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2편 3편 4편


***


게헨나 학원은 방대하고 넓기로는 키보토스 내에서 호각을 겨루는 학원인 만큼, 그 부지의 크기는 어마무시한 수준이었다.

무언가 잘못됨을 느낀 아루는 잠시 제자리에 멈춰서서 GPS를 확인해 보았다.


"...역시 될리가 없지."

"잠깐, 그럼 꽤나 심각한 상황 아니야? 기지국도 모두 파괴 되었다는거잖아."

"그러면 아까 전화는 어떻게 된거지?? 이거 완전 비상사태인데에!!!"


"저,저기... 아루님... GPS는 통신사와는 관계가 없...."


빠직.

하루카는 순간 매서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루의 눈빛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히... 히이익!!! 그,그러니까 제 말은...!!!"

"제 것은 잘 되니.... 한 번 보시는게..."


"응? 아,아아..."

"알겠어! 절대 당황한거 아니니까! 너무 분위기가 쳐져있길래 개그 한 번 해본거야!!"

"...웃지마 하루카앗!!!"


아루는 유심히 하루카의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그렇게나 오래 걸었는데도 아직 게헨나 자치구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

거기다가 샬레 건물까지는 아직까지도 한참이나 남은, 몹시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결국 지쳐버린 아루는 기력이라도 회복할 겸 근처 잔해에 걸터 앉았다.


"이게 뭐야...! 우리 학교는 공부하는 사람도 별로 없으면서 넓기는 왜 또 이렇게 넓은거래??"

"이거 아주 예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짜증나 죽겠다고! 남는 땅이 있으면 좀 주던가!"


"솔직히... 동감 하는 바... 입니다."


"그치그치? 선도부는 뭐하고 있는거야? 이런거 안 손보고."


"아까 보셨듯이... 음주를 하고 있던데요..."

"그,그리고 선도부가 아니라 만마전 말씀 하시는 것이 아닌ㅈ..."


"알게 뭐야!! 지금 그게 중요해!!"


"히...히이이이익...!!"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


"게헨나가 언제 이해 관계로만 돌아가는 곳이었나요... 헤헤..."


"...그렇긴 해! 이 똥통학교. 와하하하하하하!!!"


그렇게 그녀들이 오랜만에 마음 놓고 툴툴거리며 만담을 나누는 사이.

어디선가 털털거리는 엔진음과 함께 자동차가 다가와 그녀들의 앞에 멈추어 섰다.

수상한 분위기에 그녀들은 웃음을 멈추고 서서히 총구를 치켜새웠다.


이윽고 차 문이 열리고, 중무장을 한 여성이 살포시 뛰어내렸다.

하늘빛 눈동자에 푹 눌러쓴 캡, 얼굴 전체를 가린 방독면. 그리고 약간은 푸른빛이 감도는 긴 머릿결까지.

또 다른 뉴페이스의 등장에 모두가 긴장하고 있던 그때, 하루카가 무언가를 떠올린듯 여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 어...? 다,당신은..."

"그때 먼저 와있던 고객님...!!"


"..."


"그,그땐 죄송했습니다.... 저 때문에 돈을 못 받으셔서...!!!"

"아...아닌가...??"


"..."


이어지는 묵묵부답에 방독면 너머로 느껴지는 어색함.

당황한 하루카는 급히 고개를 숙인 후, 아루 뒤로 숨으며 속삭였다.


"어떡하죠? 저,저를 모르시는 것 같아요.... 제가 괜한짓을 한 것 같아요...!!"

"어쩌죠??? 저를 이상하게 보실게 분명해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막 인사하는... 그런 해픈 사람으로요...!!!"

"우...우우우우우으윽.... 히에에에에에엑...!!!!"


"무,무슨 소리야 그게! 거기서 해픈게 왜 나와!!"

"진정하고 우선 누구시냐고 물어봐...!"


"ㄴ...네엡...!!"


이내 쭈볏쭈볏 여성을 향해 다가간 하루카.

모두의 시선과 긴장이 한데 모인 그 순간, 하루카가 입을 열었다.


"그... 저기..."

"ㄴ..... ㄴ...... ㄴ,누...."


'그래! 누구시냐고 묻기만 하면 돼! 힘내라 하루카...!!'


'누....ㄴ,누.... 누.....!"

"누구냐 너느으으으으으으은!!!!!!!!!!!!!"

"당장 소속과 이곳에 온 목적을 밝혀라아아아아아아!!!!!!"


'아니 누가 그렇게 말을 하랬냐고...!!!!!'


폭주한 하루카와 패닉에 빠진 아루까지.

고조되는 긴장에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을 때 즈음.

여성이 불현듯 쓰고있던 방독면을 벗어던졌다.


"히...히이이익...!!!!"

"얼굴이... 얼굴이 사라졌....!!!!"


"..얼굴이 아니다. 방독면이다."

"미안하군, 놀라게 할 의도는 없었어."


특유의 쿨한 인상과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그녀.

그녀는 잔뜩이나 두려움에 질린 그녀들을 향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리쿠하치마 아루, 맞나?"

"들리는 바에 의하면, 선생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하던데."


"ㅁ...맞는데... 왜..."


"좋아, 그렇다면 정확하게 찾아왔군."

"타도록 해. 자세한건 가면서 이야기 해 줄테니."


"자,잠깐...!!"


아루가 여성을 향하여 다급하게 외쳤다.

이내 떨떠름한 표정으로 뒤돌아본 그녀에게, 아루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 전에, 너는 누구야...??"

"나와 하루카는 지금껏 수많은 사람들에게 목숨을 위협 받았어... 그렇게 동행하자고 해봤자 전혀 믿을 수가 없다고...!"

"우리가 너를 어떻게 믿지...? 증거를 보여줘...!!"


이에 여성은 말없이 자신의 머리위에 떠있는 헤일로를 가리켰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헤일로도 지금껏 만났던 다른 사람들 처럼 검게 물든 상태였다.


"...소개가 늦었군, 내 이름은 조마에 사오리."

"아리우스 스쿼드의 리더이자, 너희와 같은 피폭자다."


"아리...우스? 그 에덴조약의..."


"...맞아. 과거 내가 벌인 오점이기도 하지. 하지만, 중요한건 그게 아니야." 

"선생이 우리에게 연락을 한지도 어느새 하루라는 시간이 흘러버렸어... 이후 추가연락도 하나 없는 상태다."

"만일 그를 구출할 생각이라면, 더 이상 지체하면 늦어버릴지도 몰라. 그러니 서둘러야만 한다."


아루는 여전히 사오리를 믿지 못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샬레까지 마냥 걸어갈 수는 없었기에 잠자코 그녀의 차에 몸을 싣기로 했다.

어디까지나 '임시 동맹' 인 셈 이었다.


'뭐... 여차하면 우리가 차를 빼앗으면 되니까...'

'거기다가 이쪽은 두 명이고... 저긴 한 명...'


"...리쿠하치마 아루. 너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


"으? 으응?? 뭔데?"


"너는 선생을 사랑하는가?"


"푸우우우웁"

"ㅁ...뭐어...?????"


갑작스러운 질문에 아루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가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미루자, 사오리는 험상굳은 표정으로 그녀에게 소리쳤다.


"대답해!!!!"


아루는 눈을 감은 채 떠올리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선생을 본 기억을, 또한 처음으로 선생을 마주했을 때의 기억을.

뜻하지 않게 라멘집에서 그를 마주친 사건과 뜻하지 않게 초밥 주문을 받아버린 일화까지.


그리고 그녀는 알 수 있었다.

모든 일화가 부끄럽고 망신당하는 일 투성이였지만,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오히려 선생과 함께 했기에 그 모든 순간이 추억으로 남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그 순간, 아루는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 질 수 있었다.


"읏..."

"사,사랑해... 사랑한다고!!!!"


"이성으로써? 아니면 사제관계로써."


"ㄱ...그거까지 말해야해...??"

"그,그나저나 이건 왜 묻는거야??? 우,우리 다른 주제로 이야ㄱ..."


"어서!!!!"


"이...이성으로써어어엇...!!!!"


이어지는 정적.

뜻하지 않게 사랑 고백을 해버린 아루는 극심한 부끄러움을 느끼며 얼굴을 감싸쥐었다.

하루카는 순간이지만 짧게나마 피어오르는 증기를 볼 수 있었다.


"아,아루님... 얼굴이 붉어지셨..."


"조,조용히 해...!!!!"

"그... 그나저나 그건 왜 묻는거야? 프라이버시라고?"


"...가설을 새웠기 때문이다."

"헤일로가 물들어 버린 데에 관한 이유를."


헤일로, 라는 말에 아루도 하루카도 조용히 침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사오리는 꽤나 애절하고도, 생기를 찾아볼 수 없는 눈빛으로 전방을 주시하며 말했다.


"헤일로가 검게 물든 사람은, 모두 선생을 어떻게든 죽이려고 덤벼들지. 알고 있나?"


"으,으응. 들어서 알고 있어."


"그래... 그렇다면 대화가 조금 더 수월하겠군."

"나를 예로 들자면... 처음 그것의 빛에 노출되었을 당시 나는 극심한 분노를 느꼈다."

"갑자기 모든것들이 헛되어 보이고, 또한 부질 없어 보이기 시작했지."

"...그리고 그 분노의 대상은 머지않아 한 사람을 향하기 시작했다."


"...혹시?"


"맞아. 선생."

"선생에게 입은 은혜, 구원... 순간 그 모든 것이 다 허울처럼, 그리고 가식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선생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던 시점이었지."


"...뭐?"


"...나도 안다. 용서 받지 못할 짓이라는 것을."

"때문에 편히 쉴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이유를 찾아야만 했으니까."

"그래야지만... 나와 같은 모두를 구원할 수 있었으니까..."


아루는 서서히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여성이, 선생을 쏘려고 했었다니.

만약 그에게 상해라도 입혔더라면 그녀는 사오리를 용서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 이었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애써 진정시키며, 아루는 말했다.


"...그래서, 그게 헤일로가 검게 물드는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데?"


"안 그래도 그 말을 할 참이었어."

"...여기까지 오는 길에, 너 말고도 피폭자를 몇 명 더 만났었다."

"하나같이 망가져있고, 처참한 상태였지."


.

.

.


처음 발견한 그녀의 인상은 '처참함' 이었다.

초췌한 기색이 만연한 그녀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부정적인 기운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이었다.

나는 어렵사리 손에 넣은 학생부를 대조한 끝에 그녀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네가 하야세 유우카인가."

"밀레니엄 고교, 세미나 소속. 맞나?"


"..."


"...대답을 해주면 좋겠다만."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그야 사진 속 인물과 동일 인물이라기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밝은 미소를 짓고 있어야할 입고리는 한없이 축 처진 채, 울긋불긋한 얼룩으로 뒤덮혀 있는 상태였다.

단정하게 묶은 푸른 머리가 헝클어져 있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기만 한 것도 어느덧 한 세월.

미동도 없이 공허한 시선으로 먼 하늘만을 응시하는 그녀가 내게 관심을 가질리는 만무했다.

이에 포기하고 돌아서려는 그 순간.


"...넌 누구야?"


사자(死者)처럼 꿈쩍도 않던 그녀가 미약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나는 적잖히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나 자신에 대한 소개를 하였다.


"나는 조마에 사오리."

"선생의 긴급전언을 받고 D.U로 가는 길에 너를 발견하여 물어보는 것 이다."


"..."

"선생님의... 전언...?"

"ㅁ,무슨 내용인데...??? 알려줘... 알려줘...!!!"


선생이라는 이름.

그 짧고도 단순한 두 글자에 그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럽게 해져버린 코트 끝을 거리낌 없이 잡고 매달리며 소리치는 그녀.

분명 최고 며칠은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인상이었으나 그녀의 힘은 실로 가공할만한 위력이었다.


"읏,으읏...!"

"ㅇ...왜 이래 갑자기...!"


"ㅅ...선생님은.... 선생님은 지금 어ㄷ... 어딨ㅇ....."


"...선생님께서는 D.U에 계신다. 아마."

"그는 내게 말씀하셨다. 절대 D.U로 오지 말라고. 온다면 큰 화를 입을 수 있으니 주의라하고..."


나는 오열하기 직전의 그녀에게 차분히 선생의 전언을 전했다.

그녀의 떨떠름한 반응으로 보아, 아마 관련 사실을 듣는 것이 처음인 듯 했다.


"D... D.U..... ㅅ, 샬레 사무실이 있는 곳...."

"아... 아아아아아아.... 여,역시 꿈이 아니었어.... 젠장.... 젠자아아앙....!!!!!!"

"역시.... 흐윽, 역시.... 나 때문이야.... 내가.... 내가 그런 짓을 해서...."

"....흑, 으으으윽...!!!!!"


"ㅈ,잠깐. 유우카!!!!"


그녀는 불현듯 근처에 있던 유리조각을 집어들어 자신의 팔을 찢어 발기려고 했다.

다행히 근처에 있던 내가 바로 말려서 망정이지, 그녀의 연한 살갖에 또 한 줄기의 자상이 생길뻔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절규는 쉽사리 멈출 줄을 몰랐다.


"흐....흐으으으으.....!!!!"

"내가.... 내가 선생님을..... 선생님으으을....."

"ㄴ,누가 제발 꿈이라고 말해줘.... 내가.... 내가 그이를..... 내가아아....."


나는 통곡하는 그녀를 그저 말없이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고통이 이해가 갔으니까. 한없이 처절할 정도로 공감이 되었으니까.

헤일로가 검게 물들어 버린 이상, 한 개쯤은 후회할 거리를 만들었을 것이 분명하니까.

무엇보다 분명히 그것은 본심이 아니었을테니까.


"...유우카. 이해해."

"나도... 선생에게 해를 입힌 적이 있으니까."


"...!!"

"해... 해라고...? 아... 아아.... 그랬지..."

"내가.... 미쳐버려서 그의 배에..... 배에....!!"

"으.... 우으으으....."


"ㅈ,잠깐...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털썩.

너무나도 많은 힘을 쏟아낸 탓인지 그녀는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그것이 끝인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커다란 오산이었다. 


"유우카, 유우카...?"

"정신차ㄹ.... ㄴ,너 지금 뭐하는거야...!!!!"


"웁.... 우으으으읍...!!!!"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나는 급한대로 나의 손가락이라도 집어넣어 그녀를 막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그녀의 작고 부드러운 혀는 날카로운 치아의 영압에 짓눌려 이미 너덜너덜 해진지 오래였으니까.


"젠장...!!! 유우카!!! 입 벌려!!!!!"

"윽,으읏....!!!!!"


나의 손가락을 혀로 착각한 걸까.

느껴지는 고통에 곧바로 손가락을 뽑아 내었지만 그녀의 치악력에 이미 깊은 상처가 난 뒤였다.

주변에서 찾은 적당한 부목을 제갈삼이 입에 물린 뒤에서야 그녀는 비로소 모든 힘을 잃은 채 조용해졌다.

다시금 처음의 상태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크윽!!"

"그토록 절박한건가.... 대체 무엇 때문에...!!!!"

"대체 무엇이 너를 이토록.... 망가트린거냔 말이다....!!"


마치 며칠 전의 내 모습처럼 느껴졌던 탓일까.

그런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던 나는 어느새 그녀에게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

.


"훗날 정신을 차린 그녀에게도 너에게 한 것과 똑같은 질문을 했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동일했지."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내 말은."


"'선생을 진심으로 애정하는 학생들만이 피폭의 초기 희생자가 되었다'."

"...그것이 내가 내린 잠정적인 결론이야."


"...에?"


아루는 사오리의 발언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리 주변에서 멍청하다고 놀림을 받는 그녀일지 언정, 그것이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것 쯤은 알 수 있었다.

그야 그럴것이, 아직 이를 뒷받침할 제대로 된 증거도 나오지 않았잖아?


"...그거, 진심?"


"무슨 말 이지?"


"응? 무슨 말 이냐니, 애초에 말이 안 되는게 당연하잖아!"

"대조군도 없고, 변인통제도 일어나지 않았을 뿐더러... 무엇보다 그것을 증명할 수단이 없잖아!'


하루카는 평소답지 않은 아루의 이면을 보며 남몰래 감탄하였다.

분명히 사태가 일어나기 전 선도부의 눈에 띄었더라면 분명히 즉석에서 스카우트가 될, 탈 게헨나급 지능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선도부의 차기 부장이 된 아루의 모습을 상상하며 넌지시 미소지었다.


"...그래서 다른 피폭자들을 찾아다니고 있는 중이지."


"끄응... 그래도 너무 성급한 일반화잖아."

"그리고, 너의 그 가설이 만약 사실이라고 한다면..."

"...너도 그 조건에 부합해야 하는게 아니야?


그녀의 허를 찌르는 질문에 사오리는 적잖히 당황한 것 처럼 보였다.

불현듯 먼 풍경을 응시하는 그녀의 이상 행동을 본 아루는 오랜만에 실로 악마 다운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는 한 방 먹였다는 생각에 자화자찬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

"노코멘트 하도록 하지."


"엣."


단호한 사오리의 대답에 아루와 하루카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오리는 말없이 운전에 집중하였다.


"..."

"....진심?"


"..."


"...좀 깬다. 되게 의외네..."


"아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가 뭐라 말할 줄 알고."

"얼굴 빨개진거 봐라? 계속 부정할거야?"


"으흠... 흠. 얼추 도착한 것 같은데."

"잠깐, 저기 앞에 누군가가 있다. 확인해 보도록 하지."


사오리는 차를 멈춰 새운 뒤, 길 중앙에 쓰러진 누군가를 향해 서서히 다가갔다.

이에 아루와 하루카도 차에서 내려 사오리의 뒤에서 그녀를 보조하기로 했다.


이름 모를 학생은 다소 이상한 외형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스커트 길이는 한없이 짧았고 한껏 풀어해쳐진 기모노는 그녀가 결코 평범한 학생이 아님을 증명했다.


"헤일로가 꺼져있잖아..."

"사오리, 함부로 다가가지 않는 것을 추천해."


"...알고있다. 그 정도의 상식쯤은."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그녀를 깨우지 않으면 그녀가 위험에 빠질지도 모른다."


사오리는 씁쓸한 목소리로 되내었다.


"가끔씩은 알면서도 위험에 뛰어들 줄 알아야 한다고, 그에게 배웠다..."

"비록 너무 늦은 시점이지만... 뒤늦게라도 그의 뜻을 이어가고 싶어."


그녀는 이내 쓰러진 학생의 어깨를 조심히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물론 혹시 모를 참변이 일어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총을 겨누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잠시 뒤, 그녀의 몸이 움찔함과 동시에 헤일로가 미약한 불빛을 내며 점등하기 시작했다.


"...음."


"ㄲ,깨어났어! 사오리, 물러서!"


"알겠다. 잠시 경과를 지켜보는걸로."


사오리는 그녀를 겨눔과 동시에 서서히 멀어지며 경과를 지켜보았다.

이윽고 천천히 몸을 일으킨 그녀 위로 희미한 벚꽃 모양의 헤일로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미약한 신음을 내며 고개를 든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더듬더니, 이내 무언가를 황급히 찾아 해매기 시작했다.


"...뭐지? 뭐 하는거야?"


"ㅁ,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처럼... 보이는데요..."


그 순간.

쓰러져있던 그녀는 불현듯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온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아루를 비롯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인원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아... 하아.... 하아....."


가면을 집어 든 그녀는 이윽고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천천히 두 손을 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살랑이던 꼬리도 움직임을 멈추고 바람에 일렁일 때 즈음.


"...!!!"


"읏...!!!"


콰앙.

순간 덤벼든 그녀에 의해 사오리는 적잖이 당황하고 말았다.

수많은 실전 경험으로 단련된 그녀조차도 미처 파악하지 못한 가공할 속력.

사오리는 그녀의 짐승 같은 완력에 밀려나지 않기 위해 총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조마에사오리조마에사오리조마에사오리조마에사오리조마에사오리조마에사오리"

"넌내가죽여버릴거야넌내가죽여버릴거야넌내가죽여버릴거야넌내가죽여버릴거야!!!!!"


"크윽...!!!!!"


가면 너머로 느껴지는, 생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오직 살의만이 가득 찬 눈빛.

사오리는 재빨리 괴한의 헤일로를 확인해 보았으나 그녀의 헤일로는 자신과 같은 검은색 이었다.


'ㅁ...뭣... 검은색... 이라고...?'


사오리는 당황하면서도 자신을 압박하는 그녀로부터 결코 밀리지 않았다.

곧이어 사오리의 총기에 금이 가기 시작하자 그녀는 총기를 옆으로 흘리며 옆으로 돌아선 뒤, 재빨리 괴한을 향해 사격했다.

괴한은 키보토스의 모든 학생들이 그렇든 미동조차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가면만은 아니었다.


잠시 뒤, 총격으로 인하여 깨어진 가면이 천천히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졌다.

마침내 드러난 괴한의 얼굴을 본 사오리는 큰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ㄴ...너는...."

"코사카 와카모...?"


"...제 가면이."

"그이께서 아름답다고 해주신 나의 가면이... 제 소중한 보물이....."


"너는 그때 분명..."


"....조마에 사오리. 당신이군요."

"계~속 생각해 봤는데... 역시 저는 당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와카모는 천천히 뒤돌아 사오리를 노려보며 말했다.

살벌한 분위기에 사오리는 물론, 그 자리에 있던 아루와 하루카마저 절로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대치중이던 사오리에게 와카모는 말했다.


"왜 그러시죠? 왜 저를 그렇게 잔혹한 눈빛으로 바라보시는거죠?"

"제 행동이 잘못된건가요? 지금 당신이 억울하다고 생각하시는건가요?"


"...그건 진심이 아니었어."


"역시, 추한 변명 뿐. 제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군요."

"역시 그 나불거리는 입을 찢어 못쓰게 만들어야 비로소 제 마음이 진정될 것 같아요."


"너도 알잖아... 그땐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의 행동이 사라지는건 아니잖아요?"

"...어머, 뒤에 분들은 당신의 동료?"


와카모는 아루를 바라보며 말했다.


"ㅁ...뭣? 나?"

"ㅇ...아... 아니? 난 그냥 동행자인ㄷ"


"날 죽이더라도, 그녀들은 풀어줘."

"그녀들을 끌어들인건 나야. 그렇기에 책임도 내가 지는게 맞아...!"


"...흐응. 역시 동료였군요."


'ㅇ...에엣? 어째서 말이 그렇게 되는거지??'


"그렇다면 역시 용서할 수가 없겠는걸요."

"이 나약한 영혼들 같으니라고..."


아루가 당황하는 사이, 사오리와 와카모는 다시금 전투에 돌입하였다.

핏방울이 흩뿌려지고 총탄과 파편이 날아다니고. 두 사람의 전투는 살벌하기 그지 없었다.

이내 주변의 기물들이 하나 둘 씩 폭발하고 파괴되기 시작하자 아루는 어딘가를 향하여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ㅇ...아루니임...???"

"어디 가시는 ㄱ..."


"하루카... 조용히 따라와...!!!"


'허억... 허억... 지금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떄가 아니야!'

'사오리인가 뭔가에겐 미안하지만, 내겐 선생과 하루카와 흥신소 맴버들이 있어...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단 말이야!'


아루는 달리고 또 달렸다.

주변에 날아드는 파편과 불길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은 채 오직 한 곳 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그녀들이 타고 왔던 차를 향하여.


"어머머, 혹시 지금 도망치는건가요??"


"우와아앗...!!!"


콰아아아앙.

그때, 아루 앞을 막아서며 등장한 와카모 탓에 그녀의 탈출 계획은 시도조차 하지 못한 채 좌초되고 말았다.

매캐한 연기 속에서 깨어난 아루는 다가오는 와카모에 공포를 느끼곤 천천히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당신,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인데."

"어째서 저런 버러지를 따르는거죠? 같은 검정 헤일로라 동질감이라도 느끼시는건가요?"


"...난 따른다고 한 적이 없다니깐!"

"그리고, 너도 검정 헤일로잖아! 똑같은 피폭자면서 나약한 영혼이라니..."


"아하~ 정말 아무것도 모르시는군요..."

"그렇다면 알려드리죠. 이 여자의 끔찍한 죄악을."

"...자,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하세요. 당신의 원죄를!"


철퍼덕.

곧이어 아루의 앞으로 넝마짝이 되어버린 피투성이의 사오리가 힘없이 던져졌다.

끔찍한 몰골과 상태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직까지 미약한 숨을 내쉬며 살아 있는 상태였다.


"ㅎ...히이이익...!!!!"

"ㅅ... 사오리...??"


"....ㅇ....으,으....으....."

"ㄷ...도망....쳐라... 어서......"

"...도망쳐!!!!!!"


"하아? 경고 따위나 하며 시간을 허비하라고 당신을 살려둔게 아닐텐데요?"


"윽...!!!"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와카모는 군화 부츠로 사오리의 척추를 서서히 짓누르며 말했다.

이에 사오리는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고통에 몸부림 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입을 열지 않았다.


"...끈질기군요."

"도대체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그냥 말하면 끝나는 문제잖아요?"


사오리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머리를 쓸어넘긴 와카모는 사오리를 향해 거친 발길질을 날리기 시작했다.

한 번 한 번. 와카모의 부츠가 사오리의 복부에 직격할 때 마다, 그녀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그냥..."


퍼억.

"끄윽...!!"


"당신이..."


퍼억.

"크흣...!!!"


"한 일을....!!!!!!"


퍼억.

"우욱....!!!"


"말하면...!!!!"


퍼억.

"...크아아악!!!!"


"될 일이잖습니까!!!!!!"


퍼어어억.

"웁, 쿨럭...!!! 끄우웨에에엑...."


"...후우, 꼴사납게 구토까지 하기는."

"정말이지... 더럽기 짝이 없군요."


철컥.

와카모는 문득 들려오는 장전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곳에선 아루가 그녀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난 너를 본 적이 없어."

"하지만 너가 그닥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딱봐도 알 것 같네."


"...어머나, 지금 대체 뭐하시는거죠?"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할 지라도 갱생의 여지는 있기 마련이야..."

"그러나 무슨 일이 있더라도... 폭력은 결코 정당화 될 수 없어!!"

"설령 그 대상이 천인공노할 대역죄인이라 할 지라도!!"


"...후후."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시는게 분명하군요."

"그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죠? 선생의 편? 그게 아니라면 역겨운 게헨나 선도부장의 편?"


"...대체 언제적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만약 오늘, 그리고 어제 이전의 이야기라면 나는 몰라. 나와 하루카는 그때 당시 깨어있지 않았으니까."


"...깨어있지 않았다구요?"


철커덕.

와카모의 총기가 땅으로 떨어지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저는.... 괜한 오해를 한 셈이군요."

"미안해요. 당신과 그녀는 이만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조마에 사오리는 이 자리에 두고 가도록 하세요."


하지만 아루는 물러나지 않았다.

이에 와카모도 헛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후후... 어째서죠?"


"앞서도 말했든,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어."

"...그리고 방금 전의 너는 너무 심했다고. 사오리에게 원한이 있다면, 대화로 풀어도 되는거잖아!"


"원한? 대화....??"

"지금... 저와 장난하자는 건가요?"


"...뭐?"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가는 법이라는 말이 있죠."

"아마 정말로 모르는 것 같으니 그녀 대신, 제가 알려드리도록 하죠."


와카모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오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곧이어 그녀 앞에 도착한 와카모는, 그녀의 왼쪽 다리에 총알을 한 발 박아 넣었다.


"끄으으으윽...!!!!"


"ㅁ,뭐하는거야!!!!"

"사오리는 이미 전투 능력을 잃었잖아... 대체 왜..."


"안간힘을 다해 도망치던 그이에게... 그녀가 한 짓..."

"...이것이 그녀가 행한 죄악입니다."


"...그이?"


이내 와카모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오기 시작했다.

비통한 안색과 함께 잠시 흐느끼던 그녀는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그이."

"저와 늘 함께 어울려 주시고... 제 말썽에도 너그럽게 넘어가주시던 그이..."

"당신들이 쓰는 용어로 변환하자면,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뭐? 선생님??"


아루는 황급히 쓰러져있던 사오리를 바라보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사오리는 이내 힘없이 고개를 떨어트리며 시선을 피했다.


"ㄴ....너...."

"....너 그게 무슨 소리야...?"


"...ㅁ...미안...하다..."


"...뭐야? 그 반응은...? 정말 사실이었던거야?"


"...면목...허억, 면목없다... 리쿠하치마 아루...."

"미안.... 미안하다...."


"미안이고 뭐고, 해명이라도 해보란말이야...!"


"이제라도 깨달으셔서 다행이네요."

"이해가 되시나요? 어째서 제가 그녀를 그토록 증오하고 싫어하게 되었는지, 짐작이 되시나요?"


아루는 침묵했다.

이에 씨익하고 미소지은 와카모는 그녀를 지나처 사오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 순간, 와카모는 불현듯 느껴지는 고통에 그만 제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으읏, 이 소리는... 무언가 타들어가는....?"

"ㅁ,뭐ㅈ.... 꺄아아아아악!!!!"


곧이어 작렬하는 폭발.

와카모는 성대한 폭음과 함께 저 멀리 날아가 사라지고야 말았다.

이 틈을 놓치지 않은 아루는 곧바로 사오리를 들고 자동차로 향했다.


"ㅇ...어째서...."

"ㄴ...너가.... ㅅ...랑하는 선생을 해친 나를...."


"....조용히 해. 난 널 용서하지 않았어."

"솔직히 말해서,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널 그대로 버리고 갈까라는 생각도 했어."


"ㄱ,그렇다면 어째서...."


"...벌은 받아야 하니까."

"너가 죄를 지었으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지. 죽음으로 사죄하는게 아니라...!"

"그러니 착각하지마. 이건 구해준게 아니야! 알겠어?!"


"..."

"고맙다... 리쿠하치마 아루...."


아루는 콧방귀를 뀌며 사오리를 뒷자리에 뉘였다.

잠시 뒤, 차에 올라탄 그녀들은 곧바로 샬레를 향해 악셀을 밟았다.


하지만 그녀들은 알지 못했다.

어째서 와카모가 재액의 여우로 불리는지를.

그녀의 은신 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


지난 번의 투표 결과로 인해 매일 연재로 바뀌었음을 알립니다.

아마 다음편 부터는 분량이 조금 줄어들지도. 그래도 현행유지가 가능하게끔 노력해 보겠음.

그리고 이건 TMI이지만 내 최애가 아루랑 사오리임ㅋㅋㅋㅋ



쨋든 다음편으로 다시 돌아오겠음.

댓글은 글쟁이에게 큰 힘이 되니 부탁합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