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

26화


***


"아... 안돼... 안돼애애애...."


아루가 사라지고 남은 자리.

이오리는 하염없이 눈물만을 흘리며 좌절하고 있었다.


불과 몇 초 전 까지 자신의 눈 앞에서 미소를 짓던 그녀, 아루.

그녀의 전우이자 동료였던 아루의 죽음은 이오리에게 있어 적잖은 충격을 선사하였다.

모두의 구심점이었던 그녀의 죽음과 함께 승리의 희망도 그만 꺾이고 만 것이다.


"음... 으음... 음..!!!"


그러거나 말거나, 색채는 요란스럽게 몸을 뒤틀며 발작하고 있었다.

마치 다소 큰 사탕을 입에 넣은 어린 아이처럼, 저작운동을 반복하다 끝내는 삼켜버리고 만 색채.

잠시 뒤, 온 몸에서 황금빛 빛을 발하기 시작한 색채는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짓더니 천천히 입을 열어 말했다.


"드디어... 드디어 이로써 나는 완전해 질 수 있어..."

"이제서야 비로소... 진실의 탐구에 한층 더...!!!!"


잠시 뒤 주변이 밝아짐과 동시에, 거대한 빛의 고치가 색채의 말라 비틀어진 육체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로 인하여 불어오는 돌풍 탓에 이오리는 미처 슬퍼할 틈도 없이 파편에 치어 날아가고야 말았다.

아코가 정신을 차린 것은 그쯤이었다.


"으... 으윽... 머리야..."

"자, 잠깐... 대체 이게 무ㅅ... 이, 이오리..!!!!"


"나 때문이야... 나때문에 아루가 죽고 모든걸 망쳐버린거야..."


"이오리..!!! 정신차리세요!!!"

"크윽...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황.

아코는 아파오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한탄했다.


아루는 보이지 않는다. 이오리는 무너져 내렸다.

저 지긋지긋한 색채는 아직도 건제할 뿐이다.


"... ..."


환한 빛을 온 몸으로부터 뿜어내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색채.

잠시 뒤, 점차 사그러지는 빛 너머로 무언가의 형상이 아른아른 잡혀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더 이상 이전의 그 말라비틀어진 색채와 동일 존재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달라져 있었다. 


빛이 그치고.

흐트러진 허물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선생도, 기괴한 모습의 괴물도 아니었다.

무미건조한 민머리의 인간. 단지 그 뿐이었다.


그것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분간도 가지 않는 모습.

아니, 애초에 그것이 인간인지조차 불분명했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키던 아코는 이윽고 그것이 "또 한 번" 진화를 일구어 냈다는 사실을 깨닫고야 말았다.


비틀거리는 아코의 발걸음.

허나 물러서지는 않았다.


점차 무너져가는 그녀의 마음.

그럼에도 그녀는 또 한번 자신을 붙든 채 "그것" 을 향하여 나지막히 읇조렸다.


"...뭔가요, 정말."

"정말이지... 당신도 더럽게 끈질기군요...? 이제 정말 끝낼 때가 되지 않았나요...?"


"..."


"대체 언제까지 그토록 추하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살아날 심산이죠?"

"그렇게까지 살고픈 이유가 뭔데요... 뭐 어떤 강대한 목표이길래 우리에게 이런... 이딴 시련을 주는거냐구요!!!"


"..."

"삶."


"...에?"


순간이지만 아코는 느낄 수 있었다.

더 이상 "그것" 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마치 한 명의 인간처럼, 똑바로. 그것도 아주 또박또박 울려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거짓, 말."

"이거... 몰래 카메라인거죠? 그, 그런... 그럴리가..."


"..."


"아아... 안돼. 안돼안돼안돼..."

"어, 어째서... 어째서 당신이... 발걸음을 들여놓을 수 있었던거죠...?"


침묵.

그리고 침묵.


"어떻게... 그리고 기어코..."

"인간의 세계에...!"


"..."


"그것" 은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마치 갓 태어난 신생아, 그 이후의 유아기에 접어든 아동처럼.

세상 모든 만물을 새롭고 신기한 눈빛으로 처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이계의 존재, 침략자가 아니었다.

게슴츠레 머리 뒷편에서 모습을 드러낸 연분홍빛 헤일로가 이를 증명하였다.


"하아... 하아... 하아...."

"....후욱, 큭...!!!!!!"


아코는 곧바로 근처에 있던 철근 파편을 빼들어 "그것" 을 향해 돌진하였다.

곧이어 "푸욱", 하는 깊고도 둔탁한 파열음이 주변을 가득 매웠다.


"..."


"..."


"...우쿡, 쿨럭..."


붉은 피를 입가에서 쏟아내며, 배를 꿰뜷린 아코는 주저앉고 말았다.

쿵쾅거리는 심장과 더불어 점차 옥죄어오는 시야가 의미하는 것은 오직 단 하나의 결과 뿐 이었다.


"허억... 하아... 큭, 크윽..."


"..."


"하아... 하아..."

"읏...!! 크윽, 흐으... 흐으...!!!"


천진난만하게 자신을 향하여 다가오는 "그것".

본능적인 두려움이 아코를 감싸왔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차마 떨어지질 않았다.


끝내 아코의 앞에 도달한 "그것".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기에.

아코는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기회를 위해, 몸 안의 여력을 모조리 짜내어 터트렸다.


"...흐아아아아아아아!!!!"


.

.

.


"턱."


물론, 먹힐리도 없었다.

그녀의 혼신을 다해 내지른 주먹은 아주 가볍고 하찮게도, "그것" 의 손에 가로막히고야 말았다.

곧이어 힘이 다한 아코의 손도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지고야 말았다.


콰앙!


어마무시한 굉음과 함께 날아간 아코.

연기가 걷히고, 벽속에 박혀있던 그녀의 몸이 힘없이 쓰러졌다.


"....윽, 윽."

"쿨럭.... 윽.... 흑..... 흣...."


미약하게나마 붙어있는 마지막 숨을 발작하듯 들이쉬는 아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것" 의 육체에도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정돈되지 않은 체형은 말끔하게, 밋밋하던 얼굴은 자연스럽게.

어느새 머리카락까지 자라난 그것의 헤일로도 점차 제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읏. 흣, 읏."

"흣.... 읏. 으읏. 흣...."


"..."


언제 당장 쓰러져 사망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몸 상태.

그러나 그런 아코를, 어째선지 "그것" 은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


"...하, 뭐... 뭐야..."

"이제... 와서, 윽.. 동정심이라도... 하아... 든거야...?"


"..."


이에 대답이라도 하듯, "그것" 은 천천히 한 손을 들어올려 그녀를 겨누었다.

곧이어 환한 빛이 "그것" 의 손가 주위로 점차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야... 우리가 널, 쿨럭..."

"죽여도... 그나마 덜 죄책감을 느끼지... 하아..."


"..."


"...덤벼. 난 아직, 크윽...!!"

"하아... 하아... 후훗... 죽지 않았으니까..."


중심이 무너져 휘청거리는 다리.

볼품없이 박살난 두 팔과 주먹까지.

누가봐도 우습기 그지 없는 광경이었다.


.

.

.


'행정관님...!! 게헨나는 이미 가망이 없습니다! 부디 이곳을 빠져나가 주십시오!'

'...뒤는 저희들이 지키고 있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쉽사리 당하지만은 않을테니!'


.

.

.


'...이대로 죽을쏘냐.'

'이대로 허망하게 죽어버리기엔... 내 목숨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닌걸....!'


"허억.... 허억...."

"쿨럭...!!! 허억.... 허억..."


그러나 아코는 쓰러지지 않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색채를 가만히 노려보며.

아주 죽일듯이 노려보며 맹렬한 적의를 불태웠다.


"..."


"하아... 하아..."

"...뭘 망설이는거야? 덤벼... 덤비라고...!!!!"


"...!"


그 순간.

그 찰나의 순간, "그것" 의 손이 불을 뿜었다.


아코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곧 닥쳐올 환한 빛을 기다리며.

마침내 다가온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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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의 몸이 편해지는 법은 없었다.


배가 꿰뜷린 고통도.

두 팔이 박살나 뼈가 살가죽을 뜷고 나온 격통도.

그리고 무엇보다 미칠듯이 아파오는 머리의 두통까지도 그대로 느껴졌다.


거기다가 불현듯 느껴지는 따끔한 고통까지.

이상한 일 이었다.


"..."

"...아마우 아코."


"하아... 하아..."

"...엣? 나, 나 어째서 살아있..."


"아마우 아코."


"에?"


그때, 등 뒤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곧이어 검은색 교복을 입은 거대한 체구의 한 여성이 그녀의 옆을 비껴지나갔다.

손에는 커다란 주사기를 든 채,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이다.


"...몸 상태가 말이 아니시군요."

"게헨나라서 그런지, 쪽도 못 쓰시는건가요?"


"...에? 너희들... 트리니티의..."

"윽...!! 쿨럭, 쿨럭...!! 흐윽.... 큭..."


힘이 다해 쓰러지는 그녀를 부축하는 또 다른 손.

고개를 돌려 바라본 곳에는 퀭한 눈빛의 또 다른 여성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힉!"


선혈이 낭자한 교복. 붉게 흘러내리는 헤일로.

마지막으로, 선명하게 불타는 붉은 눈의 의지까지.


트리니티의 최고전력, 켄자키 츠루기가 분명했다.


"...마시로. 이 여자를 데리고 물러나있어. 뒤에 쓰러진 은발도 챙겨주고."


"네, 츠루기 부장님...!"


"자, 잠깐... 츠루기??"

"그 정의 실현부의 츠루ㄱ... 우리 부장님을 공격했던 그..!!"


당장이라도 방방 날뛰고픈 아코였으나, 도무지 그럴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기에 화를 삭힐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러거나 말거나, 츠루기는 말없이 무기를 장전하였다.


"...수고 많았어 게헨나."

"지금부터는 우리들이 맡는다."


"우리... 들?"

"그, 그야 당연하죠!! 지금 제 앞에 보이는 당신들 수만 세명.."


그러나 이를 비웃듯 속속히 모습을 드러내는 의문의 군대.

검은색 빵모자에 거대한 장총과 소총으로 무장한 흑빛의 그녀들, 정의실현부였다.


"전체, 앞으로! 적이 아직 쓰러지지 않은 상태이니 방심은 금물이다!"


하스미의 우렁찬 호령과 함께 차례차례 전진하는 정의실현부원들.

이미 한 차례 궤멸당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는 실로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이에 아코는 자신도 모르게 하던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일텐데. 자, 잠깐... 에...??"


"...말했잖아. 우리 '들' 이라고."

"오히려 너무 늦어서 미안해. 아코."


"에???? 이, 이 목소리는..."

"히나 부장님....?"


커다란 AMAS 해치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히나.

그리고 그녀와 함께하는 검은 헤일로의 생존자들까지.


아코는 혼자가 아니었다.


해치가 열리고, 잔존한 검은 헤일로의 생존자들이 하차하여 전열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사오리와 아즈사, 그리고 미사키. 이즈나와 미카를 비롯한 잔존 병력들까지.

그녀들의 눈빛에는 모두 한서린 투지들이 가득 찬 상태였다.


처음 마주하는 광경에 벙쩌있는 아코.

그런 아코 곁으로 어느덧 다가온 히나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오랜만이네, 아코. 이렇게 마주하는게 얼마만이지?"


"히... 히나 부장님... 저, 저는..."

"...훌쩍, 죄송해요. 저는 모두를 지킬 수 없었어요...."

"선도부원들도... 하물며 동료들도...! 저는 어느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


히나는 울먹이는 아코를 말없이 껴안아 주었다.

처음 느껴보는 히나의 애정표현에 기쁨보단 당황의 감정이 더 앞섰다.

어버버하며 당황하는 그녀에게, 히나는 희미하게 나마 미소지으며 말했다.


"괜찮아. 너만 그런것이 아니니까."

"지금은 적어도... 모두가 소중한 '한 사람' 을 잃은 상태잖아...?"

"너는 최선을 다했어. 놓치고 잃은 것은 지금부터 찬찬히 되찾으면 돼..."


"부장님..."


"그동안 수고해줬어, 아코."

"묵은 회포는... 나중에 풀자."


"..."

"...네!"


그녀의 다정한 위로가 끝남과 동시에, 또 한번 흐르는 인파.

이번에도 똑같은 흑빛의 군대들이었으나 그렇다고 정의실현부원들은 아니었다.

유심히 그녀들을 관찰하던 아코는 뒤늦게 진실을 깨닫고는 감격에 벅찬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


"...왜 그래?"


"아...! 그, 그게..."

"모두...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이토록 멀쩡히..."


정갈한 머릿결과 함께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한 무리의 군대들.

그녀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게헨나 최후의 날, 마지막 순간까지 응전을 펼치다 산화했다고 알려진 게헨나의 선도부원들이었다.

아코 머릿속 마지막 기억과 한 치의 다름도 없이 그대로. 그 순간의 모습을 간직한 채 돌아온 그녀들.


"어떻게 다들... 훌쩍, 살아... 있었던건가요...?"


"...자세히 말하자면 길어. 나도 잘은 모르고."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고이 쥔 히나의 두 손이 부르르 떨렸다.


"...그 이면엔 모두 단 '한 사람' 이 있었다는거."


"네? 그게 무슨..."


"..."

"아니야, 아무 것도. 나중가면 자연스레 알게될거야."


말을 마친 히나는 말없이 저편의 적을 노려보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하지만 이 또한 마지막 흐름이 아니었다.


"꽤나 버텨주지 않았는가! 히나 콤라드."


"...딱 알맞게 왔네, 체리노."


흑색이 있다면 백색도 있는 법.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어마무시한 물량의 대군이 아코의 머리 너머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의기양양한 한 꼬맹이를 중심으로 길목을 가득 매운 그녀들의 흐름은 그 존재만으로도 사기 증진에 도움이 될 정도였다.


"큿..."


몰려오는 지원군들의 위용에 "그것" 또한 어느 정도 긴장한 듯 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압도되는 것은 아니었다. 비록 투지를 불태울지 언정 전의는 전혀 꺾이지 않은 상태였다.


이를 증명하듯, 그것은 휘황한란한 광배와 함께 천천히 공중으로 떠올라 그녀들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웃차..!"


중앙의 꼬맹이, 렌카와 체리노는 깡총하며 전차에서 뛰어내려 히나의 앞에 섰다.

앳스러운 풍체와는 달리 그녀가 내뿜는 분위기는 퍽 진지하였다.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끌어모았다네."

"물론, 이길 수 있을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네... 1시간이나 버틸 수 있으면 기적이지."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수적으로는 분명히 우리가 위세이지만... 지금의 우리들은 정보가 너무나도 부족해."

"저것이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그리고 어떠한 강함을 지녔는지..."


히나는 나지막히 대답했다.


"사오리도... 유우카도... 리오도. 모두 끌어모았지만 내심 느끼고 있어."

"이렇게 해도 역부족이라는 것을... 우리들 만으로는 그저 버티는 것이 한계라는 것을..."


"...그래도 어쩔 수 없지않은가."

"우리들은 그저 죄인... 남은 것은 형벌과 속죄 뿐."


그때, 장전을 마친 사오리가 어느새 다가와 그녀들에게 말했다.


"선생이 사라진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것은 영원한 투쟁 뿐이야."

"어쩌면, 운이 좋다면 이길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안심의 이유는 될 수 없어."

"비록 삶이 다하는 날이 있더라도... 선생에게 받은 이 두 번째 삶이 끝나는 한이 있더라도..."


"..."

"우리들은 멈춰선 안된다... 그 말인게지? 콤라드."


사오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히나 또한 슬며시 미소지으며 되내었다.


"동의하는 바야. 그럼..."

"얼마 남지 않은 '그 순간' 까지. 오두 힘내보자...!"


체리노, 히나, 그리고 사오리.

3인은 다시금 모인 연합군의 선두에 서서 다가올 위협을 마주하였다.

비장한 전운과 더불어 소름끼치는 적막이 양측 진영에 내려 앉았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본 아코는 그 자신도 절로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왠지 모를 허전함과 의문이 가슴 속 한 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잠깐... 너무 체계적인데? 아무리 함께 싸워온 경험이 있다고 해도... 색채가 분화한지는 얼마 되지도 않았고...'

'마치 모든 사실을 직접 봐온 것 처럼... 이 외진 곳까지는 또 어떻게 온 것이고... 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지...???'

'그 전에, 아루는...????? 아루가 죽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건가...??? 하... 이걸 어쩌지...? 말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그렇게 홀로 근심을 썩이던 무렵.

이를 이상하게 여긴 히나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 그래? 아직 몸이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은거야?"


"그, 그건 아닌데...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서요."


"뭔데? 말해봐. 단, 시간이 없으니 최대한 빨리."


"그, 그게... 어째서 아무 의문도 갖지 않으신거죠?"

"어째서 제가 있는 이 외진 장소를 단번에 찾아오신거죠? 어째서 저것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다 알고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시는거죠??"

"죄... 죄송해요! 하지만 의심이 가는걸 어떡해요... 물론 괜한 의심이겠지만! 그, 그래도 혹시 모를 안전장치라 생각하고 답해주세요!"


아코의 말에 순간 정적이 맴돌았다.

그러나 잠시 후, 선두의 그녀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왜, 왜 그러시는거죠??? 여, 역시 저를 속인..."


"아아, 아니 아코. 미안... 너무 재미지고 순박해서 말이야."

"그래... 생각해보니 너는 미처 알 틈이 없었겠구나. 그럼 우리를 의심하는 것도 당연하지."


가까스로 웃음을 그친 히나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하늘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러자 아코의 빛을 잃었던 동공도 차츰 넓어지며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

.

.


"저건... 헬기???"
"크로노스... 잖아요??? 대체 어떻게...???"


[...지금 말씀드리는 이 순간에도, 또 하나의 성소가 쓰러지고 있습니다!]

[키보토스는 강합니다! 우리들은 함께 연대할 것 입니다... 우리들은 함께 이 재앙을 이겨낼 것 입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그녀들의 머리 맡을 스쳐 지나가는 크로노스의 헬리콥터.

이와 동시에 불현듯 켜진 전광판에서는 드높던 성소들의 몰락이 실시간으로 상영되고 있었다.


[밀어!!! 끌어!!! 좋다!!! 계속 전진!!!]

[어어... 넘... 넘어간다!!!! 우리가 해냈어!!!!]


함께 힘을 합쳐 성소와 싸우는 학생들. 

끊임없이 닥쳐오는 위기에도 결단코 물러서지 않는 의지와 용기.

처참하게 무너져내리는 성소의 권능까지.


"희망" 이라는 낮선 감정이 다시금 고개를 내미는 순간이었다.


"대체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는거죠??"

"어떻게 그녀들이 모두 각성하여 이런... 이런 기적을..."


"나야 모르지. 그야 우리들은 그동안 줄곧 싸우고만 있었으니까."


불현듯 모습을 드러낸 미카가 말했다.


"...하지만 말이야. 그래서 더욱 확실히 느낄 수 있어. 한 사람이 만들어낸 기적의 무게를..."

"선생님... 그 빌어먹도록 착해빠진 인간이 벌여놓은 한없는 희망의 터전을... 그렇지 않아?"


그녀를 향해 넌지시 미소 짓는 미카.

이에 아코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성소는 무너지고, 그때마다 그것은 온 몸을 힘겹게 뒤틀며 고통스러워 하기 시작했다.

전광판의 화면은 계속해서 바뀌었지만, 그때마다 중복되는 광경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전국 동시 다발적이라는 의미로군."

"이대로 가면 모든 성소들의 토벌도 머지 않은 시점이겠어."


말을 끝내기 무섭게 마스크를 올리는 사오리.

그때까지도 벙쩌있는 아코를 향해 돌아보며, 히나는 말했다.


"아코. 우리들은 비록 짓밟힐지언정, 꺾이진 않아."

"그리고 저것이 우리들의 답이야... 수없이 밟히고 찢어진 씨앗이 기어코 피워낸 꽃..."


"히나 부장님....!"


"하지만, 안심은 아직 일러. 저것 봐. 색채는 아직도 멀쩡한 상태야."
"그리고 어디까지나 저것의 백업이 사라진 것 뿐... 목숨은 아직도 끊어지지 않았어. 긴장을 늦춰선 안돼, 아코."


"네... 하지만..."

"하지만 조금은... 기대가 되네요. 긴장도 되구요."


떨려오는 입꼬리를 애써 억누르며, 아코는 말했다.

이에 히나는 말없이 미소로 화답할 뿐이었다.


"그럼... 갈까."


"...응. 전방은 내가 맡도록 하지."


"그렇다면 이 몸이 후방을 맡도록 하지!"


여정과 서사시의 종막은 이제 막 올라선 참이었다.


***



재수생에게는 일상이 필요해요

이런 그에게는 글을 쓸 자투리 시간이 없어요...

필자는 순간의 연참으로 빠른 완결을 원합니다.


...는 아무리 잘 쳐줘도 핑계.

갑작스럽게 시작된 개인 사정탓에 글을 다 써놓고 올리질 못했음.

완결은 어떻게든 낼 생각이고, 끝까지 믿고 기다려준 사람들에게 큰 고마움의 뜻을 전하는 바여...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