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

18화


***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다.

머리도, 내 가슴도. 어느 하나 성한 곳이 없다.


찢어질 것만 같은 두 눈과 이 증오스러운 헤일로.

이 빌어먹을 검은 헤일로 때문에 모든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어째서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해야만 하는지.

대체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렇게나 고통받아야 하는지.

의문투성이인 삶에 종언을 고하는 멘토이자, 사랑하는 이의 부재.

나는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사무실은 파괴되었고, 선생님은 죽어가고 있었다.

미처 상황파악을 채 하기도 전에 선생님은 내 품 안에서 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어떻게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은 것을 애써 무시하며 걸어온 길인데.

그런 내게 주어진 보상은 선생님의 완전한 죽음 뿐...


최후의 순간,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들은 멀쩡했고 선생님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나의 품 속에서, 선생님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마지막으로 남긴 사랑한다는 그 말.

비겁하게. 나는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고.


사랑해. 

어찌보면 빌어먹도록 단순한 말.

그 쉬운 말을,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흐윽... 흑.... 흐윽..."


타이밍.

그 놈의 타이밍이 문제였다.

어렵사리 꺼낸 진심도 생사의 장벽 앞에서는 장사 없었다.


'사랑해. 아루.'


그 말을 해서 어쩌자는거야?

그런 말을 하면 내가 감동할 줄 알았던거야?

아무 미련 없이 선생님을 그저, 그렇게 보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거야?

정말이지...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사람.


내가 당신을 사랑할 자격이 있기는 한걸까?

당신에게 그런 과분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었던걸까?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데...


대체 왜...? 

어째서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거지?

어쨰서 그토록 비굴하게 선생님의 죽음을 넋놓고 바라보기만 한거지?

어째서 마지막까지 선생님에게 도움다운 도움이 되어주지 못 한거지?


의지력이 없어서? 

정신력이 부족해서?

내가 게헨나 학생이라서?

그렇다면 너무 억울하잖아.


"신비의 전복을 위해...... 금지된 진리의 탐구를 위해...!!!!!"

"키보토스여.... 내가 돌아왔다...!!!!!!"


차마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위해서? 왜 다시금 저 고통의 도가니로 발걸음을 들여놓아야 하는거지?

머리로는 일어나라, 일어나라라고 하염없이 외쳤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걸 어떡해.

난 이미 지쳐버린지 오래인걸.


선생님께서는 항상 말씀하시곤 하였다.

너는 착한 아이라고. 믿음직한 사장님이 될 수 있을거라고.

사실, 나도 내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었다.

흥신소는 무슨... 그냥 동아리 수준인걸.


생각해보면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주변에서 나를 이끌어 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 이었다.

결정장애인 나를 도와주는 무츠키, 나를 의지하며 밀어주는 하루카, 모든 광경을 바라보며 조언해주는 카요코.

그리고... 나의 존경하는 동업자이자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선생님까지...

하지만 이제 어느 누구 하나 제대로 남아있지 않다.


하루카를 제외한 모두가 나의 곁을 떠나버린 지금.

나는 대체 무엇을 해야한단 말인가.


서서히 무너져내리는 건물.

한껏 금이 간 벽면과 파편들이 사정없이 흔들리는 상황.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나도, 그녀들도 모두 죽을게 뻔했다.


이대로 포기해야만 하는걸까?

솔직히 말해 다들 일어날 기미도 보이지 않고, 깨어있는 것은 오로지 나 뿐.

여기서 하루카만 대리고 몰래 몸을 피하여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솔직히 지금까지 열심히 해왔으니까.


블랙마켓으로부터 게헨나를 거쳐 샬레까지.

그리고 다시금 블랙마켓으로부터 샬레까지 한참을 걷고 또 걸었다.

이 정도면 많이 했잖아. 이제 그만 쉬어도 되잖아 솔직히.


하지만.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일어나야만 했다.


우리들을 살리기 위해 선생님이 죽었다.

이대로 홀로 피하거나 도망치는 것은 그의 마지막 의지를 욕보이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건 싫었다. 그 동안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다면, 마지막 순간에서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비록 빌어먹게 고통스럽더라도.

더 이상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더라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싸움을 평생 동안 이어 나가야만 한다 해도.

지금 이 상황에서 색채의 영향력을 받지 않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으니까.

나만이 선생님의 의지를 이어나갈 수 있었으니까.


나는 천천히 바닥에 떨어져있던 상자를 집어들었다.

사정없이 깨져있는 액정의 파편들이 절로 나의 마음을 후벼왔다.

내가 지키지 못한 우리 선생님... 우리들의 선생님...


"...어차피 듣지도 못할거.... 기왕 이렇게 된거.... 흐윽..."

"말해줄게... 선생님..... 훌쩍, 흐윽... 그러니 꼭.... 들어줘야해.....?"


마지막까지 고생만 하다 가신 나의 사랑하는 선생님...

나는 천천히 두 입술을 열어 그에게 바치는 마지막 헌정시를 노래했다.


"선생님.... 선생님....."

"사랑해요... 선생님..... 흐윽, 흑....."

"저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건... 진심입니다... 선생님...!"


차가운 디스플레이의 감촉.

부드럽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유리판 일 뿐이지만...

왜일까. 어째선지 줄곧 아파왔던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말했다. 이제서야 비로소 말할 수 있었다.


"...잘가. 선생님."


대답없는 선생님의 마지막 유산.

그것을 도로 품 속에 넣은 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직 미처 깨어나지 못한 그녀들이 이리저리 널부러져 있었다.

영거리에서 폭발을 직격당했음에도 흔하디 흔한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

아마 선생님의 마지막 사념이 발현된 결과물인듯 했다.


그 이후의 일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걷고 또 걸었다. 선생님의 마지막 염원을 이루기 위해.

그녀들을 안전하게 내려보내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을 때 마다 땅이 푹푹 꺼져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미친듯이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도 끝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러는 사이 오느새 내 치마는 모두 해지고, 옷깃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하아... 하아... 하아..."


황폐해진 주변 풍경.

체리노의 전차 부대는 어디가고, 오직 황량함만이 남은 이곳.

근처 잔해에 지친 몸을 뉘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구해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때 마침 신음을 내며 천천히 눈을 뜨는 히나 선도부장.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그녀를 맞이하려 다가갈 수가 없었다.

내 두 다리는 이미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상태였으니까.


무릎은 작살나서 뼛조각이 떠나디고.

허벅지는 파열되어 흐물흐물 거리는 상태.

아마 이젠 두 번 다시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평생동안 잊지 못하겠지.

당신의 마지막 기억을, 당신과의 이 교감을.


그것이 행복한 사랑의 기억이든 가슴 아픈 사별의 기억이든 간에, 선생님.

당신과 함께라서 행복했어요.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


***



시험 끝났다!!

다시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