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

20화


***


"....늦었어요."

"이미 너무 늦어버렸어요....!"


조용히 고개를 떨어트리는 세리나.

눈물 젖은 그녀의 눈가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ㅁ,뭐어? 그럴리가."

"아루 짱이...? 아루 짱이 왜...??"


"모르겠어요.... 망가진 다리 상태로 보아 아마 우리들 모두를 대리고 내려온 것 같은데..."

"어째서...? 단순히 그런 이유 만으로 이렇게까지 다리가 망가질 리가 없는데...? 어째서...??"


세리나는 이마를 쥐어막으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환자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것도 수차례씩이나.

거기다가, 이젠 환자의 사인조차 알지 못했다.


완전 의사 실격이었다.


"우우.... 우우우.... 죄송... 죄송합니다..."
"살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너무 늦어버려서 죄송합니다...!!"


무너질대로 무너져내린 감정과 속마음.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누군가를 치료해 나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이 광경을 말없이 바라보던 미카는 세리나를 부축하여 일으킨 뒤, 아루를 형하여 다가갔다.


"아루 짱...."


싸늘하게 식어버린 그녀의 피부.

말없이 이를 어루만지며 미카는 눈물을 흘렸다.


불과 몇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함께 떠들기 바빴던 입.

이 입술. 이 볼. 이 팔다리까지. 모든 것들이 그녀의 기억 아래 선명하게 남아있음에도.

두 번 다시 그녀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미카의 가슴을 더더욱 옥죄어오기 시작했다.


"왜... 나에게 있어 소중한 사람들은 모두 먼저 가버리는거야....?"

"선생님도... 코하루 짱도... 나기 짱도... 삿짱도... 이젠 아루마저...?"

"...싫어. 더 이상은 싫어....!! 싫단말야...."


옥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오열하는 미카.

헝클어진 머릿결과 더불어 지직거리는 헤일로가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 했다.


"아루..."

"결국... 너도 리더의 곁을 따라 가버린거구나..."


"아루 공... 어째서 이런 일이..." 


모두가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던 그 순간.

어디선가 희미한 신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으으... 으으으..."


아파오는 머리를 짚으며 깨어난 소녀는 다름 아닌 하루카.

미처 혼란으로 부터 회복되지 못한 것인지, 그녀는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을 향한 수많은 시선들의 존재를 알아챈 하루카는 눈에 띄게 당황한 모습을 보이며 말했다.


"ㄴ... 네? 다.... 다들 무슨 일..."


차마 시선을 한 곳에 두지 못한 채,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어쩔 줄을 몰라하는 그녀.

그러나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위화감 가득한 분위기에 하루카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무.... 무슨 일이죠...?"


긴장을 애써 억누르며 내뱉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목소리.

그녀의 외침은 간절하였으나 어째서인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


그녀들의 시선 너머로 느껴지는 슬픔, 측은함, 동정.

왠지 모르게 퉁퉁 부은 눈가와 더불어 수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었다.

이에 하루카의 불안감은 점차 증폭되어 차마 스스로 억제할 수 없을 수준에 도달하고 말았다.


"허억... 허억..."


'뭐, 뭐가 문제인거지...? 내가 잘못을 했나...?'


정말이지 아무 것도 모르는 그녀, 아구사 하루카.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그녀들은 쉽사리 그녀에게 진실을 알려줄 용기가 나지 않았다.


"..."


"..."


평소 그녀가 얼마나 아루를 따르고 소중히 여겨왔는지 잘 알고 있는 그녀들이었기에.

그렇기에 더더욱 말할 수가 없었다. 만일 그녀가 아루의 죽음을 알게 된다면 어떠한 참극이 벌어질 지 알 수가 없었기 떄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들 나름대로의 배려는 하루카에게 도움은 커녕, 오히려 독이었다.

그녀 입장에서는 모두 자신을 말없이 노려보며 무시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었으니 말이다.

이에 떨려오는 목소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하루카는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높였다.


"뭐.... 뭐에요...? 왜 다들 저를 그런 눈으로..."

"아... 아루님? 아루님은 어디에.... 저기, 알려주시지 않을래요?"


하루카가 나름대로 용기를 낸 결과, 그녀들은 눈에 띄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카는 여전히 그녀들로 부터 아무 대답도 들을 수가 없었다.

결국 인내심에 한계가 온 하루카는 천천히 입을 열어 한층 또렷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저,정말... 장난은 이 쯤 해주시면 안될까요....?"

"제... 제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이유는 알려주셨으면 좋겠는데요..."


"..."


"..."


"...하아. 알겠어."

"일단, 근처 시설물로 들어가자. 여기선 말하면 안될 것 같거든."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고자 나선 히나.

그녀의 언질을 시작으로 줄곧 침묵을 유지하던 그녀들의 입도 차례대로 열리기 시작했다.


"그,그래! 자세한건 나중에 설명해 줄게."

"샬레가 무너져서 은신처를 찾아야 하니, 일단 지금은 움직일까 하루카 짱?"


그러나 하루카는 예리했다.

적어도 자신에게서 무언가를 숨기려는 의도가 빤히 드러나는 그녀들의 태도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둔감하지는 않았다.

말없이 주변을 둘려보던 하루카는 생기를 잃어버린 눈빛으로 미카를 향해 되물었다.


"...그런데."

"아루 님은.... 어디 계시나요?"


"...!!!"


그녀의 촌철살인에 모두의 움직임이 멈추고야 말았다.


"뭐... 뭐라고 했어 방금...?"


"ㄴ,네? 그... 그게..."

"다른 모든 분들은 멀쩡히 계시는데 아루 님만 보이지 않아서..."


"어.... 그,그러니까..."


미카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하루카의 시선을 피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그녀의 순수한 눈망울을 이 이상 바라보았다간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애처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미카에 히나는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었다.


"아루는 치료를 받는 중이야."

"알아서 잘 회복하는 중이니 지금은 관심 끄도록 해."


"치,치료요...? ㄷ...대체 왜...."

"그,그렇다면 더더욱 찾아뵈어야..."


"안돼. 불허할거야."
"지금 당장 우리들을 따라 은신처를 찾도록 해."


"ㄴ...네? 그,그치만..."


당황하는 하루카를 억지로 잡아끄는 히나.

대체 시간이 얼마동안 지난건지는 몰라도 한시가 급했다.

그녀들이 잠들어 있는 동안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바램과는 다르게 하루카는 쉽사리 포기할 줄을 몰랐다.


"하루카... 괜한 짓 하지 말고 따라오도록 해."


"그.... 그래도...!!"


"하루카!!"


"시.... 싫어요!!!"


"...뭐어??"


히나의 손을 뿌리친 뒤 황급히 총을 겨누는 하루카.

불현듯 일어난 돌발상황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긴장한 채 숨을 죽였다.

하루카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히나를 향해 말했다.


"어째서... 어째서 모든걸 숨기시는거죠....?"
"전 단지 아루 님을 만나고 싶을 뿐인데... 어째서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거에요...!!!!"


"하,하루카. 일단 진정을..."


"알아요! 안다구요!!!!"

"아루 님은.... 돌아가신거잖아요...? 그쵸...?"


"...!!"


하루카의 발언에 그녀들 모두가 제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다.

너무나도 당황한 나머지 말을 잃어버린 히나와 충격을 받은 유우카, 그리고 미카까지.

모두를 천천히 둘러보던 하루카의 눈가에 맺혀있던 눈물이 또르륵. 하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야... 당연하잖아요...?"

"아루 님은... 제가 쓰러져 있을 때 가만히 놔두실 분이 아니에요..."

"무슨 일이 있어도 깨우고... 은신처를 찾는다고 해도 함께 찾아고 하시는 분인데..."


"..."


"그런 아루 님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는... 분명히 제 예상이 맞는거겠죠...? 그쵸...?"

"그러니 부탁이건데... 부디 그 위치를 알려주세요... 마지막 가는 인사라도 할 수 있도록..."

"상황이 급하잖아요....? 색채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으니...."


애절한 하루카의 말에, 히나는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너무나도 이기적이었다. 하루카가 겪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터인데.

그런 그녀를 단지 대의라는 명목하에 희생시키려고 한 자신이, 히나는 너무나도 미웠다.


"...미안. 미안해..."


조용히 고개 숙인 채 흐느끼는 히나.

하루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아아... 아루님...."


잠시 뒤.

고이 잠든 아루의 시신 앞에 도착한 하루카.

그녀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조용히 닦아낸 뒤, 아루의 거친 손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

"....크흑, 흑.... 아루.... 아루니이임...."


방울방울 떨어지는 뜨거운 눈물.

그것은 이내 차갑게 식어버린 그녀의 손등 위를 서서히 물들이기 시작했다.


"왜.... 왜애애...."

"훌쩍, 후으윽..... 콜록... 콜록!!! 콜록!!!!! 케엑...!!!!"

"쿨럭.... 흐으..... 흐으으으윽..... 아루..... 아루니이이임...."


눈물, 콧물, 끈적힌 침까지 흘러내려 범벅이 된 상황.

하루카는 자신의 얼굴이 망가지는 것 조차 알지 못한 채 하염없이 흐느끼기만 할 뿐이었다.

유우카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차마 더 이상 바라볼 수가 없었다.


"쿨럭.... 쿨럭!! 쿨럭... 쿨럭...."

"우욱, 욱..... 끄웨에에에에엑....!!!! 후우..... 후우...."


결국, 근처로 피신하여 빈 속을 게워내는 유우카.

허나 아무리 토하고 또 토해도 특유의 구토감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크흑.... 흑... 젠장..."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친우의 오열에 그녀의 마음도 절로 착잡해지는 듯 했다.

노아는 말없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등을 두드려주며 위로하였다.


"유우카 짱..."


"어떻게...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거지...???"

"우리 작전은 분명... 수차례나 검증에 또 검증을 거쳤잖아... 그런데 어째서....!!!"


"흐윽, 어째서어...!!!! 어째서 또 누군가를 잃어야만 하는건데...?"

"이 빌어먹을 재앙은 대체 언제 끝나는거야... 어째서 우리가 이 모든걸 겪어야만 하는거야...."

"왜.... 흐윽..... 왜애애애애...!!!"


"유우카 짱... 일단 진정을..."


"진정...? 진정이라니.... 어떻게 이 상황에서 진정을 할 수가 있겠어...!!!"

"동료가.... 흐윽, 동료가 또 죽어버렸는데... 나는 바보 같이 아직도 살아있는데...!!!"

"어째서 아무 죄도 없는 아루가 죽어야 하는거야...? 왜...??"


죄.

그 단순하고도 명확한 단어가 노아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날아와 꽂혔다.


"후우.... 흣..."


과거 밀레니엄의 모두가 이성을 잃고 불타던 시절.

유일하게 나마 학원의 치안을 보호하던 사조직이 있었다.

엔지니어부가 그 주인공이었다.


"..."


노아는 천천히 죄의 의미에 대하여 사색하였다.

자신이 지은 죄. 유우카가 지은 죄. 모두가 지은 원죄.


도움을 요청하는 게임개발부를 매정하게 내쫒은 죄.

세미나의 이름으로 엔지니어 부를 처참하게 탄압한 죄.

밀레니엄의 치안을 무너트려 버린 죄.


마지막으로.

선생님을 미워한 죄.


"..."

"...유우카 짱. 일단 일어나 봐요."

"부축해드릴테니, 자. 함께 이동하도록 하죠."


선생. 선생이 문제였다.

아루의 죽음이 준 충격 탓에 어느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지만, 노아만은 알 수 있었다.

선생이 또 다시 실종되었다.


물론 동료의 죽음은 매우 슬픈 일. 노아라고 해서 별반 다른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특유의 완전 기억 능력 때문에 그동안 아루와 보내왔던 추억이 모두 떠오르는 상황.

하지만 그녀들에겐 더더욱 중요한 사명이 유효한 채 남아 있었다.


'색채도 멀쩡하게 남아있고... 선생님은 또 다시 사라지셨어요...'

'히나 씨도, 유우카 짱도... 심지어 그동안 우리들의 구심점이 되었던 아루 씨도 돌아가신 지금...'

'선생님... 선생님이 아니면 이 상황을 차마 타개할 수가 없을지도 몰라요...!'


유우카를 천천히 부축하며 일어난 그녀.

하지만 어째서인지 차마 발걸음이 쉽사리 떨어지질 않았다.


'...하지만.'


노아는 천천히 뒤를 향하여 돌아보았다.

조용히 불어오는 바람과 더불어 혈색을 잃어버린 아루의 시신이 하루카의 옆에서 천천히 흩날리고 있었다.

건조하고도 한없이 끔찍한 광경에 그동안 애써 억눌러왔던 노아의 울분 또한 서서히 고개를 내밀었다.


'...결국. 저는 또 다시 동료를 지키지 못했어요.'

'코유키... 엔지니어 부... 모두들... 어째서 저는 항상 이 모양인걸까요...?'

'아루 씨... 어째서 그토록 일찍 가버리신 거에요...? 남겨질 우리들이 불쌍하지도 않으셨던건가요...?'

'어쨰서... 어째서 그렇게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지려고 한거에요...? 마치 선생님 처럼...'


갈 곳을 잃어버린 분노는 이내 한없는 슬픔으로 바뀌어 그녀의 혈관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또 다시 동료를 잃었다는 허무함. 잊을 수 없는 원죄에 대한 죄책감과 더불어 노아의 눈빛도 서서히 떨려오기 시작했다.


"....후우."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아직 수많은 학생들이 잠들어 있고 색채는 멀쩡히 살아있는 상황.

잊고 싶은 기억들을 무시하는 것 쯤은 그녀에겐 일도 아니었다.


 'Qui aimes-tu le mieu...'

'homme enigmatique, dis...?'


조용히 울분을 삼키며, 그녀는 속으로 되내었다.

지금껏 고통에 휩싸일 때 마다 머릿속으로 수없이 외쳤던 문장을.

한없이 절망적인 상황에도 그녀를 버틸 수 있게 만들어준 문장을.


"...선생님. 일단, 선생님을 찾도록 하죠."

"히나 씨. 근처에 싯딤의 상자가 떨어져 있는지 좀 찾아봐 주시겠어요?"

"상황이 악화된 지금, 그 어느 때 보다 선생님의 지도가 간절히 필요한 상황이니까요."


"...ㅁ,뭐? 싯딤의 상자...?"

"아... 그러고 보니 선생의 존재에 대해 완전히 잊고 있었어..."

"고마워... 노아."


유우카와 히나가 무너져버린 지금, 자신마저 무너지면 지휘체제는 그대로 붕괴되기에.

때문에 노아는 슬퍼도 그저 악으로, 의지력으로 버틸 수 밖에 없었다.


빠져나올 수 없는 기억의 늪에서 끝까지 기약없는 발버둥을 치며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그녀의 죄에 대한, 그녀 나름대로의 속죄 방식이었던 것이다.


.

.

.


그 순간.


"...얘들아?"


"...어?"


어디선가 들려오는 한없이 익숙한 목소리.

이에 노아를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한 곳을 향하여 집중되기 시작했다.


피어오르는 연기가 걷히고, 모습을 드러낸 한 남성.

꾸밈없이 털털한 외모와 잔뜩 더벅진 검은 머릿칼의 소유자.

어딘가 2퍼센트 부족한 완벽함이 더해진 흰 양복을 입은 남성의 등장에 일순간 공기의 흐름이 멈추었다.


"...얘들아, 너희들 맞지??"
"휴우... 다행이다.... 한참 찾았잖아...!!! 다들 어디 갔던거야...!!"


"선생... 님?"


"어...? 노아? 노아도 살아 있었구나...!"
"다행이다... 정말... 정말 다행이야..."


불현듯 모습을 드러낸 선생.

분명히 죽었을텐데. 그의 시체가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모두가 목격했는데.

아로나에 의하여 의식이 뽑혀 통속의 뇌가 된 것을, 분명히 보았는데.


"이... 이게 모습이 조금 추리하지? 급하게 나오느라..."

"여러가지 의문이 느껴질건데, 일단 새로운 육체를 얻었다고만 해둘게... 헤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녀들 앞에 멀쩡한 육체를 지닌 선생이 서 있었다.

굳어버린 분위기는 이내 혼란으로 뒤바뀌었고, 이는 유우카도 마찬가지였다.


"서... 선생님이에요...? 정말로... 제가 아는 그 선생님이세요...???"


"으응... 일단은 그런데..."


"증명해봐요."


"뭐?"


"우리가 당신을 믿을 수 있도록 증명해보라구요!"


"유,유우카 그게 무슨 ㅁ..."


철컥.

유우카를 비롯한 모두의 총구가 선생을 향하여 겨누어졌다.

이에 선생은 크게 당황하면서도 그녀들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우.... 우와아아아악...???"
"왜, 왜 그러니 얘들아...???"


그토록 고대하던 재회의 순간.

그럼에도 그녀들은 마냥 안심할 수가 없었다.


평소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수많은 이변들을 질리도록 겪어온 그녀들이었기에.

과한 의심이라기엔 색채가 두 번이나 부활한다는, 전대미문의 상황이 이미 일어났었기 때문에.

그녀들의 의심은 이미 최고로 치달아 있는 상태였다.


"말 그대로... 증명해주세요."

"저희가 선생님의 부활을 믿을 수 있도록... 증거를 보여주시란 말이에요...!"


"어... 잘 안 믿기나? 내가 뭐라고 대답해야하지..."

"그렇다면 뭐, 아무거나 물어볼래?"


"그... 그렇다면 그..."

"저와 처음 만났던 순간... 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보세요!"


"음... 그게 아마 첫 부임을 했던 날이었지...?"
"당시 탄약 값이 청구되지 않았다며 너가 내게 찾아왔고, 거기서 너가 대신 가계부를 써줬잖니."


"그,그런..."


"그때 너가 내 영수증을 보고 이상한 오해를 해서 막 화냈었잖아. 기억 안나?"

"그 뭐시냐... 클럽 말랑말랑 인가? 가챠겜인데 너가 오해를 해서 그만..."


마치 미리 입력된 대답을 출력하듯, 선생은 유창하게 유우카의 질문에 답변하였다.

그와 동시에 긴장중이던 그녀의 손의 떨림도 차차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쪽은... 히나, 히나 맞지?"

"히나에겐 내가 못볼 꼴을 참 많이 보였었는데... 그건 정말 미안."

"하지만 다 고의가 아니었다고...? 그러니 오해는 말아주라."


"무...무슨, 뭐어...?"

"다, 당신이 어떻게 그걸... 설마 진짜로...?"


"그리고 미카."

"잘해줬구나. 정말 잘 버텨줬어."
"역시, 나의 공주님이야."


"......와오."


차례차례 그녀들과의 인연에 답변하는 선생.

그녀들 개인이 아니라면 절대 모를, 지극히 개인적인 정보들.

이에 한없이 날카로웠던 그녀들의 의심도 서서히 누그러지는 듯 했다.


"그런 그렇고..."

"오랜만이야, 모두들."


"선생님...!"


유우카는 무기를 떨어트린 뒤, 서서히 선생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걸음은 점차 빨라져 나중가선 차마 그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자신에게 달려와 안기는 유우카를, 선생은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주었다.


"선생님... 선생님...!!!"

"정말.... 흐윽, 흑.... 정말 죄송해요... 죄송해요...!!"

"제가... 제가 선생님에게 상처를 입히고 말았어요... 정말로... 흐윽, 죄송해요...!!"


"...아니야, 유우카."

"난 다 이해해... 너희들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까지 말이야."


"흐윽.... 흑...!!"


유우카는 이후 한참 동안이나 선생에게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이에 조바심을 느낀 그녀들 또한 선생을 만나기 위해 하나 둘 씩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자,잠깐... 뭔가 이상해요..!! 다들 움직이지ㅁ..."


"정말, 유우카! 너무 붙어있는거 아니야?"


"맞아요 유우카 공! 오랜만에 돌아온 주군인데, 조금 양보해 주시죠!"


"선생... 정말 선생이 돌아왔어...!"


천천히 두근대는 심장.

히나는 남몰래 전해져오는 떨림을 간직하며 천천히 한 발짝 한 발짝.

그를 향하여 걸음을 때어놓았다.


쿠웅.

그 순간, 유우카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에 기뻐 날뛰던 그녀들의 발걸음도 일순간에 잦아들었다.


"어... 어어?"


"난 모두 이해해... 선생이니까."

"하지만 이해를 한다고 했지... 용서한다고는 안 했다...?"


두 눈에 생기를 잃은 채, 배에서 피를 쏟아내며 쓰러진 유우카.

상처에서 흘러나온 혈액은 잿빛 콘트리트 바닥을 서서히 붉게 물들어갔다.


"내가 겪은 고통... 그때 너가 나를 이렇게 찔렀잖니? 유우카."


그의 손에서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낸 은빛 칼날.

뚝뚝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낸 선생은 만족스럽다는 듯, 신음하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우욱... 쿨럭, 쿨러억... 흐으...!!! 헤엑..... 헤에에엑....!!!"


"뭐야... 아파? 아픈거지?"

"하지만 말야... 난 더욱 아팠거든...!!!!"


콰직.


"욱.... 끄웩.... 꺄하아아아악...!!!!"


"너가...! 이렇게...! 내 배를 찔러대서...!!!"

"하아... 하아... 결국 내가 죽어버린거잖아... 안 그래...?"


콰직.


"크훅..... 갸아아아악...!!!!!"

"끄우욱.... 끄윽..... 끅......"


콰직.

콰직.

콰직.


구토인지 피인지 분간조차 되지 않는 액체를 연신 토해내며 몸부림치는 그녀를, 선생은 잔혹하게 연신 짓밟아 대었다.

그렇게 수차례를 밟아댄 끝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쌀이 찌푸려질 정도로 안쓰럽게 발작하던 그녀의 움직임도 결국 잠잠해지고야 말았다.


"흐윽....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노아의 소름끼치도록 처절한 비명을 시작으로, 그녀들 모두가 다시금 총을 꺼내어 선생을 조준하였다.

그러나 선생은 마치 이를 예상했다는 듯, 조용히 유우카의 옷으로 칼날을 닦아내기만 할 뿐.

그녀들을 피해 달아나거나, 그녀들을 공격하지도 않았다.


"어라라... 뭐하는거야 너희들?"

"선생님을 총으로 겨누다니... 무슨 행동이니 지금?"


"선생님... 선생님이 지금 무슨 짓을 한건지 알아...????"
"유우카 짱은 계속 선생님을.... 선생님을 기다려왔는데 어째서...."


"흐음... 그야 유우카가 나를 죽이는데 일조 했으니까?"


"그... 그런..."


"그러는 미카야 말로, 어째서 살아있는거야?"


"ㅁ...뭐어...???"


선생은 생긋, 하며 미소지었다.

사정없이 떨려오는 미카의 눈빛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선생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나기사를 죽였고, 코하루를 지키지 못했잖아. 그리고 과거 트리니티에서 날 체포하라고 지시했던것도 너라면서?"

"...대체 왜 사는거야? 너가 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무슨 낮짝으로 날 보려 돌아온거야? 구원? 그게 무슨 배부른 소리지?"


"왜.... 왜 그래.... 갑자기 왜..."


"웃기기 짝이 없다는거야. 얘들아."

"너희들이 무슨 자격으로 세상을 구해? 애초에 세상을 망가트린건 너희들이잖아?"

"너희들이 바보같이 색채에 감염되는 바람에... 키보토스가 이 꼴이 난거라고?"


"아.... 아니야.... 아니야아....."


"아니긴 뭐가 아냐? 지금도 내 귓가엔 똑똑히 들려."

"미카가 죽인 수많은 사람들과 원혼들의 절규소리가... 모두 미카 너 한 명 때문에 일어난 일이잖아?"

"에덴 조약 당시에도 미카가 모든 일을 망친거잖아? 세이아도 너가 죽일뻔 한거잖아?"


"우.... 우우우우우....."


"내 말이 틀려? 너가 모든 일을 망쳐버린거라고."

"검은 헤일로? 그딴게 뭐가 중요해. 넌 이제 더 이상 내 학생이 아니야. 내 학생은 사람을 죽이지 않거든."

"하아.... 애초에... 애초에 태어나지도 않았으면 좋았으련만. 한심하게시리."


"..."


결국 빛을 잃어버린 그녀의 맑은 눈동자.

믿고 의지해왔던 자신의 구원자로부터 존재가치를 전면으로 부정당했으니.

그녀가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푸훗, 푸하핫...!!"

"역시... 너희들은 아직 아이라니까?"


조각조각 해체된 미카의 멘탈을 비웃듯이 조롱한 그는 천천히 미카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충분히 방아쇠를 당길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과정에서 미카는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미카."


미카의 총구를 들어 슬며시 치우는 선생.

눈물이 가득 고여버린 그녀의 눈동자에 가볍게 바람을 불어넣으며, 그는 말했다.


"사죄해."

"방법은... 알지?"


"..."

"...."

"....ㄴ...녜에에... 선생님...."


타앙!

울리는 총성과 함께, 뒷통수가 날아가버린 미카의 시신이 힘없이 바닥을 향하여 엎어졌다.


"미.... 미카아아아아아....!!!!!!!!"


"이...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람...????"

이윽고 선생은 기어이 그녀들 모두를 공황상태에 빠트리고야 말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선생은 멈추지 않았다.


"히... 히이이이익...!!!!"

"다... 다가오지 말아요... 다, 당신은 선생님이 아ㄴ..."


"노아. 너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모두 말해봐."


"ㄴ,네에? 싫... 싫어요...!!!! 제가 왜 당신에게..."


"노아."

"말해."


선생은 말없이 다가가 노아의 눈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이내 빛을 잃어버린 동공과 함께, 노아는 천천히 그녀의 기억을 되짚기 시작했다.


".....작전 개시 후 13분 24초... 우리들은 다함께 문을 열고 진입했어요..."

"작전 개시 후 14분 18초... 고치가 열리고 그것이 뛰쳐나왔고... 그 다음은... 그 다음은..."

".....아아, 어쩌죠...?? 기억이 나질 않아요... 대체 왜.... 어째서.... 어째서어???"


"흐음? 왜지? 넌 서기가 아니었나?"

"서기가 기억을 하지 못해서 어떡해? 그게 정녕 서기라고 할 수 있는거야?"


"기억을... 기억을 할 수가 없어요.... 선생님이 돌아가시는 그 순간이... 아무리 기억을 돌아보아도 떠오르질 않아요..."

"하하.... 하하하하...!!!! 이거 완전.... 서기 실격이네요.... 그쵸? 저는.... 저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는거죠???"

"그런...거죠....??? 선생님...??"


"응."


"...하핫, 하하핫..."

"하하.... 아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핫!!!!!"


타앙!

흩날리는 붉은 증기.

잠시 뒤 하관이 사라진 노아의 몸뚱아리가 철퍽, 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지고야 말았다.

두 번이나 벌어진 끔찍한 상황에 그녀들 모두가 그만 패닉에 빠지고야 말았다.


그럼에도 선생은 멈추지 않았다.

차례차례, 한 사람 또 한 사람.


선생은 천천히 그녀들을 압박하였고, 그떄마다 끝은 항상 단발의 총성이었다.

이미 마음이 무너져버린 하루카,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와카모를 제외한 모두가 당해버린 끔찍한 상황.

그의 잔혹한 복수극도 어느덧 마지막 목표 단 한 명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사오리... 사오리가 없네 그러고보니..."

"진짜 시발... 왜 먼저 뒤져가지고는... 끝까지 도움 안되는 년이네..."


철컥.

자신을 겨눈 히나의 총구에 선생은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두려움과 당혹감, 그리고 분노에 그녀의 손은 미친듯이 떨리고 있었다.


"ㄷ....닥쳐!!!!!"

"너.... 너 대체 정체가 뭐야...!!!!"


"으응...? 히나, 무슨 일이야? 날 보고 싶었던게 아니었어?"
"아니면 두려워졌다거나... 뭐 그런거야? 응? 그런거야?"


"선생은.... 선생은 학생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었어..."

"원한이 있다고 해서 학생을 죽이거나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음... 하지만 생각을 바꿨는걸."

"그동안 너무 참은 것만 같아서... 너무 억울하잖아 그건?"


선생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그녀를 향해 다가섰다.

하지만 점차 다가오는 그의 발걸음에도 불구하고, 히나는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어라... 왜 안 쏘는거야?"


"히익... 히이익.... 힉..."


"역시 너도, 너 스스로의 죄를 알고 있는거지?"


그의 물음에 히나는 한사코 고개를 더으며 저항하였다.

하지만 그녀가 저항에 저항을 이어나갈수록, 선생은 점차 더 가까이 다가왔다.


"이오리... 아코... 보고싶지 않아?"


"에... 에에...??"


눈가에 불어오는 알싸한 바람.

따뜻하고도 부드러운 포근함에 그녀를 감싸던 긴장마저 풀리고야 말았다.

선생은 천천히 미소지으며 히나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너가 버려두고 온 그녀들... 만나게 해줄 수 있어."

"그 뿐만이 아니야. 죽어버린 치나츠도 불러올 수 있다? 지금의 나는 그런 힘이 있거든."


"저... 정말로...?"


"응. 정말로."

"단지 히나 짱이 나의 말만 잘 따라준다면 말이야."


귓가에 울리는 그의 목소리.

이에 히나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열심히 했잖아."

"그 누구의 명령도 아니었지만 열심히 살아오고 버텨왔잖아. 이제 쉴 때도 되었지, 안 그래?"


이제 어찌되든 좋았다.

자신의 마음을 콕콕 쑤시듯 파해치는 그의 공격적인 언행.

히나는 서서히 굳었던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아아아..."


온 몸을 감싸는 알싸하고도 편안한 기분.

히나는 그 기분을 차마 놓치고 싶지가 않았다.


"옳지... 그렇게 천천히... 천천히 겨누면 돼."

"방아쇠만 당기면 넌 쉴 수 있어. 따뜻한 집에서 이불을 덮고 누워서 귤을 까먹을 수 있다고."


"헤... 헤헤.... 헤헤헤...."

"선생... 선생니이임..... 헤헤헤...."


"방아쇠를 당기렴 히나..."

"히나... 나의 소중한 히나..."

"나의 소중한 모르모트... 나의...!!!"


.

.

.




https://www.youtube.com/watch?v=n67Gh4OxpWA





"잠깐, 거기까지."


"...?"


타아앙!!

공기를 가르는 매서운 탄환과 함께 선생은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뒤로 나가 떨어지고야 말았다.

이와 동시에 히나를 감싸던 특유의 알싸한 기분도 일순간에, 마치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 처럼 사라졌다.


"힉... 히이이익!!!!!"

"허억...!!!! 허억.... 허억...."


이윽고 의식을 되찾은 히나는 자신의 턱을 겨누고 있던 총을 떨어트린 채, 힘없이 주저 앉고야 말았다.

곳곳에 널브러져있는 다른 이들의 시체들. 이를 바라보며 그녀는 생존했다는 안도감과 죽음의 문턱에 대한 공포감에 떨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대체... 대체 누가....?? 욱... 우욱...!!!"

너무나도 끔찍했던 광경 탓일까, 히나는 자신도 모르게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핏줄이 잔뜩 선 두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며, 비로소 긴장이 풀린 그녀는 천천히 오열하였다.


"...선생님이 했던 말의 의미를 이제야 알겠네."

"색채 저 쓰레기 새끼를.... 대체 어떡하면 좋을까...?"


그떄, 그런 그녀의 등 뒤로부터 누군가가 나타나 서서히 일어나는 선생을 향하여 총구를 겨누었다.

히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늘거리는 붉은색 털코트.

머리 뒤에 솟아난 한 쌍의 뿔과 붉은 머릿칼.

그리고 분노에 이글거리는 황금빛 눈빛까지.


"너... 너는...?"


좌로 보나 우로 보나,.

영락없는 리쿠하치마 아루였다.


"히나... 미안. 내가 너무 늦었지."

"마지막 말을 끝마쳤어야 했는데... 만일 그랬더라면 이런 사단이 일어나지는 않았을텐데...!!"


"자,잠깐.... 아니아니 잠깐만...."

"...어? 너.... 너 대체 어떻게....???"


아루는 말없이 부숴진 싯딤의 상자를 품속에서 꺼내어 보였다.

그곳에 첨부되어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적당한 크기의 검은색 정사각형. 

이윽고 바람이 불어오자 바스라진 그것은 재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선생님의 마지막 유산이야."

"선생님은 이걸 [어른의 카드] 라고... 부르셨지."

"모종의 계약을 하셨나봐... 우리들을 살리는 대가로... 이 어른의 카드를..."


그러나 히나는 그녀를 믿는 것 대신, 총구를 겨누는 것으로 화답했다.

이에 아루는 당황하면서도 마치 이해한다는 듯, 나긋나그산 목소리로 그녀를 달래기 시작했다.


"히나... 알아, 혼란스러운거 아는데..."


"너... 너 대체 누구야...?"

"내가 아는 아루는 분명히 죽었어... 내가 눈도 감겨줬단 말이야...!!!"

"그런데 다시 살아나서 뭐...? 어른의 카드으??? 그게 뭔데... 그게 뭐냐고 이 오타쿠야!!!!"


"자, 잠깐... 히나!! 진정해봐...!!"

"나도 처음엔 믿기지 않았어...!!! 나는 분명히 힘이 다해 죽었는데..."

"하지만 눈을 떠보니 모든게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단 말이야...!"


"그걸 내가 어떻게 믿어야해...?? 선생... 아니, 저것도 똑같은 말을 했단 말이야... 하지만 우리들을 죽였다고!!!"

"선생님이 색채라니...?? 눈을 떠보니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니...?? 내가 그걸 어떻게 믿는데... 대체 어떻게...!!!!"

"제발... 제발 내가 알아듣게 설명을 해주지 않을래...???? 뭐가.... 뭐가 어떻게 된ㄱ..."


"아루 말이 맞다."


그떄, 불현듯 뒷편에서 들리는 저음의 목소리.

미처 고개를 돌아볼 새도 없이, 그녀 앞에 백색의 자객이 나타났다.

코트를 흩날리며 나타는 그녀의 팔에는 선명한 해골무늬의 인장이 그려져 있었다.


"날 기억하고 있겠지, 소라사키 히나."


푸른 색의 헤일로와 검은색 모자를 쓴 그녀는 천천히 마스크를 벗은 뒤 히나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익숙한 얼굴에 히나는 그만 소스라치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너... 너....???"
"조마에... 사오리...?????"


"...쉽게 믿기지는 않겠지만, 그러하다."

"그나저나, 총구. 반대로 끼웠다."


능숙한 솜씨로 히나의 총기를 수입한 뒤 건내주는 사오리.

이 모든 광경이 히나는 그저 당황스럽기만할 뿐 이었다.


"키킥... 키키킥.... 아아... 역시, 역시 샬레의 선생이라니까..."

"설마 이런 와일드 카드를 준비해 두었을 줄이야... 키긱... 키히히힉...!!!!"


"아무래도... 우리가 너무 늦은 것 같군..."

"자세한건 훗날을 기약하도록 하고, 우선은 우리들에게 협력해라. 소라사키 히나."


"ㅁ,뭐어...?? 아니 난 아직 너희들을 믿지 못하겠다니깐..???"

"ㄴ... 넌 분명히 죽었다고... 그렇게 들었는데 어째서어...??"


"믿든지 말든지, 그건 너의 자유다."

"다만 키보토스를 지키고 싶다면... 이오리와 아코를 다시 만나고 싶다면..."

"...그렇다면 우리들에게 힘을 보태도록 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단호하면서도 차분한 목소리.

영락없는 조마에 사오리, 그 자체였다.


"...사오리, 준비해."

"녀석이 다시 일어나고 있어..."


"아아. 알겠다."

"...선택은 너의 몫이다, 히나."


그 말을 마지막으로, 사오리는 아루와 함께 선생을 향하여 돌진하기 시작했다.

히나는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에도 어느 하나 제대로 이해 되는 것이 없었다.


어른의 카드? 색채? 아?루 사오리?

모든 것이 마냥 꿈인 것 처럼 확실하게 이해 되지가 않았다.


그렇게 히나가 혼란스러워 하는 사이. 어디선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천천히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하여 돌아보았다.


"....어이어이, 장난하는 거지 지금...??"
"이거 몰래카메라인거지??? 그치??? 이런... 이런 일이...!!!"


그녀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던 다른 학생들의 잔인하고도 끔찍한 죽음.

그러나 왠지는 몰라도 뒷통수가 터지고, 하관이 깨졌던 그녀들이 다시금 멀쩡한 모습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전에 입었던 상처가 모두 회복된 것은 덤이었다.


"ㅁ...뭐야? 나 분명히... 선생님의 말을 듣고선... 어라?"

"나... 어째서 살아있는거지...???"


"콜록.... 콜록.... 허억... 헉...? 유우, 유우카 짱...????"


"켈록.... 켈록.... 흐윽.... 허어...???"

"노, 노아...? 나 분명히... 선생님에게 찔리지 않았었나...??"


"이.... 이게 무슨 일이야...???"
"대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냐고...!!!"


상식을 아득히 초월하여 벌어지는 현상에 히나는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감싸쥐었다.

분명히 죽었을 그녀들이 다시금 활력을 얻어 되살아나다니, 있을 수가 없는 현상이었다.


"...모르겠어.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겠어...!"

"다만...."


총구가 바로 설치된 전용 무기를 집어들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히나.


"저것이 선생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았으니까..."

"일단 공격해보면 뭐라도 알 수 있겠지 뭐...!!!!!!!!"


그녀의 두 눈은 방금 전의 아루처럼 의지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




연참... 했다고?

덕분에 뒤질 맛이지만... 그래도 가뭄 해소에 이바지 할 수 있다면야...


어른의 카드... 굉장해!

이제 더 이상의 피폐는 없다!

남은 것은 업보 후회와 붉은 겨울 뽕 뿐! 

마지막까지 많은 기대 바랍니다!


+중간에 움직이지 말라고 소리치는 존댓말 캐릭터는 와카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