝이야.]

[...모든것이 원래대로 돌아간다는거지.]


"그게 정말인가 선생...?"

"하,하지만 어째서 우리에게 그런 막중한 임무를..."


"맞아요... 저희가 할 말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저희들은 선생님을 이미 한 번 해친 전적이 있잖아요... 그런 저희를 어떻게..."


[지금 시점에와서 과거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건 너희들이 아직까지도 내 학생이라는거지. 안 그래?]

[학생은 선생을 믿고, 선생은 학생들을 믿는거야.]


선생의 말에 어느 누구도 감히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어지던 침묵 끝에 결국 터져버리고 만 유우카의 눈물.


"흑, 흐으윽....!!!"

"감ㅅ....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리고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흐윽, 흐으윽.... 흑...."


[...괜찮아. 죄송할 필요 전혀 없어.]

[아까도 말했듯 너희들의 진심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다들, 저기 책상 위를 주목해 줄래?]


선생이 지시한 책상 위에는 자그마한 테블릿이 하나 놓여 있었다.

아루는 테블릿을 집어들어 선생의 지시에 따라 전원을 켜보았다.

그러자 방대한 양의 문서와 함께 홀로그램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선생님... 이건...?"


[그동안 수집한 정보들이야. 아마 성소의 위치들과 이들의 세부 공략법이 들어있을거야.]

[그리고 아직 불완전 하지만, 색채에 관한 정보도 일부 담았어. 참조하는게 좋을거야.]


한 데 모여든 그녀들은 천천히 문서들을 읽기 시작했다.

문서들은 선생의 말처럼 색채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혼자서 조사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경이롭고 방대한 정보량.

문서를 읽는 이들로 하여금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반전'... 키워드는 반전이야."

"색채가 내뿜은 파장은 우리들의 근간을 뒤흔들었고... 이내 그 파장에 당한 학생들의 헤일로는 검게 물들었다라..."

"정말.... 어이 없을 정도로 단순한 이유였잖아."


"...젠장. 그것 때문에 우리들은 선생을..."


"이,이런 보잘 것 없는 이유 때문에 선생님을 제가..."

"자,잠깐. 여기 무언가가 더 적혀 있어요."


"'검은 헤일로의 학생들은 1차 피폭의 희생자이며 그녀들의 작동 메커니즘은 2차와는 사뭇 다르다'라..."

"뭐지? 1차, 2차라니...?"


[응. 색채의 폭발은 총 2회 있었어. 너희들이 당한건 1차 폭발이야.]

[...자자, 자세한건 훗날을 기약하고.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정말 없어. 지금 당장 출발해도 늦을 지 몰라.]

[마지막 성소가 폭주하면 그땐 정말 키보토스에 멸망이 찾아올 지도 몰라... 그러니 얘들아. 부탁할게. 나를 대신해서 부디 그 성소를 파괴해줘.]


선생의 간절한 호소.

이에 감화된 그녀들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무기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단 한 명, 사오리 만을 빼고.


"어라, 사오리? 재정비 안해?"


"...지금 재정비가 중요한게 아니다."

"선생. 어째서 우리와 함께 가지 않는거지?"


[...!!]


"그,그게 무슨 말이야...?"


"평소의 선생이라면 부탁 대신 스스로 학생들을 이끌고 성소로 향했을거다."

"선생과 함께 작전을 해본 너희들이라면 잘 알지 않느냐...!!"


사오리의 말에 순간 모두의 손이 굳어버렸다.

선생은 모두를 책임지는 사람. 항상 무슨 일이 터지면 가장 먼저 달려가던 사람이 바로 그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번만큼은 선생이 나서지 않았다. 분명히 이상한 일 이었다.

머지않아 모두가 서서히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그래.... 분명히... 선생님이라면 그럴텐데..."


"아까 보니 숨을 헐떡이시던데, 어디 아프셔서 그런게 아닐까?"


"마,맞아요... 휴식을 취해야 해서 그러신 걸지도 몰라요..."


"...아니야. 나는 알 수 있어."

"그는 나에게 총을 맞고도, 다음날 곧바로 일어나 업무를 본 사람이다."

"단순한 부상 따위로는 선생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이야기야...!"


불안과 공포에 사정없이 떨리는 그녀의 눈빛.

사오리는 그 말과 함께 성큼성큼 선생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자,잠깐! 사오리!!! 오지마!!!!]

[다가오지 말라고 했어! ㄱ,그래! 아루 말처럼 나는 지금 아파!]

[너에게 감기를 옮길지도 모르니까 제발 다가오지 마...!!]


하지만 그런 선생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사오리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이내 그가 앉아있는 의자까지 도달한 사오리는 거침없이 의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안돼...!!!! 사오리.... 제발....!!!!!]


"선생, 무언가 이상이 있다면 우리에게 말을 ㅎ...."

"....!!!!!!!!"


무언의 침묵.

이내 무언가를 목격한 사오리는 말없이 비틀거리더니,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고야 말았다.

갑자기 일어난 돌발상황에 그녀들은 무기정비는 뒷전으로 한 채 곧바로 사오리를 향해 달려갔다.


"사,사오리!!! 뭐야, 무슨 일이야!!!!"


"....허억, 허억.... 허억.... 허억..... 흐으으으....!!!!"

"아...아아아...!!!! 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

"흐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악!!!!!!!!"


온 몸을 발작하듯 미친듯이 떨면서, 사오리는 아기처럼 의미불명의 울부짖음만 이어나갈 뿐 이었다.

방금 전까지의 고고하고도 치밀한 그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무너진 채, 초점을 잃은 눈으로 하염없이 통곡하는 그녀.

이에 퍽 불안해진 아루는 곧바로 선생에게 다가가 잠자코 있는 그의 의자를 돌려보았다.


"선생... 대체 무슨 일인ㄷ..."

"...이,이게 대체..... 무슨....???"

"욱, 우우욱....!!!!! 우웨에에에엑....!!!!!"


곧이어 바닥에 쓰러진 아루는 구역질을 하며 빈속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맑고 또랑또랑하던 눈빛은 충격과 공포에 질려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입가에서 걸쭉한 마른 침을 떨어트리며, 그녀는 절규했다.


"아아.... 서,선생님.... 선생니이이이임....!!!!"

"우....우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으읏,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래...!!!"


연이어 벌어진 일에 당황한 히나와 유우카.

이내 참다못한 히나는 사오리와 아루를 유우카와 하루카에게 맡긴 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그 순간, 선생의 뒤로부터 누군가가 나타나 그녀를 막아세우며 말했다.


"소라사키 히나. 거기까지."

"더 이상 다가오지 마세요. 이건 권고가 아니라 명령입니다."


"읏, 무...무슨 짓이야....!!"


자신을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의문의 백복을 입은 여성.

머릿결은 혼란스러운 상황에 맞지 않게 잘 땋여 있었으며, 긴 하늘빛의 머릿칼은 불어오는 바람에 일렁이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헤일로는 그 빛을 잃지 않은 채 푸르게 빛나고 있는 상태였다.


"일반 헤일로....!!"


"안심하세요. 저는 당신들을 해칠 생각이 없습니다."


급하게 총을 꺼내드는 히나를 말리며, 그녀가 말했다.

가지런히 정돈된 흰 치마와 한쪽 눈을 가린, 푸른 머릿결을 지닌 그녀의 분위기는 퍽 신비했다.

차분하고 지성이 느껴지는 편안한 목소리에 히나는 이내 자신도 모르게 겨누었던 총구를 서서히 내려놓았다.


"..."

"넌 누구야?"


"...저는 단순히 선생님의 대리인일 뿐 입니다."

"부탁이건데, 이 분들을 잠시 어딘가로 대리고 가주시겠습니까?"


[히나. 부탁이야.]

[사오리와 아루를 대리고 진정시켜줘.]


한없이 차분한 선생의 목소리.

그런 선생의 태도에 히나의 두 눈빛도 서서히 떨려오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선생님..."

"그렇게 그녀들이 걱정되면 직접 하면 되는거잖아....??

"왜.... 왜 날 시키는건데...? 응?"


[히나... 나중에 다 설명 할테니까 제발...]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하면 할 수록 내 의심도 점차 가중된다는걸 모르는거야...??"

"역시 안 되겠어. 역시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기 전엔 못 믿겠어...!"


"안됩니다."


"비켜....!!!!"


"선생님의 명령입니다. 보내드릴 수 없어요."


"아깐 뭐하고 이제와서? 됐으니까 비켜. 비키라고!!!!!"


"...당신은 아루와 사오리가 무너진 지금 하루카, 유우카와 더불어 유일하다시피 한 전력입니다."

"이후 당신마저 무너지게 되면 거짓된 성소의 공략전은 상당한 차질을 겪게 될지도 모릅니다."


"상관없으니까 비켜...."

"책임은 내가 질테니까 비키라고!!!!"


책임이라는 단어에 움찔한 그녀.

이내 채념한 듯, 그녀는 말없이 몸을 움직여 히나를 선생에게로 들여보냈다.

이에 선생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하아... 정말, 난 너희들을 걱정해서 그런건데...]

[히나... 제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돌아가줘. 너에게까지 이 모습을 보일 순 없어.]


"이 모습이고 뭐고... 찔리는게 없으면 내게 보여봐 선생님..."

"대체 뭐 어떤 모습을 하고 있길래 애들이 저렇ㄱ...."

"헉.....!!!!!"


히나에 비친 선생의 모습은 암담했다.

그는 더 이상 선생이라고, 아니. 인간이라고 부를 수 조차도 없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피골은 상접하여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형태를 하고 있었고, 그의 피부는 이미 핏빛을 잃은지 오래였다.

딱딱하게 갈라진 상처 틈으로는 언제 흘러나온 것인지도 모를 진물들이 딱딱하게 굳어 살점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겨우 지탱하고 있는 상태.

썩어 문드러진 그의 육신 곳곳에는 구더기들이 꾸물꾸물 기어다니고 있었으며, 전신에서 썩은 살점 특유의 고약한 악취가 풍기고 있었다.

히나는 애써 현실을 부정하며 선생의 초점없는 눈으로 천천히 손전등을 가져다 대었다.


그의 홍채는 반응하지 않았다.

이내 제자리에 손전등을 떨어트린 히나는 털썩, 하고 주저앉고야 말았다.


"아...아니야... 아니야..."

"그럴리가.... 그럴리가 없어... 그럴리가 없어어어....!!!!!!"

"아니야.... 아니야아아아아!!!!!!!!"


히나는 떨리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쥐었다.

도무지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녀는 이내 거친 숨을 내쉬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제가 경고했잖습니까."

"선생님께서는 이미 사망하셨습니다. 그것도 아주 오래 전에 말이죠."

"그래서 제가 이곳에 서 있는 것 입니다. 선생님의 권한을 이어받아, 선생님의 대행으로써."


그녀는 착잡한 표정으로 되내었다.

이윽고 그녀의 충격적인 말을 들은 유우카가 말했다.


"ㅁ...뭐라고...?"

"선생님이.... 선생님께서 뭐....??"


"...아아. 당신들도 계셨군요."

"지금 들으신게 맞습니다. 선생님은 사망하셨습니다."


"아... 아아....."

"ㄱ....그런..... 어....어째서......"

"....어째서어어어어어어어어어!!!!!!!!!! 어째서.... 어째서....!!!!!"


"ㅁ...뭐라구요....???"

"선생님이 왜.... 선생님께서 왜...."

"아아.... 그런.... 그럴리가.... 왜.....!!!"


하루카는 힘없이 자리로 쓰러지며 눈물섞인 말을 내뱉었다.

통곡하는 유우카와 하루카, 히나를 보던 백복의 그녀는 말없이 선생의 시신이 쥐고있던 무언가를 꺼내었다.

싯딤의 상자였다.


[ㅈ...저기, 얘들아. 나 죽지 않았어...]

[여기, 여기 살아있잖아....? 응? 얘들아??]


"...잠시 동안은 이대로 있는게 좋을 것 같아요, 선생님."

"지금의 그녀들에게 있어 선생님과 제 말 따위, 들리지도 않을게 분명하니까요."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자조하듯 말했다.


[저기, 아로나. 미안...]

[아이들이 이렇게 의지적일지 몰랐어. 역시 바로 성소로 인도하는게 나았을지도...]


"아니에요. 어차피 언젠가는 마주하야할 진실이었어요."

"선생님께서도 마음 아프실텐데, 고통은 오로지 제가 짊어질테니 지금은 쉬고 게세요."

"...선생님께서 제게 부탁하셨잖아요. 학생들을 맡아달라고."


결의에 찬 표정으로 그녀가 말했다.

깨져버린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산산한 바람.

찰랑이는 하늘빛, 그리고 연분홍이 섞인 머릿결 사이로 그녀의 어깨 죽지에 적혀있던 글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연방학생회장.

그것이 바로 그녀.

실체화된 아로나의 직책이었다.


***


(이 아카콘은 본문 내용과 관계가 있을수도 있고 없을수도 있습니다.)

저번 편에서 한 말이 있는지라 어떻게든 후회 넣기 위해 힘을 쓴 결과

쥰네 길어져 버렸다.... 미안.


이제 중반부를 넘어 종반부로 갈려간다(오타아님)...!!

앞으로 당분간은 선생님의 과거 이야기가 풀어질 예정임.

그가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떻게 학생들에게 연락을 하게 된 건지 등등.


그리고 댓글은 글쟁이에게 큰 힘이 되오니 부디 달아주십쇼.

그럼 다음 편으로 돌아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