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2편 3편


***


게헨나 하면 시끄럽고 활기찬, 정제되기보단 무질서의 느낌이 더 강했다.

아루 또한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모든 신경을 집중한 채 주변을 수색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학생은 커녕, 개미 한 마리도 찾을 수 없었다.


"이...이상하다? 원래 여기가 이렇게 조용한 곳이 아니었는데?"


"그,그러게요 아루님..."

"학생은 커녕... 불량배도 한 명 안 보여요... 뭔가 이상한 것 같아요..."


문득, 아루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리본 하나를 발견하곤 이를 주워서 살펴보았다.

흑먼지가 잔뜩 묻은 리본은 이에 어울리지 않게 차분한 검은색을 띄고 있었다.


"...이 리본, 본 적 있지 않아?"


아루는 하루카에게 넌지시 리본을 내밀었다.

한참동안 골똘히 고민하던 하루카는 이내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아! 기억, 기억 났어요!"

"아루님을 괴롭히던 잔챙이들... 그 머리 큰 선도부장의 옆에 있던 사람이 쓰고 있던거랑 비슷한데..."


"ㅁ,뭐? 잔챙이? 선도부 말하는거야?"

"선도부의 리본이라면... 그 트윈테일?"


"네...! 그 성격 나쁘게 생긴...."


"어쩐지 익숙하다 했어..."

"...그런데, 이름이 뭐였지? 그 사람...?"


"저,저야 모르죠..."

"매번 도망다니느라 이름을 물어볼 틈이 없어서..."


둘이 이런저런 만담을 주고받던 그 순간.

어디선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루와 하루카는 즉시 대화를 멈추고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하루카. 들었지?"


"네..."


"좋아... 그럼 천천히 뒤돌아ㄱ..."

"....ㅁ,뭐하는거야 하루카아아아앗!!!!"


"ㄴ,네에엣? 부,분명히 천천히 접근하라고..."


하루카가 당황한 표정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혼자서 저 멀리 나아간 하루카 탓에 당황한 아루는 황급히 손짓을 하며 말했다.


"그게 아니야 이 바보야앗!! 돌아가자고 했지 누가 다가가라고 했어~!!!"


"히,히이이익...!!! 죄,죄송.죄송합니다 아루님...!!!!!"

"제가, 제가 또 아루님을 궁지에 빠지도록...!!!"


"괜,괜찮으니까 좀 조용히 해봐...!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ㄹ"


"...거기 누구야!!!"


"히이익!!!"


불현듯 들려온 이질적인 목소리.

심지어 그 목소리의 주인은 그녀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아루와 하루카는 떨리는 손으로 총을 들어 그 누군가를 향해 겨누었다.


"...아직도 잔당이 남아 있었던거야?"

"어차피 목표는 나지? 좋아. 귀찮으니 빨리 처리해줄게."


어둠속에서 빛을 내는, 보랏빛이 맴도는 헤일로.

흩날리는 하얀 머리카락에 좁은 길목을 가득 채우는 박쥐 날개 까지.

이윽고 바닥에 질질 끄는 커다란 철덩어리 소리와 함께,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너는... 선도부의 선도부장..."

"...소라사키 히나!!"


"...그래. 나를 노리고 온 이상 나를 모를리가 없겠지."

"그럼, 덤벼. 진심으로 상대해 줄테니."


아루는 재빨리 그녀의 헤일로를 살펴보았다.

불행 중 다행이게도, 그녀의 헤일로는 이미 검은색으로 침식 당한 상태였다.


'잠깐만, 선도부장의 헤일로는 원래 검은색 아니었나...?'

'...에라 모르겠다! 일단 내질러보고 생각하지 뭐!!'


"자,잠깐!!!!"

"우리들의 헤일로를 봐!!!!"


"...헤일로?"


"그래! 헤일로!"

"나도 너처럼 헤일로가 검게 물든 상태라구!"


아루는 손으로 자신의 헤일로를 기리키며 말했다.

곧이어 미묘한 침묵이 세 사람간에 흐르기 시작했다.


'뭐지...? 역시 잘못한건가?'

'혹시라도 내가 오해한거면... 내 정체를 먼저 밝혀버린게 되잖아....!!!'

'으이그 이 바보 진짜...!!! 조금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검은색, 헤일로....??"

"찾았... 다. 검은색 헤일로....!!"


히나는 총기를 떨어트린 채 아루를 향하여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이에 당황한 아루는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지만 도망칠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침내 히나가 자신의 바로 눈 앞까지 다가오자, 아루는 눈을 질끈 감았다.


"...드디어... 드디어 찾았어..."

"나와 같은... 검은색 헤일로를...!"


"...?????"


하지만 그런 아루의 행동이 무색하게, 히나가 취한 행동은 포옹이었다.

공격도, 체포도 아닌 단순한 포옹.

벙쩌있는 아루에게 히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너도 그 빛에 노출된거구나.... 맞지??"


"애... 그러니까 그게 맞다면 맞다고 할 수 있는데..."


"다행이다...!!! 정말.... 정말 다행이야...."

"나 혼자만이 아니라서...!! 흐으윽.... 정말... 정말 다행이다...."


자신의 품에 안긴 채 흐느끼는 히나를 보며, 아루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 인지는 알 방도가 없지만, 그것이 그닥 좋은일이 아님은 확실했기에.

잠시 뒤, 어느정도 진정이 된 히나는 아루. 그리고 하루카와 함께 근처에 모닥불을 피워 그 주변에 앉았다.


"저기, 갑자기 뜬금없이 모닥불?"


"...알게뭐야. 이젠 더 이상 질서를 지킬 필요도 없는데."


히나는 꽤나 시니컬한 어조로 답했다.


"그건 그렇고, 여긴 어떻게 오게 되었어?"

"다들 마굴이라면서 기피하던데."


"...아? 나에게 한 말이야?"

"그게... 선생님의 연락을 받아서... 샬레로 가는 중이었어."


이윽고 아루의 그 말에 히나의 눈동자가 눈에 띄도록 흔들리기 시작했다.

잠시 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아루를 붙잡으며, 히나가 말했다.


"바,방금 선생님이라고 한거야???"


"으,으응? 그,그런데 왜...? 내가 뭐 잘못한거라도..."


"선생님이, 선생님께서 아직도 살아 계신거야????"

"그 연락이 온게 언제 쯤이었는데???? 응??? 말해줘!!!"


"자,잠깐 왜 이래..??? 차례차례 말해봐...!"

"그 전에 선생님이 아직도 살아있냐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인건데?"


"너,너도 검은 헤일로잖아... 그렇다면 모를리가 없는데...???"


당황하는 히나의 팔을 뿌리치며, 아루가 말했다.


"그러니까 그게 문제라고... 다들 이미 알고있지 않냐며 설명을 안 해주는데, 내가 어떻게 알겠어!"

"난 그냥... 정신을 차려보니 이렇게 되어있던 것 뿐이라고..."


그제서야 무언가를 깨달은 히나는 주춤하며 물러나더니, 이내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잠깐... 그 정도로 충격이었어???"

"미,미안...! 불편했다면 사과할게...!"


"그...그게 아냐..."

"모른다고...? 정말?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거야...?"


"그렇다니까 그러네? 기왕 이렇게 된거 너가 좀 알려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히나는 격렬하게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야... 모르는게 좋아..."

"오히려 알았다간... 너도 우리들처럼 변할지도 모르니까...."


"아니 이것 참... 답답해 미치겠네..."

"어이, 선도부장."


아루는 답답한듯 머리를 쓸어넘기더니, 주저앉은 히나를 잡아 끌었다.

무력하게 끌려오는 그녀를 향해, 아루는 말했다.


"너, 선도부 아니야?"

"게헨나의 풍기를 유지해야할 너가 왜 이러고 있는건데?"


"선도부..."

"아아... 아니야... 난 이제 더 이상..."


"그러니까! 의미불명의 헛소리 좀 그만 하라고!"

"난 지금 한 명 한 명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태야. 선생님을 구하기 위해서...!!"

"아까 한 말로 보아하니 너도 선생을 걱정 중인 것 같은데, 선생님을 구하고 싶다면 협력해!"


"...우,우와아... 역시 아루님..."


"...!"

"시,시끄러워...!!"


아루의 절도있는 스피치.

하루카가 이에 감동하여 어쩔 줄 몰라하는 사이, 히나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곧이어 비틀거리며 일어난 히나는 힘이 다 빠진 목소리로 천천히 되내었다.


"...."

"내가... 선생님을... 구한다고...?"

"내가... 그럴 자격이 있을까...?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아니야... 난 못해... 난 해서는 안돼....!!!!"


불현듯, 히나는 아루의 손을 뿌리 친 뒤 바닥에 떨어트렸던 그녀의 무기를 집어 들었다.

돌발상황에 당황한 아루는 황급히 히나를 향해 소리쳤다.


"자,잠깐!! 일단 말로..."

"....어어어어???? 너 지금 뭐하ㄴ...!!!"


타다다당!

히나의 기관총이 그 불을 뿜었다.

다만 그 총구는 아루와 하루카가 아닌, 그녀 자신을 향한 상태였다.

다행히 그녀의 몸이 워낙 강하여 치명상은 커녕 생채기도 나지 않았지만, 문제는 그녀의 멘탈이었다.


"ㄴ....너 미쳤어???"

"제정신이야??? 대체 그걸 왜 네 머리에...!!!"


아루는 재빨리 달려가 쓰러지는 히나를 안아들며 말했다.

하지만 히나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왜.... 왜 난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는거야... 왜애애애애애...!!!!!"

"흐윽.... 흑.... 어째서.... 어째서 나는....!!!!! 으흐으윽,흐윽...!!!!"


결국 마음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버린 그녀는 처절하게 통곡하기 시작했다.

아루는 그런 그녀의 사정을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감정만은 이해가 되는 듯 한 기분이었다.

분명히 말 못할 정도로 슬프고 끔찍한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만 짐작하며, 아루는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볼 뿐 이었다.


"선생.... 선생니이임.... 흐아아아아앙...."

"죄송해요.... 죄ㅅ.... 죄송해요오.... 살아있어서 죄송해요오오오오...!!!!!"


"..."

"어이, 선도부장."


"아아아.... 어째서 내가... 나만이 살아남아서어엇.... 훌쩍, 흐으으으으...!!!!"

"아코오옷..... 이오리이이이...!!!!! 어째서.... 어쨰서 모두 변해버린거야아..."


"선도부장!"


아루는 진심은 아니더라도, 아주 살짝 감정을 담아 히나의 뺨을 한 대 갈겼다.

서서히 붉어지는 창백한 백옥의 피부와 더불어 전해져오는 얼얼함. 히나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아루를 바라보았다.

순간적으로 전해진 충격에 그녀는 적잖히 당황한 듯 했다.


"...???"


"정신차려! 뭐 하는거야 지금..."

"너가 힘든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그게 옳은거야?"

"선생을 만나고 싶은게 아니었어...?"


"선생.... 선생님...?"


"그래! 선생님!"

"죽을 땐 죽더라도 선생님을 만나고 죽어야 할거 아냐...!!"


그러자 그녀를 멍히 바라보던 히나의 눈빛에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마침내 정신을 추스른 히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알고 싶다고 했지? 어째서 내가 선생님을 만날 수 없다고 했는지."

"알려줄게. 따라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킨 히나는 자신의 총을 주운 뒤, 어딘가를 향하여 비틀거리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루는 말없이 하루카를 바라보았고, 하루카는 이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히나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너, 이름은?"


한참을 말없이 걷던차에, 불현듯 히나가 물었다.


"...에? 누구.... 나? 아니면 저 친구..."


"너가 아니면 누구겠어."


"ㄴ...나...라고 하면은 이제..."

"아루... 리쿠하치마 아루라고 해."


"아루... 고마워, 아루."


히나는 그녀를 향해 희미하게나마 웃어보였다.


"좋아. 도착했어. 들어가."


히나가 도착한 곳은 어느 허름한 창고였다.

아루는 이런 곳이 게헨나에 있었나, 하며 고민하는 한편 히나에 대한 경계도 늦추지 않았다.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가는 히나. 아루는 그런 그녀를 따라 천천히 창고로 진입하였다.

그때였다.


"히나아아아아아.....!!!!!!!!!! 게헨나의 배신자아아아아!!!!!!"

"죽어!!!! 죽어어어엇!!!!!!! 선생의 노예 같으니라고...!!!!!!!!"


"흐앗...! 깜짝이야...!!!!"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한 여성이 전신을 포박당한 채 울부짖고 있었다.

하늘색 머릿결을 지닌 그녀의 눈빛은 도무지 같은 인간으로 볼 수 없을 만큼 분노와 광기에 미쳐있었다.

괜스래 소름이 돋은 아루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지켜보기만 할 뿐 이었다.


"...봤지. 보다시피 이런 상태야."

"방금 네가 본 아코도, 여기 없는 이오리도. 모두 며칠 전 갑자기 저렇게 미쳐버렸어."


"배신자 선생이라고...?"


"...응. 다들 하나같이 외치는 소리가 그거야."

"선생은 모두를 배신했고, 나는 그의 충실한 심복으로 여러가지 악행을 했다고..."

"뭐, 후자는 어느정도 사실이긴 하다만."


히나는 특유의 시니컬한 어조로 그녀들을 지나치며 말했다.

아루와 하루카는 그런 그녀의 분위기에 눌려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궁금하다는거지?"


어디서 입수한 지 모를 술병을 들이키며, 히나가 말했다.

붉은색 곰 마크가 그려져 있는것으로 보아 아마 게헨나 내에서 정상적으로 생산된 물건은 아닌 듯 했다.


"아? 으,으응...."

"솔직히 지금도 잘 모르겠어... 왜 다들 나를 이렇게 싫어하고... 헤일로는 왜 검게 물들었는지..."


"...보아하니 넌 줄곧 잠들어 있던 것 같은데, 그럼 모르는게 당연하겠네."


"앵? 그걸 네가 어떻게..."


"딱 보면 알지."

"만약 너가 깨어있었다면, 얼굴에 다 표가 나니까."

"그 광경을 직접 본 사람이라면... 얼굴이 그렇게 밝을 수가 없거든."

"....잠깐만."


히나는 술병을 내려놓았다.

잠시 주변을 둘러본 그녀는 묶여있는 아코를 향하여 내려놓았던 병을 집어 던져버렸다.

곧이어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아코가 괴성을 내지르며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바,방금 뭐...한거야...?"


"방금 아무 말도 없이 조용했지? 그거 혀 깨무는거야."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쟨 죽어...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이내 추욱 늘어져버린 아코를, 히나는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왜 다들 너를 그렇게 싫어하냐고 물었지?"


"으,으응!"


"지금이 며칠인거 같아?"

"그 전에, 너가 정신을 잃은게 언제야?"


"그게...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날짜가 6월 12일이니까..."


"그럼 답이 나왔네."

"넌 일주일 동안 잠들어 있었어."


"잠깐... 뭐어어????"


입 속에 들어있던 물을 뿜으며, 아루가 말했다.

이에 당황하기는 하루카도 마찬가지였다.


"일주일이라뇨...? 그,그게 정말 사실인가요...?"


"응. 다들 포기했지만, 나만은 계속 날짜를 새어왔거든."

"키보토스에 '그것'이 강림한 것은 6월 11일...이라고 추측하고 있어. 나도 잘은 몰라."

"너가 깨어난게 언제지?"


"그,그게... 얼마나 흐른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마 하루도 안 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깨어난 날짜가 오늘이라고 가정 했을 떄, 딱 일주일 하고도 이틀."

"그렇다면 모르는게 당연하겠구나. 젠장... 부럽네."


히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루는 그런 그녀의 시선으로부터 많은것을 읽을 수 있었다.


"...너희가 잠들어 있는 사이, 키보토스에는 거대한 이변이 일어났어."

"갑자기 헤일로가 검게 변해버린 학생들이 등장했고, 그들은 닥치는대로 주변을 파괴하기 시작했지."


"뭐라...고...?"


"그리고 말하기 부끄럽지만... 나도..."

"나도 그들의 일원 중 하나였어..."


결국 히나는 고개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잊고 싶었던, 기억하는 것 만으로도 고통스러운 과거가 떠오른 탓일까.

미약하게 나마 울부짖으며 고통스러워 하던 그녀는 이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며 다시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

"그때 당시 우리들, 그러니까 '검은 헤일로'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말이야..."


문득 이야기를 멈춘 히나는 뒷편에 놓인 상자 속에서 강박적인 손길로 무언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잠시 뒤, 먼지 가득한 알코올 병을 꺼낸 히나는 노련함이 느껴지는 손놀림으로 포장을 푼 뒤,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했다.


"우으윽... 미안. 이게 아니면 도무지 안될 것 같아서 말이야."

"그래서... 어디까지 이야기 했지...?"


"그떄 당시 네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그래, 그 쯤이었지..."

"....하아.... 좋아,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히나..."

"흐으읍....! 후아아아... 훌쩍, 흐윽.... 젠장...!!!!"


무슨 이유에서인지 짜증을 내기 시작한 히나.

당황하는 아루를 둔 채, 히나는 다시 한 번 알코올 병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그녀의 입가로는 미처 흡수되지 못한 알코올이 독한 냄새를 풍기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괘,괜찮아...?"


"....쿨럭... 끄으으윽..."

"하아... 하아.... 그래... 이제 좀 살것 같네."

"좋아... 한 번만 말할테니 잘 들어..."


아루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인 채 그녀의 말을 경청하였다.

떨리는 손으로 빈 병을 탁자에 내려놓은 히나는 공허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다보기 시작했다.

불현듯 무언가를 느낀걸까. 히나는 아까 전과 비교해서 한껏 차분해진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까도 말했 듯이, 나는 검은 헤일로의 최초 발현자들 중 하나였어..."

"그리고 그때 내가 한 생각... 정확히는 내게 든 생각이라고 해야하나."

"그것은 바로..."


"..."


"선생을 죽여야겠다... 였어."

"그것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고... 머릿속엔 오직 그 생각 뿐 이었는지라..."


"...!!"


히나의 입에서 나온 충격 고백.

아루는 그제서야 자신들이 쫒기던 이유를 비롯한 여러 의문들이 서서히 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선생을 죽이려고 했으니까. 키보토스의 학생들이 해서는 안될, 최악의 범죄를 저지른 것이나 마찬가지 였으니까.


"나는... 나는 깨어나자 마자 주변의 부원들을 공격했고..."

"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단으로 선생을 향해 처들어가... 전투 중이던 선생에게... 선생님에게....!!"

"...아아. 안되겠어... 역시... 역시 맨 정신으로는....!"


"그만..!!"


상자를 향해 다급한 손길을 뻗은 그녀를 가로막으며, 아루가 말했다.

자신을 죽일듯이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도 불구하고 아루는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비켜."


"안돼. 안 비킬거야."

"그거, 술 맞지? 학생이 술을 마셔도 되는거야?"

"너가 한 일과는 별개로 언제까지나 피하고 있을 수 만은 없는거랬어."


"...비키라고 했어."


"그깟 술이 뭐가 좋다고 계속 마시는건데...!"

"그래가지고는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잖아... 들어보니까 선생을... 뭐 쨋든, 네 본심이 아니었다고 해도..."

"그래도...! 그렇다고 해서 그게 널 해칠 정당한 이유가 되진 않... 으으읍...??!!!""


"...네가 뭔데 그렇게 떠들어."

"네가 뭘 안다고 그렇게 쉽게 떠드냔말이야.....!!!!!!!!!!!!!!!!!!"

"네가.... 네가....."


그녀의 입을 틀어막은 채, 불현듯 흐느끼기 시작하는 히나.

그런 히나의 모습을 보며 아루는 적잖은 당황감을 느꼈다.


분노와 혐오감으로 이글거리는 그녀의 눈빛.

아루는 이에 본능적인 공포감을 느끼며 천천히 밀려나기 시작했다.


"나는... 나를 항상 위해주고 돌아봐준 그 이에게..."

"총을 쏘고... 으읏, 몸에 총알을 박고.... 알겠어...?"

"이래서 나는 선생을 만날 수 없다고 한거야... 내가 한 짓이 있으니까...!!!!!"

"나는 그를.... 그 분을....! 으흑....! 흐윽... 흑...."


결국 무너지고 만 히나.

아루의 그을림 가득한 코트를 부여잡으며, 그녀는 통곡하였다.

서러움, 원망, 분노. 그리고 죄책감이 한데 섞여 히나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한 번 터진 눈물의 흐름은 쉽사리 그치질 않았다.

아루와 하루카는 처음 보는 그녀의 모습에 당혹감을 느끼면서도, 그녀를 위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내가아아아아...!!!!!"

"나의 은인에게... 나의 은사에게...!!!! 으흑.... 흑...."

"나의.... 소중한 사람에게.... 그런 짓을 저지른게... 흐으윽, 쿨럭.... 아아아...."

"도저히... 견딜수가 없어서....!"


"..."

"선도부장..."


"그러니까... 제발... 흐윽, 제발 비켜줘..."

"나... 더 이상 이대로 있다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 그래.... 훌쩍, 제발..."

"한 모금이라도 좋으니까... 쿨럭... 그게 아니라면 한 방울 만 이라도 좋으니까 제바아알...."


"...알겠어."


결국 이를 보다 못한 아루는 마지 못해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를 막던 봉인이 풀리자, 히나는 엉망이 된 얼굴을 닦지도 않고 곧바로 상자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녀를 처참한 현실로부터 잠시 멀어지게 해줄 따스한 친구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뭐... 뭐야...."

"왜... 왜 없.... 왜,왜 없지...? 아,안돼... 안돼...!!!"

"거짓말...? 그럴리가... 안돼.... 안돼애애애...!!!!!!"


자신의 죄악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유일한 수단이 사라진 그녀의 절규는 끔찍했다.

그동안 계속해서 마주하기를 거부한 채, 피해오기만 하던 그녀의 민낯, 그녀의 원죄와 마주한 히나는 처절하게 오열하기 시작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동정을 넘어 공포가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결국 고민 끝에 아루는 하루카와 시선을 주고 받은 뒤, 그녀에게 말했다.


"...하루카."

"부탁해..."


"..."

"...넵. 아루님..."


하루카는 제자리에서 발작중인 히나에게 천천히 다가가 그녀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었다.

이윽고 느껴지는 위화감에 뒤를 돌아본 히나에게, 하루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저기..."

"아루님께서 보내시는... 진정제 입니다."


"...에?"


타앙!

하루카의 총구가 한 차례 불을 뿜었다.

영거리에서 산탄을 직격당한 히나는 힘없이 자리에 쓰러지고야 말았다.


"잠깐이지만, 편히... 쉬세요..."


"...웃차."

"미안. 내가 어리석었어, 선도부장..."

"내가 괜한짓을 해서... 너의 트라우마를 건드려 버렸구나..."


아루는 기절하여 축 늘어진 히나의 몸뚱아리를 들어 근처 소파에 조심히 뉘었다.

물론, 자그마한 이불을 덮어주는것도 잊지 않았다.


"...대충 사태 파악은 다 한 것 같아, 하루카."

"이제... 우리도 그만 우리 갈 길을 가자... 우리가 할 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아루님."

"그,그런데 저기... 아루님...!"


자신을 향하여 뒤를 돌아본 아루에게, 하루카가 꼬깃꼬깃 접힌 무언가를 내밀었다.

편지 봉투로 추칙되는 그것의 정면에는 한 단어가 적혀 있었다.


"'선생님께' ...?"


"선도부장의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쪽지에요."

"아마 선생님께 전해드리려다가 실패한 것 같은데... 이거라도..."


이를 말없이 바라보던 아루는 한숨을 쉬며 주머니 속에 쪽지를 집어넣었다.


"우리가 뭐 우편 배달부도 아니고..."

"...뭐, 어쩔 수 없지. 이건 우리가 전해주자."


"헤...헤헤..."

"역시 아루님이라면 그러실 줄 알았어요..."


아루의 뒤를 따라 나서려던 하루카는 문득 미련이 남았는지,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이윽고 소파 위에서 곤히 잠든 히나의 모습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히나는 웃고 있었다.

처음 보는 편안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


[도착하였습니다. 샬레의 선생님.]


"응... 고,고마워.... 웁,우우욱...."


"정말로 와주셨군요, 선생님."


멀미를 호소하며 고통스러워 하던 선생을, 리오의 목소리가 맞이하였다.

이에 선생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 어디서도 리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리오...?"


"죄송합니다. 여기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기에 모습을 노출할 수 없다는 점, 부디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준비된 좌석에 앉아주시죠."


선생은 리오의 안내를 받아 자그마한 철제 의자에 앉았다.

인체 공학적으로 설계된 의자는 리오의 딱딱한 성격을 반영이라도 하듯 다소 불편하였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호출에도 와주신 점,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윽고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리오.

다만 그녀와 선생님 사이에 쳐져있는 얇은 스크린덕에 선생은 그녀의 실루엣만 볼 수 있을 뿐 이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스크린 너머로 보이는 그녀의 머리 위로는 특유의 붉은 빛이 정상적으로 맴돌고 있었다.


"아니야. 나는 오히려 리오가 이 상황에 멀쩡한것에 큰 안도감을 느끼고 있어."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불렀지?"


"우선. 사태가 발생함이 알려지고 나서 저는 재빨리 그것의 원인을 파악 하는데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선생님께서도 짐작 하셨을지 모르겠다만 배후에 색채가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죠."


"응. 이전에 관측했던 파장과 아주 유사해."

"그것 외에도 혹시 알아낸게 있을까?"


"지금 막 말씀을 드리려던 참 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저는 포획한 표본들을 통하여 그것들이 공통적으로 노리는 목표를 알아낼 수 있었죠."

"그것은 바로, 선생님. 당신이었습니다."


"...나, 라고...?"


선생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닥 예상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유우카, 세리나, 아스나.

실제로 그가 만난 피폭자 학생들은 모두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마음이 편한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하아."


"물론, 혼란스러우시겠죠. 한때 당신을 충직하게 따르던 귀여운 학생들이, 한순간에 선생님의 목숨을 노리는 킬러로 변모하였으니."

"이는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기에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 방안을 찾는데에 매진했고, 수많은 시간을 해맨 끝에 마침내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뭐? 정말?"


선생은 너무나도 깜짝 놀란 나머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며 말했다.

이에 리오는 소소한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네, 정말입니다. 선생님께서 이 방법에 협조해 주신다면 밀레니엄의, 나아가 전 키보토스의 혼란을 잠재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협조...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뭔데? 내가 도울 수 있는게 있다면 말해줘."

"학생들을 되돌리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테니."


"...긍정의 의미로 이해하고 계속 진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방법의 정체는 바로 선생님."


"응, 내가 왜?"


"당신이 사망하는 것 입니다."


"..."

"....??????"


순간 뇌리를 스치는 본능적 감각에, 선생은 다급히 그와 리오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스크린을 걷어 올렸다.

그러자 그곳에선 헤일로가 검게 물들어버린 리오가 차분한 시선으로 선생을 응시하고 있었다.


"ㅈ,젠장... 어쩐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더라니."

"그렇지만 아까 분명히 붉은 색으로 빛나는 헤일로를 봤는데..."


"아, 그것 말인가요? 홀로그램입니다."

"제 헤일로와 똑같은 외형을 한 홀로그램 영상을 제 머리 뒷편에 띄워놓아 선생님의 착각을 유발했죠."

"반응이 격해지신걸 보니, 아마 대성공이었나보군요."


"리오...."

 

이내 상황을 파악한 선생은 천천히 그녀를 피해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아, 안심하여 주시길."

"저는 선생님꼐서 그동안 만나오셨던 아이들과는 다릅니다."


"...내가 그걸 어떻게 믿지?"


"흠, 글쎄요. 저는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선생님을 죽여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있죠. 그러니 선생님, 부디 저를 믿으셔도 좋습니다."

"애초에 그들처럼 이성을 잃어버렸다면 이 자리에 앉아 대화를 할 수도 없었을테니까요."


리오의 말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선생이 지금껏 만나왔던 학생들은 이성을 잃은 채 그에게 덤벼왔으니까.

이에 선생은 완전히 의심을 거두진 못하면서도, 일단은 그녀를 믿기로 하며 도로 자리에 앉았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래서... 정녕 내가 죽는 것 말고는 답이 없는거야?"


"그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긴 합니다만, 어째서 다른 방법을 갈구하시는거죠?"


"그야... 내가 없으면 학생들을 지켜줄 어른이 모두 사라지게게 되잖아."

"만약 방법이 아예 없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내가 죽도록 할게. 하지만 그 전 까지는 계속해서 다른 방안을 찾아봐야 한다는게 나의 의견이야."

"거기다가, 색채는 변칙적이라고. 나를 죽인다고 한들, 그것이 잠자코 물러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


"...까다로우시군요. 선생님."

"저는 지금 협상을 위해서 이 자리에 선생님을 모셔온게 아닙니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난 리오는 리모컨을 들어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그녀 머리 뒷편에 있던 거대한 스크린으로 한 영상이 송출되기 시작했다.


"이... 이건 대체..."


"지금 이 시각, 밀레니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극을 담은 영상입니다."


[천둥이가.... 나의 소중한 천둥이가....!!!!]

[대체 이게 무슨..... 히비키.... 코토리.... 응답해...!!!!]


[어디가세요? 오늘의 트레이닝이 아직 끝나지 않았잖아요.]

[악.... 아아아아아악!!!!! 살려줘!!!!! 더 이상의 운동은 싫어!!!!]


[허억.... 허억... 그만둬 토키....]

[....]


몰려든 학생들에 의해 무참히 파괴된 천둥이와 그것을 끌어안은 채 오열하는 우타하.

그리고 그녀 주변에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는 히비키와 코토리.

헤일로가 검게 변해버린 스미레와 그녀에게 끌려가는 학생들.

온 몸에서 피를 흘리며 휘청거리는 카린과 아비 에슈흐 모드가 되어 그녀를 적대중인 토키까지.


모든 영상 하나 하나가 끔찍하였고 선생의 가슴을 인정사정없이 후벼파왔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영상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으...으아아아아앙...!! 일... 일어나아아....! 일어나란 말이야 언니이이이...!!!!]

[아리스.... 유즈 선배애애애.....!!!!!!]


철렁, 하고 선생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쓰러진 모모이와 그녀를 붙잡은 채 절규하는 미도리의 모습이 담긴 영상.

거기다가 전신이 부숴진 아리스와 더불어 포효하는 유즈까지.

선생은 이내 어마무시한 죄책감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보셨습니까? 선생님께서 자리를 비운 사이, 우리 밀레니엄 학원에서 일어난 비극들입니다."

"밀레니엄만 해도 이 정도인데, 키보토스 전역으로 범위를 확장하면 더욱 더 많은 눈물이 흐르고 더욱 더 많은 통곡의 소리가 아우성치고 있겠죠."

"선생님. 시간이 없습니다. 결단을 내리셔야할 시간입니다. 이젠 멈추어야만 합니다."


'나 때문이야... 내가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내가 그때 미리 경고를 했었더라면... 아이들이 이렇게 고통받는 일은 없었을텐데...!'


선생은 죄책감에 머리를 부여잡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러고 그런 선생을, 리오는 말없이 지켜볼 뿐 이었다.


"...정말, 다른 방법은 없는거지?"


"네. 현재로써는."


잠깐의 침묵끝에 입을 연 선생은 비장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네 계획에 협조하도록 할게."

"다만 부탁이 있어."


"...네? 무엇인가요 선생님?"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알리지 말아줘."

"만일 그 사실이 알려졌다간 모두들 충격받을게 분명하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 준비는 되셨습니까."


곧이어 리오가 선생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선생은 쥐 죽은 듯 미약한 숨소리만 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겁니다."

"아마, 키보토스를 구하신 영웅으로 기억되시겠죠."


마침내 수많은 드론들이 그녀의 뒤에서 나타나 선생을 겨누었다.

선생은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안녕히 가십시오. 선생님."


그러나 그 순간.


"안돼!!!!!!!"


맹렬한 폭음과 함께 폭발한 정문.

이내 선생을 겨누던 드론들은 자연스럽게 침입자들을 향하여 전탄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크읏, 누구...!!"


"선생님!!!! 이쪽으로!!!!"


눈을 뜬 선생의 앞에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마키.

마키는 선생을 겨눈 리오의 손을 간단하게 걷어찬 뒤, 곧바로 선생을 대리고 피신하였다.

어안이 벙벙해진 선생에게 마키가 성난 표정으로 외쳤다.


"미쳤어 선생님??? 우릴 위해서 죽는다고????"

"제정신이야?? 그렇게 하면 우리가 뭐 기뻐할 줄 알았어??"


"ㄷ....대체 그걸 어떻게..."


"코타마 선배의 발명품을 조금 빌렸어!"


선생은 아까 전 마키가 갑작스레 청한 포옹의 기억을 떠올랐다.

어쩐지 매우 어색하고 등을 수차례 두드리더니, 모두 이유가 있었던 셈 이다.


"그건 그렇고, 앞으로 다신 그런 말 하지마... 알겠어??"

"선생이 죽는다고 해서 기뻐할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조금 더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란 말이야...!!"


"아...알겠어. 미안해 마키..."


[사정은 모두 들으셨겠죠, 선생님?]


그때, 선생의 단말기로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 목소리는... 히마리...??"

"살아... 있었구나...!!"


[후훗, 기억해 주셨군요. 이 초천재병약미소녀 해커의 이름을...]

[...농담은 여기까지 하고, 에이미를 보냈으니 빨리 그 장소에서 빠져나와 주세요 선생님.]

[지금 션생님이 계시는 현장 주변은 리오의 살인 드론들로 가득 둘러쌓여 있습니다!]


"선생님! 마키! 이쪽!!"


어느새 도착한 에이미의 안내에 따라 급히 몸을 숨긴 마키와 선생님.

그러자 이 모든 광경을 바라보던 리오가 인상을 구기며 되내이기 시작했다.


"...정말, 언제까지 내 앞길을 방해할거지? 아케보시 히마리?"


[당신...]

[당신은 정말이지, 바뀌질 않는군요.]


"크게 바라보라고. 지금 이 자리에서 선생을 죽여야 부수적인 피해를 예방할 수 있어."

"스스로를 천재라고 자부하는 너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사실인데, 어째서 인정하지 않는거야?"


[...역시, 사람의 삶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지금의 당신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추악한 욕망이라는 것 만은 잘 알겠군요.]

[부디 깨어났을 때는 당신의 행위와 발언에 대하여 죄책감을 지니길 바랄게요.]


"...."

"하아... 정말 말로만 했더니 안 되겠어."


이내 시설 전체에 적색등이 켜지더니, 소름끼치는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수많은 AMAS 로봇들이 나타나 정문을 비롯한 방 전체를 둘러쌌다.


"젠장!!! 선생님!! 피해!!!"


수많은 총알들의 사격이 선생과 마키, 그리고 에이미를 향해 덮쳐오기 시작했다.

어찌저찌 엄폐물에 숨은 그녀들이었지만 정문까지는 아직도 꽤나 먼 거리가 남은 실정이었다.


"어쩌지 부장? 선생님을 대리고 정문으로 빠저나가긴 힘들 것 같아!"


[기다려 보세요 에이미. 지금 바로 다른 최단 루트를 찾아볼테니...!]


[아니, 그럴 필요 없어.]


그 순간, 단말기 너머로 들려온 하레의 목소리와 함께 정문을 둘러싸고 있던 AMAS들이 일시에 폭발하였다.

에이미와 마키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곧바로 선생을 이끌어 리오의 아지트를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선생님, 기억하세요!!!!"

"언젠가 반드시 당신의 목숨을 이 손으로 뺴앗아 드릴터이니...!!!!!"


"젠장... 리오...!!"


결국 그녀가 말했던 '그들'과 다를 바 없이 변해버린 리오를 보며 선생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잠시 뒤, 한참 동안 뛰고 달리기를 반복한 끝에 초현상특무부의 부실에 도착하는데 성공한 선생.

그곳에는 이미 하레를 비롯한 밀레니엄의 생존자들이 모여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선생님. 여기는 안전하니 어느 정도 안심하시길."

"...안색이 좋지 않으시군요. 리오 건 때문인가요?"


"응? 아아... 아무것도 아니야. 오해라구 오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선생의 마음에는 이미 큰 상처가 자리잡은 뒤였다.

비로소 해답을 찾은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제야 모두를 구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모두 물거품이나 다름 없어져 버렸으니 상심이 큰 것도 당연했다.

무엇보다 선생이 시간을 낭비하는 사이 학생들의 고통은 더욱 심화되었으니.

그의 입장에선 가시방석에 앉은 것만 같은 기분일 터였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휴식을 취하셔야 할 것 같네요."

"에이미, 선생님을 휴게실로 안내해 주시겠어요?"


"응. 알겠어 부장."


"아,아니야... 괜찮아. 난 정말 괜찮으니 아무 신경 쓰지마."

"그보다 어서 조사를 해야지... 지금 이 시간에도 아무 죄 없는 학생들ㅇ... 으윽...!!!"


선생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느껴지는 고통에 그가 당황하는 사이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마키가 달려와 말했다.


"ㅅ,선생님... 괜찮아??"


"응? 으,으응. 괜찮아.... 괜찮으니까 내 걱정은 하지ㅁ... 윽...!!!"


"선생님!!!"


"아...아니야...!!! 난 진짜 괜찮아...."


말과는 다르게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선생.

이윽고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챈 히마리는 떨리는 눈빛으로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 왜 그러시죠? 배는 왜 감싸쥐고 계시는거죠?"

"안 되겠어요. 에이미, 선생님을 잠시 제압하도록 하세요."


"응, 알겠어."


"ㅈ,잠깐...??? 얘들아????"

"우와아아악!!"


잠시 뒤, 선생의 처참한 상황을 목도한 히마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복부를 가리고 있던 옷을 걷어 확인해 보니, 그의 복부에 난 상처가 곪아 고약한 냄새를 내며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제대로 된 응급처치를 할 시간이 없던 탓인지 상처는 이미 감염이 상당수 진척되어 더 이상 조직의 역할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선생님... 도대체 이 지경이 될 때 까지 무엇을....?"

"애초에, 이 상처는 어쩌다가... 에이미, 혹시 주변에 구비된 상비약이 있을까요??"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한 번 찾아볼게."

"그나저나 부장이 응급처치를 할 수 있다니, 꽤 의외인걸."


"흐으응...? 모든 면에서 완벽한 제가 고작 응급처치 따위에 무릎 꿇을것이라 생각하셨나요?"

"어찌되었든 간에, 거기 계신 다른 분들 께서도 응급처치 약품을 찾는걸 도와주시겠어요?"


정말 다행스럽게도 에이미가 책상 속에 숨겨져있던 소독약을 찾는데 성공했다.

소독약을 받아든 히마리는 마키가 찾아온 물티슈로 선생의 상처를 가볍게 닦아내었다.

기초적인 소독이 끝난 이후, 그녀는 더러워진 탈지면과 오염되어 문들어지기 시작한 휴지를 제거하였다.


"윽...! 으으으...."


"선생님, 정말 무지하게 고통스러우시겠지만 잠시 참아주시겠어요?"

"정말.... 응급처치만 제대로 하셨어도.... 하다못해 소독만이라도 하셨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그럼, 소독 하겠습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

"!!!!!!!!!!!!!!!!!!!!!!!!!!!!!"


선생은 입에 물린 재갈을 물어뜯으며 소리없는 비명을 질렀다.

머잖아 그의 입으로부터 게거품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끝끝내 비명을 지르거나 몸을 뒤틀지 않았다.

그런 선생의 강인한 정신력에 히마리는 서서히 마음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조금 어때?"


"주무시고 계세요. 아마 충격이 매우 크신 탓 이겠죠."

"...일단 기초적인 소독은 끝냈지만 치료가 완전히 끝난건 아니에요. 그리고 이는 제 영역을 넘어선 부분이구요."

"그래서 말인데..."


히마리는 한창 두드리던 컴퓨터의 엔터 키를 지긋이 눌렀다.

그러자 방대하게 펼쳐진 홀로그램 화면 위로 수많은 학생들의 연락처와 데이터베이스가 모이기 시작했다.


"치히로에게는 선배로써의 모범을 보이지 못해 미안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상황이 긴급하니 이해해 줄지도 몰라요."


"부장... 이건...?"


"키보토스 전 학생들이 사용하는 메신저, 모모톡을 해킹해서 정보를 받아왔어요."

"이건 최근 접속 내역이 1일 이내인 학생들 위주로 추린 목록이에요. 물론, 키보토스 전 학생들을 대상으로."


"모모톡을...?"


"모모톡을 할 여유가 있다는 것은, 적어도 광기에 사로잡히진 않았다는 의미니까요."

"여기서 연락이 닿는 학생들을 위주로 이 공간의 좌표를 알려주어 불러들일 생각이에요."


히마리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 번 엔터 키를 눌렀다.

곧이어 그녀가 미리 작성해 둔 선생의 전언이 전체 학생들에게 전송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두 학생으로 부터 메세지가 도착하였다.


[선생님이 위독하시다구요?]

[좌표를 알려주세요. 지금 당장 찾아갈 수 있으니까요.]


[위치를 알려주십시오. 이곳에 준비된 기초적인 의료 물품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 드릴 수 있습니다.]


"아사가오 하나에 씨와.... 다른 한 분은 히무로 세나 씨군요..."

"두분 다 의료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이네요. 최근 대화 내역을 보더라도 그녀들이 정상임은 거의 확실하구요."

"그럼,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히마리는 모두를 향해 돌아보며 말했다.

그들의 반응이 어떠했는지는 말 안해도 뻔했다.

이에 히마리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위치를 담은 메세지를 전송하였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선생님."

"눈을 뜨고 나시면, 상황이 조금 달라져 있을테니까요...!"


***


불쌍한 히나와 아루


주인공은 두 명이야. 하나는 아루, 하나는 선생.

그리고 이 둘 사이에는 약 1주일의 간격이 있지. 

동시에 진행되는 시간대가 아니니 오해는 금물이야...


그리고 의견을 물어보고 싶어.

지금은 아루와 선생님 파트를 각각 하나씩 넣으며 이틀 간격으로 연재 하고 있는데, 쿨이 넘 긴 것 같아서 한 번 업로드 할 떄 마다 둘 중 한 명의 파트만을 번갈아 가며 연재하는 대신 주기를 1일 1업로드로 줄이려고 하거든.

많은 의견 참여와 댓글 부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