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편


***


모든 이들이 잠든 이른 새벽.

고요한 어둠을 깨우며 선생을 위시로 한 그의 학생들은 마지막 성소 공략을 위해 창공을 가르고 있었다.

긴장이 흐르는 숨소리와 반복적인 헬기 소리만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선생님."

"선생님."


"...으응?"


"10분 뒤에 도착 예정입니다."

"준비해 주세요."


잠들어 있던 선생을 깨우며, 아야네가 말했다.

선생은 황급히 비뚤어져있던 헤드셋을 고처쓰며 통신을 점검했다.


"으음. 아아. 다들 들려?"


[네! 잘 들립니다!]

[스노하라 슌, 1부대 준비 완료입니다!]


[하네카와 하스미 외 5인.]

[2부대,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응, 여기는 코누리 마키!]

[3부대도 완료야 선생님!]


[...]

[...흠냐아. 히나 부장니임...]


"...저기, 아코?"

"이제 그만 일어나야지?"


[...우,우웃?]

[누,누굴 보고 일어나라는 건가요!]

[크흠. 전 이미 완벽하게 준비 되었다구요.]

[4부대 아마우 아코외 5인, 준비 끝 입니다!]


"....후후훗, 그래. 알겠어"


[우,웃지마세요!!]

[...히마리씨는 또 왜 웃으시는건가요!!]


선생은 피식.하고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곳에는 아직 곤히 잠든 상태의 대책위원회 부원들이 있었다.


"호시노. 이제 그만 일어나야지."


"...으응.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어?"

"그렇다면, 웃차. 이 아저씨도 준비를 하는 수 밖에 없겠네~"


한결 개운해진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호시노.

선생은 그런 그녀에게 시원한 물 한 병을 내밀었다.


"헤에~ 이 아저씨에게 주는거야?"

"고마워라~ 잘 마실게~"


"호시노는 썡썡하구나. 역시 경력직이라서 그런가?"


"으응~ 그게 무슨말일까나~"

"아저씨는 착한 아이라구? 착한 아이는 일찍 자는 법이지~"


호시노는 해맑게 웃으며 찬물을 들이켰다.

이 광경을 씁쓸하게 바라보며, 선생은 말했다.


"호시노. 너무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려고 할 필요는 없어."

"가끔씩은 모두에게 기대어도 좋아. 시로코도, 세리카도, 노노미도."

"...그리고 여기 있는 아야네도. 아마 모두가 바라고 있을거야. 호시노가 마음을 열어주기를."


"...휴우~"

"이렇게 갑자기 진지한 이야기를 하면 아저씨는 슬프다구?"

"걱정해 주는건 고마운데 말이야... 가끔씩은 나 혼자만 짊어저야할 짐도 있는 법이라구."


호시노는 생긋 미소를 지으며 무기를 꺼내들었다.

저 멀리 보이는 게헨나의 중심부 너머로 마침내 거대한 위용의 마지막 성소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샛노랗게 타오르는 아우라와 높게 뻗은 빛줄기로 하여금, 선생은 굉장한 위압감을 느꼈다.


"...그래서. 저게 이번에 우리들이 싸워야 할 성소라는거지~?"

"뭐랄까, 저번 성소들과는 뭔가 좀 다른 느낌인데~?"


"으응... 확실히."

"한 눈에 봐도 저번의 트리니티, 백귀야행의 것보다 더 크고... 세력도 넓네."


"그래도 긴장할 필요는 전혀 없다구?"

"우리에겐 선생이 있으니까 말이야."


처음엔 반신반의로 시작했던 거짓된 성소 공략전.

하지만 점차 약해지는 색채의 파장과 세력에 이는 효과가 있음이 입증되었다.

검게 물들었던 헤일로가 돌아왔다는 사례가 보고되기 시작한 것도 이에 한 몫을 했다.

키보토스에 다시금 희망의 빛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30분.

일출까지는 아직 2시간 정도를 남겨둔 시점이었다.

선생은 과거 두차례 겪었던 성소와의 전투를 회고하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무너트렸던 트리니티의 성소.

처음이라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정의실현부를 비롯한 잔여 생존자들의 도움 덕에 비교적 수월하게 격파할 수 있었다.

완전 붕괴까지 걸린 시간은 약 1시간 40분.


두 번째는 백귀야행의 성소였다.

생각보다 심각했던 백귀야행의 상황 탓에 완전 붕괴까지는 3시간이라는 기나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동안 전투 소리를 듣고 몰려온 백귀야행의 학생들은 덤이었다.

쿠다 이즈나를 필두로 한 수많은 학생들의 사보타주로 인하여 선생의 부대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어떻게든 성소를 격파할 수 있었다.


선생은 두 차례의 혈투로부터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먼저 쪽수를 최대한 늘릴 것. 총알이 부족하다면 더 많은 총알을 부어 넣으면 되는 일이었다.

두 번째는 최대한으로 눈을 피할 것. 검은 헤일로의 학생들은 소리와 시각에 민감하기 때문이었다.


많은 부대를 출격시켜 총공격을 퍼부을 것.

해가 뜨기 전, 모두가 잠든 새벽을 이용하여 작전을 수행할 것.

여러 교훈들을 토대로 발안한 이번 작전은 이론상으로 완벽했다.


하지만 선생은 영 탐탁지가 않았다.

영문 모를 불안이 계속해서 선생의 등줄기를 타고 기어 올라왔기 때문이다.

거기엔 그가 전날 꾸었던 꿈의 내용도 한 몫을 했다.


성소의 공략을 실패하고 모두가 와해되는 꿈을.

그러한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홀로 목숨을 부지한 그를 의문의 학생이 공격하는 꿈을.

그리고 서서히 힘을 잃어 죽어가는 그를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또 다른 학생이 나오는 꿈을.

꿈자리가 여간 사나운 것이 아니었다.


"...선생. 무슨 일 있어?"


"응?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그나저나 이제 거의 다 도착했으니 모두를 깨우자."


호시노는 말없이 선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근심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

"알겠어. 선생."


[선생님. 성소가 보입니다.]

[본격적인 지시를 부탁드립니다.]


아코의 목소리.

선생은 멀리서 노르스름한 광채를 내는 성소를 노려보며 말했다.


"...좋아. 작전 시작이다."

"먼저 1부대와 2부대는 나를 따라 전투에 돌입할거야."

"아코를 비롯한 4부대는 착륙을 마친 후 나와 합류하여 진입한 부대를 보조하면 돼. 쉽지?"

"3부대는 혹시 모를 외부의 침입을 경계함과 동시에 1부대와 2부대를 지원해줘."


[후훗, 알겠습니다. 선생님.]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응, 알겠어 선생님!]


[알겠습니다 선생님.]


투두두두두두두.

귓가를 절로 먹먹하게 만드는 헬기 소음.

호시노는 선생을 향해 말없이 윙크하며 착륙한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선생님. 다녀올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다면... 응. 나에게 알려줘. 언제든지 열려있으니까."


"알겠어. 시로코도 다치지 말고."

"선생님이 곧 따라갈테니까. 알겠지?"


시로코와 대책위원회 맴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동안 그녀들이 떠나간 뒷길을 복잡한 시선으로 말없이 바라보던 선생은 이내 합류한 4부대와 함께 하늘로 떠올랐다.


.

.

.


[호시노. 들려?]


"응? 선생인가~"

"아저씨는 잘 들려~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성소와의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어. 공격에 대비해.]

[그리고 명심해. 우리가 성소를 들여다보면 그 성소도 우리를 들여다 본다는 것을.]


"에헤헤~ 이미 알고 있다구?"

"그래도 좋구나~ 누군가에게 걱정을 받는 다는 것은 말이야~"


시덥잖은 대화를 나누며, 아비도스 스쿼드는 천천히 성소 외곽으로 접어들었다.

그녀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1, 2부대가 공격에 집중 하는 동안 튀어나오는 성소의 줄기를 차단하는 것.

이내 작전 위치에 도달한 그녀들은 뿔뿔히 산개하여 조용히 명령을 기다렸다.


"...그나저나 떨리는구만~"

"선생은 어때? 막 심장이 떨리고 그러진 않아?"


[...나도 물론 떨리지.]

[솔직히 말해서 지금 당장이라도 물러나고 싶은 심정이야.]

[하지만 이것만 끝내면 모두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까... 참는거지.]


"헤에..."

"...그렇구나."


호시노는 잠자코 말끝을 줄였다.

요즘들어 유난히 수척해진 그의 얼굴과 더불어 힘빠진 목소리까지.

더군다나 부쩍 늘어난 속내를 털어놓는 말에 호시노는 그가 점차 망가져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또 아니었다.


책임을 지는 사람, 그것이 바로 선생.

일개 학생인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선생의 지시에 따르는 것 뿐.

사사로운 감정 따위, 대의 앞에서 잠시 접어 두어야만 했다.


그 순간.

성소로 부터 뿜어져 나온 샛노란 빛이 온 세상을 매우기 시작했다.

이내 급격히 불어오는 강풍에 호시노는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가리고야 말았다.


"크윽...!"

"방금은... 대체 뭐지? 모두들 괜찮아?"


"난 괜찮아, 선배!"

"노노미도, 세리카도 무사해!"


"그래? 다행이네!"


"서,선배!! 조심해!!"


문득 들려오는 세리카의 다급한 외침.

이에 정신이 팔려버린 호시노는 그만 자신에게 다가오는 줄기를 피하지 못했다.


콰아앙!

작렬하는 충격파와 함께 멀리 나가 떨어진 호시노.

그녀는 이내 노련한 솜씨로 다시금 정신을 차린 뒤, 줄기들을 향해 발포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선생님. 호시노 선배가 교전에 들어갔어. 우리도 도울게."


[응. 알겠어. 부디 조심해.]

[그리고 명심해둬. 너희들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줄기지, 본체가 아니야.]


"...응. 알겠어. 그럼."


시로코는 날아오는 파편 덩이들을 재빠르게 모두 피한 뒤, 달려드는 줄기 위로 몸을 날렸다.

이윽고 뿌리 가죽을 붙잡은 그녀는 지체하지 않고 줄기를 향해 모든 총알을 퍼붓기 시작했다.

줄기가 아무리 그 추악한 육신을 양껏 흔들어 대어도, 꼬옥 쥔 시로코의 손은 결코 풀리는 법이 없었다.


이내 소름끼치는 비명을 내뱉으며 공진하는 성소 주변을 1부대가 둘러싸 포격을 게시하였다.

이내 수많은 폭약과 탄알, 그리고 미사일이 성소를 향해 무자비하게 때려 박히자 누르스름한 화염 기둥이 성소를 감싸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때 마침 도착한 2부대는 이 혼란을 틈타 성소의 측면으로 진입하여 미처 장갑에 가려지지 않은 부분에 집중 포화를 퍼풋기 시작했다. 

성소는 끔찍한 괴성을 내지르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크읏, 꽤 잘 먹히는 것 같은데!"

"이대로만 가면 이번 성소도 금방 끝을 보겠어!"


"응. 그래도 아직 안심은 일러."

"성소의 줄기가 오직 하나일 리는 없어... 경계를 계속하지 않으면..."


그러자 순간 시로코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또 다른 줄기들이 튀어나와 그녀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물론 직접적인 피해는 입힐 수 없었지만 그녀들의 발을 묶어두기엔 충분했다.


"젠장...! 이제서야 겨우 다 잡았나 했는데!"


"...이래서 플레그가 무섭다는거야 세리카."


곧이어 아비도스의 지원에 차질이 생긴 탓인지 1부대와 2부대도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했다.

혼을 쏙 빼놓던 폭격 세례가 끊기자 성소는 다시금 폭주하기 시작했고, 이에 그동안 입었던 손상도 점차 복구되기에 이르렀다.

일촉즉발의 상황이던 그때.


[아직이야! 줄기가 몇 체 더 남았어!!]

[호시노, 부탁해!]


"으응~ 맡겨달라구~!"


호시노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줄기들을 향해 난사를 시작하였다.

땅을 때리며 피어오르는 연기와 튀어오르는 수많은 돌조각, 그리고 파편들은 그녀에게 생채기도 줄 수 없었다.

날렵한 몸놀림으로 이들을 모두 피한 그녀는 파우치에서 잭나이프를 꺼내 줄기에 꽂아넣었다.

이내 온 몸을 뒤틀던 줄기는 호시노를 매단 채 하늘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서,선배!!"


"지금이야! 어서 나머지 성소를 공격하자!!"


"자,잠깐 시로코....!!!!!"


꼴에 고통을 느꼈는지, 줄기는 아까 전 보다 훨씬 더 강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상하좌우는 물론이고 사방팔방을 넘나드는 줄기였음에도 호시노는 모든 것을 버티며 천천히 줄기 위로 올라섰다.

곧이어 까마득한 상공 위로 솟아오른 줄기 위로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후에에~ 이렇게나 높이 올라오면 어쩌자는거야~"

"뭐어, 그래도 어쩔 수 없겠지? 선생님께서 맡겨주신 일 이니까~!"


이내 호시노의 총구가 맹렬하게 불을 내뿜기 시작했다.

작렬하는 탄환의 쇼크에 짖이겨진 줄기의 살점은 힘없이 떨어져 이내 그 형체도 유지하지 못한 채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잠시 뒤, 줄기를 발판 삼아 착지한 호시노를 시로코가 맞이헤 주었다.


"응. 선배. 수고했어."

"선새가 이목을 끌어준 덕분에 나머지 줄기들을 모두 처리할 수 있었어."


시로코는 호시노에게 이온음료를 내밀었다.

때 마침 목이 말랐던 그녀에게 완벽한 선물이었다.


"헤에~ 고마워 시로코짱~"

"그럼.... 이것으로 이번 성소 공략도 끝난건가?"


"...응. 아마."


"예상보다 싱겁게 끝났구만~"

"...그런데 딱히 달라진 점은 없는 것 같은데?"


호시노는 캔을 손가락으로 찌부려트린 뒤 천천히 주변을 경계하였다.

불빛을 잃은 성소와 그 주변을 맴도는 타 부대원들. 하품하는 노노미와 총기 수입을 하는 시로코.

딱히 이상할 점은 없는 광경이었지만 그 점이 그녀의 신경을 더욱 곤두서게 만들었다.


"...선생. 성소의 파장이 사라졌어?"


[파장이라... 색채를 말하는거라면...]

[아니. 아직 사라지지 않었어.]


"그렇다면 어째서 성소의 점등이 꺼진거지?"

"...저번의 두 성소를 격퇴했을 때도 성소가 부숴지기 전 까지는 점등이 사라지진 않았어."

"일단 성소가 완전히 격퇴되지는 않았단 소리인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지?"


타당. 타다당.

어디선가 들려오는 총격 소리.

이에 호시노를 비롯한 모든 아비도스 스쿼드의 신경이 한곳에 집중되었다.


"...뭐였죠? 방금 총격소ㄹ"


타앙!

작렬하는 총성과 함께 노노미가 풀썩. 하고 제자리에 쓰러졌다.

연이어서 세리카 또한 날아오는 탄환을 피하지 못하고 무력화 되고 말았다.


"큿...! 선배, 공격이야!"

"모두 조심ㅎ....!!!!"


타다당!

또 한번 들려온 총소리와 함께 이번에는 시로코가 제자리에 쓰러지고야 말았다.

엄폐물이 없었던 탓인지는 몰라도 시로코는 고통에 신음하며 쉽사리 깨어나지 못했다.

그 순간, 어디선가 차분하고도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고생이 많군. 타카나시 호시노."


"....!!"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호시노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무너진 성소의 잔해 위로, 게헨나 선도부의 부장 소라사키 히나가 공허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녀의 헤일로를 본 호시노는 크게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ㄴ...너...!"

"선생... 히나가 나타났어. 이건 예상에 없던 시나리오인데...!"


[뭐? 히나가??]

[젠장... 헤일로가 침식 된 상태잖아....!! 호시노, 일단 조용히 히나를 건드리지 말고 철수해.]

[전투는 최대한 피하고! 지원병력을 보낼테니 그때까지만 버텨줘!!]


히나는 그녀를 말없이 응시하며 잔해 위로부터 내려왔다.

호시노는 자신을 향하여 천천히 다가오는 히나를 맞이하면서도, 거리를 두는걸 잊지 않았다.


"히나...였나? 으헤~ 이 아저씨는 기억력이 그닥 좋지 않아서 말이야~"


"전에도 한 번 이런 적이 있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아마 그때도 이렇게 갑작스러운 만남이 아니었나?"


"으음... 잘 모르겠는데에."


"여긴 무슨 일로 온거지?"

"무슨 목적을 가지고, 누구와 함께 온거지?"


그녀를 노려보며, 히나는 말했다.

시선 너머로 느껴지는 명백한 적개심에 호시노는 천천히 총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가 그 틈을, 히나는 놓치지 않았다.


타앙!


"크윽....!!"


"허튼 수작은 접어두도록 해. 타카나시 호시노."

"이곳에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어. 대답하도록 해."


"크읏, 모른다니까 그러네...! 헤헤..."


탄환에 맞아 찢어진 상처를 붙잡으며 그녀가 말했다.

히나는 그런 호시노의 대답이 영 탐탁치 않은 듯 했다.

이내 등 뒤의 날개를 펼치며, 그녀가 말했다.


"뭐, 대답을 바란 질문은 아니었어. 어차피 블러핑이었으니까."

"성소 때문에 온거지? 성소를 격퇴하여서 이 재앙을 끝내려고, 안 그래?"


"히히... 눈치는 빠르네 히나짱..."


"게헨나의 선도부로써 성소는 골칫거리야. 보아하니, 너희 측의 병력도 부족한 것 같은데."

"몇 가지 조건만 지켜준다면, 우리 선도부도 기꺼이 너희들의 작전에 협력하도록 할게."


"에에에...?"

"그런~ 뭔 조건인데?"


이어지는 침묵. 흐르는 긴장.

호시노는 히나의 눈치를 살피며 그녀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선생을 우리에게 넘겨."

"그것 하나 뿐이야."


"...뭐?"


짧고도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히나의 그 말.

그 말에 호시노의 표정이 험악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방금 뭐라고 했어?"


"선생님을 내게 넘겨."

"...라고 했어. 왜, 싫어?"


"싫은게 당연하잖아."


여유와 웃음기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채, 순수한 분노와 허망함 만이 남은 시선.

호시노는 손에 느껴지던 고통도 잊은 채 곧바로 총기를 꺼내어 히나를 겨누었다.

분노와 살의가 가득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호시노는 말했다.


"그대로 몸을 돌려 게헨나로 꺼져."

"선생의 말이 사실이었네. 눈에 뵈는게 없다고."


"...선생이라. 선생이라고 했지 방금?"

"이런... 너만은 다를거라고 믿고 있었는데. 너 역시도 선생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구나."


"선생의 속박...?"

"대체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거야?"


"모르는거야? 선생이 우리에게 한 짓과 음모를?"

"선의로 포장된 그 추악한 본심을 너는 눈치채지 못한거야?"


"더. 이상. 말하지 마."


호시노는 히나의 말을 끊음과 동시에, 그녀를 노려보았다.

생기를 잃어버린 그녀의 시선이 히나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날카롭게 꽂혀왔다.


"미래에 후회할 짓을 만들지 마. 소라사키 히나."


"후회할 짓이라...."

"나에게 있어 후회할 짓이라면 선생을 미리 죽여놓지 않은게 아닐까 싶은데."


"쿨럭... 쿨럭.... 허억..."

"...뭐라고??"


어느샌가 나타난 시로코.

모든 전말을 들어버린 그녀는 잠시 당황하였으나 이내 호시노가 그랬던 것 처럼 히나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이를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는 히나를 보며, 시로코는 자신도 모르게 되내었다.


"역시... 제정신이 아니야...!!"

"선배, 내가 맡고 있을테니 지원을 요청해ㅈ..."

"아아아악!!!!"


본색을 드러낸 히나는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달려들었다.

그녀의 일격에 중심을 잃어버린 시로코는 이어지는 공격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날아가 구석의 벽에 처박히고 말았다.

연기가 걷히고, 그녀의 헤일로가 지직거리는 것이 호시노의 눈에 들어왔다.


"시로코!!!!!"

"크윽...!!!!"


방패를 앞에 둔 채, 호시노는 자신의 몸을 이에 의탁하여 거침없이 전진하기 시작했다.

날아오는 탄알을 막고, 시야를 보호하며 그녀는 침착하게 히나를 향하여 총알을 퍼부었다.

빗발치는 총격과 폭발에 주변의 지형지물은 물론 건물까지 파괴되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자욱한 연기가 그녀의 시야를 가려버린 상황.

그때, 선생의 다급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호시노! 뒤에!!]


"읏, 뒤에...??"

"크으으윽....!!!!!"


연이은 충격에 호시노의 중심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은 히나는 곧바로 호시노의 명치에 발차기를 꽂아넣었다.

비명을 지르며 날아간 호시노는 바닥을 데굴데굴 구른 뒤에서야 비로소 멈춰설 수 있었다.


"크학...!!!"


[호시노!!!]


"읏.... 으읏..."

"허억, 히히... 난 괜찮아 선생!"


흙먼지 투성이가 된 호시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방금 전의 충격에 온 몸이 떨려오고 다리는 후들거렸지만 그녀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나저나 선생. 언제부터였어?"

"분명히 작전이 끝나고 인이어를 차단했던 기억이 나는데..."


[아하, 그거 사실 차단 안됐어.]

[그래서 알려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됐네.]


"헤에~ 그렇구나..."

"...선생은 마음이 아프지 않아?"


[응? 뭐가?]


"선생이 애써 애정을 쏟고 신경을 써준 학생이 저렇게..."

"저렇게 선생을 해치려고 하는게... 나라면 굉장히 상처일거 같은데."


헤일로의 폭주 탓인지, 온 몸을 비트는 히나를 보며 호시노는 말했다.

선생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인이어 너머로 깊은 한숨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마냥 부정의 뜻은 아닌 듯 했다.


[...]

[호시노. 지금은 작전에 집중하자.]

[...히나도 본심은 그게 아닐테니까. 너무 뭐라 하지 마.]


"...응. 알겠어."


[그럼, 조금만 더 기다려 줘. 히나를 함부로 자극하지는 말ㄱ..."


"하지만 선생은 몰라도, 나는 용서할 수 없어."


호시노는 방패를 내던진 뒤, 히나를 향하여 전속력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당황한 선생은 황급히 그녀를 말려보았지만 극도로 분노한 그녀를 말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으아아아아아!!!!!"


살벌함을 넘어 처절함 마저 느껴지는 격돌.

핏방울이 튀기고 탄피가 흩날리는 공포의 전장에는 오직 긴장만이 맴돌았다.

실수하면 죽는다. 빗나가면 내가 맞는다라는 공포감이 그녀들의 신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읏...!"


순간, 호시노는 욱신거리는 손의 상처에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이 곧 그녀의 패배 요인이었다.


굉음과 함께 날아가 벽으로 처박힌 그녀.

온 몸이 끊어지고 뼈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이었으나 호시노는 인내하였다.

작전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모두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인내해야만 했다.


"...아직 움직이는군. 타카나시 호시노."

"고통스럽지도 않아? 대체 무엇 때문에 이토록 스스로를 혹사 시키는거지?"


벌어진 상처로부터 피를 뚝뚝 흘리는 그녀를 보며, 히나는 말했다.

호시노의 숨결은 가빴고 그녀의 몸은 중심을 채 잡지 못하는 등 엉망이 된 상태였지만, 그녀의 눈만은 그 빛을 잃지 않은 상태였다.

이에 히나는 말없이 장갑을 고쳐썼다.


[호시노....]


"무엇. 때문. 이냐고...?"

"히히. 그야. 당연. 하잖아."


"으윽, 선.... 선배...."


"내가 쓰러지면.... 내가 물러나면.... 모두가 위험해..."

"그렇게 되면 모두를 구할 수가 없어...!!!!!"


호시노는 꺾여버린 어깨를 강제로 꽂아넣은 뒤, 감았던 두 눈을 떴다.

미약한 비명과 함께 지긋이 불타오르는 그녀의 눈빛. 그녀의 살의.

이에 히나는 자신도 모르게 압도되어 위축되는 것을 느꼈다.


[호시노.... 호시노....!]


"...말리지마 선생."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낼거니까. 선생은 작전에만...쿨럭!"

"흐으.... 집중해.... 알겠지...?"


[...그게 아니야 호시노.]

[뒤를 돌아봐.]


"헤에...? 뒤...라고...?"


호시노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이윽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정말... 너무한거 아니냐고... 헤헤..."


.

.

.


[선생님!!! 선생님!!! 들리세요???]


다급한 아코의 목소리.

선생은 천천히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응... 들려. 아코."


[당장 그 곳에서 빠져 나오세요!!!!]

[적들의 증원이 확인 되었습니다!!! 보이는 수만 하더라도 최소 30명이 넘어요!]


"알아... 알고있어."


착잡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그는 대답했다.

아파져오는 머리. 그의 계획이 틀어졌다는 첫번째 신호이기도 했다.


후배들이 모두 기절한 지금, 홀로 히나에 맞서 대치중인 호시노.

그리고 그녀의 뒤로 몰려들고 있는 수많은 학생들을 그는 볼 수 있었다.


하나 같이 헤일로가 검게 물들고 안광을 빛내는 그녀들.

아마 길어지는 전투의 소리를 듣고 깨어났을 가능성이 컸다.

이대로 가다가는 성소의 격파는 고사하고 학생들의 안위마저도 위험한 상황.

선생은 마음을 굳히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선생의 인이어 너머로 히마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퇴각은 안됩니다.]


"ㅁ...뭐?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학생들을 생각 하시는 마음은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성소의 공략이 얼마 채 남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 상황에서 퇴각을 할 시 성소는 이전보다 더욱 강화되어 우리를 압박할지도 모릅니다.]

[조금 잔인한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선생님. 지금 이 상황에서 퇴각은 그녀들에게나 선생님에게나 크나큰 손해입니다.]


"...네 말이 맞아. 하지만 학생들의 안전 또한 목표 만큼 중요해."

"일단 보류하되, 차후 벌어지는 상황을 보고 결정하도록 하자."


[네, 선생님.]


선생은 착잡한 시선으로 호시노를 바라보았다.

몰려오는 군세를 꿈에도 모른 채, 스스로를 한계로 몰아넣는 그녀.

잠시 고민하던 선생은 입을 열어 그녀에게 말했다.


"...호시노. 호시노....!"


[...말리지마 선생.]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낼거니까. 선생은 작전에만...쿨럭!]

[흐으.... 집중해.... 알겠지...?]


자신을 걱정하는 그를, 애써 안심시키려는 호시노.

그런 그녀의 태도에 선생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다.


"...그게 아니야 호시노."

"뒤를 돌아봐."


[헤에...? 뒤...라고...?]


이윽고 뒤를 돌아본 그녀는 그제서야 최악으로 치달은 상황을 비로소 마주할 수 있었다.

잠시동안의 공백 끝에 호시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선생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히기에 충분했다.


[...헤헤. 헤헤헤.]

[정말... 너무한거 아니냐고... 헤헤...]


털썩.

전의를 잃어버린 호시노는 그만 바닥에 주저않고야 말았다.

그토록 노력했건만, 모두를 지키기 위해 싸웠건만 신은 그녀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호시노..."


[선생. 난 이제 어떡해야 해....?]

[거창하게 떠들었지만... 난 아무도 지키지 못했어. 헤헤....]


"크윽. 희망을 잃지마 호시노!!!!"

"지금 지원부대가 가고 있어. 이제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되니까 어서 거기서 빠져나와!!"


[...선생님.]

[이 상황에서 말씀드리기엔 조금 부적절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낮게 가라앉은 히마리의 목소리.

이에 절로 불안해진 선생은 황급히 그녀에게 외쳤다.


"뭔데? 신경쓰지 말고 빨리 말해줘!"


[게헨나 외곽 지구에서 그...]

[하아.... 그 여자가 나타났어요. 츠카츠키 리오.]


"...뭐?"


선생은 황급히 시선을 옮겨 바라보았다.

잠시 뒤, 천지를 울리는 굉음과 함께 리오와 그녀의 AMAS 군단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아야네, 잠깐 실례할게."


아야네로부터 망원경을 빌린 선생은 재빨리 몰려오는 군단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잠시 뒤, 참혹한 현실을 마주한 선생은 잠깐이나마 전의를 잃고야 말았다.


[이치노세 아스나. 쿠로다테 하루나. 쿠다 이즈나... 그 밖에 헤일로가 검게 물든 모두들...]

[큰일입니다, 선생님... 키보토스 전국 각지로부터 피폭자들이 몰려들고 있어요...!!!!]


"...젠장! 히마리, 당장 철수할 준비를 해!!"


[하지만 선생님... 후폭풍이 상당할텐데요....!!]


"책임은 내가 진다! 그러니 어서 퇴각해!!!!"


[....]

[...네, 알겠습니다! 전원, 퇴각하세요!]


그 순간.

꺼져버렸던 성소가 다시금 불빛을 내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전과는 무언가가 달랐다.


[성소의 불빛이... 푸른 색인데요...??]

[뭐지?? 분명 아까 까지만 하더라도 노랑빛이었는데...!]


[그 뿐만이 아니에요. 장갑의 제질도 바뀐 것 같아요.]

[젠장...! 결국 우려했던 상황이 터지고야 말았네요....]


은은한 푸른 빛 아우라를 내뿜으며 다시금 재건된 성소.

 그 '신비' 한 분위기의 불빛에 선생은 꿀꺽. 하고 마른 침을 삼켰다.


"...선생,선생님!!!!!"

"조심하세요!!!!!!!!!!!!!!!"


그 순간.

맹렬한 폭음과 함께 선생이 타고있는 헬기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마터면 창 밖으로 떨어질 뻔했던 선생은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아야네에게 물었다.


"허억... 허억...!!! 무슨일이야??"


"방금 폭음 들으셨죠? 미사일이 날아왔어요..."

"어찌저찌 피하긴 했는데, 다음 번에도 그런다는 보장은 없어요..."


선생은 볼 수 있었다.

미사일이 폭발하는 순간을.

찰나의 시간속에서 탄두의 끝이 갈라지는 모습을.

그것은 마시일이 아니었다.


"설마... 설마....!!!!"

"아로나, 지금 당장 학생들의 명부를 보여줘!!!"


"네,네엡!!"


"어디보자.... 제발... 제발 아니기를....!!"


선생은 황급히 학생들의 이름과 얼굴이 적힌 명부의 스크롤을 내렸다.

잠시 뒤, 수많은 학생들을 흝던 선생의 손가락이 이내 한 곳에서 멈추었다.


얼굴에 X표가 쳐져있는 학생.

이마시노 미사키.


"....젠장!"

"야야네, 이건 미사일이 아니야!!!! 빨리 고도를 올려!!!!!"


"ㄴ,네? 미사일이 아니라니 그게 대체...??"


"이건 로켓 런처야!!!! 땅에서 쏘고 있는거라고!!!!"


이에 혹한 아카네는 황급히 조종간을 당겼지만 충분히 높은 고도를 얻기에는 시간이 무리였다.

결국 곧이어 날아온 제 2탄에 헬기의 테일로터가 완전히 박살나고야 말았다.


"크윽.... 선생, 선생님!!!!!!"


"아야네!!! 조심해!!!"

"어어...? 지금 뭐하는ㄱ..."


"가세요, 선생님!!!!"

"저는 버틸 수 있지만... 선생님은 아니니까요!!!"

"부디.... 부디...!!!"


아야네는 조종사용 낙하산을 선생에게 인도한 후, 그를 강제로 밀어 헬기 밖으로 떨어트렸다.

선생은 이에 저항하고자 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아야네에에에에!!!!!!"


콰아아앙.

중심을 싫고 실속에 빠진 채 추락하던 헬기는 이내 빌딩에 부딪혀 폭발하고 말았다.

화염의 혓바닥을 낼름거리며 타오르는 불길속에서 헬기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불타 사라졌다.


"아아.... 아아아....!!!"

"....크윽, 젠장...!!!!!!!"


흩날리는 불꽃 사이로 바람을 가르며 선생은 추락하였다.

그리고 미처 낙하산을 채 피기도 전에, 그는 바닥과 마주하고야 말았다.


콰아앙.

충격과 함께 이곳 저곳에 튕기며 땅으로 떨어진 선생.

반대로 꺾인 손목이 주는 끔찍한 고통에 선생은 몸부림 쳤다.

하지만 이도 잠시, 선생은 자신이 멀쩡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황급히 싯딤의 상자를 꺼내었다.


"아로나! 아야네의 생체반응을 확인해줘!!"

"...아로나?"


그러나 싯딤의 상자는 켜지지 않았다.

추락의 충격에서 그를 보호하느라 과부하에 걸린 탓인지 기기 자체가 뻗어버린 듯 했다.

이는 곧 달리 말하면 이제 그를 지켜줄 수단은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의미였다.


자신의 처지를 파악한 선생은 황급히 주변 잔해로 몸을 숨겼다.

떨려오는 두 팔과 다리를 애써 보호하며, 그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후우.... 진정. 진정해. 진정하자..."

"아직 끝나지 않았어. 병력은 퇴각중이고, 대책위원회를 위한 지원병력도 지금쯤이면 도착했을거야."

"그렇다면.... 지금 중요한 것은 내 안위... 아로나가 없는 지금 나는 나 스스로를 어떻게 지켜야..."


"그게 모두 무슨 소용이지."

"어차피 다 헛된 일일텐데. 선생."


"...!!!"


저벅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선생에게 겨누어진 은빛 총구.

선생은 천천히 두 손을 들어 총구의 주인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착용중이던 마스크를 벗으며, 그녀는 말했다.


"이렇게 또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선생."

"혼자서 무슨 고민을 그렇게 오래 하지?"


"...오랜만이네. 사오리."

"그리고 모두들... 안색이 영 좋지 않은 것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있니?"


"시덥잖은 농담 따위 집어치워."

"우리는 여기 선생, 당신을 죽이기 위해 왔다."


아리우스 스쿼드.

1여년 전, 에덴조약 채결 현장을 습격한 장본인이자 선생에게 직접적인 상해를 입인 유일무이한 집단.

몸속에 각인된 본능적인 두려움에 선생은 떨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멋지네. 헤일로."

"요즘 유행인가봐? 헤일로를 검게 물들이는게."


"무의미한 저항은 그만둬. 선생님."

"무엇 때문에 싸움을 이어나가는거지?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거대한 공허에 해답 따윈 없는법이야."


"...미사키."

"다행이구나. 연락이 안 되어서 걱정했잖니."

"히요리도... 아츠코도. 모두 무사했구나."


선생은 천천히 모두를 돌아보았다.

그녀들의 헤일로는 이미 모두 색채에 침식당한 상태였다.

선생은 심호흡을 한 뒤, 사오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오리. 들어줘."

"만약 깨어난다면, 그건 네 탓이 아니라는걸 알아줬으면 해."

"너희들도 그저 피해자일 뿐이야.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깨어나? 피해자? 지금 누가 누굴 규정하는거지?"

"어차피 모두 헛된 짓이야, 선생."


철컥. 하고 장전되는 총.

자신의 이마를 겨눈 총구에, 선생은 침을 꿀꺽 삼켰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어. 선생."


사오리가 방아쇠를 쥔 손에 천천히 힘을 주려던 그 순간.

타다당!


"크윽!"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이 사오리의 손을 때렸다.

사오리는 아파하는 기색도 없이 곧바로 총알이 날아온 곳을 노려보았다.


"헤엑... 헤엑.... 내가 너무 늦지 않은 것 같구만~"

"선생, 구하러왔다구?"


"...호시노!!!"

"시로코.... 세리카... 노노미까지...!!!"


놀랍게도 나타난 그녀들은 아비도스 대책위원회.

시로코는 울먹이는 선생을 향해 말없이 웃어보였다.

선생에게 총을 겨눈 사오리를 비롯한 아리우스 스쿼드를 본 호시노의 미간이 서서히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헤에~ 저번의 그 여자잖아?"

"선생의 배에 총격을 박았던, 아니야?"


"...너희들은 누구지?"

"아. 기억났다. 그때 트리니티에서 만났던 아즈사의 친구들. 맞나?"


"알게 뭐야~"

"....너희들은 오늘 전부 다 죽게 될텐데."


"..."


"..."

"흐아아아아!!!!!"


호시노는 곧바로 사오리를 향해 달려들어 그녀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사오리는 잠시 휘청거렸지만, 이내 호시노의 손을 잡아낸 뒤 곧바로 꺾어 그녀를 날려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호시노. 이에 사오리 또한 마스크를 다시 낀 뒤 전력으로 싸움에 임했다.


두 학원의 최강자들이 서로 싸움에 임하는 사이, 노노미를 비롯한 나머지 멤버들은 잔여 스쿼드 멤버들을 제압하는데 힘썼다.

노노미의 전탄발사에 이어 날렵한 세리카의 몸놀림은 색채로 인하여 눈 앞이 흐려진 그녀들을 잠시나마 묶어두기에 충분했다.


"선생님... 선생님!!!!"


시로코는 곧바로 선생에게 달려갔다.

다행히 선생은 사소한 부상만 입었을 뿐, 큰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선생님, 괜찮아?"


"쿨럭... 고마워. 모두들."

"시로코... 너야말로 괜찮아?"


"응... 난 괜찮아."

"빨리 여기를 빠져나가자. 호시노 선배와 나머지는 우리가 대피하면 알아서 따라오기로 했어."


선생은 시로코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전장을 벗어났다.

하지만 그런 그를, 색채는 가만히 두지 않았다.


타앙!


"허억....!"


"...???"

"서...선생니이이이임!!!!!"


털썩.

선생은 왠지 모르게 뜨거운 등을 부여잡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선생을 본 시로코는 패닉에 빠져버리고야 말았다.


"어떤.... 어떤년이야아아아!!!!!!!!"


"시,시로코.... 선생님... 설마....!!"


호시노는 급히 자신이 찍어누른 사오리를 바라보았다.

사오리는 말이 없었다. 단지 연기가 나는 총을 눈 앞에서 떨어트리며 그녀를 비웃을 뿐 이었다.


"너.... 너.....!!!"


"미사키. 지금이다."


"에...?"


콰아아아앙.

눈 앞에서 발사된 영거리 사격에 호시노는 폭발과 함께 멀리 날아가 무력화되고 말았다.

사오리는 온 몸에 묻은 그을림을 털어낸 뒤,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러게 방심을 하면 안되지."

"Vanitas Vanitatum et omnia Vanitas..."


때 마침 노노미와 세리카를 모두 제압한 히요리와 아츠코가 그녀들과 합류했다.

이내 자신과 선생을 향해 다가오는 아리우스 스쿼드를 본 시로코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총구를 내려놓지 않았다.

사오리는 자신들을 막아선 시로코를 보고는 감탄하며 말했다.


"...놀랍군. 두려움에 지지 않고 스스로를 몰아새우다니."

"각인. 이라고 하던가. 주인을 목숨걸고 보호하는 늑대의 이야기..."


"허억... 허억...."

"꿀꺽, 후우.... 후우우...."


"하지만 결국엔 모두가 먼지로 돌아갈 뿐이다."

"...그 뜻을 뼈저리게 느껴봐라!!"


"크흐으윽....!!!!!"

"아...아아.... 선ㅅ... 선생님...."


타다당!

한 방 한 방이 묵직하게 박혀오는 사오리의 사격에 시로코도 그만 무너지고 말았다.

희미해져 멀어져가는 의식 너머로, 시로코는 선생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닿지 못했다.


"후욱... 후욱.... 끄으으..."


선생은 복부를 관통한 총상에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그를 지키기 위해 호시노가. 시로코가, 세리카가, 노노미가, 아야네가 쓰러졌다.

때문에 그런 그녀들의 희생을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는 살아야만했다.


타앙.


".....끄아아아아악!!!!!"


그의 다리를 덮치는 끔찍한 고통.

터져나간 자신의 종아리를 보며, 선생은 격통에 몸부림쳤다.

이윽고 마침내 그의 뒤를 따라잡은 아리우스 스쿼드.

사오리는 다시 한 번 그의 머리를 겨누며 되내었다.


"헛되고 헛되노니 모든것이 헛되도다... 무엇이 그리 두려운거지?"

"어째서 무의미한 저항을 계속하지 선생? 어차피 우리들의 손에 죽는다는 당신의 운명은 바뀌지 않아."


"쿨럭... 쿨럭.... 으으윽...."

"사,사오리... 헤헤... 그래. 무의미하지..."

"하지만 그 무의미함도... 때론 의미가 있는 법이야..."

"의미는 곧... 이를 부여하는 사람에 따라 값어치가 달라지거든..."


"...그게 무슨 말이지."


"쿨럭... 너희들은 나와 그녀들을 무의미 하다고 규정했지만... 허억...."

"나는.... 너희들을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너희들은 아직 구원 받을 자격이 있어..."

"쿨럭, 쿨럭... 나는 죽음이 두려운게 아니야... 모든 것이 끝난 후, 너희들의 영혼이 겪어야할 참회와 고난이 두려운거지...."


근처 잔해에 몸을 기대어, 어눌해진 입으로 겨우겨우 말을 이어나가는 선생.

그리고 그런 선생을, 사오리는 복잡 미묘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사오리. 미사키. 히요리. 아츠코."

"나는... 나는 너희 모두를 사랑한단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너희를 결코 원망하거나 증오하지 않을거야."


"..."

"...할 말은 그것으로 끝인가?"


선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오리는 모자를 눌러쓴 뒤, 방아쇠를 당겼다.

선생은 눈을 감았다.


.

.

.


타앙.

청아하게 울리는 총격소리.

그러나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선생은 문득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천천히 두 눈을 떴다.

그의 머리 바로 옆에서는 방금 파인 총알구멍으로부터 연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ㅁ...뭐지...?'


선생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사오리가 부들거리는 손으로 권총을 쥔 채 선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머잖아 그녀의 눈가에 고여있던 눈물이 천천히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철커덕.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권총이 땅으로 떨어지는 소리였다.

사오리는 두 손을 떨며 자신의 머리를 감싸더니, 이내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 아아아....."

"내...내가 무슨 짓을.....!!"


쉴틈없이 흘러 내리는 눈물.

선생의 몰골을 본 사오리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은 채 오열하기 시작했다.

한껏 줄어든 그녀의 동공으로 하여금 실로 소름끼치는 풍경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당황하던 선생의 뒤로 커다란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선생은 있는 힘껏 마지막 사력을 쥐어짜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거대했던 성소가.

그 찬란했던 푸른 빛을 잃고 무너지고 있었다.


무너지는 성소의 꼭대기에서는 한 소녀가 총검을 꽂은 채 광소하고 있는 상황.

풍성하고 복슬복슬한 꼬리와 커다란 여우귀를 지닌 그 소녀는 붉은 여우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때, 선생의 인이어로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선생님? 선생님???]

[나의 당신, 괜찮으세요???]


'이 목소리는.... 와카모...??'


"으,으응.... 괜찮아."


[아아, 다행이다...!!! 이 와카모, 당신을 찾아 이 곳에 찾아왔답니다??]

[저와 당신의 만남을 방해하는 이 흉물 따위, 제가 다 부숴버렸으니 안심해 주시길!!]


"ㅁ...뭐어...???"

"성소를 부쉈다고...? 그게 무슨..."


선생은 이전에 아야네로부터 받았던 망원경을 꺼내어 무너진 성소의 잔해를 확인해 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정말로 성소를 파괴한, 환히 웃는 표정의 와카모가 있었다.


헤일로가 검게 물든 채로.

제정신을 유지하며 말이다.


"....???????"


이 대체 무슨 이변이란 말인가.

선생은 처음으로 두려움에 떨 수 밖에 없었다.


***


(5성 와카모는 신비속성 적에게 크나큰 데미지를 줄 수 있습니다.)


쓰다보니 분량이 매우 길어지고 말았는데.

중간에 끊자니 읽는 사람들 입장에서 이도저도 아니게 될 것 같아서 그냥 다 썼음.

덕분에 어제 휴재를 하고 말았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매우 미안하게 생각하는 바임.


원래 트리니티와 백귀야행 공략전도 쓰려고 했는데 분량이 너무 길어질거 같아서 다 쳐냄.

그 결과 미카와 이즈나의 빌드업을 잃었지만 한층 더 빠른 전개가 가능해져 아마 다다음 편 쯤이면 최종장에 접어들 수 있을 것 같아.

여기까지 함께 해줘서 너무 고맙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