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


"선생님. 선생님."

"눈을 뜨세요 선생님."


문득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선생은 천천히 두 눈을 떴다.

그러자 히마리가 생긋 눈웃음을 지으며 선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으윽, 머리가..."


"편히 주무셨나요?"

"소독은 모두 끝났고, 선생님께서 주무시는 사이 간단한 치료도 모두 끝냈답니다."


"...뭐? 내가 잠을 잤다ㄱ..."


"아앗, 선생님. 움직이시면 안돼요."


선생은 히마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몸을 일으키고자 했다.

하지만 알마 못가 느껴지는 고통에 그는 다시금 자리에 누울 수 밖에 없었다.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으셨습니다, 선생님.

"잠은 제대로 주무신 것 맞죠? 기력도 회복할 겸, 잠시만 그렇게 있어주시길."


"허억... 허억..."

"그,그나저나... 치료라니...?"


선생은 급히 복부를 확인해 보았다.

그곳에는 정성스럽게 봉합된 상처를 드레싱이 덮고 있었다.

그가 기억하고 있던 대충 싸매어진 상처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아, 도움을 주실 수 있다는 분들이 계셔서요."

"으흠 흠. 하나에 씨? 세나 씨? 선생님께서 깨어나셨습니다."


잠시 뒤,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반대쪽 부실에서 등장한 하나에와 세나.

퉁퉁 부은 눈가와 촉촉하게 젖은 눈빛을 한 그녀들은 선생의 모습을 보곤 안도하며 말했다.


"정말... 다행이군요, 선생님."


"선생님...!! 정말 다행이에요..."

"혹시라도... 저는 선생님께서 잘못되실까봐.... 훌쩍..."


자신의 품에 달려든 하나에를 말없이 토닥이며 선생은 상황파악에 나섰다.

불현듯 나타난 세나와 하나에. 세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하나에는 트리니티의 학생일 터.

도대체 어떻게 그녀들이 그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먼 거리를 찾아왔는지 의문이었다.


"히마리, 이건..."


"후훗. 힘을 조금 써봤죠."

"...하지만 혼나는건 두려우니 부디 노여워 말아주셨으면 해요."


히마리가 보여준 화면에는 수많은 학생들의 모모톡 화면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선생은 이윽고 그녀가 한 행동을 알아차리고는 말없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도 잠시, 곧이어 그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다른 학생들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하는건 나쁜일이라고?"

"...이번만 눈 감아주는거야. 상황이 긴박하니까."


"감사합니다, 선생님."

"어쨋든 이 자료들을 검토한 결과 일부 알아낸 사실이 몇가지 있습니다."

"먼저, 각 학원들의 상황입니다."


화면에는 수많은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이 나열된 명부가 있었다.

그 중에는 얼굴에 X표가 그려져 있는 학생들도 있었다.

게헨나 학원의 선도부, 히나가 그런 경우였다.


"이 X표는 뭐야...?"


"...잠시 뒤면 알게 되실겁니다."


히마리의 의미를 알 수 없는 말.

선생은 계속해서 명부를 읽어나갔다.


.

.

.


소라사키 히나. 쿠로다테 하루나, 히노미야 치나츠, 시시도우 이즈미, 아카시 준코, 와니부치 이즈미.

리쿠하치마 아루, 이구사 하루카, 아사기 무츠키, 오니카타 카요코, 하타미 에리카, 시모쿠라 메구.


우시오 노아, 츠카츠키 리오, 하야세 유우카, 하나오카 유즈, 텐도 아리스, 이치노세 아스나, 아스마 토키.

카가미 치히로, 오토세 코타마, 시라이시 우타하, 네코즈카 히비키, 토요미 코토리, 오토하나 스미레.


미소노 미카, 유리노조 세이아, 아지타니 히후미, 우라와 하나코, 시라즈 아즈사, 우자와 레이사.

코제키 우이, 이바라기 요시미, 쿠리무라 아이리, 쿄야마 카즈사, 유토리 나츠, 아오모리 미네, 스미 세리나.

하네카와 하스미, 시즈야마 마시로, 우타즈미 사쿠라코, 이오치 마리.


렌카와 체리노, 이케쿠라 마리나, 아마미 노토카, 마요이 시구레.

네무가키 후부키, 오가타 칸나, 츠키유키 미야코, 카스미자와 미유.

조마에 사오리, 하카리 아츠코, 이마시노 미사키, 츠치나가 히요리.


.

.

.


모두 얼굴에 X표가 쳐져있는 학생들이었다.

선생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던 도중, 익숙한 이름을 발견하고는 표정이 굳어가기 시작했다.


"하야세 유우카... 스미 세리나... 츠카츠키 리오..."

"히마리, 이거 설마..."


"아까 말씀드렸죠. 모모톡을 해킹하였다고."

"저는 이를 통해 현재 연락이 닿는 학생들과 아닌 학생들을 분류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럼 이 X표는...!"


"네, 현재 연락이 닿지 않는 학생들입니다."

"그 말인 즉슨 아마 피폭되었거나, 연락에 답신할 수 없는 상태라는 의미죠."

"저도 최대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로 했습니다만... 아마 그들 중 대부분은 피폭을 피하지 못했을 겁니다."


"...잠깐, 몇몇 학원이 빠졌는데."

"백귀야행은, 백귀야행은 전원이 없잖아. 그렇다는 뜻은 설마?"


"...아뇨. 백귀야행은 전원이 연락두절인 상태라 명부에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그,그런....."

".....하아, 젠장..."


선생은 자책하며 다시 한 번 화면을 뜷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약간은 어색하고도 보기에 아름답고도 사랑스러운 미소를 짓고있는 학생들.

그녀들의 얼굴에 쳐져있는, 소름끼치는 모양의 X표를 바라보며 선생은 흐느꼈다.


"....으윽.... 으으으윽....."

"....미안.... 미안하다 얘들아....."


자신이 그녀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선생은 그만 모두의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처음 보는 그의 모습에 히마리를 비롯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학생들은 아무말도 하지 못한 채 그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여러분, 잠시 자리를 비우도록 하죠."


"...응. 알겠어."


보다못한 히마리는 모두를 이끌고 부실 밖으로 나갔다.

이윽고 방에 홀로 남겨진 선생은 마치 이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더욱 서럽게 오열하기 시작했다.

들려오는 곡소리에 히마리는 지그시 귀를 막았다.


"...흑, 흐윽.... 선생님..."


끝내 울음이 터지고야 만 하나에.

그런 하나에를 위로하며, 세나가 말했다.


"아케보시 히마리, 라고 하셨나요."


"네? 저 말씀이신가요?"

"맞습... 니다만?"


"...정녕 이 사태를 수습할 길은 없는겁니까?"

"저희들은 이렇게, 선생님께서 오열하시는 모습을 무력하게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나요...?"


"그게..."


히마리는 말없이 모니터를 응시하였다.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피폭 범위와 예상 희생자 수.

이에 히마리는 어금니를 으득, 하고 깨물며 분노에 그 몸을 떨었다.


"...솔직히 말해서 모르겠습니다, 세나 씨."

"저희들은 그것의 꽁무니만 쫒아다닐 뿐, 그것마저도 정확도가 다소 떨어지죠."

"결론적으로 저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제가 말이죠..."


"...부장."


"대체 무엇을 해야만 하죠? 우리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것의 정채도, 왜 이런 짓을 벌이는지도..."

"우리가 무엇을 해야 이 비극으로 부터 모두를 구할 수 있는거죠? 아니... 애초에 구할 수는 있는건가요...????"

"설령 모두가 돌아온다고 할 지라도 그들의 기억과 상처만은 그대로 남아 있을 터... 그 후폭풍도 분명 어마어마 할텐데...!!"


"부장, 정신차려."


"아아... 모르겠어요... 이러면 안되는데...."

"자칭 초천재병약미소녀해커인 제가 방법을 모르면 안되는데.... 어쩌죠...??? 하나도 모르겠어요...."

"대체 무엇을 해야 이 상황을 바꿀 수 있을까요??? 제 미약한 지식으로 할 수 있는게 있긴 한걸까요???"

"...못하겠어요. 더 이상은 무리에요...! 잘 하는 것 하나 없는데... 대체 무엇을 한다고...!!"


"부장...!!"


"히익...!!"


패닉에 빠져버린 히마리를 에이미가 붙들며 말했다.

눈가에 어느새 눈물이 가득해진 히마리를 바라보며, 에이미는 입을 열었다.


"부장이 잘하는게 없긴 왜 없어?"

"부장은 천재야. 우리들이 못하는 일을 부장은 손쉽게 해낼 수 있잖아."

"다른 사람들은 손조차 댈 수 없었던, 하물며 리오 회장마저도 제대로 건들지 못한 데카그라마톤을 잡아낸 사람이 누구야?"


"...에이미, 저는."


"아리스를 죽을 뻔한 위기에서 살려낸 사람이 누구야?"

"선생님과 함께한 색채 공략전에서 참모역할을 한 사람이 누구야?"

"그 외에 수많은 작전에 참여하면서 우리들을 위해 작전을 짜준 사람이 누구야?"


"에이미..."


"부장, 자신을 과소평가 하지마."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는 모두 부장을 믿고 있어. 그 이유가 뭐겠어?"

"바로 부장이라면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


히마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에이미를 비롯한 모두가 그녀를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부장, 아직 포기하긴 일러!"

"우린 베리타스잖아! 진리를 찾아야지!"


"...생각해보니 아직 남아있는 컴퓨터가 하나 있는걸 봤어."

"나도 함께 한다면 정보 수집과 산출의 속도가 더 빨라질지도 몰라."


"마키... 하레...까지...?"

"...후훗, 후후훗... 역시... 여러분들에겐 못 이기겠네요."


"아, 돌아왔다."


"그렇게까지 이 초천재병약미소녀해커의 복귀를 바라신다면야... 한 번 더 힘을 내보도록 하죠!"


히마리는 눈물을 닦아내며 미소지었다.

잠시 뒤, 다시 모인 베리타스는 함께 색채에 대한 정보들을 긁어 모으기 시작했다.

해커 윤리 강령 따위는 내다버린, 비윤리적이기 짝이 없는 크래킹이었지만 더 이상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저기, 부장?"

"무언가를 찾아낸 것 같아."


하레는 본인이 보고 있던 스크린을 돌려 히마리에게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기괴한 모양의 무언가가 D.U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사진이 있었다.

히마리는 어째선지 익숙한 그것의 모양에 적잖이 당황하며 말했다.


"이건... 이전에 보았던 거짓된 성소...?"


"SNS에서 찾은 사진인데, 트리니티 학원 시계탑 근처에 세워져 있어."

"중요한건 그게 아니야. 하나가 아닌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죠?"


하레는 또 다른 사진 한 장을 띄워 보였다.

그러자 방금 전에 본 거짓된 성소와 똑같은 형상을 한 구조물이 또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더군다나 그들은 이전과는 달리 각각 노란색, 붉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각각 게헨나와 백귀야행의 커뮤니티에서 가져온 사진이야. 거짓된 성소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그리고 이전의 성소와는 또 다른 점이, 바로 장갑을 두르고 있다는 점이야."


"장갑? 뭐죠? 분명히 이전에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모르지, 선생님께서 그러셨잖아."

"색채는 유동적인 '개체' 라고. 어쩌면 진화한 걸수도 있어."


"...하아, 골때리네요."

"그렇다면 역시 선생님의 조언과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는건데..."


히마리는 고개를 들어 부실을 바라보았다.

부실의 문은 아직도 굳게 닫혀 열리지 않은 상태였다.


***


빌드업이라 쥰네 짧음

세이브가 다 떨어지는 바람에 그만ㅠㅠㅠ



다음편 후회 나옵니다.

정확히는 멘붕에 가깝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