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

25화



https://www.youtube.com/watch?v=69Dix-v4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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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들이 가슴 속으로부터 아려온다.

뜨거운 작열통이 나의 뱃속을 끊임없이 짓누르는 듯 느껴진다.

천천히 호흡을 내뱉지만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만 더하는 꼴이다.


"크흑...!!"


이 고통... 이 저주...

아마 내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증거겠지.

그렇기에 더더욱 발걸음을 재촉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다시금 내 발로 이 장소를 찾아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과거 내가 이 세계에 도달한 후 고문교사로써 첫 부임을 했던 그날의 기억.

소중한 학생을 지키기 위해 옮겼던 발걸음을, 나는 지금 이 순간 또 다시 내딛고 있었다.


"...당신이 오실 줄 알았습니다. 선생."

"그렇다고 할지라도, 이렇게 즉각 응해주실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는데요."


"그야... 그날 이후 너가 직접 연락을 준 것은 실로 오랜만이니까..."

"...검은 양복."


검정색 정장과 더불어 은은한 빛깔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머리까지.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그것은 나를 향하여 천천히 돌아보며 입을 때었다.


"몰골이 영 말이 아니시군요."

"괜찮으시다면 저희들의 기술력으로 일부 도움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그 표정을 보아하니 거절의 뜻으로 알아두겠습니다."


"그야 뭐, 너희들이 맨 입으로 선의를 표할리가 없으니까."

 

"워워... 너무 의심은 하지 말아주시죠. 지금 상황이 상황인 만큼, 선생. 저희들 또한 당신의 도움이 절실하기에."

"...그러나 그것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는것이죠? 알겠습니다. 구태여 묻지는 않도록 하죠."


검은 양복은 실없는 미소와 함께 다시금 자리에 몸을 의탁하였다.

이에 나 또한 아려오는 상처를 부여잡으며 천천히 근처 의자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상처가 많이 심각해보이는군요. 응급처치는 완료한 상태인가요?"


"후훗... 네가 상관할 바는 아니야. 꽤 멀쩡하기도 하고."

"그건 그렇고, 어떻게 됐어?"


"아아. 왕녀의 그릇 말인가요."

"정말 다행스럽게도 불완전하게나마 형태를 보존하고 있던 무명사제들의 시설이 있더군요. 좌표는 가지고 계신 단말기로 보내드렸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저는 정보의 제공자일 뿐. 입수는 선생, 당신의 몫입니다."


"그것 참 더럽게 고맙네."


왕녀의 그릇이란 곧 아리스의 새로운 육체를 이르는 말이었다.

물론, 한시가 급한 이 상황 속에서 그녀의 복구는 다소 시기상조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럼에도 내겐 선약이 있다. 반드시 모든 것을 되돌려 돌아오겠다는 선약이 말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히마리를 포함한 모두가 나를 위해 일해주고 있다.

그런 그녀들을 위해서라도 내일의 작전은 반드시 성공해야만 한다. 


성공시켜서, 모든 것을 되돌리고 모두에게 돌아간다.

두 번의 실패는 용납되지 않을 터였다.


"...그럼, 이만 갈게."

"너도 몸조심하고. 기껏 붙여놓은 머리인데, 다시 꺠지면 좀 그렇잖아?"


나는 적당히 몸을 추스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늦은 고로 이대로 샬레에 돌아가 잠깐의 쪽잠을 잔 뒤, 곧바로 아리스의 몸을 회수해야만 한다.


빡빡한 시간주기, 그러나 신경쓰지 않는다.

이 이상의 휴식은 내게 있어 큰 사치나 다름 없었으니까.

내겐 지켜야할 학생들이 있으니까.

모두와 약속을 했으니까.


"...샬레의 선생."

"마지막으로, 하나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그러던 그때.

문득 검은 양복이 떠나려는 나를 불러 새우며 말했다.


"..."


"..."

"정말... 사용할 작정입니까?"


"뭐를?"


"...시치미 때지 마시죠, 선생."

"당신에겐 시간과, 그리고 미래가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당신의 '삶' 과 직결된 문제이죠."


잠시동안 이어지는 정적.

이윽고 무언가가 파앗- 하고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미묘한 미소를 간직한 검은 양복의 갈라진 틈이 빛을 발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어째서 당신이 스스로를 아끼지 않는지."

"어째서 그토록 자신을 돌보지 않는지. 어째서 마치 오늘 내일 하는 사람처럼 선생, 당신을 혹사하는지 말이죠."


"..."


"처음부터... 당신에게 내일은 없었던 것 입니다. 그렇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긍정도, 부정의 뜻도 아니었다.

단지 한없이 패망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이 세계에서의 내 위치.

선생이라는 자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대답이었을 뿐이다.


"...나름대로 저 혼자서 알아본 바에 따르면, 현재 키보토스의 수많은 학생들이 불구가 되거나, 혹은 헤일로가 파괴된 상태입니다."

"만일 당신의 그 '카드' 로 그녀들을 '구매' 한다면... 그녀들의 '삶' 을 당신의 '삶' 으로써 지불하는 '선택' 을 하게 된다면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르죠."


"...잘 아네. 마치 경험자 같아."

"아님 연구자들의 숙명인가? 하핫. 농담 한 번 해봤어."


"하지만, 하지만 선생."

"그렇게 된다면... 그 카드를 사용한다면 당신이 만들 새로운 '실낙원' 에, 당신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을 것 입니다."

"당신이 그토록 살리고 싶어했던 아이들과의 대화도... 재회도... 이후 나눌 수많은 인연의 관계도 그저 뒤틀림의 끝을 향하여 시간의 틈새 사이로 희ㅁ..."


"...희미해져 갈 뿐, 이지."

"하지만 뭐. 어쩌겠어? 삶이란 그런 것인걸. 잃어버린 삶은 결국 똑같은 삶으로 밖에 구할 수 없다는 걸..."

"검은 양복. 너도 알고 있잖아?"


검은 양복은 침묵하였다.


"누군가를 희생해야만 한다면. 누군가를 희생하지 않고서야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없다면."

"그 희생의 주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그녀들의 '선생' 인 내가 되어야만해."


"...어째서죠."

"당신도 인간일텐데요. 당신도 삶에 대한 의지가 있을텐데요."

"당신도 '삶' 과 '시간' 에 관한 열망과 바램이 있을텐데... 어째서 스스로 산재물을 자처하는지."


"...하핫, 뭘 간단한걸 묻고 앉아있냐."

"난 [선생] 이니까. 선생은 자고로 마땅히 그래야만 하니까."

"[책임] 이 주는 무게란, 그런 법이니까."


피식.

그것의 틈으로부터 미세하게 흘러나오는 웃음.

이에 나도 그것을 향하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미약하게나마 미소지어 보였다.


"정말이지... 당신답군요. 샬레의 선생."

"그렇다면 뭐, 이젠 말리지 않겠습니다. 예로부터 그랬듯이, 당신의 뜻은 쉽게 굽혀지는 법이 없었으니까요."


"...그래. 이해해줘서 고맙군."

"그럼..."


나는 굳게 닫힌 문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한 발짝, 한 발짝 멀어질 때 마다 내 가슴을 짓누르는 무게추의 중력이 더더욱 강해지기 시작했다.


아마 앞으로 다신 이 곳을 찾을 수 없겠지.

그것은 나도, 그리고 검은 양복 또한 예상하고 있을 터였다.


"잘있어. 검은 양복."


"..."

"네. 안녕히 가십시오."


.

.

.


"..."

"함께해서 영광이었습니다."

"...또 한 명의 선생이시여."


***


"허억...!!!! 허억....!! 허억..."

"ㅁ... 뭐야...??? 이런... 이런 일이 있었다고...???"


그녀 앞에 비친 선생의 과거.

이에 아루는 차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른.... 어른의 카드가... 저런.... 의미였어...???"

"그, 그런.... 그럼 그때 아로나가 언급을 피했던 이유도... 일말의 정보도 알려주지 않았던 이유도..."

"그게 선생님의 삶을... 대가로 해서 그런거였어....?"


그녀의 숨소리가 점차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얼굴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절망에 서서히 일그러져갔고 두 손은 자괴감과 죄책감에 한없이 오그라졌다.

한껏 충혈된 그녀의 눈가에선 끝없는 눈물의 향연이 그려지고 있었다.


"아.. 아아....!! 그, 그런...."

"우리들을.... 우리들을 살리기 위해 선생님은... 선생님은 스스로를.... 욱, 우욱...!!!"

"쿨럭..!!! 하아.... 하아.... 이, 이런일이... 어째서 이런 일이...."


눈물은 멈추는 법이 없었다.

아니, 멈추더라도 어떻게든 흘러내리고자 하였다.

설령 그것이 눈물이든, 아님 핏방울이든간에.


"으아... 으... 어째서 난 몰랐던거지...??"

"어째서 난 그토록 멍청하게 잠이나 자고 있었던거지...???"

"어째서 난... 흐윽, 선생님의 아픔을.... 차마 알지 못했던거지...??"


수많은 기억과 정보들이 그녀의 뇌리를 스치며 고문하였다.

그 기억 하나하나에 담긴 아픔과 고통을 느끼며, 아루는 서서히 무너져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기억이 주는 고문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


"허억... 허억.... 쿨럭, 끄윽..."

"하아.... 하아.... 아로나... 듣고 있어?"


고통스럽다.

죽을만큼 고통스럽다.


그것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나는 더 이상 나 스스로를 차마 유지할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작전은 실패했고, 생존자들은 와해되었다.

아이들은 분노와 광기에 미쳐가기 시작했고, '사냥' 이라는 명목하에 그 절망을 천지에 발산하고 있다.

파멸과 재앙의 기사였던 나의 엇나간 학생들은 처지가 바뀌어 역으로 '사냥' 이라는 이름의 폭력과 광기를 받아내는 상태.


모든 것이 틀어져버렸다.


나 때문에.

내가 모자랐기 때문에.

마지막 기회를 망쳐버리고 말았다.


그녀들은 나를 믿고 따르고 있었는데.

내가 그녀들을 이끌어 빛을 향해 나아갔어야만 했는데.


그것이 인도자이자, 선생이자.

어른의 역할이었는데.


"크흑...!! 하아...!! 하아... 하아..."

"쿨럭.... 쿨럭... 으으으... 아로나아.. 듣고 있니...?"


"ㄴ,네!! 선생님..!"

"저 여기 있어요... 듣고 있어요! 그러니 부디..."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직 무너질 수 없었다.

나에게는 아직 사명과 의무가 남아있었다.


어른은 책임을 져야한다.

그것이 자신의 잘못으로 인하여 벌어진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나는 어른이다.

그리고 나는 그녀들에게 크나큰 죄를 지었다.

모든 것을 잃은 내게 남은 것은 오직, 이 더럽고 찢어진 몸뚱아리 뿐.


나는 책임을 져야만 했다.


"...부탁이 있어, 아로나."

"부디... 마지막 부탁이니 들어줄 수 있을까?"


"네... 그것이 무엇이든 들어드릴게요."

"대체 무엇을... 제게 원하시는지요, 선생님...?"


"허억... 허억... 헤헤..."

"나중가면... 다 알게 될거야..."


나는 힘없이 내 손에 쥐어진 싯딤의 상자를 내려놓았다.

히마리가 최후의 순간 전해준 자료의 정리도 끝났고, 내 마지막 '고집' 의 부여도 끝이 났다.


어른의 카드.

나는 카드의 인수자를 아로나 앞으로 돌려놓았다.

카드 한도를 무제한으로 바꿔버린 것은 덤이었다.


이제 내게있어 남은 시간은 오직 30분.

마지막을 준비하기에는 더없이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로나. 아이들에게 연락을 해줘."

"지금껏 연락이 끊겨있던 아이들에게... 헤일로가 검게 물들었을 아이들에게... 어서...."


어째서일까.

이토록 마음이 차분한 이유는.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

앞으로 찰나의 시간이 더 흐르면 나는 더 이상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게 된다.


드넓은 신비의 광체 너머로 한없이. 

또한 덧없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무섭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았다.


남은 것은 오직 아쉬움.

그리고 미안함 뿐이었다.


"아로나... 뒷일은 부탁할게... 난 이제 조금....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아...."

"아주 조금이니까... 조금만... 조금만 쉬고 일어날ㄱ...."


아.

드디어 때가 왔구나.

나에게 주어진 형벌의 때가.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때가.


이제 더 이상 입술에 힘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줄곧 느껴지던 혈액의 비릿한 맛도, 목을 쥐어짜던 울대의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의식도 점차 흐려려진 지금.

내 눈앞에는 오직 빛.


한없이 밝은 빛 뿐이었다.


.

.

.


믿을게, 아로나.


나를 대신해서.

실패한 나를 대신해서 모두를 구원의 길로 이끌어줘.


너라면 이 카드의 사용례를 잘 알테니까.

너라면 틀림없이 나와 같은 선택을 할테니까.


그러니 다시 한 번 믿을게, 아로나.


이것이 내가 너에게 전하는 마지막 뜻이자.

내 마지막 부탁이야.


***


이후 무너지는 키보토스의 모습.

차례차례 격파당하고 사냥당하는 검은 헤일로의 모습.

눈물을 머금은 채 어른의 카드를 꺼내는 아로나의 모습이 그녀 앞에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모두 봤구나."


한없이 시들어 꺾인 그녀의 앞에.

선생이 나타났다.


"선생... 님...?"


"이런... 이래서 숨기고 싶었던건데."

"너만은 알지 못했으면 했는데... 결국 봐버렸네."


꽤나 적잖히 씁쓸한 어조의 선생.

그의 낮빛은 다소 어두운, 그러나 불편한 기색은 전혀 없는 상태였다.


"선생님... 어, 어째서 알려주지 않은거야??"

"어째서... 우리들에게 그런... 선생님의 모든 것을..."


"...아루."


"아... 아니야 선생님... 왜... 왜...???"

"어째서...??? 어째서 어른의 카드가 그런... 원리라는 것을 우리들에게 알려주지 않은거야???"

"어쨰서 스스로를 그렇게.... 왜...????????"


"괜찮아, 아루. 모든 것을 본 너는 이제 알 수 있잖아."

"처음부터 다 각오한 상태였다는걸... 그리고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는걸 말이야."


"그래도... 그래도...!!!!"

"우리가 어떻게, 어떻게 버틸 수 있겠내고...!! 이런 진실을 알아버리면..."

"우리들을 살리기 위해.... 선생님의 모든, 흐윽...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그런 잔혹한 사실을 알아버리면 난....!!!"


또각. 또각.

선생의 발걸음이 주변에 찬찬히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찰방거리는 발장구 소리와 더불어 신비한 공명이 그와 그녀 사이에 서서히 피어나기 시작한 그 순간.


문득, 아루는 자신이 다시금 꽃밭 위로 올라왔음을 알게 되었다.


"...미안해, 아루."

"하지만 알아줘. 결코 너희들을 향한 악의는 담겨있지 않았..."


퍼어억.


그때였다.

아루의 주먹이 선생의 가슴팍을 파고든 것은.


"커억..!!!"

"아... 아루...??"


"...선생님. 묻고 싶은게 있어."

"그러니 부디... 대답해 줄 수 있을까...?"


눈물로 얼룩진 그녀의 황금빛 눈동자.

선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거야????"


"ㅁ, 뭐?"


"내가... 훌쩍, 내가 맨 처음 그 광경을... 그 진실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 선생님???"

"짜증났어... 배신감도 들었고...!!! 모든 것이 다... 다 밉고 원망스러웠어....!!!!"


"아, 아루...!"


"어째서... 어째서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려고 한거야??"

"선생님도 인간이잖아... 인간이라서 고통스럽고, 아프고... 힘들었을텐데..."

"훌쩍... 분명히 우리가 밉고 원망스러웠을텐데... 어째서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했던거야...?"


"그게 무슨 말이니 아루야??"

"내가 너희들을 왜 원망스러워 하겠어... 난 어른이고 너희들을 보호하는 선생인ㄷ..."


"그. 러. 니. 까...!!! 그게 문제라고 그 태도가...!!!"

"아로... 훌쩍, 아로나가 모두 보여줬어... 샬레 데스크톱에서도 알 수 있었어..."

"실은 선생님도 힘들었던거잖아... 자신이 사랑하고 아끼던 학생들에게 배신 당했다는 생각에 잠도 못 이룰 정도였잖아...!!"


아루는 연거푸 그의 가슴팍을 두드리며 울분을 쏟아내었다.

그리고 그런 아루를, 선생은 말없이 가만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우릴 포기하지 않았잖아..."

"분명히 보답받지 못할게 분명한데도... 마침내 도달한 약속의 땅에 본인이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어떻게 그런...!!"


그녀의 눈가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참회외 애통의 정수가 한없이 청정한 상태 그대로 선생의 발끝을 천천히 적셔나갔다.


"잠 정도는... 잘 수도 있었을텐데... 훌쩍, 어째서 매번 우리들만 생각하고..."

"본인을 좀 생각하던가...!! 이 키보토스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최약체인 주제에... 왜 그렇게 혼자 나서려고 한거야???"


"자, 잠깐... 잠을 안 잤던 것은 상황이 급해서 그랬던거고..!"

"그리고 아루... 나는 결단코 너희들을 미워한 적이 한 번도 없어."

"모두 나의 의무니까... 너희들을 품고 보살피는게 나, 선생의 역할이니까 그런거야."


천천히 다가와 아루를 끌어안는 선생.

그러나 어째서인지, 편하고 따뜻해야할 그의 품은 한없이 차갑고 휑할 뿐이었다.


아루는 알고 있었다.

이는 결코 본인의 착각이나, 환각 따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선생의 가슴에는 지금.

한없이 거대하고 깊게 파인 구멍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매울 수 없는 끔찍한 성위가 그의 가슴 속에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루는 선생을 거부하며 밀어내었다.

그가 싫다거나, 질렸다 따위의 시덥잖은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그의 목숨을 담보로 부활했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 자신은 죄인이나 다름 없기 때문에. 

도무지 그를 바라볼 면목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아루..? 괜찮... 이?"


"매번... 매번 그런 식이니까 스스로를 혹사시키는거 아니야...!"

"그 놈의 선생... 선생이라는 직위가 뭐라고..!! 선생이라면 뭐든지 다 포기해야해?"

"선생이라면 매번 부리나케 뛰어다녀야 하고... 모든 업무를 혼자서 처리해야만 하고...!!"


"아루... 침착해. 난 정말로 괜찮..."


"모든 사건을 혼자서 처리해야만 하고...!!! 매번 혼자... 또 혼자...!! 그런거야...?"

"훌쩍.... 크흑...!! 그러니까 그렇게 혼자... 혼자 쓸쓸하게 죽어버린거 아니야...!!!!"


"...."


연거푸 이어져오던 아루의 주먹질도 점차 약해지더니, 어느 순간 그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선생의 품에 힘없이 기대어 늘어진 채 뜨거운 눈물만을 흘리는 아루.

이에 잠시 멈칫한 선생은 말 없이 그녀를 껴안아주었다.


"...흐윽, 대체 왜 그런거야!! 왜 우리를 남겨두고 먼저 떠나버린거냐고...!!!!"

"정말... 그렇게 가버리면 남겨진 우리는 어떡하라고... 우리는 뭐 멀쩡할 줄 알았어???"

"선생님이 죽었어! 우리라도 뭉쳐야 해! 하며 뭐 강해질 줄 알았던거냐고...!!!"

"정말... 정말 너무하잖아...!!!"


"...미안해, 아루."


"...선생님이 왜 미안해??? 지금 그 말이 아니잖아..!! 내 말은... 내 말은 그저... 흐윽, 흑... 흐으윽...."

"힘들면 힘들다고... 말이라도 해주면 좋았을텐데....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


"선생님은 홀로 고군분투하며 모두를 위해 싸우고 있었는데... 나는 바보같이 잠이나 자고 있고..."

"훌쩍, 흐윽... 흑... 사랑한다 말하면 뭐해... 매번 좋다고 따라다니면 뭐해..! 이렇게 중요할 때... 도움 하나 되어주지 못했는데..."

"나는.... 우리는 그저... 선생님이 있어서 행복했을 뿐 이었는데... 한 번 만이라도 다시 만나고 싶었을 뿐 인데..."

"나는 선생님을... 구하지 못했는데... 흐윽, 흑.... 흐윽...."


결국 아루는 무너지고 말았다.

선생 없이 보내왔던 지난날의 세월은 결코 쉽지 않은 나날이었기에.

1년, 10년, 나아가 평생이 지나도 결단코 잊을 수 없을 만큼의 충격이었기에.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만을 흘릴 뿐 이었다.


그동안 느꼈던 원망, 분노, 슬픔, 죄책감. 

모든 감정이 복합적으로 응축된 결과물이었다.


"미안... 미안해 선생님... 내가 또 못할 말을 그만..."

"훌쩍, 미안해 선생님...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으니까 그냥..."


"...아루."


"...!"


그 순간.

문득 따뜻한 기운이 아루의 주변을 감싸 안기 시작했다.

그 기운은 한없이 편안하고, 또한 안락하고, 때론 씁쓸했으며 때론 한없이 아파왔다.


그럼에도 아루는 그 느낌이 미냥 싫지는 않았다.

실로 아득히 느껴지는 특유의 알싸함과 함께, 아루는 천천히 두 눈을 떴다.


"아루..."


"선생... 님."


"많이 아팠구나."

"...미안해. 내가 조금 더 멀리 보고 행동했어야 했는데."


"아, 아니야... 제발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말아줘..."

"나쁜건 우리야... 미안해야 할건 우리야... 선생님이 아니야...!"


그녀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것은 다름 아닌 선생이었다.

그리고 갈기갈기 찢어진 아루의 마음을 모아준 것은, 그 또한 선생이었다.


"아루..."


"미안... 미안해 선생님..."

"우리들이 몰라서... 너무나도 무지해서... 선생, 선생님을 죽게 만든..."


"...아니야, 괜찮아 아루."

"너희들은 잘못이 없어... 마찬가지로 책임을 질 사람도 너희들이 아니야."


기분탓인지는 몰라도 주변이 찬찬히 밝아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루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꽃들이.

서서히 피어나 꽃잎을 흩뿌리며 선생과 그녀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많이... 성장했구나. 리쿠하치마 아루."


향긋한 꽃내음과 더불어 한껏 흐트러진 애환과 사랑의 향기가 콧잔등을 알싸하게 간지럽혔다.

이윽고 완전히 그녀를 둘러싼 꽃들은 서로 손에 손을 잡은 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아루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서... 선생님...? 뭐, 뭐야 이거...?"


"물론 솔직하게 말하자면... 힘들었어. 절대 아니라곤 할 수 없어."

"때론 고통스러웠고, 때론 삶을 비관했으며, 때론 모든 것을 놓고 사라지고 싶다... 라고 까지 생각해봤지."

"하지만... 그 모든 고통과 애환의 순간 속에서도. 아루, 난 너희들을 단 한시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어."


아루를 끌어안은 선생의 기운이 더더욱 강해진 듯 했다.

잠시 뒤, 온 몸에서 빛을 내며 찬찬히 아루를 바라보는 선생.


어느새 그의 눈동자는 아루와 같은.

한별처럼 빛나는 황금색으로 변해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해. 그건 나도, 너희들도 모두 마찬가지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실수의 이후... 잘못을 저지른 이후의 시점부터야."


"선생... 님?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거야...?"

"설명해줘...!! 지금 이 상황은 뭐야??? 어째서 꽃들이... 이익, 꽃들이...!"


"누구나 죄를 짓고... 또한 참회를 하지. 그러면 된거야."

"비록 상처받는 사람은 있을 지언정,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그 상처 또한 서서히 아물어 갈테니까."


그를 휘감은 빛의 고리는 더더욱 환해져 타오르듯 주변을 감쌌다.

너무나도 눈에 부신 나머지, 아루는 차마 눈을 똑바로 뜰 수가 없었다.


"아루... 내 상처는 이미 아물었어. 이젠 너희들의 차례야."


"서, 선생님..!!! 몸에서 빛이..."


그때였다.


타악.

불현듯, 그의 투박한 손이 아루를 밀어내었다.

힘없이 튕겨져나간 아루를 바라보며, 선생은 지긋이 미소지었다.


"서, 선생님???"


"자, 아루. 모든 것을 끝맺으러 가야지."

"아직 저 바깥 세상에는... 너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니까."


"자... 잠깐 선생님... 선생님..!!!!"


이윽고 두둥실 떠오르는 아루의 몸.

순식간에 주변을 감싸는 꽃들의 향연과 함께, 아루는 어디론가 떠밀려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거짓말... 어떻게 만났는데... 이제서야 비로소 만날 수 있었는데..."

"아직 제대로 미안하다며 사과도 하지 못했는데.... 내가 한 일이라곤 오직 칭얼거림 뿐 이었는데...!!! 안돼... 안돼애애애애!!!!"


"..."

"걱정마, 꼭 다시 만날 수 있을테니까."

"그리고 반드시... 돌아갈테니까."


"선ㅅ... 선생니이이이이이임!!!!!!!!!"


그러나 그녀의 간절한 외침이 닿는 일은 없었다.

끔찍한 압력과 속도를 느끼며 한없이 흐드러진 아루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야 말았다.

암전된 시야 너머로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빛.


한없이 밝은 빛 뿐이었다.


***



2화? 정도 남은 듯.

여기까지 함께 달려와준 여러분들께 찬사를...!