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편


***


그녀가 두 눈을 뜨니 온 세상이 폐허였다.

여기저기 파손되어 바닥을 뒹굴거리는 탱크들, 그리고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들 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혼돈과 혼란만이 가득한 거리에서 선도부장 소라사키 히나는 공포에 떨었다.


"이게... 어떻게 된일....?"

"...웁, 우웁...!!!"


비록 세뇌당한 상태였지만 기억만은 온전히 남아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더더욱 잊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한 일과 행동을. 그녀가 저지른 죄악들을.


"우.... 우으으으으...."


털썩. 하고 그녀는 바닥에 주저 앉았다.

소름끼치는 죄악과 죄책감이 그녀의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한때 멋진 모습으로 펼쳤던 날개는 쪼그라들어 그녀 자신을 감싸기에 급급했다.


몇 번이고 속을 게워낸 탓에 눈물이 앞을 가린 그녀는 떨리는 두 손으로 천천히 얼굴을 닦아내었다.

그러자 방금 전, 그녀가 전투중에 내뱉었던 죄악의 발언들이 그녀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너 역시도 선생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구나.'


"아...아니야..."


'모르는거야? 선생이 우리에게 한 짓과 음모를?'

'선의로 포장된 그 추악한 본심을 너는 눈치채지 못한거야?'


"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건 진심이 아니었다고....!"


'후회할 짓이라....'

'나에게 있어 후회할 짓이라면 선생을 미리 죽여놓지 않은게 아닐까 싶은데.'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콰아앙.

몇번이고 벽을 내려치며, 히나는 절규하였다.

그녀의 손목이 뒤틀리고 부숴질 때까지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흐흑... 흑.... 흑....."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도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저 고통위에 새로운 고통을 덧씌워 잊으려고 할 뿐이었다.

하지만 결국 미봉책임은 매한가지였다.


"대체... 대체 왜...?"

"내가 왜... 선생에게 그런 말을...."


자신의 얼굴을 감싸쥐며, 히나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벌인 일을. 자신이 만든 참상을 차마 바라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무엇보다 가장 큰 상처가 된 것은 다름 아닌 선생에게 한 폭언 때문이었다.


비록 진심은 아니었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엎어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법.

그녀는 선생을 살해하려고 했고, 실제로도 기회만 주어졌더라면 그리했을게 분명했다.

그 점이 그녀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히나도 본심은 그게 아닐테니까. 너무 뭐라 하지 마.]


선생의 한숨과 절망이 섞인 무전.

정말 애석하게도 귀가 좋았던 그녀는 모두 들어버리고 말았다.

자신에게 실망감을, 그리고 두려움을 느낀 선생의 목소리를 말이다.


"아아.... 선생... 선생님..."

"흐윽... 흑.... 저는 대체 어떻게 해야...."

"어떻게 해야 용서를...."


"거기서 뭐해? 부장?"


"...응?"


철컥.

하고 자신을 향해 겨누어지는 총구에 히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특유의 고급진 검정 메탈제 총구가 은은한 빛을 내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오...리...?"

"그리고 옆은... 아코...?"


"오랜만이네. 부장."


자신을 매서운 시선으로 노려보는 이오리와 아코.

그녀들의 눈은 탄식과 원망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윽고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히나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말했다.


"...너희도 알다시피, 나는 선도부장으로써 끔찍한 짓을 저질렀어."

"그러니 너희들의 처분... 달게 받아들일게. 미안해."


이어지는 정적.

잠시 뒤, 서로를 멀뚱히 바라보던 아코와 이오리는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이에 당황한 히나를 보며 이오리가 말했다.


"...보아하니 돌아온 것 같네."

"끝났어 부장. 모두 기다리고 있으니 돌아가자."


"돌아오셔서 다행이에요, 부장님!"


"ㅁ...뭐하는거야...?"


이오리는 대답 대신 손을 내밀었다.

초췌한 눈빛의 히나를 향해 웃어보이며, 그녀는 말했다.


"선생님께 모든 정황을 들었어."

"색채인가 뭔가, 그것 떄문이라며? 부장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 쯤은 알아."


"하... 하지만 내가 지은 죄는 아직 그대로 남아있어..."

"선생님을 해치겠다는 일념 하에 건물을 부수고... 회관을 습격해 불태우고..."


"그래서? 부장이 선생님을 해쳤어? 그건 아니잖아."

"뭐어, 건물을 부수고 불태우는건 게헨나 학생이라면 기본 소양이라고."


"그,그래도 나는 용서 받을 수 없어... 나는..."


"그러니까 이제 용서를 빌러 가야지. 부장의 말처럼 죄는 그대로 남아 있을지도 몰라."

"...그럼 더더욱 선생님께 가야하는거 아냐? 자, 손 잡으라고."


"이오리..."


자신을 바라보며 웃음짓는 이오리와 아코.

이에 얽히고 섥혀있던 히나의 감정도 조금은 정리된 듯한 느낌이었다.

히나는 천천히 이오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 순간.

어디선가 귀청을 찢는 거대한 폭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덮쳐오는 충격파에 히나를 비롯한 그녀들은 자신도 모르게 두 귀를 막았다.


"크으읏...!!!"


귓가에 들리는 이명. 뿌옇게 흐려진 시야.

아마 충격파와 함께 불어온 바람 탓에 한참을 날아간 듯 했다.

히나는 재빨리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장님! 괜찮으세요?"


"으...으응! 난 괜찮아. 이오리는?"


"이오리요? 이오리는 여기 있는데... 응?"

"이...이오리...? 이오리???? 꺄아아아악!!!!"


멀리서 들려오는 아코의 비명.

히나는 철렁한 가슴을 부여잡고 비명이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아코! 괜찮ㅇ..."

"...이오리? 지금 뭐하는거야??"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히나는 온 몸이 굳을 수 밖에 없었다.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아코와 그녀 위에 올라타 총격을 퍼붓는 이오리.

그녀의 두 눈은 붉게 물든 상태였다.


"부...장......"


"이오리... 물러나."

"당장!!!!!"


내려두었던 총구를 다시금 치켜드며, 히나가 외쳤다.

하지만 그런 히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오리는 안광을 빛내며 그녀에게 달려들고야 말았다.

결국 히나는 눈물을 머금고 방아쇠를 당길 수 밖에 없었다.


타앙!

그녀의 탄환이 이오리의 은빛 머릿칼을 갈랐다.

이를 고정하고 있던 검정색 리본도 풀어져 땅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오리는 멈추지 않았다.


"부장.... 부자아앙...!!!!!!"

"배신자... 배신자아아아!!!!!!!!"


"크윽, 이오리... 진정해...!!!!!"


가까스로 그녀를 밀어낸 히나는 다시금 방아쇠를 당겼다.

자비없이 발사된 탄환에 이오리는 결국 힘을 잃고 맥없이 쓰러져 무력화되었다.

그녀를 제압한 뒤, 히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야 말았다.


"대체... 허억...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야...??"


그러나 세상은 그녀로 하여금 숨을 돌릴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곧이어 그녀를 향한 탄환들이 사방에서 날아오기 시작했다.

이에 히나는 제빨리 몸을 움직여 근처 건물로 피신했다.


목표가 사라지자 하나둘 씩 모습을 드러내는 적들.

그녀들은 다름아닌, 방금 전 성소 공략전에서 히나를 적대했던 정의실현부원들이었다.


"킥... 키히힉.... 키히히히히히히히히히!!!!!!!"


"뭐야... 헤일로는 멀쩡한데... 어째서..."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갑자기 왜 상황이 반전된건데...!!"


"키힉... 킥?"

"....헤헤.... 으헤헤헤헤헤....."


잠시 모두가 침묵하던 그 순간.

몰래 도망치려던 히나를 벽을 뜷고 들어온 츠루기가 막아섰다.

히나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무장해제를 당하고 말았다.


"키헤헤헤헤헤헤헤헤!!!!! 헤헤... 으헤헤헤헤헤헤!!!!!"

"키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허억... 허억...!!!"

"저,저기.... 일단 진정해ㅂ... 끄으윽...!!!!"


깔끔하고 잘 정돈된 구두 굽에 손을 짓밟힌 히나는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 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정의실현부의 츠루기와 하스미는 가학적인 미소를 지으며 내려다보았다.


"역시 게헨나는... 믿을만한 종자가 될 수 없는 것 같네요..."

"츠루기 부장, 처리를 부탁합니다."


"히히... 키히히히히... 히히히히히...!!!!!"

"큭큭... 크크큭... 갸아아아악!!!!!!!"


타앙! 타앙! 타앙!

츠루키가 발사하는 탄환 한 발 한 발이 묵직하게 박혀오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지만 히나는 저항하기는 커녕 오히려 묵묵히 이들을 받아내고 있었다.

본인의 업보에 대한 최소한의 속죄, 그리고 마땅히 받아야할 형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키히히히!!!! 키히히히히히!!!!!"

"키햐하하하하학!!!!! 캬하하ㅎ..."


타앙!


"...."

"헤에에.....?"


문득 머리로 날아든 총격에 츠루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선 아코가 떨리는 두 팔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권총을 들고 서 있었다.


"ㅂ...부장님을 괴롭히지 마요...!!! 이 악마들...."


"...하아? 악마는 오히려 게헨나, 그쪽이 아닌가요?"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거죠?"


서서히 붉어지고 있는 두 눈.

때에 맞지 않게 후들거리는 두 다리까지.

아코는 분명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강했다.

애써 희미해지는 의식을 부여잡으며, 아코는 외쳤다.


"당신에게 말한게 아닙니다! 이 젖괴물!!!"


"ㅁ,뭐어어엇???? 지금 말 다했어요??!?!?!"


눈빛이 변한 하스미는 곧바로 아코를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다.

이를 흥미롭게 바라보던 츠루기 또한 하스미를 따라 달려나갔다.

겨우 풀려난 히나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아코를 향해 외쳤다.


"아...아코!!!!"


"후우... 후우... 응...?"

"부... 부장님.... 헤헤...."


"아코!!! 도망쳐!!!!"

"너가 이길 수 없어!!!! 난 괜찮으니까 빨리!!!!"


"부... 장... 니임...."

"꼭.... 살아남아 주ㅅ....ㅇ....."

"...후으... 후으으으윽...흐아아아아아아악!!!!!!!"


이내 눈빛이 완전히 그들처럼 바뀌어버린 아코.

이에 히나마저 잠시 가슴이 철렁하여 공포를 느끼던 그 순간.

잠시 동안 히나를 노려보던 그녀는 고개를 흔들더니, 재빨리 다리 밑을 향해 몸을 던졌다.


"아...아코오오오!!!!!!!!!"

"아아.... 아아아아아...!!! 안돼... 안돼...!!"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히나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아코를 따라가는 것 뿐이었다.


***


"ㄷ...대체 뭐가 어떻게 된거야..."


눈 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상황.

비록 순간이지만 그는 전신에 느껴지는 고통도 잊은 채 당황하고 있었다.

그런 선생에게 사오리가 천천히 다가와 말했다.


"서...선생... 나는...."


"....으아아아아아아아!!!!"


"크흑...!!"


하지만 그녀의 말은 전해지지 못했다.

곧바로 깨어난 시로코에 의해 대화는 커녕 그에게 다가가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바닥에 쓰러져 인사불성에 빠진 사오리를, 시로코는 있는 힘껏 두들겨 패며 외쳤다.


"너가.... 너가아아아아아!!!!!!"

"너가 선생님을.... 용서못해....!! 용서못해애애!!!!!!"


"크윽, 끄윽....!!!!"

"크허억....!!!!"


"...시로코."


선생의 그 말에 순간 시로코의 움직임이 멈춰섰다.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주먹을 치켜든 채 시로코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선생... 님...?"


"시로코. 그럼 못써."

"이제 모두 돌아왔잖아. 더 이상의 폭력은 무의미해."


"그,그치만 이 여자가 선생님을..."

"선생... 선생님을.....!!"


"쿨럭... 시로코."

"난 괜찮아. 그러니 사오리를 놔줘."


선생은 가빠져오는 숨을 애써 견디며 말했다.

간절함이 느껴지는 그의 목소리에 시로코도 그녀의 손을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시로코를 칭찬해줄 힘마저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시로코. 가까이 오렴."


시로코는 사오리를 한 번 지긋이 노려본 뒤, 바닥에 패대기쳤다.

몹시 고통스러웠던 사오리지만 그녀도 자신의 죄를 알았기에 달리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잠시 뒤 선생의 앞까지 도착한 시로코. 선생은 천천히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장하구나. 시로코."

"네가 날 구했어... 고마워."


"하...하지만 난..."

"난 선생님이 다치는걸 막지 못했어...."


그녀는 그 이상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선생이 기대어 있는 파편 아래로 그가 흘린 검붉은 피웅덩이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 광경을 차마 볼 수 없었던 시로코는 질끈, 하고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었다.


"...시로코, 이쪽을 봐줄래?"


"으응...?"


선생은 말없이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비록 그의 몸은 상처입고, 정신은 짖이겨졌지만 그 눈빛만은 결코 빛을 잃지 않은 상태였다.

끝내 눈물이 터지고 만 시로코를 선생은 위로해주며 말했다.


"시로코...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사오리의 잘못도 아니고..."

"그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어. 나쁜건 나야...'

"너희들을 충분히 돌봐주지 못했으니까..."


"아... 아니야 선생님..."

"선생님... 눈떠.... 가면 안돼... 안돼...!!"


"쿨럭! 쿨럭,쿨럭.... 크으윽..."

"사오리... 사오리, 듣고 있어...?"

"듣고 있다면 가까이 와줄래...?"


사오리는 힘없이 몸을 일으켜 터벅터벅 다가오기 시작했다.

휘청거리는 그녀의 걸음으로 말미암아 내면에서 수많은 갈등을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잠시 뒤, 도착한 그녀는 털썩. 하고 그의 앞에 무릎 꿇었다.


"...사오리...?"


"....면목 없다. 선생."

"내가... 내가 또 다시 선생을 상처입히고 말았다...."

"나는... 당신을 볼 자격도 없는 사람이야...."


"그런 말 하지마, 사오리."

"너희들은 죄가 없어. 모두 색채의 세뇌에 의해서 벌어진 일이잖아... 그치?"


"...그렇지만 내가 한 행동이 사라지는건 아니다."

"이 죄는.... 선생을 두 번씩이나 해하려고 한 이 죄는 결코 사라지지 않아... 아니, 사라질 수가 없다...."


그녀는 참회의 눈물을 쏟으며 오열했다.

두 번씩이나 선생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죄책감과 자신의 행동에 대한 혐오감이 짓누르고 있던 그녀의 감정을 폭발시키고 만 것이다.

그러나 선생은 그런 그녀를 혼내는 것 대신, 쓰다듬어주는 것을 택했다.


"...사오리. 내가 말했잖니."

"무슨 일이 있어도 너희를 결코 원망하거나 증오하지 않을거라고..."


"아... 아니다, 선생. 나는 죄인이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내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 나는....!"

"...훌쩍, 나는 당신에게 용서 받을 자격도 없는 사람이니까...." 


"사오리가 몇번을 내 몸에 총알을 박아넣든... 나는 그때마다 너를 용서할거야."

"...그것이 선생이고. 너희에 대한 나의 사랑과 믿음이니까..."


"흑.... 흐윽.... 선생..."

"선생.... 선생... 크흑.... 선생님...."


선생의 눈 앞이 점차 흐릿해져갔다.

이윽고 전신으로부터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 그는 천천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선 색채의 불빛으로부터 해방된 붉은 하늘이 그를 맞이해주고 있었다.

...잠깐. 붉은 하늘?


"....뭐?"


선생은 두 눈을 번쩍 떴다.

붉은 하늘. 평상시 키보토스의 하늘과는 다소 거리가 먼 상황.

분명히 성소는 파괴했을터인데, 어째서 하늘의 모습이 바뀌지 않는거지?

의문은 그의 활력을 잠시나마 도로 돌아오게 하기 충분했다.


"크윽...!!"


"서,선생님...!!! 괜찮아???"


"선생...!!!! 괜찮은가..??"


자신을 만류하는 학생들의 손길을 뿌리친 선생.

그는 다급히 무전기를 꺼내들어 히마리에게 연락하였다.


"히마...히마리.... 히마리...!!!!!"

"히마리, 응답해! 히마리!!!!"


[....선생님? 선생님이세요?]


그러나 히마리의 목소리는 어째서인지 몹시 초췌한 상태였다.

평소에도 병약미소녀라고 자신을 지칭하던 그녀였지만 이번 만큼은 상황이 달랐다.

그녀의 이상현상에 마음이 다급해진 선생은 그녀를 향해 외쳤다.


"그래! 나야 히마리. 무슨 일이야? 성소가 사라졌는데 하늘이 바뀌지 않았어...!!"

"...그나저나 너는 괜찮아? 목소리에 힘이 없는데...!"


[쿨럭, 선생... 선생님... 죄송...합니다...]

[저의 미스였습니다.... 성소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어요....]


"뭐어?? 그게 대체 무슨...!!"


[성소는... 색채의 전신이 아니었어요... 흐윽, 크으윽....!!! 하아... 하아....]

[성소는 단순히... 색채가 모아온 신비를 저장하는 저장고에 불과했어요... 하아... 크윽...!!]


"히마리!!!!! 그 소리는 뭐야? 지금 어디 아파????"


[네...?? 아뇨, 아뇨!!! 전 괜찮습니다... 다만...]

[끄으윽... 후우... 후우... 남은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선생님... 자료는 이미 보내드렸으니... 쿨럭...!!!]

[그러니 부디... 잘 들어주세요.... 쿨럭, 끄흐윽.... 으윽.... 끄흑...!!!!]


마치 무언가를 떨쳐내려고 하는 듯, 그녀는 전신을 뒤트는 듯한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분명히 무언가가 심상찮게 돌아가는 상황이었지만 알 길이 없었기에, 선생은 발만 동동 구를 뿐 이었다.


[쿨럭,쿨럭...!!! 쿨럭 쿨럭 쿨럭!!!!! 흐으.... 후으으으으....!!!]

[성소... 진실의 성소를 찾아내세요... 쿨럭, 오직 그 성소 만이... 색채의 모든 것을 담고 있으니까요...]

[어딘지는...끄윽... 저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허억.... 허억....!!! 허억....!!!!!]


"히마리...!!! 왜 그래... 괜찮은거 맞아????"

"히마리, 정신차려 히마리...!!!!!"


[허억!!! 허억...!! 허억... 크윽, 후우... 후우우.... 아아아아악!!!!!!!]

[흐윽....!!!!!! 선생,선생님.... 선생님은 아실지도 몰라요... 색체가 처음 등장한.... 처음.... 처ㅇ....]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


"...히마리?"

"히마리...!!! 히마리!!!!!!"


무언가에 의하여 강제로 끊긴 듯, 그렇게 히마리와의 교신은 종료되고 말았다.

온 몸을 뒤틀며 전달한 히마리의 소름끼치는 마지막 유언에 선생은 천천히 그 몸을 떨었다.

분노에 미친듯한 그녀의 마지막 절규. 그는 자신의 불안한 예감이 틀렸기를 바라며 천천히 주변을 바라보았다.


"ㄲ...꺄아아악!!!!!!! 하...하지마아아아!!!!!"


"아악...!!!! 아아악!!!!!!"

"그건 본심이 아니었어.... 내가 아니었다고오오!!!!!"


"아카리, 당장 차를 돌려 빠져나가세요!!!!"

"이런...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방금 전 까지만 하더라도 그와 함께 합을 맞추었던 학생들이.

붉은 안광을 빛내며 헤일로가 검게 변한 아이들을 쫒고 있었다.


그녀들에게서 이성이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과거의 산물에 불과했다.

상황 파악을 모두 끝낸 선생은 그 고통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힘을 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 방금 무엇을..."

"자,잠깐! 뭐하는 짓인가 선생!!!"


"허억... 사오리, 비켜줘. 가야만 하는 곳이 있어..."


"대체 그게 무슨 소리인가 선생!!"

"그 몸으로 어딜 간다고.... 선생...!!!!"


"허억... 허억...! 크으윽....!"


선생은 몇걸음도 채 가지 못해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그의 정신은 또렸했지만 육체는 점차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기 때문이랴.

다시금 일어나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거듭 했지만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는 두번 다시 되살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선생... 괜찮은가...?"

"크읏... 어이, 모두들!!! 와서 선생을 도와줘!!"


사오리는 자신의 스쿼드를 향해 외쳤다.

하지만 그녀들이라고 해서 별 반 다른 상황은 아니었다.


"제가... 제가 선생님을 해치는데 일조했어요... 이건... 이건 뭘까요...??"

"제 행복에 대한 고난...? 그게 아니라면 단순한 저의 죄악....???? 아아.... 이건... 이건....!!!!"


"...선생님은 나를 구해줬어."

"그 여자로부터 나를 꺼내어주고... 삿짱이 정착할 수 있게 도와줬어..."

"하지만 나는.... 나는 그런 선생님에게.... 대체 무슨 짓을....!!"


"..."

"아파. 아프다고... 하지만 멈출수가 없어..."

"몇 번을 그어도... 이 아픔이 가시지 않아.... 뭘까...?"

"응? 알려줘 선생님... 내가 느끼고 있는 이 아픔은 뭐야...? 응?"


"...젠장!!!!"

"어이, 늑대!!!! 염치없지만 도와다오...!!!!"


자신의 팀원들마저 무너진 것을 목격한 사오리는 급한대로 시로코를 향해 말했다.

물론, 선생은 그녀를 용서했을지언정 시로코까지 그녀를 용서하라는 법은 없었다.

사오리도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목숨을 내놓을 각오로 외친 말이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그녀의 상태가 이상했다.


"..."


"어이, 늑대!! 들리는가!!!"

"선생이 가야할 곳이 있다고 한다... 나 혼자로써는 무리니 너의 도움이 필요해!!"


"...."


"어이.... 늑대...?"


"...떨어져."

"내게서 떨어져!!!! 빨리!!!!!"


불현듯 소리를 지르며, 시로코는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사오리는 당황하여 그녀를 쫒아나섰지만 얼마 못가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제자리에 주저 앉아 벌벌떠는 그녀의 두 손 너머로 붉게 변해버린 눈동자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 헤일로가 물들어 본 그녀였기에 알 수 있었다.

헤일로가 물들기 시작하면 어떻게 되는 지를. 어떤 증상이 발현하는지를 말이다.

천천히 뒤로 물러나던 사오리는 이윽고 재빨리 선생을 안아든 뒤, 홀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허억...!!!"

"젠장... 젠장....!!!!"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거지...? 하필이면 선생이 당한 이 시점에서...'

'안돼... 선생을 잃을 순 없어... 선생을 지켜야해... 내가... 내가 지켜야만해....!!!'


사오리는 이를 악 문채 내달렸다.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다만 그저 발을 구를 뿐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이 그녀를 넘어트리고 말았다.

사오리는 흙먼지를 내며 바닥을 굴렸다.


"크윽...!!"


"당신... 분명히 검은 헤일로였죠...?"

"나의 선생님을 대리고 어딜 그렇게 가시는거죠? 납치하실 생각인건가요?"

"이 코사카 와카모가 있는 한, 절대 그럴 일은 없을겁니다!"


곧이어 사오리의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 와카모.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던 그녀의 시야에 마침내 골골대고 있는 선생의 모습이 들어왔다.

패닉에 빠진 와카모는 가면을 벗어던진 채 곧바로 선생에게 달려가 말했다.


"당신... 아아아... 당신!!!!!"

"이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와... 와카모...."

"시간.... 시간이 없어..."


"대체 누가... 어떤 년이 당신에게 이런 끔찍한 짓을...!!!!"

"아아아..... 제발.... 움직이지 말아주세요.... 대체... 어떤 버러지 같은 년이...!!!"


와카모는 사오리를 향해 돌아보았다.

사오리는 말없이 그녀의 눈을 피했다.

이윽고 와카모의 두 눈이 미친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너야? 너가 그런거야...?"

"너가 선생님을... 이 꼴로 만든거야...??"


"...고의는 아니었다. 다만...!!"

"끄윽...!!!!"


눈 깜짝할 사이에 달려와 그녀의 목을 조르는 와카모.

사오리는 있는 힘껏 발버둥을 쳐봤지만 이미 눈이 돌아가버린 와카모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말없이 자신을 노려보며 분노의 눈물을 흘리는 그녀에게, 사오리는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고야 말았다.


"컥... 커헉...!!!!"

"끅.... 끄으으윽...!!!"


"와카모... 와카모!!!!!"


선생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더라면 그 완력에 꼼짝없이 사오리의 목이 부러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바닥에서 숨을 고르며 부들거리는 그녀를 두고 와카모는 곧바로 선생에게 달려갔다.


"아아... 부르셨어요? 나의 당신..."


"와카모... 지금은 싸울 시간이 아니야..."

"부탁이니, 당장 나를 샬레로 안내해줘... 제발...!"


"아... 아아...!!!"

"알겠습니다... 자, 제가 업어드릴테니 어서...!"


선생을 업은 뒤 떠나려는 와카모.

그런 그녀를 뒤늦게 정신차린 사오리가 불러 세우며 말했다.


"자,잠깐... 혼자서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부탁이니 나도 돕게해다오... 단순한 일이라도 좋으니 제발..."


"그. 입."

"다무세요. 찢어버리기 전에."


"..."

"...알겠다. 그리 하도록 하지..."


침울해진 표정의 사오리를 두고, 선생과 와카모는 떠나버렸다.

허탈함과 허망함에 다리가 풀려버린 그녀는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결국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못한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던 사오리는 비탄의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굳센 멘탈이 처음으로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흐윽... 흑흑...."

"흐아아아앙..... 아아... 후아아아아...."


'너희는 잘못을 저지른 나쁜 아이들이 맞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희가 고통받아 마땅하다는 건 절대 아니야.'

'아이들이 고통받았다면, 그건 그 아이의 탓이 아니야.'

'아이들이 고통받는 세계를 만든 책임은 어른인 내가 지어야 해.'


"흑.... 흐흑..... 흑....훌쩍, 크흑... 흑..... 흐으윽..."

"미안.... 미안하다 선생...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채..."

"또 다시 죄를 지으며 모두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애써 가르쳐 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당신의 기대를...."

"나는....!!! 나는..... 나는........ 헛된 존재가 되고 말았다...."


멀리서 누군가가 사오리를 향하여 천천히 걸어오는게 보였다.

한 쪽이 풀려버린 은빛 트윈테일의 그녀는 사오리를 발견하고는 주저없이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이를 본 사오리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네가 책임져야 하는 건 바로 너의 삶이야. 사오리.'


"미안... 선생."

"나는... 나 스스로를 책임지지 못했다..."


타앙!

그리고 그녀는 쓰러졌다.


.

.

.


한편.

와카모는 있는 힘을 다해 샬레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었다.

온 몸은 땀 범벅이 되고 다리는 끈임없이 주저 앉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허억... 허억....!"


어떤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그녀만은 의식이 멀쩡했다.

처음에는 다들 그런줄로만 알았다. 헤일로가 검게 물든 것은 순전히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때처럼 평화롭게 탈옥한 그녀를 군대까지 동원해서 제압하려고 드는 발키리에, 그녀도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검은 헤일로.

그것은 이미 와카모가 탈옥에 성공하였을 때 즈음에는 키보토스 전역의 공포의 상징이 되어있었다.

혹자는 그녀를 증오하고, 혹자는 그녀를 두려워 하였다. 혹자는 둘 다 해당하는 경우이기도 했다.

와카모는 달리고, 또 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지나간 일주일.

그녀는 몸도 마음도 이미 초췌해진 상태였다.

그녀의 유일한 우군이자 사랑하는 상대인 선생은 그 어디서도 소식을 찾을 수 없었다.

선생에게 문자를 보내려고도 해봤지만 탈옥과정에서 전화기를 잃어버린 탓에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그 순간.

쪽잠을 자며 주변을 경계중이던 그녀의 눈에 대규모로 이동중인 전차군단이 눈에 들어왔다.

트리니티 종합학원의 제식 전차 크루세이더. 이와 동행하는 게헨나의 티거 전차까지.


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앙숙인 두 학원이 연합을 이루었을까 고민하던 와중,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그.

헬기에 몸을 싣고 날아가는 선생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선생을 따라갔다.

물론 모습을 들키면 큰일이 날 수도 있기에 조심. 또 조심을 기울여 은밀히 그를 미행한 것이다.

이윽고 그가 당하여 추락하자, 더 이상 눈에 뵈는게 없어져버린 그녀에게 있어 검은 헤일로의 낙인 따위는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성소를 부수었다.

단지 그 뿐이었다.


'모든게 달라졌어요... 이젠 어느 누구도 믿을 수가 없어요...'

'당신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오직 나 뿐이에요...'


벽을 뛰어넘고, 거리를 내달려 다리위로 진입한 와카모.

이제 이 다리만 건너면 샬레가 위치한 D.U가 모습을 드러낼 터였다.

와카모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진정시키며 다시금 한 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운명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가혹했다.


"여기 있었구나. 코사카 와카모."


"...!"

"당신들은... FOX 소대...!!"


"그래, 이젠 외울때도 됐지?"

"얌전히 투항하고 인질을 넘겨. 그렇다면 목숨만은 보장해주도록 하지."


붉게 물든 충혈된 눈으로 와카모와 선생을 노려보는 그녀들.

와카모는 그녀들이 말처럼 그렇게 자신과 선생을 고이 보내줄 생각이 없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른 그녀는 결심을 굳힌 듯, 선생을 근처 버려진 차량에 태운 뒤 문을 닫았다.


"...무슨 의도지?"


"당신들이 알 바는 없습니다."

"자, 오십시오. 저도 이번에는 진심으로 상대해 드릴테니."


"...웃기는군."

"쳐라!!!!!!!!"


재액의 여우.

그것은 그녀가 다녀가는 곳마다 재앙을 불러온다고 하여 지어진 이명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한 두번 사고를 친다고 해서 그런 이명이 붙여질 리는 없을 터.


테러와 도주는 그만큼의 실력이 뒷받침 되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녀는 백귀야행, 나아가 키보토스 최악의 테러리스트였다.


상대가 비록 최고의 엘리트들만 모인 FOX 소대라고 할지라도, 진심을 다한 그녀 앞에서는 그저 추풍낙엽에 불과했다.

살이 찢기고, 뼈가 깨지고, 근육이 터져나가는 끔찍한 소리들이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미 더 이상 전투를 속핼할 수도 없는 몸이었지만 와카모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다.


"허억... 허억.... 허억...."

"꿀꺽, 허억..... 허억....... 허억......."


온 몸에서 피를 흘리며 비틀거리는 와카모.

그녀 주위로 넝마짝이 된 FOX 소대원들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와카모는 슬픈 눈빛으로 자신을 처다보는 선생을 보며 애써 환하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이었다.


"...히....히히..... 어ㄸ...어떠신지.....?"

"이 와카모.... 당신의 적을 모두..... 모ㄷ......"


털썩.

결국 온 몸에 힘이 빠져버린 그녀는 맥없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끈이 풀려버린 가면을 손에 쥔 채, 그렇게 그녀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와.... 카...... 모......"


쓰러져버린 와카모를 보며, 선생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다치지만 않았더라면. 자신이 조금 더 판단을 일찍 했더라면.

그녀를 포함한 수많은 학생들이 다치는 일은 없었을 터.

그 순간 만큼은 모든것이 선생 자신의 탓으로 느껴졌다.


선생은 서서히 자신의 몸에서 활력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학생들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에 발휘된 잔기의 효혐이 점차 떨어지고 있음의 표현였다.

그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며 차 문을 열고 나왔지만, 얼마 못가 다시금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그의 일생 모든 순간을 통틀어 이토록 자신이 증오스럽고 한심했던 순간이 없었다.


"크윽.... 크으윽....!!!"


그는 천천히 손을 뻗고, 또 뻗었다.

이젠 감각마저도 느껴지지 않는 다리를 이끌고 한땀. 또 한땀 기어가는 선생.

그런 선생의 앞에 누군가가 나타나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드며 자그마히 되내었다.


"으윽.... 누,누구....."


"....응.선생님."

"나야. 시로코."


"...허억....!!!!!"


눈이 붉게 변해버린 시로코.

선생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피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가장 원초적인 본능인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그런 선생을, 시로코는 공격하지 않았다.


"...선생님."


대신 그의 손을 잡아주며, 가만히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당황한 선생은 말없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괜찮아. 아직은 견딜만 하니까."

"와카모... 응. 수고했어. 네 못다한 과업은 내가 이루어 줄게."


"ㅅ...시로....코.....?"


"그리고 선생님... 잠시 쉬어도 돼. 나에게 맡겨줘..."


시로코는 선생을 향하여 지긋이 미소지었다.

그런 그녀의 미소에 감동을 받은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이미 몸이 지쳐버린 탓인지.

선생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가 눈을 떠보니 이미 샬레 사무실이었다.

창문은 깨져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고 책상은 유우카와의 사건으로 인해 난장판이 되어있는 상태.

시로코는 선생을 의자에 살포시 앉힌 뒤, 천천히 정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시로코. 시로코....!!"


이윽고 그녀의 뒤로부터 들리는 선생의 다급한 목소리.

시로코는 뒤돌아보지 않은 채, 그를 향하여 천천히 되내었다.


"..."

"여기라면 안전할거야. 선생님. 나를... 믿어줘서 고마웠어."

"하지만.... 하지만 나도 이제 한계인 것 같아.... 응. 그래서 가야해.... 너무 늦기 전에..."


그녀의 두 손이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마지막 이성을 애써 유지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는 시로로코의 모습.

그런 그녀의 모습에 울컥하고만 선생은 그녀를 위해 감정을 숨기며 애써 말을 이어나갔다.


"...약속할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사태를 수습해서 반드시 너희들을 원래대로 되돌릴테니까..."

"그러니까 부디... 다치지 말아줘. 알겠지...?"


"..."

"....응. 부탁해."


"....고마워. 시로코."

"편히 쉬렴..."


시로코는 대답하지 않았다.

결국, 선생은 또 다시 혼자가 되고야 말았다.


사실 아니었지만.

선생은 꺼져있던 싯딤의 상자를 다시 한 번 켜보았다.

그러자 아까와는 달리 정상적으로 부팅이 되기 시작했다.

이에 선생은 씁쓸한 헛웃음을 터트리고는 부팅이 완료된 아로나에게 말했다.


"...안녕. 아로나."

"오랜만이네...."


"선생님? 선생님? 다행이다..."

"갑자기 전원이 꺼져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ㄹ..."

"....선생님?"


끔찍한 선생의 몰골에 아로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비록 그녀는 Ai였지만 인간의 감정 따위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비통. 자괴감. 슬픔. 고통스러움. 그것이 그녀의 키워드였다.


"아아.... 아아아.... 선생님...!!!"

"죄송해요... 흐윽, 정말 죄송해요.... 제가 모자라서...."

"제가.... 제가 너무나도 부족해서..... 선생님을...."


"...아로나. 울지마."

"아직 나는 살아있어. 헤헤...."


"그,그치만 선생님의 생명 반응이 점차 사라지고 있어요...."


"...얼마나 남았는데?"


"그,그게.... 그게...."

".앞으로 두 시간... 정도요...."


"..."

"....그 정도면 뭐, 충분하네."


선생은 히마리로 부터 받은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전송한 자료는 방대했고 복잡했지만, 선생은 특유의 집중력으로 이를 차례차례 해쳐나갔다.

그의 잔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샘 이었다.


놀라운 집중력으로 대강 자료를 정리한 그는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마지막 준비를 늦추지 않았다.

이윽고 한껏 차분해진 목소리로, 선생은 아로나에게 말했다.


"...아로나. 아이들에게 연락을 해줘."

"지금껏 연락이 끊겨있던 아이들에게... 헤일로가 검게 물들었을 아이들에게... 어서...."


"선생님.... 그럴 시간이 없어요..."

"지금 이런 상황에 연락이라니... 제가 빨리 구급대원들에게 연락을 해 볼테니 선생님은 부디..."


"아로나...!!!!"

"....시간이 없어. 해야만 할 일이 있거든."

"학생들에게 전해야만해... 내가 없어도 잘 할 수 있게...."


"..."

"....네. 알겠습니다."


그는 차례차례 학생들을 위하여 전언을 남기기 시작했다.

분명히 생기라면 남아 있지도 않고, 살아있는게 기적인 수준이었지만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차분하게, 또박또박 메시지를 남기는 선생.

그의 기력은 쇠하였지만 눈빛만은 전혀 쇠하지 아니하였다.

그런 선생의 모습을, 아로나는 눈물을 삼키며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허억... 허억.... 그러니까 노아..."

"절대로... 절대로 D.U에는 오면 안돼... 알겠지...?"

"미카는 착한 아이니까... 선생님 말을 들을거라 믿어..."

"부디... 착하게 잘 있어야 한다...? 공주님이니까.... 쿨럭...!!"


"전송... 완료되었습니다."


"그래...? 으윽...!! 쿨럭... 쿨럭...!!!!"


"선생님... 무리하시면 안돼요...!!"


"아니, 쿨럭...! 흐으..."

"괜찮아. 난 괜찮아 아로나... 버틸만 해..."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잖니..."


시간이 흘러 모든 빛이 꺼져버린 공간.

오직 한 줄기의 미약한 광원만이 선생을 비추고 있었다.

그는 고통으로 쓰라린 상처를 부여잡으며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몇 명... 몇 명이 더 남았지...?"


"게헨나에 두 명.... 남았습니다..."


"윽.... 으아아아아어어어어어아아악....!!!!!!"

"하아...! 하아....!! 하아.... 쿨럭, 하아...."

"미,미안... 그래서... 쿨럭, 몇 명이라고...?"


"...두 명이요."


"그래... 그럼 됐어..."

"최대한, 으윽...!! 빨리... 해줄래...? 연락이 닿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아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이야... 허억... 허억..."


아로나는 묵묵히 눈물을 삼키며 선생을 보조하였다.

선생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은 자명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선생은 학생들에게 당부의 연락을 남기는것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을 상처 입히고, 찢어 발기고, 조각 조각 부숴놓은 학생들을 향하여 그는 몇 번이고 전화를 걸었다.

아로나는 그러한 선생의 행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연결 되었습니다. 선생님."

"이번은 음성사서함이 아닌, 실시간 통화인 점... 알아주세요."


하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었다.

책임을 지는 어른은, 바로 그런것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자신이 선생을 선택한 것 이었으니까.


"....아루...니...?"


[에....?]

[이 목소리는.... 선생...??]


"다행... 이다... 아루는 멀쩡,쿨럭...!!! 했구나..."


[ㅁ,뭐엇? 멀쩡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허억... 허억.... 끄으윽...!!!"

"쿨럭...!!! 허억... 허억.... 아루... 시간이 없으니 잘 들어..."


[선생...!!! 선생!!!! 대체 무슨 일이야!!!]


"절대.... 절대 키보토스로 돌아오지마.... 알겠니...? 절대로...!!"

"적어도... 허억.... 시라토리 구 로는 절대로... 쿨럭!!!!"


[무,무슨....!!!]

[선생!!! 내말 들려??? 선생... 선새애앵!!!!!!]


"흐윽...!!! 크으윽.... 허억... 허억.... 으아아아악....!!!!"

"하아...!!!! 하아..... 하아..... 크윽.... 으으윽...."


애석하게도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선생은 마지막 전화를 차마 전하지 못하고 손을 떨어트릴 수 밖에 없었다.

고통에 신음하는 선생에게, 아로나는 절규하다시피 외쳤다.


"선생님...!!!!!!"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있을거 아니에요...!!!"

"그녀들은 선생님을 그렇게.... 그렇게 고통스럽게 만들었는데 왜..."


"허억.... 허억.... 아로나."

"...그래서 너가 아직 학생이라는거야."


"...네?"


"어른이란.... 책임을 지는 사람이야..."

"학생들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그녀들의 등을 떠밀어주고... 이끌어주고..."

"허억.... 허억.... 새로운 시대를 만드는건 어른의 몫이 아니니까..."


"선생님...."


선생은 힘이 빠져버린 몸을 애써 의자에 걸치며 기대었다.

그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로나에게, 선생은 마지막 힘을 다하여 웃으며 말했다.


"허억... 후우.... 그렇게 말했으니 이제 곧 아이들이 올거야..."

"전권을 너에게 위임할테니... 아이들을 이끌어줘... 부탁이야.."


"선생님... 그말인 즉슨..."

"아아...안돼요... 힘을 내주세요... 선생님...!!!"


"허억...!!! 허억... 허억...."

"아로나... 뒷일은 부탁할게... 난 이제 조금....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아...."

"아주 조금이니까... 조금만... 조금만 쉬고 일어날ㄱ...."

"..."

"..."


"...선생님?"

"선생님.... 아아안돼요..... 안돼요 선생님...!!"

"눈을 뜨세요... 제발.... 제발 눈을 떠주세요 제발....."

"아아.... 선생님.... 선생니이임......!!"


이어지는 침묵.

실로 참혹하고도 잔인한 침묵이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싯딤의 상자 전원이 꺼지자 아로나는 말없이 어딘가를 향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있던 교실, 부숴진 벽을 지나 머나먼 해변가를 향하여.


이윽고  도착한, 파도가 밀려오는 바닷가.

주변을 둘러보던 아로나는 저 멀리 수평선을 향하여 천천히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내 그녀는 바다의 너머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아로나는 천천히 두 눈을 떴다.

다시금 그녀의 눈에 비춰오는 키보토스의 밝은 하늘위로 뻗은 헤일로의 빛.

이에 아로나는 천천히 무거워진 몸을 일으켰다.


샬레의 옷장 속에는 하얀 정복들로 가득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옷장 문을 열어 젖힌 뒤, 하얀색 제복과 더불어 긴 치마를 꺼내어 입었다.

오랜만에 입은 정복은 그녀로 하여금 약간의 어색함을 주었지만, 그녀는 이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편히 쉬시길."


싸늘하게 식어버린 선생의 몸.

아로나는 그의 정복을 주워 그의 어깨에 둘러준 뒤 잠시동안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모든 것이 끝난 후, 착잡한 표정으로 고민을 이어나가던 그녀는 결국 싯딤의 상자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머지 않아.

꺼졌던 싯딤의 상자의 전원이 다시금 켜졌다.

그러자 잠시 뒤, 안으로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으으.... 여긴...]

[어? 잠깐만... 아로나?]

[내게 무슨 짓을 한거야...???]


"...아이들에게는 아직 선생님이 필요해요."

"저는 어디까지나 선생님의 대리인이자 보조인... 선생님은 오직 당신 뿐이어야만 합니다."


[...]

[허어... 이거 참...]

[최고의 마지막 한 마디라고 생각했는데... 이럼 이건 뭐....]


"...죄송합니다. 당신의 부탁을 들어드리지 못해서."

"자신을 대신해서 학생들을 이끌어 달라... 그것 때문에 어떤 결과가 벌어졌는지는 이미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로나는 고개를 들어 불타고 있는 키보토스를 바라보았다.

아니, 어쩌면 그 시점부터는 더 이상 아로나라고 부를 수 없는 존재가 된 그녀이기에.

그녀는 고개를 돌려 천천히 자신의 어깨에 적힌 직책을 바라보았다.


총학생회장.

그녀는 말없이 창 밖을 바라보며, 다가올 그녀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


 


과거회상 끝!

이제 최종장 진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